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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제안입니다. 한 칼에 매듭을 자르는 해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많은 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와 우선순위, 기회비용의 문제로 연결됩니다. 문제 중심의 접근에서 해결 지향의 접근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첫 번째 기획으로 학교 폭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여는 글: 학폭의 함정, ‘더 글로리’를 넘어서
박연진 대학 못 가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결말인가.
못 본 척하는 친구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내 새끼 운명을 건 전쟁”, 학폭위가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
“너는 그래도 우리의 좋은 친구야”-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생활교육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문제의 본질을 흐린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오래된 문제, 학폭의 해법을 묻는다 ③ 학폭위라는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학교는 배제되고 힘의 대결만 남았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다. 일단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장이 자체 해결하거나 학폭위로 보내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학교장이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은 다음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 2주 이상의 신체적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은 경우
  • 재산상 피해가 없거나 즉각 복구된 경우
  • 학교 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은 경우
  • 학교 폭력에 대한 신고, 진술, 자료 제공 등에 대한 보복 행위가 아닌 경우 등이다.

이 네 가지 요건과 별개로 피해학생이나 피해학생 보호자가 요구하면 아무리 경미한 사건이라도 무조건 학폭위로 간다. 그러니까 사안이 가볍거나 무거운가를 떠나 피해 학생과 부모가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놀이터에 두고 간 친구 가방에서 포켓몬 카드를 훔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실제 사례)도 부모들끼리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학폭위로 간다. 간다면 가는 구조인 것이다.

학폭위로 직행… 담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2020년 3월 학폭위 담당 기관이 학교(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교육지원청(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되면서 학교에서는 웬만큼 경미한 사안이 아니면 학폭위로 넘기고 발을 빼는 경향이 강해졌다. 교사 입장에서도 학부모들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을 우려해 자체 해결보다는 학폭위 선호하 됐다.

2022년 기준 학폭위 심의 건수는 2만3602건에 이른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늘어난 규모다. 여기에 2019년부터 시작된 학교장 자체 해결 사안까지 포함하면 6만2052건으로 늘어난다(출처: 관계부처 합동,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 2023, 4.)

슬로우뉴스는 학폭위의 운영 현황과 학교 폭력의 근본적 해법을 찾기 위해 교육 현장과 정책에 관여하는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

2011년말 대구에 한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 폭력에 대한 분노가 끓어올랐고 이듬해 교육부가 학교 폭력 대책을 발표하면서 여기에 결정적인 조치를 포함한다. 바로 학폭위 결과를 생활기록부에 남긴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학폭위는 ‘내 새끼의 운명’을 건 전쟁터로 변질됐다. 게다가 2020년 3월 학폭위를 교육청으로 이관하면서 가뜩이나 사법화 경향을 보였던 학폭 문제는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행정 절차로 변질됐다.

동암중학교 교장 성기선은 이렇게 말한다.

“귀한 내 자식의 미래를 망치지 않으려다 보니 소송을 하게 되고 기록을 삭제하려고 하니 또 소송을 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거죠.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그것도 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힘 없는 사람은 사람은 변호사 살 비용을 만들지 못하지만,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변호사를 동원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죠. 학교가 그런 변호사들과의 다툼으로 그게 또 엄청난 업무가 됩니다.”

성기선은 “피해 학생이나 가해 학생이나 학교가 중립적인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부모는 거의 없다”면서 “차라리 양쪽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고 제3자 입장에서 조절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교육청으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사의 성향에 따라 이왕이면 학교 안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교적 가벼운 사안까지 학폭위로 넘기는 경우도 많다.

광운대 교수 한재경은 ‘공공사회연구’에 기고한 논문에서 “담임 교사가 자체적으로 화해를 유도해서 처리하게 되면 자칫 학교 폭력을 축소 또는 은폐한다는 반발에 부딪혀 징계를 받거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경미한 사안이라도 학폭위로 끌고 가는 문화에서는 담임 교사가 교실 공동체의 관계 회복적 역할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현장에서 말하는 학폭위 시스템의 한계.

학교폭력예방법의 목적(법1조)은 첫째 피해 학생의 보호, 둘째 가해 학생의 선도·교육, 셋째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의 분쟁조정이다.

학교폭력가족협의회 사무국장 김소열은 “학폭위는 가해자의 징계에 초점을 두고 있고 피해 학생은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폭위 시스템은 여전히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고 말한다.

“긴급 분리조치가 3일에서 7일로 늘어났지만,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복도와 식당, 화장실 등에서 계속 마주치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학교 가는 것 자체를 기피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정순신(국가수사본부 본부장 후보) 아들 사건에서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과 11개월 가까이 한 반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 이 기간 동안 거의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한국교직원총연합회 교권본부장 김동석은 “학교 폭력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려운 사안이 많고 쌍방이 서로 피해를 주장하는 경우는 분리 조치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발표된 종합대책에 따르면 피해 학생이 요청할 경우 학교장 긴급조치로 학교 심의기구의 사안 조사(3주)와 학폭위 심의(4주)로 이어지는 최대 7주까지 출석 정지(6호) 또는 학급 교체(7호)를 할 수 있지만 애초에 진상 파악이 안 되는 상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해준학교폭력예방연구소 소장 이해준은 학폭위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했다. 학교는 학교폭력예방법상의 형식적 조사 권한밖에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거짓말을 해도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교장이 폭력인지 장난인지를 판단하고 교사들이 그 판단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해준은 “교사들과 이야기해보면, 교장 의견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어떤 교장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던데요. 우리 학교는 한 번도 학교 폭력이 일어난 적 없다, 이런 이야기는 학교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하고 같습니다. 학교 폭력이 없다기 보다는 신고되기 전에 무마했다는 거고, 교사가 찍어 눌렀다는 거죠. 외부에 알려지면 학교 이름에 먹칠이고 아이들한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니까 너 전학 갈래 아니면 그냥 여기서 사과하고 마무리 할래, 이렇게 압박하면 부모들 입장에서는 안 받아들일 수가 없죠.”

9단계 징계, 운명을 결정하는 30분

학폭위는 학교 폭력에 대한 수십 년의 고민과 시행 착오를 담은 시스템이지만 여전히 미완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전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학교에 조사 권한이 미흡한 데다가 학부모들 눈치를 보느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교사들의 이야기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주장이 엇갈릴 때는 더욱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학폭위도 인력이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심의위원들은 학폭위 심의 30분~1시간 전에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개인정보 누출 위험 등을 고려한 절차라고는 하지만, 학생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건을 면밀하게 다루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폭력의 정도가 무겁거나 관련된 학생이 많은 사건은 자료만으로 진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도 많다.

셋째,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학폭위는 각 교육지원청(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1곳) 단위로 10명~50명으로 구성된다. 관내 학부모를 3분의 1 이상 포함하는 것 외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 심의는 학폭위 산하 소위원회(소위)가 담당하는데 소위는 통상 5~10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은 학부모와 교원(장학사), 법률가(변호사), 청소년전문가(상담사, 푸른나무재단 등 NGO 활동가 등) 등이 참여한다.

이해준은 “학부모들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심사위원들은 피해 학생을 마치 가해 학생처럼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가톨릭대학교 교수 유금란 등의 연구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학폭위 위원들의 말이다.

“애들이 충분히 자중하고 애들 스스로 갈등을 풀 수가 있는데 학폭이란 법이 만들어지면서 애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지 않고 조금만 불편해도 이런 게 있으니까 나는 이거를 이용해서 너를 뭐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자꾸 진행되고 오히려 학폭위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의 문제로 심각하게 번지고, 그게 결국은 법의 테두리까지도 하는 역할에 있어서, 학폭위 법 자체가 저는 싫어요.”

“교육청으로 넘어가는 거는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하세요. 선생님들이랑 아이들이랑 같이 사용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선생님들이 빠지고 학교가 빠지면 이건 안되는 게 정말 맞거든요. 솔직히 이 학폭위부터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소열은 “막상 회의 일정이 잡히면 외부 전문가들은 일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학부모들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지역 사회에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다 보니 서로의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동원하면 진실 공방으로 치닫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를 주장하거나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뭉개는 경우도 많다.

“반성할 때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생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방어하는 노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결국은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학폭 사건을 전담하는 한 로펌은 “학폭위에 변호사가 출석하는 건 위원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로펌은 “학교 측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여 학교 측에 압박감을 미리 심어줌과 동시에 학폭위에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해당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심경을 느끼고 있는가를 어떻게 어필할까를 궁리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대원대학교 교수 김주한은 충북 지역 학폭위 위원 10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 학폭위 시스템에 여러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은 김주한이 인터뷰한 학폭위 위원들의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첫째, 30분 질의 응답으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가.

“심의가 진행 되는 동안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게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매우 엄숙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진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질문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 학생의 경우 심의위원회 개최 이전에 질문의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변호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진술이 심의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지만 적극적인 변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반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

“낙인이 찍히게 되는 가해학생은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건의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처벌을 통하여 반성을 하는 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을 일으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들이 가해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전학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사안의 내용에 따라 가해학생을 전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셋째, 피해 학생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가해학생이 전학을 안가면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학을 간 피해학생도 새로운 학교의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어렵기에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모두 기피하는 자리입니다. 열심히 해도 쉽게 예방 효과가 나올 수 없는 교육환경을 교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넷째,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가.

“모든 것을 교사의 책임으로 몰아가기에는 교사의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처럼 교사를 존중하기 보다는 교사에게 대항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주한은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담임 교사가 질책을 당하는 동시에 1차 조사를 맡게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하여 선도 위주의 적극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징계 수위가 쟁점, 피해자 보호는 뒷전.

이해준은 “피해자 중심으로 학폭 사안을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난과 폭력의 기준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정하는 것이고 어제는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폭력이라고 피해자가 말하면, 그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그래서 장학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의 주장이 의심되면 학교에 추가 자료를 요구하거나 목격자가 더 있는지 조사해야 하는데 실제로 장학사 직권으로 추가 조사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성기선은 “엄벌주의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가해자를 끌어내리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기록부에 기재하겠다고 하니 학폭위 사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이제 와서 엄벌주의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면 결국 부자들만 살아남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소한 다툼이 부모들의 감정 싸움으로 확산되고 몇 년씩 법정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전쟁에서 이긴다고 한들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준은 먼저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부모들이 처리 절차와 결과에 집착한다. 결과가 좋게 나와야 피해 학생의 상처가 치유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해준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이들은 부모가 위기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가해 학생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전관 변호사 써서 몇 천만 원이 들더라도 막아줄게, 이런 태도가 오히려 자녀를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학교 폭력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가해 학생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피해 학생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 학생은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고 부모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게 된다. 피해 학생은 부모나 교사가 가해 학생을 대신 혼내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문제를 바로 잡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어른들이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상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해준은 많은 학부모들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고 실제로 피해 부모들이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녀의 상처보다 부모의 욕망을 더 크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번 한 학기만 잘 참고 다니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자녀가 힘들어하는 걸 부모들이 외면하는 거죠. 너 대학 들어가면 다 저절로 해결된다, 이런 식이죠. 학부모에게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자녀의 상처와 부모의 욕망, 두 가지가 있다면 자녀의 상처에 더 집중해야 된다고.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지만, 지금 상처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면 훨씬 더 오랜 시간 걸릴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상담을 안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학교 밖 문제 해결이 가능할까.

학교와 교사가 배제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해준은 “가장 화가 나는 건 교원 단체들이 사회의 관심과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일이 있는데 스스로 방관자로 만드는 것 같다”는 지적이다.

김동석은 “덴마크는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할 경우 36시간 안에 교사와 피해 학생, 가해 학생의 부모가 만나 대화를 나누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우리도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 최선정은 “학교 폭력도 사회의 반영이라고 보면 이걸 바꿀 수 있는 힘은 학교에 있다”면서 “학생과 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권한을 부여해야 해결이 되는데 아무리 법을 바꿔봐야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선정은 현장에 있는 교사들에게 권한을 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를 더 불행하게 만들어서 해결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학폭위는 사후적으로 처리하는 절차일 뿐 예방은커녕 가해 학생의 선도나 피해 학생의 상처 치유에 한계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객관적인 심의를 위해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을 배제하면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서 더욱 멀어졌다. 우리는 응보적 정의 보다는 회복적 정의, 공동체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다음 연재에서 좀 더 구체적인 해법을 제안할 계획이다.

바이라인.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는 한 달에 한 건 이상의 주제를 선정해 집중 취재를 한 뒤 순차적으로 연재합니다. 취재 제안이나 제보, 도움 말씀을 환영합니다. 취재: 이정환, 민노씨. 기획 협력: 김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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