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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한국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지난해에만 7107만tCO2eq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한국 전체 배출량 6억9158만 톤의 10.3%를 차지하는 규모다. 탄소 뿜는 하마, 포스코를 바꾸지 않고는 한국의 탄소 중립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상휘(국민의힘 의원)와 어기구(민주당 의원) 등이 공동 발의한 K-스틸법은 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이다. 여야 의원 106명이 참여한 만큼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게 왜 중요한가.

  • 한놈만 패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후 악당’ 포스코부터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철강 산업은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 1위 산업이다. 한국 온실가스 배출의 15%, 산업 부문의 40%를 차지한다. 철강 산업의 탄소 감축에 2050 탄소 중립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세계적으로 탄소 규제가 강화되고 배출량에 따라 관세를 부과하는 추세라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도 탄소 중립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 문제는 전환 비용이 개별 기업 차원의 수준을 넘어섰다는 데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산업 구조 개편과 맞물리는 이슈다.

포스코의 위기: 내수 위축에 중국 추격, 미국 관세 폭탄.

  • 한때 4조 원을 웃돌던 포스코의 영업이익이 1조 원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 지금까지의 경쟁 전략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다. 포스코는 내수 위축과 중국발 저가 철강 공세, 미국의 관세 폭탄이라는 삼중고를 맞닥뜨리고 있다. 물량과 가격으로는 중국을 따라갈 수 없고 탄소 중립은 일본과 유럽에 한참 뒤쳐졌다.
  • 세계적으로 저탄소 철강 수요가 2021년 1500만 톤에서 2030년 2억 톤까지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수소환원제철 파일럿 사업에 3088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일본과 독일, 네덜란드 등은 일찌감치 수조 원 규모 투자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 포스코의 탄소 중립 전환에 필요한 재원은 2050년까지 40조 원 규모로 잡고 있다.

저탄소 철강 레시피.

  • 음식점을 운영하려면 좋은 재료와 좋은 레시피, 그리고 손님이 있어야 한다.
  • 철강 산업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탄소 중립 시대에 맞게 메뉴를 바꾸려면 재료와 레시피를 바꾸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
  • 재료: 저탄소 철강의 재료인 그린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 레시피: 저탄소 철강을 만들 첨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 손님: 저탄소 철강의 안정적인 수요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높은 초기 생산비용을 감수할 이유가 생긴다.

K-스틸법 핵심은 탄소 중립 전환.

  • 발의안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그림은 비슷하다.
  • 첫째,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탄소 중립 전환을 추진한다.
  • 둘째,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조세 감면과 세제 지원 등을 검토할 수 있다.
  • 셋째, 정부의 우선 구매로 수요를 창출한다.
  • 잘 나가는 음식점의 3대 필수 요소, 재료와 레시피, 손님의 기본 토대는 갖춰진 셈이다. 중요한 건 디테일이다.
  • 네 가지 과제를 정리해 본다.

첫째, 그린 수소를 국산화해야 한다.

  • 저탄소 철강을 만들려면 수소환원제철처럼 석탄 대신 그린 수소를 원료로 쓰는 공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2050년까지 필요한 수소의 50~80%를 해외에서 들여오겠다는 계획인데, 자칫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도 있고 액화와 운송, 기화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난다.
  • 만약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재생 에너지 발전을 늘려 그린 수소를 전부 국내에서 조달한다면 2050년까지 철강 생산 원가를 해외 원료 사용 대비 최대 40% 가까이 줄일 수 있다.
  •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신규 인프라 건설로 지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주요국들은 이미 그린 수소 생산과 수소환원제철 상용화 사업을 연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둘째, 정부 지원 없이는 안 된다.

  • 한국형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과 설비 전환에 2050년까지 최소 20조 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 2025년 기준 정부가 저탄소 철강 기술에 편성한 예산은 다 합쳐도 2700억 원이 안 된다. 수소환원제철 기술만 보면 269억 원이 전부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 독일은 철강 생산량이 한국의 절반 수준인데 저탄소 철강 기술 지원 예산은 38배 더 많다. 일본도 관련 예산이 15배 규모다.
  • 지난 6월,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통과돼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 동안 8146억 원(국비 3088억 원 포함)이 투입될 예정이다. 연간 30만 톤을 생산할 수 있는 시험 설비다. 그나마 기존 계획보다 축소됐고 2030년 이후는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셋째, 안정적인 수요가 있어야 한다.

  • 저탄소 철강은 초기 투자 비용이 수십조 원에 이른다. 초기에는 생산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정부가 먼저 수요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
  • 가장 직접적인 수단은 공공 조달이다. 조달청이 공공 건축물과 하수도 정비 등 인프라 건설에 쓰는 철강을 저탄소 제품으로 사들이면 대규모 수요처가 생기면서 강력한 투자 동인이 될 수 있다.
  • 주요 건설 자재인 시멘트와 콘크리트는 조달청의 녹색 기준 제품 기준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만, 철강 제품은 대상 품목에서 아예 빠져 있다. 정부가 탄소 중립 전환의 ‘큰손’으로 나서야 하는데 철강을 대상으로 하는 조달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이다.

넷째, 먼저 ‘공짜 배출’부터 막자.

  • 당근과 채찍을 같이 써야 한다. 탄소 중립 전환에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에는 강력한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
  • 2015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시작된 이래 철강 같은 탄소 누출 우려 업종은 줄곧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받아왔다. 규제가 강해지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결과는 ‘본말 전도’였다. 실제 배출량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배출권을 공짜로 받고 있기 때문에 시급하게 온실가스를 감축할 유인이 부족했다. 실제로 배출권 거래제 도입 이후 철강 제품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 심지어 남는 배출권을 되팔아 돈까지 벌고 있다. 2023년 한해에만 국내 상위 5개 철강사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560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 결국 탈탄소 규제와 지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명무실한 배출권 거래제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K-스틸법도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제재와 지원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 장은혜(한국법제연구원 기후변화·ESG법제팀장)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네 가지를 강조했다.
  • 첫째, 탄소 중립은 사회적 과제다.
  • 둘째, 철강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잃으면 탄소 중립도 의미가 없다.
  • 셋째, 산업 경쟁력만 강조하고 환경을 외면하면 미래가 없다.
  • 넷째, 탄소 중립을 달성하되 산업을 키우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 “환경 정책도 산업을 고민하고 산업 정책도 탄소 중립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는 이야기다.

더 깊게 읽기: 기간산업 지원 필요하지만 의무가 뒤따라야 한다.

  • 강혜빈(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지원 대상의 목적과 대상,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 감축 성과 목표나 전략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 일본은 2030년 철강 부문 30% 감축 목표를 내걸었고 EU는 해마다 배출권 총량을 줄이기로 했다. 미국은 탄소 중립 철강을 지원하는 철강산업현대화법(Modern Steel Act)을 도입했다.
  • 정부가 지원한다는 녹색 철강과 핵심 전략 기술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U는 감축 잠재량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선별한다. 일본은 감축 효과가 검증된 기술만 지원한다.
  • 지역 편중 우려도 있다. 강혜빈은 “‘녹색 철강 특구’를 광역 단위로 지정해서 인접 지역 확산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인프라 확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탄소 배출권 거래제(ETS)와 충돌할 위험도 있다. 중복 지원을 방지하는 완충장치도 필요하다. 감축 성과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
  • 이준규(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 리더)는 “특정 대기업을 지원한다고 보지 말고 기간 산업의 탄소 전환을 지원하고 경제 전반의 구조 개편을 유도하는 국가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가지 질문: 사회적 합의와 지속 가능성.

  • 첫째, 민영 기업에 세금 들여 지원할 필요가 있나.
  • 둘째, 정부가 지원을 하면 경쟁력이 생기나.
  • 강혜빈은 “공적 이익 환수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실패할 경우 충격이 훨씬 크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철강 산업은 자동차와 조선 등 후방 산업뿐 아니라 수소와 재생 에너지 인프라 같은 전방 산업에도 직결되는 기반 산업이다. 탈탄소 전환에 실패하면 수입 의존도가 늘어나고 국민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이 된다.
  • 그렇다고 퍼주고 끝낼 수는 없다. 정부 지원과 함께 감축 목표와 지역 투자 등의 공적 의무를 병행해야 한다.
  • 강혜빈은 “비용이 아니라 국가 신성장 투자로 봐야 한다”면서 “단순히 대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산업 전체의 신성장 동력을 다지는 기초 공사라는 관점에서 내러티브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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