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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팩트 시티’라는 개념이 심심찮게 입에 오르내린다. 고밀화고층화와 등치되어 언급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는 ‘수요가 몰리는 곳을 고밀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전제처럼 받아들여진다.

에너지나 국토 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서 사대문 안의 고도 제한이나 용적률 제한을 대폭 완화하거나, 사람들의 수요에 부응하여 강남의 재건축을 활성화 하거나, 용산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고층 아파트를 잔뜩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저층저밀의 마을에 대한 선호는 친환경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인구 밀도를 생각하지 않는 목가적 낭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고밀개발을 하는게 좋을까? 고밀화에 반대하는 것은 낭만적일까? 혹시 무조건 찬성하는 것도 순진하고 관념적인 것은 아닐까?

이 글에서는 위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먼저 고층화와 고밀화가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돌아보고, 컴팩트 시티론의 배경으로 국내에서 논의되는 주장들의 허와 실을 살펴본다. 결론적으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 혹은 국토공간 정책의 방향성에 관해 유의점과 약간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대 자본주의 도시에서는 ‘자가 소유의 상한선’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기에 주택 공급비용의 ‘유동화 매개’를 잘 하는 것이 주거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라 하였다. 또한, 주택은 허공이나 보고서 속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불균등’을 본질로 하는 ‘공간’상에 놓이기 때문에 그 ‘공간적 궁극에는 국토-도시정책’이 있다고도 했다. 이번 글이 그 공간적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를 논하는 것으로, 앞의 두 기사들의 연장에서 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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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의 미래 

1.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하다: 자가점유율 상한선 탐구
2. 고마운 다주택자: 유동화 매개의 중요성
3.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상): 고밀개발이라는 순진한 관념

1) 건폐율과 용적률 그리고 건물과 단지의 모양
2) 고층화와 고밀화(용적률 증가)에 기대는 논리
3) 재건축: 단기적 차원에서는 손해, 결국 하긴 해야 한다
4)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 그리고 주택유형의 제한

4.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중): 고밀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에너지 효율적이지도 않다

5) 용적률 뻥튀기 재건축, 미래세대에는 불가능한 행운
6) 고층화와 고밀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
7) [도시의 승리] 올바로 읽기

5.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하): 대안은 초고밀화가 아니라 ‘다핵화×연결’

8) 직주 근접, 서울 사대문 안 고밀개발이 답일까?
9) 스마트한 연결, 그게 필요하다
10) 결론: 다핵 국토의 스마트 연결 그리고 시간

(순서대로 읽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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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폐율과 용적률 그리고 건물과 단지의 모양

건폐율은 하늘에서 볼 때 건물이 땅을 얼마나 가렸느냐, 용적률은 건물이 얼마나 육중하냐는 식으로 이해하시면 된다. 용적률은 구체적으로 건축 연면적(지하 등 제외)을 대지 면적으로 나눈 값이고, 각층 면적이 같다면, 용적률=건폐율×층 수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아래 그림과 같이 대지면적의 절반에 건물을 지으면 건폐율은 50%, 그걸 2층으로 지으면 용적률은 100%이다.

건폐율과 용적률의 개념
건폐율과 용적률의 개념

건폐율과 용적률은 법률로 정하지만, 조례로 일부 강화하거나 완화하여 적용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다세대 주택들은 대개 2종 일반 주거지역에 있고 이 경우 건폐율 60%에 용적률은 150~250%이다.

서울시의 경우 조례에 따라 용적률은 200%이다. 건폐율×층 수=용적률이니, (60%×3개층)+20%=200%, 즉 3개층하고 조금 더(옥탑방?) 지을 수 있는 셈. 옆에서 보면 옥탑방까지는 보인다 치면, 대략 아래 용적률 240%의 경우의 느낌이다. 실제로는 뒤에 다른 집이 겹쳐 보여 좀 더 빽빽해 보일 수도 있겠다.

다세대주택이 많은 동네의 경우
다세대주택이 많은 동네의 경우

아파트 단지의 경우는 어느 정도의 밀도일까? 아래는 1979년에 지어진 어느 아파트 단지의 경우다. 실제로 최고 층 수는 14층이지만, 건폐율과 용적률에 맞춰 평균 10층으로 그려봤다. 건물폭에 맞춰 각 층의 층고도 조정하였는데 예상보다는 그렇게 빽빽한 느낌은 아니다. 그런데 실제 얼마나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는지는 ‘고층’인지가 아니라 ‘용적률이 얼마인지’에 달려있다.

어느 아파트 단지(일부)의 경우
어느 아파트 단지(일부)의 경우

[dropcap font=”arial” fontsize=”33″]인동간격[/dropcap](鄰棟間隔; 이웃 건물과의 거리, 간격)에 대한 기준은 건물 높이에 비례한다. 건물 높이의 2배니 1.5배니 하는 식이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서로 멀리 떨어지라는 이야기인데, 현대도시에서는 점점 인동간격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래도 건물을 높여야 하겠으니, 1971년 건축법령에 일조권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이래 인동간격의 역사=규제 완화의 역사다.

지금은 건물 높이의 0.8배에서 경우에 따라 0.5배까지도 줄어들었다. 현대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 인구밀도가 높긴 높으니 말이다. 그래도 볕이 너무 안 들면 곤란하니, 현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재는 것이 아니라 ‘동지일 기준으로 오전9시에서 오후 3시 사이에 2시간 이상 해가 들면’ 되는 식으로 측정 방식이 ‘유연’해졌다.

아예 해를 안 보고 살아도 된다면 모르되, 인동간격을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 심리도 심리지만, 에너지효율 차원(다음 편에서 상술)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건폐율이 그대로 일때 용적률을 늘리면 건물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인동간격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인동간격을 유지하려면 건물이 띄엄띄엄 들어서야(=건폐율을 줄여야)한다는 말인데, 건폐율을 줄이려면 다시 건물이 높아져야 한다. 다시, 건물이 높아지면 인동간격 기준을 맞추기가 불리해진다. 무한 루프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개별 건물 자체를 날씬하게(건폐율이 작게) 만드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건물을 서로 빗겨 짓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날렵하고 (건폐율이 낮고) 높게 (층고를 높여서 용적률은 만족시키게) 지으면서 서로 엇갈리게 놓으면, 위의 인동간격 기준을 맞출 수가 있게 된다. 그러기에는 1970-80년대 주로 지어진 ‘1자 판상형’ 건물 보다는 90년대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타워형’ 내지는 ‘ㄴ자형’ 건물이 유리하다. 그리하여 위의 1979년의 아파트 단지에 대한 2010년대 말의 재건축 계획은 아래의 조감도와 같이 나왔다.

은마아파트 단지 재건축 계획 조감도 출처: 히림 http://www.heerim.com/project/view?id=1077
은마아파트 단지 재건축 계획 조감도 (출처: 희림)

전통적인 ‘남향 선호’의 주택 평면이 지배적이던 시절의 아파트단지에서는 한 동의 모양을 ‘1자 판상형’으로 짓는 것이 대세였다(1979년의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에서 그런 판상형 건물이 적어지는 것에는, 집안에 머무는 시간의 변화나 맞벌이 가구의 증가 등으로 남향 선호가 줄어들었다던가 세대 구성원의 수가 좀 더 다양해졌다던가 여러 가지 이유가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얽혀 있겠으나, 그중 ‘용적률’을 높이기 위한 건물외부적 (도시계획적) 이유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엇갈리게 배치하고, 판상형 배치를 탈피한 덕분에,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을 최대 50층까지 높이는 계획이 가능했다(지금은 용적률과 별도의 35층 제한에 걸려 재설계하는 단계라고 한다). 실제로 최근 지어진 재건축 아파트들을 보면 용적률은 300%에 가까와도 건폐율은 20%이하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높고, 날씬하여 녹지 면적도 많아 쾌적해지는 고품격 주거단지가 된다. 그런데 이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모델일까?

2. 고층화와 고밀화(용적률 증가)에 기대는 논리

지난 2020.8.4의 부동산 대책은 공급 대책의 일환으로 재건축·재개발 유인책을 내세웠다. 공공재개발, 공공재건축의 형태라면 35층 제한을 완화하여 50층까지의 고층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대신 추가되는 부분의 일부를 공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되돌려주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현재의 용적률 200%에서 법정 용적률 상한인 250%로 재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500%까지 허용해주되, 추가해준 250%에 대해 절반인 125%는 공공주택으로 제공하라는 것이다. 편의상 ‘층’으로 설명하자면, 이는 (바닥 면적이 같다면) 평균10층에서 평균25층까지 올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신 1/4인 평균 6.25층을 공공에 내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공은 그 중 절반은 임대, 절반은 분양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8.4 대책 개념도
8.4 대책 개념도

이 사업의 재원은 토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존 조합원의 자기분담금과, 재건축으로 늘어난 세대수에서 들어오는 일반 분양수익이다. 조합원은 토지를 각자의 지분 만큼 제공하므로, [배정받을 주택의 가격 – 제공한 토지의 가격= 자기 분담금]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타 조합설립비라던가 사업진행비를 더 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늘어나는 일반분양수익이 아주 많은 경우라면, 그만큼 전체 사업성도 좋아지지만, 조합원이 제공한 토지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말이니, 조합원은 자기분담금을 전혀 들이지 않고 ‘헌 집 주고, 새집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인동간격이 줄어드는 것은 어찌어찌 비껴 지어 해결하여, 주택을 최대한 많이 지으면, (혹은 인동간격 규제도 완화되면 더더욱 많이 지으면) 당연히 전체 세대수는 늘어나고, 일반 분양 수익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일부는 공공 주택으로 내놓으라고 한다면, 그만큼 일반분양 물량이 줄어든다. 그리고 재건축 조합원들이 자체 부담해야 하는 몫은 커진다. 그래서 이번에 공공이 제시하는 ‘당근’이, 원래 늘릴 수 있었던 50% 외에도, 추가로 250%를 더 늘릴 수 있게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많이 짓는다고 수익의 총액이 극대화되는 것도 아니다. 너무 고밀화되어 쾌적성이 떨어지면 임대주택 포함 여부와 무관하게 분양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물론 사회전체적으로 인구가 너무 많고 땅이 부족하다면 어느 정도의 쾌적성의 포기는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일 수는 있다. 그러나 단위 사업의 입장에서는 세대수가 많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수익 총액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공재건축의 인센티브가 과연 얼마나 기존 조합원에게 실제 도움이 될지는

  • 현재의 200%에서 250%까지로만 늘리고 50%만 일반 분양할 지, 아니면
  • 현재의 200%에서 500%까지로 늘리고 125%를 기부채납하는 대신 175%를 일반 분양할 지

비교해 보고, 거기에 밀도가 늘어난 만큼 ‘덜 쾌적’해지는 정도나, ‘굳이 (임대주택이 들어옴에 따라) 사회적으로 계층이 섞인’ 단지의 일반 분양 가격이 얼마로 할인(?)책정될 지를 놓고 주판알을 굴려보면 나올 것이다.

단위 사업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공공정책의 차원에서 보면 어떨까? 이러한 고밀화를 통해서 재건축조합원의 유불리와 무관하게 일단 ‘공급’이 늘어나니 좋은 거 아니느냐고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강남에 살고 싶어하니 강남에 이런 고층화 재건축을 허용하자는 주장과도 통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넣어서 재건축 조합원들의 불만이 있든, 아니면 공공임대주택을 넣지 않아 조합원들의 불만이 없든, 이렇게 고층화나 고밀화를 하면 물리적으로 주택의 공급이 증가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기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공급이 감소하고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3. 재건축: 단기적 차원에서는 손해, 결국 하긴 해야 한다 

사실 단기적으로 재건축‘공급’효과 보다는 ‘멸실’효과만 나오는 사업이다. 위의 경우 재건축을 하면 당장 현재의 4천 4백여 세대가 주변에 집을 구하러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다. 특히 이들은 실제 소유자든, 세입자든,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현재의 거주지를 택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계속 거주하고자 할 확률도 매우 높다. 그러니 이 수요 증가가 주변 주택시장에 미치는 가격상승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공급 효과가 나타나긴 할텐데, 문제는 당장 ‘재건축 이주민’이 주변 집값을 올려놓은 다음이니, 추가될 공급효과와 상쇄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공급효과보다 애초의 멸실효과가 더 클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은마아파트 등 대규모 주택 단지의 재건축 시점은 현 거주자들의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인근의 주택 공급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다음으로 정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 자체는 노후주택 거주민의 주거권 확보 차원에서 언제 해도 하긴 해야하는 문제다.

그런데 재건축의 시점 말고도, 그 방식도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일부만 돌아가면서 하는 순환재개발 방식이다. 전면 재개발보다는 당장의 사업성은 떨어질 수도 있는데 굳이 이 방식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러한 대규모 단지의 (재)건축이 어느 시점에서는 대규모 이주민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향후 순환재개발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포디스트 주택공급체제에서 벗어날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다. 이른바 포스트-포디스트 도시재생의 방식이라면, 전면철거-전면개발보다는 순환식 소량다품종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소방도로 등 기반시설 확충도 해 가면서 말이다.

"마치 상상속의 풍경인 것만 같은, 층층이 빼곡히 올라앉은 집들. 볼때마다 놀랍고 신비로워." (신비, 옥수동 트러스트) http://probable.kr/oksutrust/
“마치 상상속의 풍경인 것만 같은, 층층이 빼곡히 올라앉은 집들. 볼때마다 놀랍고 신비로워.” (출처: 신비, 옥수동 트러스트)

이렇게 순환식 재개발을 한다 해도 여전히 생길 수 있는 문제들도 있다. 그중 ‘고층 건물이 정신이나 육체적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도 살펴볼만 하겠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는 거기까지 가기 전부터도 우선, ‘건물 용량 증가량’ 자체에 실익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또 지속가능하느냐 하는 점이다. 고층화, 고밀화는 무조건 좋을까? 대안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고층화는 한계이익이 체감하고, 공급할 수 있는 주택 유형도 제한적이며, 에너지 효율화 측면에서도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 층이 하나씩 늘어 날때마다 늘어나는 면적은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중소형 주택 공급에는 불리하고 고급주택 위주로 공급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날씬하고 높게 지으면 녹지 면적이 늘어나고 수평 교통량은 줄 지 모르지만, 수직교통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늘어나고 기타 불리한 점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건물의 밀도는 대략 지금 수준의 밀도가 아마 최선의 수준이 아닐까 싶다. 이미 컴팩트한 곳은 충분히 컴팩트 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더는 컴팩트 해질 수 없다면 해법은 국토정책에 달려있다. 하나 하나 살펴본다.

4.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 그리고 주택유형의 제한

건물이 1층이라면 온전히 면적을 다 쓴다. 한 층의 면적에서 ‘수직이동’을 위해 희생할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두 층이 되는 순간 ‘계단’이 필요해진다. 배관용량도 커진다. 더 높아지면, 법적 기준에 따라 계단 외에도 엘레베이터가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수직이동’을 위해 할당해야 할 공간이 점점 늘어나고, 한 층이 온전히 쓸 수 있는 면적이 점점 줄어든다. 더 높아지면 비상용 엘레베이터도 추가되어야 하고, 설비 용량도 더 커지며 점점 더 많은 공간을 잡아먹는다.

실제 교통량을 소화하지 못하면, 높은 건물에 엘레베이터가 한 줄 밖에 없어 출근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수직교통체증이 발생한다. 심지어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택배기사는 엘레베이터를 쓰지 말라는 주민들이 있어서 이들이 이기적이라고 욕을 먹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층수가 높아지면 도시의 수평적 차원에서는 교통체증이 줄어들지 몰라도, 한 건물 내에서 수직교통체증도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수직이동'을 위해 할당해야 할 공간은 점점 늘어난다.
‘수직이동’을 위해 할당해야 할 공간은 점점 늘어난다.

윗층과 아랫층을 관통하며 엘레비이터나 화장실, 배관배전 설비, 계단 등이 지나는 부분을 코어(core)라고 하는데, 건물이 높아질 수록 코어의 면적도 넓어지게 된다. 코어 면적이 넓어진다는 건 바꿔 말하면 실제 (돈을 받고 임대하거나 분양할 수 있는) 사용 가능한 면적은 줄어든다는 말이다. 63빌딩 같이 초고층 건물이 되면, 코어가 바닥면적의 1/3이 되기도 한다. 하여 고층부와 저층부를 구분하여 코어를 배치해서, 점점 수직이동 교통량이 줄어드는 고층부에서는 수직교통에 할당되는 면적을 줄여나가도록 설계하는 게 합리적이다. (아래 그림의 저층과 고층의 붉은 부분)

63빌딩의 평면. 붉은 사각형 안이 '코어'로서 수직교통이나 배관 등에 이용되는 부분이다.고층까지의 수송력 확보를 위해 저층부에서는 이 코어 부분이 전체의 1/3을 차지한다. (평면도 출처: https://underpromiseoverdeliver.tistory.com/33?category=769574)
63빌딩의 평면. 붉은 사각형 안이 ‘코어’로서 수직교통이나 배관 등에 이용되는 부분이다.고층까지의 수송력 확보를 위해 저층부에서는 이 코어 부분이 전체의 1/3을 차지한다. (평면도 출처: 한화그룹, SOM)

코어만 한계이익을 잡아먹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초고층인 롯데타워를 보자. 수직이동을 위한 코어 면적의 비율은 당연히 어마어마하다(아래 붉은 부분). 그런데 코어 외에도, 비상시 대피를 위해서 20개층 마다 1개소의 피난구역을 둔다. 롯데의 기업 이미지와 자금력, 국내 최고의 높이라는 타이틀도 있고 해서 그랬는지, 법적 기준보다 자체적으로 더 강한 기준을 적용했다. 어쨌든 높아질수록 쓸 수 있는 바닥 면적도 줄어들고, 심지어 20개층마다 한 층은 비상용으로 빼놓게 되는 것이다.

롯데 타워의 피난 시설 안내 및 중층부 호텔 객실 평면 (출처: 롯데시그니엘레지던스 http://www.롯데시그니엘레지던스.com/page/sub101
롯데 타워의 피난 시설 안내 및 중층부 호텔 객실 평면 (출처: 롯데시그니엘레지던스)

결국, 지으면 지을수록 굳이 한 층을 더 올리는 실익이 없어진다(한계이익 체감). 면적상 이익은 점점 줄어드는데, 한층을 더 올리기 위한 비용은 늘어난다. 여러 비용 중 하나가 구조적 안전에 드는 비용이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기초도 더 튼튼히 지어야 한다. 문제는 건물이 가만히 서서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만 견디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내진 설계는 둘째치더라도 일상적인 바람의 압력으로 생기는 수평방향의 횡력에 버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다.

63빌딩이나 롯데타워 쯤 되면, 건물의 기초는 상부에서 내려오는 수직의 무게 뿐만 아니라, 옆에서 바람이 밀어대는 힘에 버티는 것 역시 그 어려움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대로 90도 돌려서 절벽에 수평으로 박아 넣었어도 건물이 아래로 무너지지 않게 지었다고 보면 된다. 고층화가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든다. 비상시 정전이 되는 경우는 정말 비상시니까 생각하지 않기로 해도 말이다.

그럼 몇 층 정도가 ‘한계이익=0’이 되는 선일까? 개인적으로 연구할 능력은 안되지만, 찾아보니 “7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은 코어면적의 증가로 인한 효율 절감으로 그 이상 높이의 건축 요구가 둔감”된다는 연구 결과[footnote]한국화재소방학회 2006, 초고층건물 화재예방 및 진압대책 개발연구[/footnote]가 있다.

이래서야 고층건물로서는, 분양이나 임대가 아닌 다른 상징적 목적(랜드마크)이거나, 단위 면적당 수익이 많이 날 공간이 아니라면, 굳이 한 층을 더 높이 올려서 얻는 이익이 없다. 어지간한 고층이 되면 이제 호텔이든 주거든, 고급으로 구성하게 되는 이유다. 실제로 목동 하이페리온, 도곡동 타워팰리스, 이촌동 래미안 첼리투스.. 등 초고층 주택들은 모두 고급 주택들이다. 그리고 이런 고급주택들이라 해도 대략 60층 전후이지, 70층을 넘지는 않는다.

고급주택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같은 면적에 집이 여러 채 들어가면 (각 세대의 평수가 작으면, 혹은 한 층에 이용객이 많으면) 현관도 엘레베이터도 많이 필요하고, 당연히 복도 등 공용공간도 양적으로도 많이 필요해진다. 양만 많아지는게 아니라 서로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선을 설계하는 일도 복잡해지며, 채광이나 통풍도 고려사항이 많아진다. 그러나 한 층의 면적이 같아도, 세대가 덜 들어가면 (각 주택의 평수가 커지면, 혹은 한 층의 이용 인원이 적으면) 그렇지 않다.

정리하면, 무작정 높이 짓는 것도 70층 이상이면 의미가 없지만, 의미가 있는 수준의 높이라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고층엔 주로 대형주택을 넣게 되는 이유는 그래야 한계이익의 체감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수익률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파트를 무조건 높이 짓는다고 서민의 주거난이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건 참으로 관념적이고 순진한 생각인 것이다.

‘무조건 지어 놓으면 뭘로든 채워지겠지’ 하는 식으로 총량적 수치만 생각하는 것은 공간인지적 관점이 없는 분들이라면야 어쩔수 없겠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발상이 칼럼을 넘어 정책으로 쉽게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 한정된 고급주택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가진 사업자의 입장에서라면야 그건 그거대로 따로 평가할 일이다. 그래도 공공정책의 관점에서 서민 대중의 보편적 주거문제 해결의 숙제는 계속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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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시적 관점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통시적 관점 이외에도, 컴팩트 시티론 제대로 이해하기, 서울 4대문안 고밀개발론의 문제점, 그렇다면 대안 등은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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