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문제는 신청주의 자체라기보다는 낙인을 수반하는 선별복지제도, 과도한 빈곤 입증 책임을 강요하는 관료주의, 그 관료주의를 조장하는 복지억제적 기조가 문제다. (남찬섭/동아대 사회복지학과) (⌚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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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이재명 대통령) 발언 이후, 복지 신청주의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셜코리아는 “신청주의는 정부가 국민의 소득과 재산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도입된 제도”라며, 신청주의 폐지 논쟁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주목한 노대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글을 게재한 바 있습니다. 노대명은 ‘탈신청주의’를 보편복지를 위한 패러다임 전환 전략의 틀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신청주의로 인해 복지 사각지대를 유발하는 대표적 사례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지목하며,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방안도 제안했습니다.
-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제도는 왜 이리도 복잡하고 까다로운가? (노대명)
- 중위소득 및 재산 기준 보완
-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
- 서류 및 절차 간소화
- 복지담당자의 재량권 적극 활용 등.
이에 대해 남찬섭(동아대학교 교수)는 “진짜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가 아니라 관료주의에 갇힌 복지 억제 기조와 선별주의적 접근”이라는 논지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남찬섭은 ‘과도한 잔여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하며, 더 근본적인 복지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소셜코리아)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 이재명이 쏘아올린 작은 공
지난달 13일 나라재정절약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자동지급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 근거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했다.
-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점(부정적 결과)
- 정부 지출 시 이미 수혜 대상자가 정해져 있는데 굳이 신청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은 행정적 낭비라는 점
- 과거 선별적 복지 시절에는 조사와 선별 과정이 필요해 신청이 불가피했지만, 지금은 보편복지로 전환된 만큼 제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패러다임 전환)
즉 보편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상황에서는 신청주의를 고수할 이유가 없으며, 이제는 자동지급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기본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함께 짚어봐야 할 쟁점도 적지 않다.

보편복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먼저 보편복지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된 계기는 2010년대 초 무상급식 논란이었다. 당시 대립 구도는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였는데, 이 구도에는 두 가지 층위가 뒤섞여 있었다.
첫 번째 층위는 ‘체제’로서의 보편복지다. 흔히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용어로 표현되는데, 그 의미가 지금도 완전히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소득이나 재산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보편성), 삶 속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위험에 대해(포괄성), 최소한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혜택을 제공하는(적절성) 국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층위는 ‘제도’로서의 보편복지다. 복지제도에는 보편적 제도와 선별적 제도가 있는데, 제도적 차원에서 보편복지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두 제도 가운데 보편적 성격의 복지제도를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의미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체제로서의 보편 복지국가가 구현된다 하더라도 그 국가가 운영하는 모든 복지제도가 보편적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복지제도와 선별복지제도는 여전히 공존하며, 보편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체제’ 차원의 변화이지 국가가 제공하는 모든 복지제도가 곧바로 보편복지제도로 대체된다는 뜻은 아니다. 즉, 보편복지로의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선별복지)는 제도의 운영방식은 달라질 수 있어도 계속 존속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본질은 신청주의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부가 복지급여 지급을 결정하면 대상자는 자동으로 정해지는데, 왜 굳이 신청 절차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이지만, 실제로는 복지급여의 대상자는 ‘자동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는 복지급여 수급 자격 요건을 설정할 뿐이고, 실제로 누가 그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별도의 행정 절차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복지제도는 단순히 요건을 설정한다고 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중 어떤 사람이 그 요건을 충족하는지 파악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요건 설정’과 ‘요건 해당 여부’를 섞어 발언한 것이며,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안이다. 또한 제도에 따라 ‘요건 설정’과 ‘해당 여부’의 관계는 서로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복지제도는 대상자 요건에 누가 해당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비교적 간단하다. 아동수당은 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소득이나 재산에 관계없이 지급되므로 자산조사가 필요없고 8세 미만 자녀가 몇 명 있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대상자 요건도 간단하고 요건 해당 여부의 판단도 매우 쉽다. 보편복지제도는 대개 이런 속성을 공유한다.

그래서 아동수당은 병원에서의 자동출생신고 등 약간의 제도 보완만 하면 자동지급제를 실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아동수당과 캐나다의 기초연금은 행정데이터와 연계된 개인식별 정보를 활용해 자동등록을 통해 자동지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보험에서도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큰 어려움 없이 자동지급제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여금 납부이력(국민연금과 건강보험)과 연금수급연령 도달 여부(국민연금) 등만 확인하면 요건 충족 여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 자동지급제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사회보험이라도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산재보험, 고용보험은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 기여금 납부이력 확인 외에 요양등급, 산재판정, 실업인정 등 추가절차가 필요하다. 이들 제도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비해 요건설정과 요건 충족 판단 간 간극이 좀 더 크다. 제도보완이 좀 더 필요하긴 하지만 자동지급제로의 전환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기초생활보장제도(공공부조=선별복지), 어느 나라나 신청해야 작동
요건 설정과 요건 충족 판단 사이의 간극이 매우 큰 복지제도의 대표적 사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다. 공공부조는 ‘가난한 사람만 선별하여 그들에게만 급여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선별복지제도로, 단순히 우리나라 인구의 10%가 빈곤층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어디에 사는 누가 그 10%에 해당하는지를 특정해야만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건은 ‘가난함’이며, 요건 충족 여부 판단은 자산조사를 통해 누가 가난한지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국가가 공공부조대상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모든 국민의 소득과 재산을 상시적으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공부조는 어느 국가에서나 급여 혜택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신청하도록 한다. 이 점에서 공공부조의 신청주의는 그 제도가 작동하도록 하는 기폭제다. 또 신청주의는 공공부조에 따르는 낙인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권리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있어,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물론 공공부조에는 불가피하게 낙인이 수반된다. 그러나 이 낙인은 단순히 신청 절차 때문이 아니라, 신청자가 스스로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가난을 증명하는 과정이 항상 낙인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장학금 수혜자 선정 과정에서도 소득 증명을 요구하지만, 그것이 공공부조만큼의 낙인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결국 낙인은 복지급여 대상자가 스스로 그 취약함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낙인은 약자증명을 위한 책임을 신청자에게 부과하는 관료주의가 만연할 때 더 커진다. 관료주의 사회에서는 대상자 요건을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복지를 낭비로 간주하고 시장 중심의 해결을 선호하거나, 복지수급자를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의심하는 사회일수록 공공부조의 요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신청 과정에서 신청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이 전가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복지지출 자체를 억제하려는 기조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대상자 요건을 복잡하게 만들고 신청 절차를 어렵게 설계한다. 그 결과 약자 증명의 부담을 신청자 본인이 져야 한다.

우리사회가 보편복지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복지 억제 기조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대통령은 이를 ‘잔인한 신청주의’라고 했지만, 실제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낙인을 내포한 선별복지제도, 빈곤입증책임을 신청자에게 과도하게 지우는 관료주의, 그런 관료주의를 조장하는 복지억제적 기조가 그것이다.
잔인한 것은 ‘신청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복지 지출을 억제하려는 기조가 낳은 ‘과도한 관료주의’와 그것에 지배된 ‘선별주의’, 즉 ‘과도한 잔여주의’다. 자동지급제 논의가 정부의 복지 비전이나 제도의 전향적인 개편을 논의하는 공간이 아니라, ‘재정절감’을 주제로 한 간담회에서 제기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자동지급제 도입하면 사각지대 해결될까?
한국 사회와 같이 복지 억제 기조가 남아있는 사회에서는 공공부조를 실제 운영하는 일선 정부 조직에 많은 재정을 배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상자 요건을 만들어 공공부조 신청이 어렵다. 또 그런 사회는 공공부조 운영을 담당하는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 재량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정작 매일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을 잘 아는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온갖 지침과 규정에 의해 재량을 펼치지 못한다. 그래서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사회복지적 이념을 현장에서 펼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정체성보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침과 규정에 따라 가난한 사람이 대상요건에 해당하는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수급자격 판단 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에 갇힌 채 업무를 하게 된다.

신청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송파 세모녀 사건을 자주 거론하지만 송파 세모녀가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사실이 있다는 점은 말하지 않는다. 이런 사건의 희생자들 대부분 일생을 살면서 공공부조 신청을 한 번 이상 했지만 탈락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정도로 힘든 시기에도 신청을 주저하게 된다.
신청을 못하여 혹은 하지 않아서 복지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사각지대라고 한다. 그런데 이 사각지대의 원인을 신청주의에서 찾게 되면 선별복지제도가 갖는 특성과 신청주의가 뒤섞이게 된다. 또한 ‘약자 입증 책임’을 만드는 복지억제적 기조와 관료적 잔여주의가 문제의 핵심에서 비켜나게 된다.
신청주의를 문제의 본질이라고 진단하면 이른바 ‘발굴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게 되고 사각지대의 실제 원인을 놓치게 된다. 정부는 발굴주의를 ‘찾아가는 복지’와 동일시해, 47종의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사각지대 의심대상자를 온라인 데이터상으로 추출한 후 이 정보를 일선 시・군・구에 내려보내 ‘찾아가도록’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정부가 헬리콥터에서 사각지대 정보를 뿌려주는 것과 같은 ‘헬리콥터 복지행정’이다.
사각지대는 ‘찾아가는 복지’가 안되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까다로운 대상자 요건으로 처음부터 수급대상이 안될 수도 있고 신청을 했지만 과도한 약자입증책임 부과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다. 또한 신청과정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찾아가는 복지’나 ‘헬리콥터 복지행정’이 아니라 제도개선으로 접근할 문제들이다.
복지지출을 억제하려는 사회는 공공부조를 실제로 운영하는 일선 정부조직에 충분한 재정과 인력을 배정하지 않는다. 대신 지나치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대상자 요건을 만들어 공공부조 신청 자체를 주저하게 만들고, 사회복지공무원들에게는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할 재량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신청주의를 권리보장적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는 무관심하고 복지지출을 줄이는 데만 집착한다. 그 결과 신청주의는 ‘과도한 약자 입증 책임 제도’로 변질되고, 문제의 원인을 신청주의 자체에 돌리는 구도가 형성된다. 또한 약자 입증 책임은 그대로 둔 채, 신청주의를 자동지급제로 바꾸자며 정보화 기술로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진짜 문제인 복지억제적 기조와 그 기조가 낳은 과도한 관료주의적 입증 책임 부과는 논의의 장에서 배제된다.
사각지대 해소는 제도개선 통해 해결해야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해법으로 이어진다. 앞서 언급한 발굴주의가 그 전형이다. 복지억제적 기조는 공공부조 예산을 축소하고, 현장에 필요한 사회복지공무원 인력 배치를 가로막는다. 본래 ‘찾아가는 복지’란 충분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해 사회복지공무원이 권리보장적 신청주의를 발전시켜 가난한 사람들의 ‘끈’과 ‘연줄’로 기능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재정과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찾아가는 복지가 발굴주의로 축소·왜곡되고, 오프라인 전달체계가 아닌 온라인 데이터 행정으로 대체된다. 그 끝판왕이 바로 ‘헬리콥터 복지행정’이다.
복지억제적 기조 속에서 까다롭고 복잡한 대상자 요건과 과도한 입증 부담은 그대로 둔 채,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AI 기반 자동지급제’ 등을 대안으로 내세울 경우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AI는 자동성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인간의 노동에 의존한다. 자동지급제 역시 ‘자격 있는 수급자를 제대로 선별했는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자동지급제는 자동탈락제를 전제로 한다. 자동탈락이 발생했을 때 민원을 누가 대응하고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미 헬리콥터식 복지행정은 오탐, 과탐(중복발굴), 미탐(미발굴)이 빈번히 나타났으며, 정탐(제대로 발굴한 경우)조차도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지원 미연계). AI 자동지급제를 도입하면 이러한 오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고, 사회복지공무원의 역할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데이터 오류를 정리·보완하는 ‘주석 노동(Annotation Labor)’으로 쪼개질 수 있다. 공무원이 AI 개발을 위한 데이터 노동자로 전락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은 신청하지 않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 비극은 아동수당 같은 보편복지에서가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에서 발생한다. 결국 자동지급제는 보편복지 영역에서는 쉽게 도입할 수 있지만, 위기가구를 지원하는 공공부조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도입이 된다 해도 막대한 제도 보완이 필요해 애초에 강조된 ‘재정 절감’ 취지와는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AI 기반 자동지급제가 실시될 경우, 디지털 접근성이 높은 집단은 쉽게 혜택을 받지만, 디지털 취약계층은 복지에서 소외되는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또한 가장 도움이 절실한 취약계층은 복잡한 신청·심사 절차에 갇히거나 탈락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신청주의냐, 자동지급이냐’라는 이분법을 넘어 문제의 본질을 찾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