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인터뷰] 삼성전자의 초과이익은 사적인가, 사회적인가. 정규직과 하청으로 나뉘고, DS(반도체)와 DX(가전)로 나누어진 피라미드. 이상헌(ILO 수석 이코노미스트)이 말하는 인간과 노동 그리고 삼성. (⏰11분)
146.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심연 속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그대 속을 들여다본다.
156.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 일이다. 그러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평범한 일이다.
153. 사랑에서 행해지는 일은 항상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
니체, ‘선악의 저편'(1886) 중에서
우리는 대부분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은밀한 안도와 행복감을 느낀다. 독일 사람들은 그 감정을 사회화(언어화)해서 하나의 단어로 고정했다. ‘샤덴프로이데’. 인간은 왜 타인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가. 나는 그런 은밀한 위선이 싫었다. 그런 내가, 그런 인간이 싫었다. 이런 점에서 나, 인간의 자기혐오는 필연적이다.
한편, 공적 이상, 가령 토지공개념과 같은 철학을 가진 사람에게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의 재산 차이가 열 배를 넘는다는 건 정상적이지 않은(자연스럽지 않은?) 일일 거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어떤 사람보다 열 배 더 뛰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떤 사람이 열 배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그렇기 때문에 열 배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런 생각(관념, 상상)을 제도화한 세계도 그들의 눈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어떤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 ‘월든'(1854) 호수에 머물며 자신과 방문자, 사회와 세계, 그리고 호수와 그 주변의 생명체들에 관해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귀족으로서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마치 기도하듯 ‘부활'(1898)을 썼던 만년의 톨스토이,
- 그리고 톨스토이가 ‘부활’에서 두세 번쯤 언급하는 ‘진보와 빈곤'(1879)’의 헨리 조지.

자연(토지)은 인간처럼, 세계의 일부로서 서로 동료처럼 서로에게, 그러므로 모두에게 속한 것이라고 믿은 사람들, 이들에게 한국의 대기업 총수와 정규직 노조, 하청(의 하청의 하청…) 노동자는 어떤 모습일까.
각설하고, 열 배가 아니라 백 배, 천 배, 만 배…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있다. 나 같은 도시 빈민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공장 노동자가 있고, 회사원이 있으며, 전문직 종사자가 있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마치 신과 같은 재벌 ‘오너’가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기사이고, 제후이며, 신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공화국은 사실상 늘 절반쯤 망한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강남좌파에게 광기는 평범한 일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마치 현대의 인간에게 샤덴프로이데라는 감정이 평범한 것처럼.
각설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에 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꼴도 보기 싫었으니까. 타인의 불행을 은밀하게 즐기는 나 같은 위선적인 인간이 보기에도,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속한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별천지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궁금했다.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상헌(ILO 수석 이코노미스트)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이른바 ‘니체식’으로 답했다.

이상헌의 ‘제네바 인터뷰’ [ep. 56]
삼성, 자본, 노동 그리고 미러링
질문∙정리: 민노
답변∙퇴고: 이상헌
📢 2026년 6월 6일 스위스 시각 오전 8시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다. 질문은 소제목이나 본문의 행간으로 맥락화했고, 이상헌의 독백 문투로 정리했다. 퇴고 과정에는 이상헌도 참여했다.
노조, 대기업 피라미드를 미러링하다?
삼성 문제는 단순히 한 대기업의 문제를 뛰어넘는 상징적 사건이다. 마치 쿠팡 사태가 그런 것처럼, 삼성 성과급 사태는 상징적이다.
대기업은 모든 걸 빨아들이고, 모든 게 대기업에 집중된다. 기업의 지배,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지배력이 크다고 할 때, 그 지배력이란 무엇인가.
- 판매시장에 대한 지배력도 크지만,
- 생산시장, 특히 하청에 관한 지배력도 크다.
그래서 삼성의 지배력은 다층적이다. 집중화된 밀도와 함께 복잡한 사슬 구조를 가진다. 그런 수직∙복합 구조는 약탈적 권력을 강화한다. 판매에서도 생산에서도 대기업은 상대방에 대한 관계에서 모두 약탈적이고 폭력적이다. 독과점적인 지배력을 바탕으로 한 다층적 집중 구조 덕(탓)이다. 그래서 재벌 체제다. 다만, 물론, 그런 구조는 아주 생산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재벌 그 반대편에 노동자가 있(었)다. 그런데 삼성전자 성과급 사태는 이제 그 노동자가 재벌을 모델로 한 ‘미러링’을 완성한 사건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의 가설이다. 그게 이 사건의 상징성이다. 노동자 조직, 노동조합,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삼성초기업노조, 그 중에서도 삼성전자노조(그 중에서도 DS-반도체- 부문)가 노동계 최상층 피라미드 꼭대기라는 게 이번 사태로 드러났다.
이런 구조는 위험하다. 기업 피라미드는 지원하고 집중하는 사슬 관계도 있지만, ‘약탈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수직적이고 폭력적인 구조를 노동자가 분배 구조 속에서 ‘미러링’한다. 이번 사건은 자본 소득을 피라미드 상층부로 흐르게 하려는 욕구가 분출된 사건이다. 피와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돈과 권력은 위로 흐른다.
삼성이라는 피라미드에서 당신은 어디쯤 있을까?
피라미드는 신비로운 건축물이다. 직접 가보면, 피라미드 어디쯤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크게 달라진다. 삼성이라는 피라미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삼성 피라미드에는 거의 모든 국민이 관련돼 있다. 그 꼭대기에는 이재용이 있겠지만, 바닥이든 상층이든 중간부든 간에 정말 많은 이들이 ‘이해관계자’로 연관돼 있다.
그래서 삼성 성과급 문제는 단순히 기업 내부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문제다. 간혹 한국에 출장 오면, 최근에도 한국에 올 기회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삼성 문제를 자주 묻는다. “외국에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그런데 아쉽게도 그 질문에 딱 맞는 답변이나 해법은 없다. 삼성 문제는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문제니까. 그래서 삼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적 해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1. 초기업 구조(‘재벌’)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빅테크 기업, 가령 오픈AI 같은 기업은 ‘제조업’ 베이스가 아니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기업에선 직원이 회사와 개별적 계약을 통해서 고용 관계 갈등을 해결한다. 한국 삼성과 같은 제조업 베이스와는 좀 많이 다르다. 석유나 가스와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처럼 막대한 초과이윤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만, ‘횡재세’ 등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환수하려는 논리가 있다. 그런데 그런 횡재세는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외국에는, 특히 미국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 노조가 없고, 가령 일본 반도체 기업은 노조에 힘이 없으며, TSMC 같은 경우엔 노동자가 단체협상이나 이런 걸 잘 하지 않는다.
- 핵심은 AI로 혜택 본 기업
- 노조가 존재하고
- 노조가 협상력을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전 세계에서 유이하다(+ SK하이닉스, 결은 좀 다르지만.)
그 점에서 삼성은 유니크하다. 그리고 SK하이닉스와 다른 점은 이윤과 적자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DX 쪽 적자를 DS가 메꾸고, 그 역도 성립하는 시스템이다. 이 점이 메모리가 주력인 SK하이닉스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DX 부문이 이번 사태에서 불만을 가진 것도 말이 된다. 이렇게 가전에 빵꾸나면 반도체에서 메꾸고, 반도체에서 빵구나면 가전에서 메꾸는 구조는, 삼성 ‘초기업 구조'(재벌 구조)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삼성전자의 ‘이윤’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시기별’로 그 정의가 다를 수 있다.

2. 재벌의 복잡한 하층 구조
두 번째 문제는 재벌이 가진 복잡한 하층 구조의 문제다. 앞서 잠깐 언급한 ‘단가 후려치기’와 같은 약탈이 일상적으로 상존하는 하층 피라미드 구조다. 이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일대일의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관계성’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피라미드 하층에서 생산한 초과 이윤(가령 초과 생산성 상승)을 상층 피라미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흡수(약탈)한다.
이런 수직화한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하부에서 만들어지는 초과 이윤은 항상 상향하는 구조를 취한다(돈이 위로 흐른다). 그래서 정의하면, 초과 이윤이 하부(하청)에서 생겨나더라도, 그것이 구조상 실현되지 않는 구조다. 그래서 하부에서 생성하는 초과 이윤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구조. 생성하지만, 잔존하지 않는 구조. 그게 재벌 구조, 삼성의 초기업 구조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생산성 격차가 30~40%나 생겨난다. 하층부 생산성 향상분을 상층부가 바로 흡수되기 때문에 생기는 격차다. 그래서 화폐적으로 계산되는 생산성(회계상)은 항상 상층부(대기업)가 하층부(중소기업/하청기업)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3. 전방위적인 지원(다층적이고 광범위한 ‘이해관계자’)
삼성이 잘하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하기까지에는 많은 지원과 사회적 조력이 있었다.
- 세제 지원: 우선 세제 지원이 엄청나다.
- 지자체: 그리고 지자체가 또 엄청나게 지원한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 공장을 짓는 경우.
- 국가 R&D: 국가에서 지원하는 R&D 지원 사업, 그 최대 수혜자도 당연히 삼성이다.
- 금융 지원: 그리고 삼성이 필요할 때마다 산업은행에서 아주 낮은 이자율로 정책 금융도 지원된다.
이런 요소를 다 합치면, 삼성이라는 민간기업에 지원하는 규모가 한 해 수십조를 넘어설 수도 있다.
그런데 갑자기 시장 상황이 좋아져서, 가령 AI 혁명기에 하이퍼 스케일러의 병목(공급부족)이 메모리에 터져서 천문학적인 초과 이익이 생겼다면, 거기에 대해 모든 국민이 한 마디씩은 할 말이 있는 셈이다. 삼성은 ‘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운영하는 기업이다. 어떻게 보면 민간기업이지만, ‘집단적인 자원을 동원해서’ 성장한 기업이라는 점에서는 사회적 성격도 강하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논의를 그저 기업과 삼성 노조만의 싸움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더 크다.
주주 가치 훼손? 노란봉투법?
우선 성과급 논란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에 관해 살펴보자. 노동자에게 줄 돈을 다 준 뒤에 잔여 이익을 주주에게 주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 이 문제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A. 크리스마스 보너스.
B. 노조 협상에 의한 초과 이익 성과급
A. 크리스마스 보너스는 추가적인 협상으로 그 초과이익을 가져갈 수 있다. 이걸 문제 삼는 사람은 별로 없다.
B. 그런데 노조가 협상으로 초과 이익에 관한 성과급을 받겠다고 하면 이건 문제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A와 B가 본질에서 다른가? 다르지 않다. 막대한 초과 이익이 발생하는 빅테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삼성과 같은 노조가 없다. 그래서 B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A든 B든 주주의 잔여 이익 청구권을 건드리는 문제가 아니다. 엄밀하지는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직관적으로 설명하면, 그 전(前) 상황이다. 즉, 주주는 나중에 자기 몫(투자 유보분이나 배당)을 주장할 수 있다. 아무런 쟁점이 없는 이슈다.
노란봉투법이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와 관련 있다는 주장은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이나 제3차, 4차 하청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삼성 성과급 문제는 아무 관련이 없다.
삼성 성과급 논란과 연결해 노란봉투법을 언급하는 이들은 노란봉투법 자체에 대한 불만을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에 투영한 것으로 본다. 번지수가 다르다. 노란봉투법이 만들어낸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서 영향을 줬다? 그런 식이면 세상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고,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게 어디 있나.
💡 AX 가속화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로 인해서 AX(AI 전환) 속도가 가속화할 거라는 말도 있다. 그런데 노조와의 갈등과 관계없이 한국 기업은 ‘자동화’를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었고,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생산 자동화는 한국이 세계 1등이다.
그러니까 삼성전자 성과급과 관련해 AX 이야기를 하는 건,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한 번 더 하는 것에 불과하다. 속도가 아주 조금 더 빨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미 세계 1위다. 반도체 수요가 AI 하이퍼 스케일러의 경쟁으로 늘면, 오히려 기술 인력이 좀 더 필요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예상으로 현재를 겁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술 관련 논의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하다.

💡 토큰 경제
‘토큰 경제’에 관해서도 짧게 언급하면, 토큰 경제를 말하는 이유는 AI 등의 문제를 화폐화해서 거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건데, 그 문제의식은 경제적 인식이나 보상 단계를 토큰으로 모두 대체하고 결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나는 ‘토큰’ 쪽 전문가는 아니지만, 인상적으로 논평하면 이렇다.
ㄱ. 그동안 우리가 다뤘던 문제가 ‘덜 화폐화’해서 생긴 문제인가?
ㄴ.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인 갈등 문제인가? 그리고 지배와 권력에 관한 문제인가?
비유하자. 특정 화폐 형태를 없앤다고 투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의 모든 핵심이 기여에 따른 ‘보상’ 체계의 부재에 있기보다는 권력과 지배의 우위와 그 균형에 있다.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민주주의적인 시스템이 탄생했다고, 민주적 통제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비트코인은 어떻게 됐나? 결국은 인간 욕구의 문제, 투기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한국적 해법: ‘사회투자펀드’
삼성을 미국 대기업에 비유하면 안 된다. 삼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훨씬 더 ‘사회적 성격’을 띤다. ‘세금’으로 접근하는 영미식 해법이나, ‘협상’의 전통을 가진 유럽식 해법으로는 안 되고. 한국식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선 먼저 사회적 공론이 필요하다. 확실히 그렇다.
- 다음으로 논의 테이블에 누가 앉아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기존 노사정으로는 안 된다. 시민사회를 최대한 포괄하는 가장 넓은 범위에서의 ‘이해당사자’가 참여해야 한다.
- 펀드는 찬성이다. 가령 100조 이익 중에서 5조 정도를 펀드화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사회 투자 펀드’라면 좋겠다.
- 국민 배당 방식도 피라미드에서 형성된 성과를 사회적으로 환류(還流; 본래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냄)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중요한 방안이지만, 자칫 일회성 분배로 끝날 위험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능력, 노동자 숙련, 중소기업 기술 역량, 청년 일자리, 돌봄과 교육 같은 사회적 생산 기반이다. 특히 다음 세대의 생산적 기회 확대가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배당이 필요하다면, 사회투자펀드의 수익 일부를 배당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좀 더 생각해 보자. 삼성이라는 거대한 노동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 하청, 하청의 하청,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노동자에게 직접 돈을 주는 방식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직접 개선할 방법을 마련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투자라고 하면 공장 만드는 것만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생산적인 투자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 중소기업(하청)을 지원하는 일, 가령 추가 비용 부담으로 하지 못하는 AI 사용료를 지급한다거나
- 중소기업 노동자에 대한 교육적 투자(기술 전수나 숙련도 제고)로 돈 걱정, 시간 걱정을 덜어주는 것.
- 고용 안정 지원을 통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좀 더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일.
이상에서 예시한 방식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런 투자와 지원을 통해 그 펀드 자체에서 다시 이익이 생기면, 그 중 일정액은 다시 회수할 수 있는 ‘리턴’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노동자라는 인적 자원을 지원하는 방식은 ‘리턴’ 요소가 거의 없겠지만.
그리고 이런 리턴을 통해서 수익이 생기면, 그 수익을 다시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서 수익금을 효과적으로 쓰고, 분배하며, 다시 나누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금으로 지원할 수도 있고, 저소득∙저임금 노동자를 지원할 수도 있다. 재투자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여기서 초점은 ‘투자’다. 사람에 대한 투자. 교육에 관한 투자. 그리고 이를 통한 생산성 제고. 아주 먼 미래의 어떤 시점에선, 삼성의 사업이 어려워지면, 이 펀드로 삼성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래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게 포인트다.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주고,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을 지원하며, 그 과정이 하나의 순환 구조로 반복하면서 더 큰 에너지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방향성’ 단,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
이런 ‘투자’ 펀드를 정부가 기업에 강요할 순 없다. 정부가 대신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렵다. 삼성이나 SK하이닉스가 먼저 펀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가장 그림이 좋다. 본질에서 강제할 수는 없는 문제다. 청년에 투자하고, 하청 노동자의 교육과 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그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사회의 방향이라는 확신을 기업이 품게 해야 한다. 물론 다른 대기업도 참여하고, 대기업노조도 앞장설 수 있다.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대외비를 전제로 그런 기업의 ‘방향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다시 니체식으로 말하면, 다양한 지류에서 모두 함께 흘러가는 그 ‘방향성’이 중요하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 중에서
- 위대함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어떤 강물도 자기 자신에 의해 크고 풍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많은 지류들을 받아들이며 계속 흘러가는 것, 그것이 강물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배당금이라는 표현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사회적인 투자가 필요한 여러 분야, 가령 돌봄과 청년 일자리 같은 부문에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가치와 수익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니 ‘초과 이익’은 분배에 집중하기보다는 ‘투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 해법을 모색하지 않고, 분배에만 집중하면 답이 안 나온다.
직접 투자를 통한 사회적 가치의 창출과 이익의 동시 창출, 그리고 그런 역동적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거대한 순환이라는 큰 방향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 방향성을 우리의 해법으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