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주택 참모들에게 1주택만 남기고 처분할 것을 강력 권고한 후 한 달이 지나자,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5인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5명의 수석 중 3명은 여전히 다주택자였다.[footnote]김조원 민정수석, 김거성 시민사회수석, 김외숙 인사수석[/footnote] 결과적으로 이 고위 공직자들은 집을 팔지 않아도 무방한 신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정책 기조,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 중심에는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가중시켜 ‘매물 공급’을 늘리고 이를 통해 집값을 낮춘다는 복안이 있다. ‘1가구 1주택’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중 다주택자가 많고, 이들부터 주택 매각이 신통치 않으니, 옳건 그르건, 정책의 신뢰도가 서기 어렵다.

거대 여당의 논리에 따르면, 보유세가 버거운 이들은 다주택자는 물론 장기 보유 1주택자마저도 집을 팔아 이사를 가야 한다. 안 팔리면 시세보다 꽤 낮춰서라도 내놔야 한다. 그런데 다주택 공직자들의 항변을 들어보면 쉬 팔릴 만큼 호가를 낮추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에 사표를 낸 김조원 민정수석은 강남 집을 시세보다 2억 원 비싸게 내놨다가 들통이 났다(이에 대해 청와대가 내놓은 해명은 “통상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달라는 걸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황당한 것이었다).

김조원 전 민정수석 (출처: 청와대)
“부동산 거래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김조원 민정수석. 12일 경질 예정. (출처: 청와대)

집을 팔면서 최소한 손해는 보기 싫고, 혹 손해를 보더라도 이를 줄이려는 건 공직자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다주택자가 손해가 있더라도 집을 팔도록 만들어, 집값도 잡고 공급도 늘린다는 보유세 기조를 세워 왔다. 하지만 이 논리는 집이 나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거나, 손해를 입으면서까지 집을 팔기는 싫다는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의 행태로부터 큰 구멍이 드러난다.

“어쩌다 다주택자”가 됐다는, 강남에만 주택 3채를 보유한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집 팔 생각이 전혀 없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보유세를 내고 있으니 문제 없다고 한다. 그 마음가짐은 평가할 만하지만, 집권당의 ‘다주택 보유세 증가와 매물 확대’ 정책이 매우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언행이다. 김진애 의원처럼 여력이 되는 집 부자들은 보유세를 가중시켜도 집을 팔지 않는다. 보유세 부담이 커질 때 이를 세입자로부터 벌충할 수 있는 수단도 다양하다.

"어쩌다 다주택자"가 된 강남에만 3채의 주택을 보유한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 (출처: 국회) https://www.assembly.go.kr/assm/memPop/memPopup.do?dept_cd=9771281
“어쩌다 다주택자”가 된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강남에만 주택 3채를 보유하고 있다. (출처: 국회)

급매물은 자산과 소득이 부족하거나, 보유세 부담을 세입자와 분담하기 어려운 다주택자로부터 나오게 된다. 한데 이 매물을 쉽게 살 수 있는 이들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대출을 해야 하는 무주택자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부자들이다. 세부담 가중을 통한 시세보다 싼 공급의 확대는 산발적, 간헐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이런 상황은 부동산 정보에 밝았던 부자들에게 한층 유리하다. 다주택 취득자들은 증여를 통해 일가의 주택 수를 늘리는 방법도 동원할 수 있다. 집권당 소속 박병석 국회의장법사위 윤호중 위원장이미 자식에게 증여를 해준 바 있다.

강남 다주택자 김진애 의원은 보유세 강화 법안이 통과될 때 (자신도 납부하게 될) 이 세수는 공공임대주택에 투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의원들에게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일견 당당한 논리지만, 실제로는 정부·여당의 기조와 정면 충돌한다. 정부·여당은 보유세 상승이 집값을 하락시킨다고 강조해 왔다. 급등 지역의 경우 임기 초 수준으로 원상 회복시키겠다는 목표를 대통령이 밝히기도 했다.

[box type=”info”]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본다. (….) 앞선 대책에서 고가·다주택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율을 인상했고 주택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사실상 보유세를 인상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서민들이 납득하기 어렵고 위화감을 느낄 만큼 급격히 상승한 곳이 있는데, 이런 지역들은 가격이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 중에서

[/box]

문제는 이렇게 집값이 떨어지면 보유세가 줄어들어, 공공임대주택에 투입할 돈도 줄어든다.

집 부자 세금으로 공공임대 짓자? 

집 부자에게 걷은 돈으로 공공임대를 짓자는 논리는 국제적으로 봐도 희귀하다. 기본적으로 보유세는 소득세나 소비세 같은 주요 세목들에 비해 세금 규모의 확대에 제약이 크다. 이를 통해 공공임대를 건설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 상대적으로 보유세 규모가 큰 나라들은 대부분 자유주의형 국가들로 한국처럼 공공임대의 공급량이 적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임대의 비중이 큰 유럽 국가들은 오래전 국유지와 시유지를 싼 값에 대규모로 확보함으로써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 성장이 성숙한 이후에는 땅도 부족하고, 비용 부담으로 인해 공공임대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 한국의 공공임대 공급이 어려운 것도 국유지 및 시유지가 부족하고, 경제 성장의 수준이 높아 건설비가 높기 때문이다. 공공임대 1채당 1억 여원의 부채가 발생하는 실정이다.[footnote]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이 2019년 9월 24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받은 ‘임대주택 1호 건설당 LH 부채증가액’ 자료에 근거. (재인용 출처: 뉴시스, 김상훈 “임대주택, 한 채당 1억 이상 적자…지원 현실화해야”, 2019. 9. 24. ) [/footnote]

그런데 ‘공공임대가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평생주택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방침이다.[footnote]“공공임대주택을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 임대주택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함하여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주택’으로 확장하고, 교통 문제 등 필요한 후속 대책을 빠르게 마련하겠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수석보좌관회의 모두 발언, 2020. 8. 10, 출처: 청와대)[/footnote] 보유세가 늘어나 공공임대를 늘린들 저소득층의 수요에도 한참이나 부족한데, 중산층에게도 평생주택을 공공에서 제공하겠다고 하니 선심성 허언이 지나치다. 한국의 저소득층이 여타보다 많고 생활 여건도 한층 열악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손해를 끼치는 발상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보유세를 강화하고 투기꾼을 엄벌하면, 결국 보유세가 도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책의 실패다. 정치인은 듣기 좋은 말들을 늘어놓다가 자가당착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현 정부·여당의 부동산 대응은 특히 심하다.

YouTube 동영상

‘공공재건축’ 카드로 드러난 ‘민낯’ 

공공임대를 건설할 땅이 부족하니 정부는 공공재건축이란 카드를 들고 나왔다. 쉽게 말해 강남 같은 요지에서 재건축할 때 주택 수가 늘어나도록 용적률 상향을 허가해줄 터인데, 대신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용적률 상향이 없는 재건축도 불허한다. 인허가권을 쥔 정부로서는 공급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에도 대응하고, 공공임대도 확보하고, 겸사겸사 소셜 믹스도 해보고 ‘꿩 먹고 알 먹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공임대 공급 방안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지자체장들에 의해 민낯이 드러났다. 정부·여당의 정치인들이 주민 반대나 쾌적한 주거여건, 지역개발 등을 명분으로 내 지역구에는 임대주택을 지을 수 없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지난 시간 임대주택 반대를 외치는 지역 주민들의 행태가 왕왕 비판의 도마에 오르곤 했다. 한데 알고 보니 사실 이런 반대는 노골성의 정도만 다를 뿐 임대주택 확대를 외치는 집권당의 공직자들도 공유하는 정서였다.

YouTube 동영상

현실이 이러하니 민간이든 공공이든 주택 공급이 여의치 않다. 임대주택에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게 맞는지도 헷갈린다. ‘저 봐라. 집권당 나리들부터 임대주택을 기피하는데, 대체 우리가 무슨 죄냐. 우리의 도덕성은 집권당의 공직자들과 피차 일반이다. 더 이상 임대주택 반대한다고 뭐라 하지 말라.’ 이런 항변은 옳건 그르건 강력하다.

도덕성 강조? 콧방귀 나온다 

정부·여당은 도덕적 명분을 내세우며 다주택자 및 시세차익을 비판해 왔다. 최근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집을 사고팔면서 차익을 남기려는 사람들은 법을 만들어서라도 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이는 집을 갖고 싶은 국민들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이라고 일갈했다. 다주택자가 범죄자냐는 비판이 나오자, 다주택자를 범죄자라고 한 것은 아니고 시세차익이 문제라고 해명했다.

공공 부문에서부터 다주택자를 멸종시켜 나가고, 종국에는 1가구 1주택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집권 여당의 확고한 방침이다. 잘 되진 않지만, 청와대가 솔선하려 하고 있고, 다주택자가 40여 명에 달하는 민주당도 소속 의원들에게 1주택으로 가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유력 대선후보는 4급 이상 다주택 공무원의 경우 승진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위헌적인 방안까지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소병훈 의원은 다주택자가 아닌 시세차익 투기꾼을 겨냥한 것이라 하는데, 다주택 자체를 불온시하는 정부 기조와 어긋난다. 이런 언행 하나하나가 정책 신뢰도를 반감시키는 요인들이다. 더욱이 소병훈 의원의 일가는 본인 소유의 주택에 더해 딸들과 공동명의의 건물, 배우자 명의의 임야 4건을 가지고 있다. 짜릿한 시세차익을 당장은 맛보기 어려운 지역일지는 모르겠으나, 가족이 집과 땅을 여럿 보유한 집권당 국회의원이 다주택은 문제가 아니라 하니, 일반 다주택자들이 콧방귀를 뀔 만하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처: 국회) https://www.assembly.go.kr/assm/memPop/memPopup.do?dept_cd=9770999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처: 국회)

정부·여당의 ‘갭투자 비난’은 정당한가   

도덕 투쟁을 앞세워 부동산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정부·여당의 난맥상은 갭투자 또는 갭투기, 그리고 임대주택 사업자 정책에서 절정에 이른다. 전세보증금을 이용해 집을 사들이는 일명 갭투자는 기본적으로 합법이다. 전세보증금을 얼마를 받든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를 이용해 다주택자가 되는 것도, 그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도 법이 허락한 일이다.

오히려 주택담보대출을 과도하게 옥죄면서 전세대출은 반대로 풀어놓아 갭투자를 유도한 것이 정부이다. 갭투자는 어디까지나 합법적 제도 내에서 정부의 유도를 빌미로 벌어진 일이다. 정부·여당 쪽에서는 공식적인 제도를 이용하며 법을 어기지 않는 행동은 도덕적 비판의 소지가 있더라도 그 비판이 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난 ‘조국 사태’ 때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또 한편으로는 갭투자 등 합법적 다주택자를 간악한 투기꾼으로 몰면서 온갖 도덕적 비난을 쏟아낸다.

역작용이 확연해진 갭투자가 규제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의 대출 정책을 활용해 다주택자가 된 이들을 향해, 다름 아닌 정부·여당 쪽에서 도덕적 질타를 가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정부의 교육 정책을 활용해 ‘부모 찬스’로 합법적인 세습을 도모했다면, 세습 불평등을 심화하는 폐해가 있더라도 도덕적 힐난은 자제하고 제도적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정부·여당 쪽의 입장이 엎어지기 때문이다.

ㄴ
주택담보대출은 옥죄면서 전세대출을 풀어 캡투자를 유도한 건 다름 아닌 ‘정부’다.

주택임대사업자등록제도의 경우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제도도 마찬가지다. 임대 사업자에게 임대료나 계약 기간의 규제를 두는 대신 각종 혜택을 선사한 것은 정부가 중점을 둔 부동산 정책 중 하나이다. 국토부 장관이 몸소 나서며 혜택이 늘어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다주택자와 그 보유 주택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결국 정부 정책에 따라 다주택 임대업이 한층 성행하게 된 것인데, 정부·여당은 다주택자를 만고의 악당으로 취급하며 대중의 손가락질을 부추기는 한편, ‘당근’ 정책을 폐지한다고 돌연 태세를 전환했다. 정책 오류를 시정하는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다가는 투기꾼이라고 온갖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큰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홍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알려진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부동산은 끝났다] (2011)을 " 노무현 정부 당시의 아픈 기억을 토대로, 우리나라가 또 다시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혼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 전 실장은 [부동산은 끝났다] (2011)를 쓰면서 “노무현 정부 당시의 아픈 기억을 토대로, 우리나라가 또 다시 부동산 정책의 실패에 혼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정책 담당자들은 가급적 사람의 선의나 도덕성을 기대하며 정책을 짜서는 안 된다. 도덕성과 무관하게 성과를 내는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여당은 정책의 허와 실을 냉정히 분석하기보다는 투기 세력을 향한 도덕적 비난에 골몰한다. 당장 대통령부터 정부 부동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실과 다른 자평을 하고, 정책의 합리성보다는 ‘부동산 투기의 시대를 끝내겠다’며 도덕 투쟁을 강조한다.

물론 사회에는 도덕적 규범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이에 대한 환기를 주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특히나 거대 여당이라면 무엇보다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주력해야 할 일은 적을 상정하고 도덕적 낙인을 찍음으로써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아니다. 정책 실기를 분석하고 현실에 부응하는 정책을 내서 결실을 맺을 때, 정당성은 저절로 확보된다. 투기꾼 비난과 정책의 성과가 동시에 일어났다면 또 모르겠으나, 정책은 실패하고 남 탓만 남은 게 현실이다. 거친 언사들을 남발하며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모는 동안 정책의 실효성과 신뢰도는 추락을 거듭해 왔다.

박근혜 정부 책임이라고요? 

부동산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자승자박과 갈팡질팡은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나만 더 짚어보면 2선임에도 유력 정치인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공급에 시간이 걸리는 등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늦게 나오는데 늦어도 내년 초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에서 공급을 줄인 결과가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 상승으로 나타났다”고 강변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모두 경제학 기초에 해당한다는 설명도 있다.

민변 변호사 시절의 박주민 의원(2012년, 사진: 민노)
민변 변호사 시절의 박주민 의원(2012년, 사진: 민노)

이전 정부에서 집값 상승이 야기될 만큼 공급이 줄었다면, 다음 정부는 정권 초부터 대응책을 써야 정상일 것이다. 공급에 시간이 걸릴 것을 잘 알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 정부는 오류 범벅의 주택 보급률 통계를 명분으로 공급을 등한시했다. 공급 확대는 투기꾼에게만 좋은 일이고 집값 상승을 부채질한다고 강력 비판했다. 집이 부족하지 않으니 다주택자가 ‘매물 공급’을 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 공급 대책이었다. 그 사이 역대로 높은 상승률이 나타났고, 결국 기존 입장을 뒤집어 (실효성에서 비판을 받고 있긴 하나) 공급 대책을 발표했다.

차라리 박주민 의원이 집값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수요-공급의 원리보다 더 큰 요인들에 따라 결정된다고 논리를 펴면 나름의 일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부가 누누이 부인해온 ‘공급 부족’을 집값 상승의 요인으로 지적하며, 경제학 기초로 봐도 정부 정책이 맞다고 하니, 그 혼돈은 보는 이의 몫일 따름이다. 한편, 코로나 방역에 대한 호평이 감소하고 근래 부동산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자 이미 4년차에 접어든 정권이 전 정부로 책임을 돌리는 행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도 당연히 실기가 있었겠지만, 이제와 과거 정부를 물고늘어지는 것은 그 논리의 허술함은 차치하고 너무 속 보이는 행태이다.

정부·여당, 신뢰 추락 자초

주거 안정은 어느 나라에게도, 어느 정부에게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정책의 신뢰도는 주거 안정을 이루는 데 기본이 돼야 할 요소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신뢰도 추락을 자초했다. 언론 탓, 투기꾼 탓을 하고 있기엔 집권당 스스로의 실책이 막중하다.

단적으로 며칠 전에 나온 8.4 공급 대책의 타임라인을 보면 졸속이 따로 없다. 국토부 장관이 공급이 충분하다고 인터뷰를 한 뒤 단 2일 만에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공급 확대를 언급하며 ‘공급 충분론’을 뒤집었고, 그 20여 일 뒤 그린벨트 혼선 등을 거쳐 확대 방안이 나온 것이다. 정책의 신뢰도나 실효성을 도저히 높일 수 없는 급격한 오락가락이다.

아래 첨부한 도표는 인구 대비 주택 수다. 한국은 OECD 바닥에 자리한다. 도표는 2015년 기준인데 현재 한국의 인구 대비 주택수는 뉴질랜드나 호주 수준에 도달했다. 약 120만 호가 공급된 덕분이다. 그럼에도 OECD 평균을 기준으로 한다면 수백 만 채의 집이 더 필요하다.

인구 대비 주택 수

또 뉴질랜드나 호주의 집이 OECD 최대 수준으로 크고, 개인당 방의 개수도 OECD 최대 수준으로 많은 데 반해 한국은 그 반대다. 집 크기가 작으면서 면적에 비해 방의 개수는 많고, 개인당 방의 개수는 적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어느 계층에게나 더 좋은 집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집값 잡기를 넘어 현재보다 훨씬 나은 주거 여건을 고르게 달성하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거대한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여당의 각성이 절실하다. 그러라고 역대급의 강한 권력이 부여된 것 아니겠는가.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