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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는 1·29 주택 공급 대책을 통해 서울·수도권 노른자위 입지에 주택 6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재탕’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일례로 국토교통부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 1만 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는데, 2020년 8·4 공급 대책 때도 용적률 상향을 통해 1만 호 공급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서울시는 “주택 공급이 늘면 학교·도로 등 기반 시설 계획도 함께 손봐야 한다”고 반대했고, 2022년 정부와 서울시는 협의 끝에 1만 호가 아닌 6000호로 합의했다.

김윤덕(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대정부질문에서 ‘재탕’이라는 야당 지적에 “문재인 정부 당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우리가 다시 하는 거니까 (재탕 지적은)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서울 용산의 옛 철도 정비창 부지에 만드는 대형 도시 개발 프로젝트. 한국철도공사와 서울주택개발도시공사가 주축이 되어 개발한다. 사업 면적은 45만6099㎡(약 13만8000평). 초고층 업무 빌딩, 호텔·상업 시설, 주거 시설, 문화 시설, 대규모 녹지가 포함된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서울 주택 공급이 난제 중 난제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주택 공급 압박에 내몰렸던 정부는 서울시와 용산구, 주민들과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숫자를 키워 발표했다.
  • 6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 권영세(서울 용산구)와 서울시가 주최하고 용산구가 후원한 국회 토론회 ‘용산국제업무지구 글로벌 허브인가, 거대 베드타운인가?’는 용산 주민, 학부모, 청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부를 규탄하는 자리였다.
  • 이들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던 이슈는 바로 ‘초등학교’였다. 서울시에 따르면, 6000호일 경우 학교 부지를 따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인근 학교 증축 등을 통해 학교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설사 학교 문제를 해결한대도 8000호 이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다.
  • 오세훈(서울시장)은 “그동안 서울시는 학교 문제가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최대 8000호까지 상한선을 검토해 왔다”며 “교육청 역시 6000호를 초과할 경우 학교 용지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명확한 대안 없이 1만 호를 밀어붙인다면 학교 신설과 각종 행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 최소 2년 이상 추가로 소요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6일 오후 국민의힘 의원 권영세(서울 용산구)와 서울시가 주최하고 용산구가 후원한 정책 토론회 ‘용산국제업무지구 글로벌 허브인가, 거대 베드타운인가?’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사진=권영세 의원실.

“동물원도 과밀이면, 서로 물어뜯고 싸운다.”

  • 서옥화(용산 학부모 대표)에 따르면, 용산 서부이촌동(이촌2동) 유아들은 남정초등학교로 배정받는다. 도보로는 통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버스를 타도 15분을 가야 한다. 한 대의 노선뿐인데, 15분에 한 번 올까 말까다. 버스 대기 시간까지 생각하면 편도로 30~40분가량 걸린다. 초등생 혼자 등하교를 감당하기 어려운 거리다.
  • “학교가 없는 용산국제업무지구에 1만 세대가 들어오면, 그들의 아이들은 모두 남정초, 한강초, 신용산초로 버스 통학을 해야 한다. 중고등학생이 아니다. 초등학생이다. 지금이야 아이들 숫자가 적어 셔틀버스가 다니지만 1만 세대면 셔틀버스가 수용하기 힘든 인원이다.”
  • “신용산초는 서울의 대표적 과밀 학급이다. 이미 1000명 이상 배정돼 있는 학교에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을 배정할 것인가. 한강초는 운동장도 없는 단일 건물 형태다. 여기에 몇 명이나 더 배정할 수 있는가. 오전 반, 오후 반으로 운영하려는 건가? 한 반에 50명씩 배정하려는 건가? 아이들한테 1970년대 교육 환경을 강요하려는 건가? 동물원도 과밀 상태가 되면 동물들이 스트레스로 서로 물어뜯고 싸우게 된다. 아이들이라고 과밀 공간에서 스트레스 안 받을까?”

“용산국제업무지구 안에 학교 부지 필요하다.”

  • 서옥화가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 첫째, ‘1만’ 숫자를 말하기 전에 그에 따른 학생 수, 학급 수, 학군 변화를 먼저 공개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설명하라. 지금 학교로는 학생 수를 감당할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오면 공급 계획부터 다시 짜야 한다.
  • 둘째, 용산국제업무지구 안에 최소한 하나 이상의 초중고 통합 교육 캠퍼스 수준의 학교 부지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인근 학교 증축으로 해결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미 꽉 찬 학교에 또 층을 올리거나 운동장을 잘라 교실을 올리는 식의 임시방편으로는 10~20년 뒤를 책임질 수 없다.
  • 셋째, 남정초, 신용산초, 한강초 및 인근 중고등학교 현실을 직접 보고 계획을 세우라. 현재 남정초, 신용산초, 한강초 인근 주택단지 규모는 9800세대다. 규모가 2배 이상이 되는 상황에서 학교 부지는 나중에 생각하자는 말이 과연 가능한지 묻고 싶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용산서울코어 홈페이지.

용산국제업무지구 학교 용지? “그러면 고층·고밀이 안 될 수도.”

  • 서옥화 주장은 ‘인근 학교 증축’으로도 6000호 공급은 가능하다는 서울시 안보다 더 나아간 ‘학교 신설’ 입장인데, 이날 토론회 좌장이자 용산국제업무지구 총괄 건축가(MA) 유석연(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은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업무 중심 공간이기 때문에 학교가 들어가면 그로 인해 고층, 고밀이 안 되거나 필요한 용도가 못 들어가는 등의 제한이 있다”면서 “학교 안전까지 고려하면 학교를 그 안에다 만드는 것은 다소 어렵다”고 설명했다.
  • 유석연은 “특히 초등학교는 대중교통이 아니라 보행으로 통학할 수 있도록 안전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서울시와 전문가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인근) 초등학교 수용 능력을 보면서 주택 수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용산국제업무지구 주변에도 재개발, 재건축 대상지가 많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거주자는 재개발, 재건축 대상지하고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거주자는 글로벌 기업 종사자나 외국 국적의 전문 인력이기 때문에 일반 거주자와 차이가 있다는 취지지만, 육아와 교육 문제는 국적과 계층을 불문한 생활 이슈라는 데서 주민들의 학교 용지 요구는 다시금 불거질 수 있다.

“국토부, 학교용지 대안 제시를 못하고 있다.”

  • 김용학(서울시 미래공간기획관)은 이렇게 말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의 정책 목표는 용산을 ‘글로벌 비즈니스 허브’로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주거 단지 개념일 수 없다. 서울,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이끄는 핵심 공간이어야 한다.
  • 서울시 계획인 ‘주택 6000호’는 연면적 비율로 보면 전체 개발 면적의 약 29%(업무 기능 약 62%, 상업 및 숙박 등 문화 기능 약 8%)로 국제업무지구 특성상 소형 평수보다 35평형(공급 면적)이 주로 공급된다. 글로벌 기업 종사자나 외국 국적의 고급 전문 인력이 선호하는 주거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 주거 비율을 30%에서 40%까지 늘리는 것, 즉 ‘주택 8000호’를 마지노선으로 판단한다. 다만 이 역시도 국토부가 학교 이슈를 해결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 1만 호로 확대하고 35평을 평균 평형으로 유지한다면 주거 비율은 전체의 절반을 넘게 된다. 이 경우 업무 공간의 연면적은 기존 계획 대비 약 32%가 감소한다. 주거 비율을 40%로 유지하고 1만 호로 늘린다면, 35평 대신 소형 평수 아파트를 늘려야 하는데, 정주 환경 품질이 저하되어 글로벌 기업 종사자나 외국인 전문 인력으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다.
  • 최근 서울중부교육지원청으로부터 ‘주택 공급 물량이 단 1호라도 변경되면 반드시 학교 용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이 전달됐다. 국토부는 학교 용지 확보에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 국제업무지구 내에 학교 용지가 필수라면, 도시 계획, 토지 이용 계획, 기반 시설 계획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 절차를 다시 이행해야 한다. 최소 2년 이상의 사업 지연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서울시 입장, “학교용지 해결없이 주택물량 확대 불가.”

  • 서울시 입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 첫째,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주거 단지가 아니라 국제 업무 중심지다.
  • 둘째, 주택 6000호는 기능적 균형과 정책 목표를 동시에 충족하는 적정한 규모다.
  • 셋째, 학교 용지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주택 물량 확대는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 넷째, 다만 토지 이용 계획 변경 없이 학교 용지 문제가 해결되면 8000호 정도는 검토할 여지가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건물 안에다 학교 넣자.”

  • 이날 토론 플로어에서 한강로3가 주민 최인철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건물 안에 학교를 넣자는 발상이다.
  • “싱가포르나 미국 뉴욕을 가보면, 학교가 건물 안에 있다. 운동장이 없는 학교다. 법 개정을 통해 국제업무지구 내 운동장이 필요 없는 건물 속 학교를 만들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 실제 홍콩이나 도쿄에는 수직형 학교, 빌딩형 학교가 존재한다. 뉴욕의 경우 오피스 건물이나 복합 건물 일부 층을 사용하는 학교가 있다. 체육 시설은 옥상 또는 인근 공원을 이용한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산국제업무지구 글로벌 허브인가, 거대 베드타운인가?’ 토론회에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학교’ 명분 등에 업고 스피커 키우는 국민의힘.

  • 용산국제업무지구 1만 호 주택 공급은 다가오는 6·3 서울시장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야권 주자들이 정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오세훈은 이날 토론회 축사를 통해 “서울 주택 공급 확대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한다”면서도 “용산의 전략적 위상을 감안할 때 공급 규모를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은 숫자를 채우려다가 미래를 잃어버리는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명확한 대안 없이 1만 호를 밀어붙인다면 학교 신설과 각종 행정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공급 시기를 늦추는 결정은 우리가 피해야 할 매우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했다.
  • 나경원(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정부는 재탕, 삼탕, 맹탕 공급 대책을 내놨다. 본인들이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땅은 모조리 포함시켰다”며 “우리가 글로벌 허브가 되기 위해서 계획한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베드타운으로 만든다는 건 정말 한심한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 신동욱(국민의힘 의원)도 “판교에서 과천으로 이어지고, 서초에서 용산으로 이어지고, 용산에서 남산으로 이어지고, 남산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축은 정말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지역”이라며 “진보 정권은 집권 때마다 주택 공급과 관련해 태릉골프장(태릉CC), 용산국제업무지구, 과천 등을 계속 꺼내는데, 진보 정권이 서울 부동산 문제 해결한 적 있나. 이런 식으로 서울 지도를 함부로 망가뜨리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 권영세는 “용산국제업무지구는 서울, 대한민국 경쟁력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용산을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주택 공급 계획은) 용산 주민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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