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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닌 페미니스트: 코레타 스콧 킹과 베티 사바즈를 기억하며

‘박사, 목사, 민권운동가, 지도자, 혁명가.’

마틴 루터 킹의 이름 앞에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반면, 코레타 스콧 킹(Coretta Scott King, 1927년~2006년)을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단 하나였다.

‘마틴 루터 킹의 아내.’

코레타 스콧 킹 (1964년)

코레타 스콧 킹 (1964년 1월 1일 모습)

코레타 스콧 킹 

코레타에겐 혁명적인 비전이 있었다. 마틴이 미국 흑인 남성의 권리에 집중한 반면, 코레타는 이에 더해 흑인 여성, 유대인, 게이, 레즈비언의 권리를 강조했다. 베벌리 가이 셰프톨은 코레타를 이렇게 평했다.

“코레타 스콧 킹의 비전은 그의 남편 마틴보다도 혁명적이었다.”

마틴은 남성과 여성에겐 각각의 성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마틴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엄마가 되는 것입니다.”

코레타는 열정적으로 민권운동에 참여했으나, 마틴은 코레타의 이런 활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셰프톨에 따르면, “마틴은 코레타가 집에 머무르며 아이를 키우며, 전통적인 아내 그리고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길 바랐다.” 그러나 코레타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레타는 여성들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코레타는 1968년 6월, 가난한 사람들의 캠페인에 참여해 세 가지 거대한 악에 맞설 흑인 여성의 연대를 강조한다. 세 가지 거악은 ‘인종차별과 빈곤, 그리고 전쟁’이었다.

1968년 5만여 명의 청중 앞에서 "인종주의, 가난 그리고 전쟁"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코레타 (©Bettmann/CORBIS, 재인용 출처: womennewsnetwork.net https://womennewsnetwork.net/2014/01/20/when-widowhood-speaks-for-black-civil-rights/)

1968년 5만여 명의 청중 앞에서 “인종차별, 빈곤 그리고 전쟁”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코레타 (©Bettmann/CORBIS, 재인용 출처: womennewsnetwork.net)

며칠 뒤, 엘리스 워커는 코레타를 인터뷰한다. 코레타는 여기서 페미니즘을 강조한다.

“만약 여성이 사회적 이슈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들은 활동가로서, 여성으로서 자신들의 힘을 찾게 될 거예요.”

베티 사바즈 

말콤 엑스는 “백인들은 악마”라며 강도 높게 백인을 비판했다. 그러나 말콤 역시도 여성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모든 여성은 자연적으로 깨지고 쉽고, 약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을 강하게 해줄 남성에게 끌립니다.”

말콤은 여성을 수동적이고 약한 존재로 묘사한다. 말콤 역시도 성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코레타와 마찬가지로 베티 사바즈(Betty Shabazz, 1934년~1997년)는 오직 ‘말콤의 아내’로만 기억된다. 베티는 남편의 암살을 자신의 눈으로 목격했고, 과부가 되어 남겨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했다.

시체 안치소에서 남편 말콤X의 시신을 확인한 뒤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베티 샤베즈 (1965년 2월, 뉴욕시티,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https://en.wikipedia.org/wiki/Betty_Shabazz#/media/File:Betty_Shabazz_1965.jpg

시체 안치소에서 남편 말콤X의 시신을 확인한 뒤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베티 샤베즈 (1965년 2월, 뉴욕시티,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흑인 싱글맘이 미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베티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휴머니스트 활동가로서 인종적 정의, 젠더 정의를 위해 싸운다.

“흑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우린 비로소 진보를 깨닫게 될 것이다.”

베티는 여성 그리고 아동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다양한 사회, 정치 이슈들을 다루었는데, 교육, 십 대의 비행, 학생의 권리, 남성과 여성의 관계, 베트남 전쟁에 관여했다. 베티는 남편 말콤과는 달랐다. 러셀 릭포드는 베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베티 사바즈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참으로 온화했고, 말을 잘했습니다. 에너지가 넘쳤지만, 말콤의 카리스마와 날카로움은 부족했습니다.”

베티는 교육 기회와 여성의 권리, 아동의 존엄을 위해 일했지만, 활동가나 교육자 혹은 페미니스트로 불리지 않았다. 오직 말콤 엑스의 아내로만 불렸다.

남편 말콤 엑스와 함께... 베티 사바즈의 무덤. (출처: Tony Fischer, CC BY 2.0) https://flic.kr/p/4yLAoK

남편 말콤 엑스와 함께… 베티 사바즈의 무덤. (출처: Tony Fischer, CC BY 2.0)

코레타와 베티를 기억하며 

코레타는 미국 흑인 여성의 권리는 물론 성소수자의 평등권을 위해서도 싸웠다. 이는 마틴이 관심하지 않은 이슈들이었다. 베티 역시 흑인 여성들과 아동 그리고 학생을 위해 싸웠다. 이 분야에서 베티의 기여는 말콤보다 대단했다.

그러나 코레타와 베티의 삶은 그들의 성과로 평가받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의 아내로만 규정되었다. 이는 코레타와 베티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의 성과는 빈번히 무시된다.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에 근거하여 규정된다.

코레타와 베티, 그 누군가의 아내로만 기억되어선 안 될, 독립된 존재이자 여성이며 뛰어난 페미니스트

코레타와 베티, 그 누군가의 아내로만 기억되어선 안 될, 독립한 존재이자 페미니스트

마틴과 말콤에겐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가부장제와 여성차별 그리고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코레타와 베티는 마틴과 말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다른 비전을 보여주었다. 코레타와 베티의 삶은 재조명되어야 하며, 이들은 다시 소개되어야 한다

코레타와 베티의 이상은 그들의 남편이 꿈꾸었던 것보다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누군가의 아내로만 불리고 기억된다.

우린 여성을 어떻게 기억하고 소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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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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