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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를 시작합니다.

학교폭력의 해법을 찾아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제안입니다. 한 칼에 매듭을 자르는 해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우선순위, 기회비용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문제 중심의 접근에서 해결 지향의 접근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으로 학교 폭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여는 글: 학폭의 함정, ‘더 글로리’를 넘어서
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내 새끼 운명을 건 전쟁”, 학폭위가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지난 한 달 남짓을 학교폭력과 함께 살았습니다. 많은 분들을 인터뷰했고, 적지 않은 국내외 자료들을 읽었습니다. 더 많은 곳에 전화하고, 밥을 먹거나 수영을 하거나 산책하면서도 때때로 학폭을 고민했습니다. 그 소회를 적어봅니다.

1. ‘더 글로리’, 연진이라는 착시효과

‘더 글로리’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치도 어떤 교육으로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분노로 의미 있는 공론을 이끌어냈습니다.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가정통신문의 제목이 “2023 학교폭력, No! 글로리 학부모 대상 학교폭력 예방교육 신청안내”(서울특별시동부교육지원청)입니다. 더 글로리의 영향력을 실감합니다.

가정통신문에 등장한 ‘(더) 글로리’, 강조는 편집자.

그래서 ‘더 글로리’를 매개 삼아 학교폭력을 고민하고, 이에 관해 토론하는 일은 아주 유익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더 글로리’라는 슬픈, 매력적인, 잔인한, 안타까운 드라마를 통해 자신들의 분노, 그리고 바람과 희망을 이야기하길 저는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 역시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더 글로리’가 만들어낸 착시 효과도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진이는 학교폭력을 지나치게 과잉대표합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진이는 학교폭력을 대표한다기보다는 학교폭력의 현실을 오히려 가림으로써 현실을 왜곡합니다. 드라마는 현실 속 진실을 반영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복잡성, 그 진실의 실체까지 모두 담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학교 폭력을 학교폭력예방법의 체계 안에서 한정해 다룬다고 전제한다면, 연진이는 학교에서 선도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선 존재입니다. 연진이를 위한 학교폭력예방법이라는 건 사실 없습니다. 연진에게는 9호 선도조치, 즉 퇴학만이 유일한 선택지이고, 그것은 학교가 학생을 포기한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연진이는 형사미성년도 아니고, 그 범죄성도 너무 노골적입니다. 연진이는 학교 ‘안’에서 어떻게하면 ‘선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학생이 아니라 당연히 퇴학시킨 뒤에 학교 ‘밖’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재범의 위험성을 줄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범죄자입니다. 쉽게 말해 연진이는 학교폭력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청소년범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학교폭력과 청소년범죄를 구별하자는 제 두 번째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2. 학교폭력과 청소년범죄


처음 취재를 할 땐 학교폭력과 청소년범죄가 겹쳐진 상태였습니다. 그 둘은 서로 쉽게 나뉘어지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은 청소년범죄의 하위 카테고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당국이 발표한 412 종합대책도 저에게는 학교폭력 ‘(예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단호한 목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연진이가 학교폭력이고, 학교폭력이 연진이인 ‘하이퍼 리얼리즘’의 현실 속에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 둘은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이라는 세계가 벌들의 세계라면, 연진이는 여왕벌이었습니다. 여왕벌이 꿀벌의 세계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지만, 벌의 세계를 알기 위해선 여왕벌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연진이를 학교폭력의 논의 범위 바깥으로 추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진이를 학교폭력의 범위 안에서 논의하면 그 답은 처벌 강화일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연진이는 선도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당연히 퇴학시켜야 할 학생입니다. 교육적인 고민은 1도 없어 보이지만, 윤석열(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원스트라이크 아웃이 합당해 보입니다.

그래서 연진이는 학교폭력 가해자라기보다는 청소년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 둘,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구별해야 합니까. 학교폭력을 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학자들은 학교폭력을 ‘불링(bullying; 괴롭힘, 따돌림)’이라고 부릅니다. 학교폭력을 청소년범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학자들은 학교폭력을 ‘스쿨 바이올런스(school violence)라고 부릅니다. 그 둘은 접근법도 다르고, 가해학생의 일탈행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릅니다.

연진이의 상습상해와 특수상해는 학교폭력예방법이 예정한 가해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섭니다. 연진이는 학교폭력 가해자라기보다는 청소년 범죄자입니다. 그러니 가해 학생의 선도라는 교육적 관점보다는 재범 방지라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육의 관점에서 학교폭력을 다루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논의가 학교폭력예방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불링으로서의 학교폭력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교육의 관점은 생략한 채 범죄자의 재범 방지 혹은 범죄자의 처벌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이 둘을 구별하는 이익은 확실합니다.

학교폭력을 청소년범죄가 아닌 학교폭력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처벌이나 재범방지의 목적이기보다는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선도를 목적으로 그 행위를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학교폭력예방법은 마치 학교폭력을 청소년범죄의 관점에서, 교육의 관점이 아니라 형사정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상파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는 한 변호사는 한 종편 보도방송에서 “학교폭력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학교폭력 가해자 중에는 연진이 같은 아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친구가 놀이터에 놔두고 간 가방에서 ‘포켓몬 카드’를 훔친 아이도 있고, 가정에서의 스트레스를 아이들 가방을 툭툭치면서 지나가는 학교 부적응 소년도 있습니다. 매일 같이 돼지라고 놀리는 같은 반 친구를 어느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밀쳐 학폭위에 올라온 아이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고 그 변호사가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친구가 놀이터에서 깜박하고 가져가지 않은 가방에서 포켓몬 카드를 훔친 아이를 기어코 학폭위에 올렸습니다. 박** 변호사님, 이 포켓몬 카드 훔친 아이 영원히 용서하지 말까요.

이야기가 좀 돌았지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학교폭력예방법은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 보호’와 ‘가해학생 선도’를 위한 법입니다. 학폭법에서 유일한 벌칙은 학생이 아닌 어른에게만 존재합니다. 그것은 비밀을 누설한 어른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벌칙이죠(법 제21조와 제22조). 학생들에게는 그 학생이 가해학생이라고 해도 학폭위 조치 중 아홉가지 ‘선도 조치’를 내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중 최고 조치는 무슨 징역이나 벌금이 아니라 ‘퇴학’입니다.

쉽게 말해 학폭법은 처벌을 위한 형사법의 일부가 아니라 교육적 목적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행정절차법입니다. 이 법은 피해자를 우선해서 보호하는 법으로서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가해자를 사실상 보호하는 법으로서의 기능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가해학생이라고 해도 ‘처벌’하는 게 아니라 ‘선도 조치’함으로써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조치일 수 있는 제9호 처분을 제외하고는 학교 밖으로 내쫓지 않습니다.

3. 연진이라는 악마, 혹은 우리가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학교폭력을 취재하면서 가장 먼저 든 궁금증은 이랬습니다. 연진이는 태어나는가, 아니면 만들어지는가. 물론 정답은 너무 뻔합니다. 그 둘은 불가분입니다. 환경과 유전은 연진이의 악마성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연진이는 자신의 DNA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악마성을 환경으로부터 수혈받았습니다. 엄마로 상징되는 금력과 부패경찰로 상징되는 권력, 금력과 권력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해지는 학교와 선생님, 이런 연진이를 부러워하는 학교 친구들까지. 악마를 키우고 독려하는 친구들은 차고 넘칩니다.

더 글로리 (2022, 2023, 넷플릭스)

엘리베이터 없는 열평 남짓 크기의 30년 된 아파트에서 사는 제가 매번 꾸준히 시청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구해줘 홈즈’입니다. 이 예능은 저에겐 서민형 판타지입니다. 의뢰 가격이 낮으면 뭔가 공감도가 높아지는데, 의뢰 가격이 높아지면 뭔가 짜증이 납니다.

어제(2023년 5월 7일) ‘구해줘 홈즈’에서는 아이가 학원 다니기 좋은 집을 찾는 부부의 의뢰가 있었습니다. 의뢰 가격은 전세 12억 원 이하. 노이즈 마케팅을 일으켜 관심을 끌려는 PD의 전략적 꼼수인 건가. ‘시청률 위해 어그로 끌었다’는 PD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은 위화감 넘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아직 초딩도 안 된 것 같은 딸의 학원 오딧세이를 위한 21세기 남한식 맹모삼천지교가 TV에서 펼쳐지고 있으려는 찰나에 아주 잠깐이지만, ‘위 올 라이(We all lie)’,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주제곡이 흘러나왔습니다. 아, 이 순간에 ‘스카이 캐슬’ 주제곡이 흘러나온다고? 짜증도 아니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드라마를 소비하는 방식은 이렇습니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폭력적인 입시제도 속에서 자살하고, 아이까지 살해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가 불티나게 소비하는 건 그 드라마를 낳은 아픈 현실에 대한 반성이나 드라마의 교훈이 아니라 등장인물 예서가 갇혀서 공부했던 당시 최저 가격 245만 원 짜리 ‘집중 독서실 책상’입니다.

드라마 ‘SKY 캐슬'(2018) 속 이른바 ‘예서 책상’ 현실에서는 최저가 245만 원짜리 ***책상으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다른 책상과 비교하면 가격이 높지만, 집중력을 더 높일 수 있는 학습 공간이 될 것 같기도 하네요~!” (드라마 스카이캐슬 속 ‘예서 책상’으로 알려진 ***책상을 소개하는 한 블로그 글 중에서)

드라마 속 연진이는 추락했습니다. 쇠락하고, 스스로 미쳐버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연진이는 어떨까요? 연진이의 학교 폭력은 밝혀지지 않은 채 숨겨질 수도 있을 겁니다. 다음에 소개할 정연순 변호사의 글에서처럼 학교폭력예방법(2004년 제정)이 만들어진 20년 가까운 세월, 단 한 건의 학폭 사건도 없었던 어느 명문 사립학교처럼 연진의 기록은 사라졌을 겁니다. 드라마 속 연진이를 때려잡겠다고 학교폭력예방법을 아무리 처벌 조항으로 땜빵해도 우리들의 진실이 우리들의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은 전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 좋게 생긴 예능 변호사가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학교폭력을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게 국민의 마음”이라고 떠드는 그 정의의 목소리가 숨기는 현실을 근심해야 합니다.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남긴 게 결국은 예서의 집중 독서실 책상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가장 가슴이 아팠던 건 인터뷰이 선생님들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피해자 표지의 경향성이였습니다. 가난한 아이들, 다문화 아이들, 한부모 아이들, 빌라에 살고, 좋은 옷 못 입고,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 부모가 이혼해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는 조손가정 아이들이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됩니다. 그 아이들을 공격 대상으로 지정한 건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들에게 공기와도 같은 환경을 만든 부모일 겁니다. 여기에 학부모의 책임을 절대적입니다. 어쩌면 그 학부모들 역시 학교폭력의 잠재적 가해자로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최선정 국장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반 친구들끼리 서로 물어보는 ‘호구 조사’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지, 빌라에 사는지, 아파트라면 어떤 브랜드,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학원은 몇 개나 다니고, 어느 학원을 다니는지, 입고 다니는 옷은 무슨 브랜드 옷인지, 신발은 어떤 건지…. 그리고 당연하게도 빌라에 사는 아이들이, 가정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 조손가정 아이들이 학교폭력의 표적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인터뷰이들도 마찬가지로 같은 말씀을 들려줬습니다. 학교폭력가족협의회 김소열 국장도, 동암중학교의 성기신 교장도,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신 한 여자중학교 상담 선생님과 그밖에 많은 취재원들이 우리나라 특유의 피해자 표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가난입니다. 이런 잔인한 환경 속에서 저출산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차라리 코미디입니다.

저출산은 아주아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유가 있습니다.

4. ‘더 글로리’를 넘어서: 절망보다 어려운 것, 존경과 희망의 시선으로


이정환 대표가 학교폭력을 첫 번째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의 주제로 정하면서 “답이 없는 문제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게 떠오릅니다. 답이 없는 문제 맞습니다. 아니 한 달 남짓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답은 너무 명확해 보였습니다.

노르웨이의 올베우스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이유를 잘 알겠으니 그것을 제대로 도입할 수 있는 방법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핀란드의 키바 프로그램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도 어렵지 않게 제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의 가능성도 좀 더 많은 학교에 확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랄 수는 있지만 불가능한 꿈입니다.

학교 폭력은 이제 학교폭력예방법, 특히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된 행정화하고 준사법화한 학폭위 시스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한몸으로 작동합니다. 학교 폭력은 이미 자본과 정치의 시장으로 변질했습니다. 학교 폭력은 변호사의 블루오션이고, ‘더 글로리’의 착시효과 속에서 정치화한 당국의 합법적인 저질 복수극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이 아수라장에서 교육을 이야기하는 것, 피해자의 치유, 가해자의 반성, 그리고 궁극에서 온전한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라기보다는 몽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 속에서도 작은 가능성, 작은 실마리들은 있습니다.

‘더 글로리’를 보면서 분노했던 그 마음이 향해야 하는 방향은 가해자의 처벌 강화가 아니라 연진이를 만드는 괴물의 공장, 그 공장의 재료들입니다. 연진이 같은 아이들을 학교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아서 운좋게 처단하거나 정순신 아들 신상 털어 박제하는 것으로는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처단과 박제는 감춰진 학교 폭력의 모순을 더 심화할 뿐입니다.

여전히 학교에는 아이들이 있고, 선생님이 있습니다. 이들은 제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과 입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고 믿습니다.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반인성교육을 하면서 인성마저 챙기지 못했다고 야단치는 사회의 모습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아이의 인성을 바란다면 입시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 전인교육을 하면 됩니다. 아이들에게 전쟁 같은 입시교육을 시키면서 인성까지 훌륭하기를 바라나요. 정말 양심도 없습니까.

때로 냉철한 이성은 현실을 냉소하게 하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을 만들어낸 현실을 보면서 저는 남부럽지 않은 냉소가 더 깊고 더 커지고 더 무거워지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현장의 선생님들, 현장의 아이들, 그리고 학교폭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가들, NGO와 피해자 단체 등의 활동을 존경과 감사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무슨 놀라운 솔루션이나 마법이나 기적 같은 감동의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더 글로리’를 넘어서 학교폭력의 현장, 그 마주하기 어려운 진실로 가는 첫 번째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폭력의 해법을 찾는 첫 번째 솔루션 저널리즘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연재는 슬로우뉴스 사이트와 오마이뉴스 ‘시리즈’ 플랫폼에서 동시에 접할 수 있습니다. 냉철한 비판과 따듯한 격려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슬로우뉴스 솔루션 저널리즘팀(SSJT)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건 이상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 취재를 한 뒤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취재 제안이나 제보, 도움 말씀을 환영합니다. 취재: 민노씨, 이정환. 기획 협력: 김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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