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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미래
1.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하다: 자가점유율 상한선 탐구
2. 고마운 다주택자: 유동화 매개의 중요성
3.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상): 고밀개발이라는 순진한 관념
1) 건폐율과 용적률 그리고 건물과 단지의 모양
2) 고층화와 고밀화(용적률 증가)에 기대는 논리
3) 재건축: 단기적 차원에서는 손해, 결국 하긴 해야 한다
4)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 그리고 주택유형의 제한
4.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중): 고밀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에너지 효율적이지도 않다
5) 용적률 뻥튀기 재건축, 미래세대에는 불가능한 행운
6) 고층화와 고밀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
7) [도시의 승리] 올바로 읽기
5.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하): 대안은 초고밀화가 아니라 ‘다핵화×연결’
8) 직주 근접, 서울 사대문 안 고밀개발이 답일까?
9) 스마트한 연결, 그게 필요하다
10) 결론: 다핵 국토의 스마트 연결 그리고 시간
(순서대로 읽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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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1가구1주택’은 가능할까?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헌법에 ‘1가구 1주택’을 명시하자는 여당 현역 의원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국민이 모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1가구 1주택 시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 시절(2014년 7월 16일) 당시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최경환은 취임 일성으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강조[footnote]”거시정책을 과감하게 확장적으로 운영하고 한겨울에 한여름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부동산 시장의 낡은 규제를 혁파해야 합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식, 2014 7월 16일)[/footnote]”했다. 이른바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이다.
사실 따져 보면 김태년 원내대표의 말이나 최경환 전 부총리의 말이나 서로 같은 말이다. 그런데 다주택자를 때려잡아서 그 집들이 매물로 나온다 한들, 우리에겐 그걸 살 돈이 없다. 집값이 반값이 된다 한들 40년 저축할 걸 20년 저축하는 걸로 바뀌는 것일 뿐이다. 결국 어느 정도는 빚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돈 없는 사람에게 함부로 돈 빌려주고 집 사라고 했다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 같은 게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임대주택(만)을 지으면 청년을 월세 거지로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임대주택 짓지 말고 청년에게도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자’는 주장은, 자기 집을 사줄 수요가 줄어들거나, 공공 임대 때문에 민간 임대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게 두려워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부동산으로 자산 가치를 불려가는 데 옆에서 월세만 내고 있던가,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 나중에도 손에 남는 게 없으면 억울하고 난감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부모님 세대에서는 가능했던 내 집 마련의 꿈이, 이번 세대에서 끊긴다면 세대갈등의 요인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전 국민이 자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혹시 ‘전 국민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한 꿈은 아닐까?
외국은 어떨까
이른바 ‘선진국’일수록 자가거주율이 낮은 경향을 보인다. 국가마다 집계 방법과 조사시점이 달라 다른 자료들과는 수치에 차이를 보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는데는 위키백과를 참고해도 무리가 없겠다.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어떤 건축학과 교수는 “월세 소작농”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세입자는 소작농인 셈이고 월세가 많아지면 정치인이 지주가 되어 그들의 지배력이 세지는 것이라, 조선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던데, 외국 사례를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건축학과 교수라고 해서 주거·주택문제에도 저절로 정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다).
자가거주율 상위에 랭크된 나라들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분위기를 내가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은 아니고, 그 나라 국민들도 나름 스스로 원하는 정치 체제를 잘 운영하고 계시겠지만, 보아하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모델’로 논의할 때 등장하는 나라들은 아니다.
우리가 모델로 흔히들 삼는 나라들은 오히려 자가소유율이 낮은 쪽에 속한다. 민주주의도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고, 정치인들이 국민 무서워할 줄 아는 나라들로 흔히 소개되고 있는 곳들이다. 따라서 이것만 보면, ‘월세 소작농=권력은 정치인에게 넘어간다’라는 논리는 (정치적 목적을 가진 선동용으로 쓰인다면 몰라도) 학문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참고할 만한 주장으로 보긴 힘들겠다.
그렇다고, 역으로 임대 부문이 많다고 자동적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성립한다면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인과관계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관관계는 있어 보인다. 조금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발달한 자본주의 혹은 복지국가의 경우
사회주택이 많은 나라들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표를 보자. 오래된 통계라서 현재와 수치가 조금씩 다르지만 (네덜란드의 사회주택은 이제 29%) 역시 큰 흐름을 보는데는 지장이 없고, 순위에도 변동이 없다.[footnote]출처: Christine Whitehead and Kathleen Scanlon (eds) 2007, Social Housing in Europe 의 통계수치를 토대로 보완 설명[/footnote]
영국은 대처 수상 시절 ‘자가 소유 장려 정책’을 열심히 펴서 간신히 70%다. 옛 사회주의국가들은 이행기에 현 거주자에게 저가 분양해서 (그래서 시장가격으로 거래되는 지금은 세대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는데) 자가율이 90%이상이라고 한다. 독일은 자가율도 사회주택 비중도 낮지만, 세입자 보호제도와 주거보조비 등이 잘 작동하고 있어 임대인도 임차인도 큰 불만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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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택’이란?
사회주택의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고 명칭도 공공주택 등과 혼용되고 있다. 정의는 대체로 ‘임대료 책정방식, 배분 방식, 소유주체’ 등이 어떻게 되는지를 규정한다.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 등 사회 영역에서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선 전통이 강한 나라는 주로 사회주택, 공기업 중심의 경우는 주로 공공주택이라 불리우는 경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 서울시의 조례 제정시 공급주체와 공급대상을 명시하였고 (‘사회적경제 주체’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공급), 토지나 금융 분야의 공공지원을 댓가로 임대료는 시세 80% 이하로,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4회까지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공공임대 주택의 사각지대인 도심의 중소규모 토지에 셰어하우스와 1~2룸 중심으로 공급하다보니 주로 청년 1인 가구가 많이 입주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파트 등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에 다양한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공급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에 사회주택을 처음 언급한 이후,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등을 마련하고 각종 지원책을 마련해 가고 있다. 올해를 사회주택 법제화의 원년으로 만들고자 하는 입법 작업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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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개들 50-60% 사이에 몰려있는 경향이 강하다. 왜 그럴까? 우선 여기서 ‘복지국가는 자가율이 높아서가 아니라 세입자가 마음 편하게 살아서 복지국가다'[footnote]이에 관해선 ‘주거체제론’의 관점에서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footnote]라는 명제는 도출이 가능하지만, 왜 자가율은 마치 상한선이 60% 인 것처럼 머무르게 되는 것일까.
경험적으로나 직관적으로는, ‘도시화가 되면 집값이 비싸지는데 그걸 전 국민이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할 수 있고, 미국에서 ‘자가소유’를 장려하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를 겪은 것을 보니 ‘무리한 자가소유’는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니, 함부로 ‘빚내서 사라’고만 할 수는 없는 문제 같긴 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그런 경험적 추론이나 짐작 말고, 논리적으로, 연역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몇 년 전부터 궁금했었다. 의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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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1.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전 국민의 자가 소유는 불가능한 필연적 이유가 있을까.
- 의문2. 자가 소유의 비중에 ‘어떤 상한선’이 있다면 그 상한선은 어떻게 정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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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답을 얻은 것 같아 이 글을 쓴다.[footnote]연구자로서는 이 가설을 어디엔가 논문으로 내면 좋겠지만, 가설 수준의 지금 주장을 제대로 정리하고 투고하고 하는 건 다음에 할 수 있으면 하고, 우선은 관련 정책을 둘러싼 여러 갑론을박에 근거를 대야 해서…. 민주당에서 헌법에 1가구 1주택을 넣자는 황당한 생각을 하는 의원도 있고, 자기들도 결국 같은 주장을, 혹은 더 위험한 주장을 한 거면서 민주당이 잘못하고 있다는 미통당 의원도 있고…. 정의당도 여전히 1가구1주택주의나 국가만능론에서 크게 못 벗어나는 것 같고… 얼른 ‘전 국민 자가 소유 =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합니다’를 외쳐야 하니….. 당장은 논문으로 쓸 시간도 힘도 없구나.[/footnote]
소득분포와 주택 가격의 관계
1. 소득분포
한국민의 소득분포가 어떻게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우선 지니계수(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소득분배지표. 완전 평등: 0, 완전불평등: 1)를 찾아보니 2019년에는 0.345라더라.
그래서 로렌츠 곡선에 해당할 곡선을 하나 그려봤다. ‘실제 소득분포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이럴까’ 하면서, y=x^n 정도로 우선 하나 그려볼까, 해서 지니계수가 0.345가 나올 n을 구했더니 n=2.055. 그런데 아무래도 뒤쪽으로 갈 수록 기울기가 가파르게 될 것 같아서 90도 돌리고 평행이동하여 아래 그래프의 빨간선이 나왔다.
그 빨간선을 적분하면
이게 개별소득분포겠지. 아래의 파란 선. (감사: desmos, wolframalpha)
맞게 한건지 긴가민가 한데 (미분 적분을 얼마만에 한 것인가) 일단 여기까지하고 통계를 찾아보았다.
소득과 자산과의 관계, 근로자와 자영업의 관계, 등등으로, 실제 분포는 지니계수와 단항식으로만 가정하여 유추한 위의 푸른 곡선과 다르겠지… 하면서 통계자료를 찾긴 귀찮아서 우선 인터넷에서 ‘소득분포’로 검색을 해보니, 이것저것 나왔다. 그 중 연합뉴스(2016. 7.)와 한겨레21(2009. 12.)에 나온 자료를 보니 실제로도 내 곡선과는 많이 달랐다.
실제로는, 처음의 단순한 기하급수 우상향(아래로 볼록한 곡선)이 아니라, 위 그림 가운데의 파란 곡선처럼, 중간에 변곡점이 있다(처음엔 위로 볼록, 오른쪽으로 가면 아래로 볼록).
왜 열심히 계산하여 구한 식대로 미려한 곡선이 아니라, ‘아주 완만한 S자 곡선‘의 형태를 보일까.
아하, 그러고보니, 계층 구조가 다이아몬드가 되면, 저소득층의 비중이 작아지며 왼쪽은 가파르게 떨어지고, 중간은 완만히 늘다가, 고소득층 구간은 또 급격히 상승하는 모양새가 되겠구나 싶다. 그러니 대략 파란선 처럼, 아주 완만한 (역) s 자 모양으로 나오는 게 합리적인 것이다.
(위에서 지니계수로부터 역산해서 소득분포 곡선을 만들어보려한 건, 미분이든 적분이든, 헛짓이었던 것이다! )
다음은 주택공급비용이다.
2. 주택비용곡선
편의상 주택 품질에 입지, 규모 등 포함시켜, x축으로 잡는다. (건물의 시공품질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좋은 집’에 개념에는 건물의 물리적 품질도 품질이지만 향, 조망, 입지, 규모 등이 다 포함되는 것인 바, 그 ‘좋은’ 집의 ‘좋음’의 개념이다)
비용을 y축으로 하면, 주택공급비용은 그냥 우상향, 아래로 볼록일 것 같다.
아무리 작은 집을 헐하게 지어도 기본 비용이 드니, 품질이 안 좋은 구간에서는 완만하다가, 한계비용체감으로 이제 품질과 비례해서 공급비용이 들 것이다. 아주 최고급일 경우는 한계비용체증으로 이제 품질을 향상시키면 이전보다 비용이 더 들게 될 것 같긴 한데.. 그런 경우는 없거나 극히 일부일 것 같다. 따라서 아래 그림의 푸른 부분은 제외하고 흰 부분만 채택하면 주황색 곡선이다.
3. 두 곡선의 관계
오늘의 본론의 핵심이다(세상에서 내가 제일 처음해보는 걸까, 아니면 이미 누가 했을까). 위 두 그래프를 겹쳐보는 거다. 주택의 구매력이 소득 수준과 같다고 보고(파란색 곡선), 주택의 공급비용이 주택의 가격이라고 보자 (주황색 곡선).
구매력 곡선에 해당하는 파란색 곡선이 주택 가격 곡선에 해당하는 주황색 곡선보다 아래에 있는 구간은(아래 왼쪽-위 박스 안 작은 그래프의 노란색 빗금), 자신의 구매력으로 주택 구입이 불가능한 구간이다.
이 두 곡선의 관계를 놓고 시나리오는 세 가지가 가능하다.
- 주택 공급 비용이 너무 높은 경우
- 주택 공급 비용이 어중간할 경우
- 주택 공급 비용이 충분히 낮을 경우
여기서 양 극단의 경우는 말고, ‘주택 공급 비용이 어중간한 경우’를 자세히 보자. 아래 그림이다. 여기서 특이사항은, ‘부담 불가능한 구간’이 두 곳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부담불가능한 구간을 ‘절대적 부담불가능 구간’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는 중산층에게 해당되는데, ‘상대적 부담불가능 구간’이라 부르겠다.
- 부담 불가능한 구간(1)은 상당한 수준의 주거 보조비나 현물(주택)의 직접 제공이 필요한 구간이다. 절대 부담 불가인 이유는, 더이상 소비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해결이 될 수 있는 구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 부담 불가능한 구간(2)는 상대적으로 부담 불가 구간이다. 눈높이를 낮추면 해결 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간 사람들에겐, 임대 부문이라면 약간의 주거보조비를 주던가, 구매를 위한 금융지원을 해주던가, 또는 약간 외곽의 신도시 건설 등으로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신도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이다.
구간 (1)과 (2)사이에 있는 부담 가능한 공간의 존재는, 대도시보다 중소도시의 자가소유율이 높은 이유나, 저소득층 중에서도 자가를 소유한 경우가 가능한 이유를 시사한다.
그런데 부담 불가능한 구간(2)이 없는 경우, 즉 주황색 곡선이 파란색 곡선보다 상당히 아래에 있는 경우에는 그럼 자가소유가 쉬울까? 그렇지 않다. 이 역시 사람들이 ‘공간적으로 분포’하기에, ‘도시 빈민’이 생기기 때문이다.
소득과 주택비용의 공간적 분포
공간적 관점에서도 파악하기 위해 이제 앞서의 논의를 지대곡선과 연결시켜 보자. 도심이 하나이고, 외곽으로 갈 수록 지대가 낮아지며, 중간에 산이나 강이나 다른 경쟁 도심은 없다고 가정할 경우, 상업-공업-주거지구로 용도가 형성된다는 것은 지리 시간에 배운 기초 이론 중 하나. 여기에 위의 그래프를 (바로 대입하면 여러가지로 무리가 있으나 일단 사유의 전개를 위해서) 대입해 보았다.
1. ‘도시화’로 인한, ‘절대적 부담불가 구간’의 지리적 이전
주택의 공급 비용에서 면적이나 시공 품질 등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만, 그 변수들을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일단 제일 큰 변수는 토지 가격일 것이다(실제 서울에서는 전체 주택사업비에서 토지비>건설비가 되는 경우도 많다. 지방에 가면 토지비:건물비=4:6 심지어 1:9도 있겠지만) 물론 동네 분위기나 학군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도시내’가 아니라 ‘국토’의 범위에서는 생략하고 논의를 전개한다.
토지 가격에 기반한 주택 가격은 도심에서 멀어질 수록 저렴해질 것이다(아래 주황색). 앞서의 주택공급비용을 그대로 차용한다. 그리고 여기선 구매력도 충분히 높다고 가정해 본다. 그러면 ‘절대적 부담 불가 구간’까지는 완전히 없애지 못해도, ‘상대적 부담 불가 구간’ 정도는 없앨 수도 있다.
그런데, ‘부담 불가능 집단’은 오히려 늘어난다(그래프의 짙은 점들). 실제 사람들은 도시 공간에서 살고, 도시 공간에는 ‘그 지역의 주택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택 가격에만 맞춰 살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아야 하는 처지라해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위 그림의 화살표처럼, 어느정도는 도심으로 와서 살아야 한다. 이 경우에는 이제 ‘도심’이라는 주택의 ‘입지’를 위해서 면적이나 건물 품질 등다른 요소를 희생해야 비용이 감당 가능해진다. 간혹 아주 도심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출퇴근 시간을 감내할 수 있을 수준으로 어느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절대적 부담불가 구간’의 분들 중 ‘도시 극빈층’은 건물의 품질이나 규모는 거의 완전히 포기하다시피해도 ‘도심’에서 살아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쪽방이나,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의 경우다. 노회찬 의원이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로 이야기했던 6411번 버스는 그래도 서울 시내 노선 버스인데, 수도권 위성도시로 나가면 마치 먹이사슬처럼, ‘위성도시로 출근하는 그 주변지역 사람들’이 있다. 특정 지역을 거론해서 죄송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성남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울로 출퇴근하는데, 그 성남으로는 수원에 사는 분들이 출퇴근하는 식이다.
구매력을 키우거나 (파란선을 올려주기), 주거 지원 정책 (파란색과 주황색의 차이를 메꿔주기)을 구사하는 것은 도시든 농어촌이든 모두 공통적으로 ‘빈곤 계층’을 위한 정책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농어산촌은 정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택 가격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농어산촌은 산업정책 차원에서 구매력을 키워주면 주택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도 있는 과제일 것이지만, 도시에서는 어지간한 구매력 증진으로는 여전히 주택 가격에 한참 못 미치게 된다. 워낙에 주택 가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따라서 도시 내에서는 특단의 주거지원 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파란선이 주황선 한참 위에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원론적인 해결방법이다. 그런데 주택 비용을 낮추는데도 하한선이 있을 것이니, 구매력을 올려야겠는데, 구매력을 전체적으로 증진하는 방법, 즉, ‘파란선 올려주기’의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 번째는, 이게 시간이 걸리는 문제고, 구조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파란선의 기울기나 위치가 어느 정도는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같은 파란선 안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일 수 있고, 모두가 합심하여 파란선 전부를 위로 올릴 수도 있겠지만,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상대적 부담 불가 구간’에 해당하는 경우는 건물의 품질이나 규모는 포기하지 않되, 이동 거리를 감내하고 지대를 아끼면 ‘부담가능한 주택’에서 살 수 있다. 신도시 정책은 이런 분들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입지가 더 중요하다면, 규모나 건물품질 등 중에서 몇 가지를 포기하고 입지를 선택하게 될수도 있다.
어찌되었던 ‘부담 불가능한 구간’에 위치하게 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고,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도시 공간과 사회경제적 구조 차원의 문제이다. 시각을 바꿔서 보면, 현대 도시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출퇴근 가능 거리’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절대 부담 불가구간’의 발생 원인이 구조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개인 탓’을 하기 보다는 당장 주거보조비나 공공주택을 제공하는 것이, ‘그러한 인구집단을 도시 내에 유지해서 굴러가는 시스템’이 갖춰야 할 의무 사항일 것이다. 안 그러면 교통 수단을 확충하거나.[footnote]그런데 이는 ‘국토 균형 발전’에 역행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후위기’의 시대에 교통수단 확충은 탄소배출의 문제도 야기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다음 글에서 다룰 것이다.[/footnote]
2. 부담 불가 구간의 길이, 혹은 부담 불가능한 인구집단의 규모
부담 불가 구간의 길이가 구체적으로 얼마가 될지는, 파란 선과 주황선의 기울기, 곡률과 서로간의 간격에 달려있겠다. 그런데 각각의 기울기나 곡률은 어찌어찌 구하려면 구한다 쳐도, 파란선과 주황선을 어떤 간격으로 만나게 할 수 있을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서로 다른 척도와 산출 단위의 곡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구매력과 주택 가격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개념적으로 비교하고 ‘시나리오 1, 2, 3’의 경우에 각각 어떠한 상황이 되는지를 본 것이지, 현실에서 두 곡선 사이의 각도와 거리가 어찌되는지를 수치로 나타내기엔, 정리해야할 중간 과정이 많이 필요하다. 정교하게 곡선을 구하고 두 곡선을 같이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수치로 전환하고 보정한다면, 과연 구매력과 주택공급비의 관계가 어떤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전적으로 예측을 해 봐도, 구매력이 주택 가격을 넉넉히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이 상승한다는 이야기는,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이나 지대도 같이 상승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파란선을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는 차원이 아니라, ‘파란선을 끌어올리면 주황선도 같이 따라 올라간다’는 가설이다. ‘구매력을 높이는 해결 방법’이 가지는 두 번째 난점이다.
일단 이 ‘두 곡선’에 대한 추가적인 탐구는 다음 연구 과제로 두고, ‘유동화 (혹은 고형화) 매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토지’ 이야기 때문이다.
3. 토지와 투기
나는 투기와 투자의 구별은 매우 어렵고, 또 무의미하다고 본다. 어쨌든 부동산 투기(투자)의 근본 동력은 (감가상각하는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토지에 있다. 이에 주목하여, ‘건축비는 기술 발전으로 낮추고, ‘지대’의 효과는 국토보유세 도입 등으로 없앤다면, 투기도 없애고 주택문제도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토지 단일세제와 같은 조지스트적 주장도 있겠고, 지금 정부처럼 종부세를 통해 보유단계의 부담을 높이는 방법도 있다.
나는 국토보유세 도입의 문제 의식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절반 밖에 해결되지 않는다. 토지가 0원이 되어도 주택은 여전히 매우 비싼 재화이고, ‘재화가 비동질적’이라서 배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8억하던 아파트가 4억이 되어도 당장 그걸 살 돈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지와 무관하게 모두 가격이 같다면 어찌될 것인가.
토지 변수의 영향력이 빠진다 해도 위의 주황색 곡선의 기울기는 좀더 완만해지겠으나 출발선 자체가 충분히 낮아지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매력’이 된다 해도 주택 가격을 당장 전액 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해 초기의 건설 비용을 ‘유동화’해줄 매개자와 매개시스템(정치/행정/금융)이 필요하다. 그리고 ‘비동질적 재화’에 대한 배분 메커니즘이 필요하다.[footnote]이는 다음 글의 주제다.[/footnote]
결론: 전 국민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하다
도시화가 진행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 국민 자가 소유,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한 꿈이다.
‘부담불가능한 구간’의 폭과 위치는, 우상향하는 ‘주택 가격 곡선’과, 완만하게 기울어진 S자 모양의 ‘구매력 곡선’이 어느정도 겹치느냐에 달려있으며, ‘절대적 부담불가 구간’과 ‘상대적 부담불가 구간’으로 ‘두 개’의 구간이 생길 수도 있다(두 곡선의 구체적인 겹침의 정도는 훗날의 연구과제다).
부담불가능한 구간을 없애기 위해서는 구매력 곡선을 올리거나 주택 가격 곡선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실제 도시공간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도시사회의 산업구조와 교통의 제약 때문에, 주택 가격 곡선을 상당 수준으로 내리더라도 해당 지역의 일반적 주택 가격을 부담할 수 없는 계층도 도시에는 살게 된다. 이들은 ‘구조적으로’ 주택 소유가 불가능한 계층이다.
‘구조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곤란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구매력을 키우는 방법, 또는(그리고) 주택 공급 비용을 낮추는 방법 등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구매력이 커지는 것이 주택 공급 비용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가설이 맞다면, 이 역시 불가능한 해결책이다(이 가설에 대한 검증 역시 추후 연구과제다).
어쨌든 근본적인 해결책이 가능하다해도, 그 효과를 발휘하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이전에는, 현물(공공주택, 사회주택)이나 현금(주거보조비) 지원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footnote]참고로, 주택공급-주거보조비지급-임대료 통제의, 임대부문의 3단 순환 사이클 야야기는 곧 [주거복지 해외사례탐방2]라는 책과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리포트로 나온다.[/footnote]
주택 공급 비용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토지 비용을 낮추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주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유동화 매개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는 다음 글의 주제다.
주택 정책의 공간적 궁극에는 국토 정책이 있다. 사회적 궁극에는 연금과 교육정책이 있다. 공간적 궁극인, 국토 균형 발전과 혁신 경쟁력, 기후위기 대응의 세 마리 토끼 잡기는 다다음 글의 주제다.[footnote]사회적 궁극에 해당하는 영역은 내 능력 밖입니다…[/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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