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컨퍼런스 준비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언론인을 토론자로 초대할 일이 생겼다.
“다음 달에 여는 토론회에 패널로 모시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꼭 참석하고 싶은데 다음 달은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서 좀 곤란하겠습니다.”
토론 초청이 무산되어 아쉬웠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으로 귓전을 맴도는 소리는 ‘한 달 동안 휴가를 가서’였다.
참, 사람답게 사는구나 싶었다.
작년 말, 12월 20일께 외국에 연락할 일이 있어 이메일을 보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른 뒤 1분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웬일인가 싶어 메일을 열어봤다. 부재를 알려주는 자동 응답이었다.
“연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연말 휴가 중이며 1월 5일에 돌아올 예정이므로 소식을 잘 받지 못합니다. 급한 연락은…”
참, 사람답게 사는구나 싶었다.
동시에, 미국 있을 때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많은 사무실이 새해까지 문을 닫다시피 하여, 연말 마감이 걸린 일을 급하게 처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났다.
샌드위치 휴일의 성패는 ‘잘 하면’
2017년은 휴일 사이에 평일이 낀 샌드위치 휴일 혹은 징검다리 휴일이 많다. 평일을 휴가로 쓰면 사흘 이상의 연휴가 된다. 이번 주말과 이어지는 6월 둘째 주도 그중 하나다. 잘 하면 4일을 쉴 수 있다.
그런데 이 ‘잘 하면’이 문제다.
작년 말에는 곧 다가올 새해 휴일이 얼마나 교묘하게 잡혀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떠돌았다. 직장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단, 중간에 낀 평일을 연월차로 뺄 수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이 꿈 같은 일정을 말하는 데에는 늘 단서가 달려 있었다. ‘눈치를 봐서 연차를 내면’ ‘과감하게 월차를 써서’ 같은 단서다. 이게 ‘잘 하면’의 내용이다. 내가 내 휴일을 쓰는데 눈치를 잘 봐야 하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 현실이다.
애써 싸워 얻은 ‘권리’
지금 우리가 누리는 노동 조건 중 저절로 주어진 것은 거의 없다. 선배 노동자들이 피 터지게 싸워서 얻어낸 것이다. 주말 휴일도 그렇고 연차나 월차도 그렇고 하루 노동시간도 그렇다. 지금은 너무 상식적이어서 별로 감동적이지 않고 그래서 지켜지지 않는 일에 무감각하기까지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당당하게 행사해 마땅한 값지고 소중한 나의 권리다.
자본에 비해 노동을 한없이 비루하게 대접하는 사회다 보니 법이 보장한 권리를 챙기는데도 눈치가 보인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곳에서 말이다. 게다가 불안정한 지위의 저임금 노동이 만연한 세상이라서, 휴일을 주더라도 스스로 반납해야 할 판이다. 쇠사슬 대신 생활비 보전이라는 사슬이 채워진 강제 노동소라고 할 만하다.
이 음지에도 모든 업종, 모든 사무실과 작업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고 당연하게 찾아 쓸 수 있는 때가 어서 오기를. 인간을 쉴새없이 돌리는 것이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 노동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쉴 수 있는 유급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상식이 되는 때가 어서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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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공약과 연차 휴가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공공 부분 81만 개, 민간 부문 50만 개)을 위한 방법론으로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게 실노동시간 단축이다. 임기 중 매년 80시간 이상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 종합 점검 추진단’을 구성하겠단다. 그 세부 지침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사업장에는 특별근로감독관을 파견하고,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 상한 52시간 노동시간 준수.
- 공휴일의 민간 적용 및 연차 휴가 사용 촉진.
참고로 2017년 기준으로 주말과 법정 공휴일, 평균 연차를 뺀 노동일은 230일이고, 이를 하루 8시간으로 곱하면 연간 노동시간은 총 1,840시간이지만, 실제로 ’15년 한국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2,246시간) 다음으로 연간 노동시간이 긴 국가다(참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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