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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anti)도시주의자가 아니며, 이 시리즈의 목적은 도시가 인류의 진보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도시화는 선악이나 호오를 논하기에 앞서 어떤 필연적 자연법칙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게 진보인지 퇴보인지 논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도시의 공기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Stadtluft macht frei).

– 중세의 격언 –

개인 소견을 밝히자면, 전원주택에 살 형편이 될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 일반에게는 분명 도시가 주는 자유나 번영이 당장의 삶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쩌면 전원주택에 살 형편이 되는 분들도, 나머지 인구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구조에 기대야만 하는 수혜자일 것이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전제요, ‘공간’만큼이나 선험적(a priori)인 것이 바로 ‘도시’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작정 모일 일은 아니다. 좀 더 야무지게 모일 필요가 있다. 이런 고민에 대한 상편과 중편의 결론은, 일반적으로도 고층화 고밀화의 효용엔 한계가 있으며(상편 4절), 통시적 관점에서는 더욱 위험하고(중편 5절), 교통과 주택의 에너지효율에 대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우리의 대도시는 이미 한계 상황에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중편 7절).

29명/ha와 자가용 중심 교통체계의 미국 교외도시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하는 글레이저의 ‘컴팩트 시티’론500명/ha 수준의 한국 대도시에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곤란하며, 우리는 이제 교통과 주택 에너지 효율화에 신경을 써야 할 때다. 교통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동 거리와 횟수가 적어야 한다. 이 중 횟수를 줄이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 혹은 재택근무일테고, 이동 거리를 줄이는 건 ‘직주 근접’이다. 직장과 주거의 거리가 가깝게 하기.

미국 주택 환경에 대한 대안과 비판론으로 만들어진 '컴팩트 시티'론을 미국과는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미국 주택 환경에 대한 대안과 비판론으로 만들어진 ‘컴팩트 시티’론을 미국과는 환경이 전혀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주택의 미래 

1.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하다: 자가점유율 상한선 탐구
2. 고마운 다주택자: 유동화 매개의 중요성
3.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상): 고밀개발이라는 순진한 관념

1) 건폐율과 용적률 그리고 건물과 단지의 모양
2) 고층화와 고밀화(용적률 증가)에 기대는 논리
3) 재건축: 단기적 차원에서는 손해, 결국 하긴 해야 한다
4) 고층화의 한계이익 체감, 그리고 주택유형의 제한

4.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중): 고밀화는 지속 가능하지도 에너지 효율적이지도 않다

5) 용적률 뻥튀기 재건축, 미래세대에는 불가능한 행운
6) 고층화와 고밀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
7) [도시의 승리] 올바로 읽기

5. ‘컴팩트 시티’ 오독 비판(하): 대안은 초고밀화가 아니라 ‘다핵화×연결’

8) 직주 근접, 서울 사대문 안 고밀개발이 답일까?
9) 스마트한 연결, 그게 필요하다
10) 결론: 다핵 국토의 스마트 연결 그리고 시간

(순서대로 읽으면 좋습니다.)  


8. 직주 근접, 서울 사대문 안 고밀개발이 답일까?

‘직주 근접’을 위해 서울의 사대문 안을 용적률 1,000% 수준으로 과감하게(!) 고밀개발하여 주택을 공급하자는 주장이 있다. 정말 ‘직주 근접’ 때문이라면, 부러울 정도로 천.진.난.만(≠음흉)한 생각이다. ‘고층화 하면 (서민) 주택 부족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과 별 차이가 없다.

한국어로 미적분을 해야 하는데 영어 구구단으로 덤비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하지만 괜찮다. 누군 날 때부터 미적분을 했겠는가. 어쨌든 구구단도 모르는 것 보다야 앞으로 미적분을 이해할 확률도 높을 테다. 앞으로는, 적분하고 있는 사람에게 와서 덧셈뺄셈도 할 줄 모르냐며 비키라고 하지는 말자…

아래는 사대문 안의 용도지역이 나온 지도다. 우리나라에 몇 군데 없는 중심상업지역(용적률 800%)도 있고 일반상업지역(용적률 600%)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용적률은 이미 상당히 높다. 그러다 보니 용적률 1,000%로 해도 추가되는 주택은 5,000~6,000가구라고 한다. 처음 ‘천 프로!’라고 들었을 때 드는 생각보다는 적은 수치다.

서울 사대문 안 지역(출처: 카카오맵)
서울 사대문 안 지역(출처: 카카오맵)

용적률 1,000%로 짓는데 건폐율을 늘이지 않는다면 엄청난 고층으로 지어야 한다. 건물이 높아지면 그만큼 확보해야할 인동간격(鄰棟間隔; 이웃 건물과의 거리, 간격)도 길어지는 바, 주거 지역 기준의 인동간격은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현재의 인동간격 규제 수준에서 은마 아파트 용적률 500% 재건축 안도 쉽지 않았는데, 건물 배치를 요령껏 한다고 해서 1,000%를 맞추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현재의 인동간격이나 건폐율 기준으로는 어렵다는 말이다.

용적률, 건폐율, 인동간격

이미 주상복합건물의 경우 인동간격 규제는 완화되었다. 주거가 상층에 배치되어있으면 인동간격은 주거층 구간의 높이에만 적용한다. 즉 인동간격의 기준이 되는 건물높이는 (옥상바닥부터 지상1층까지가 아니라) 옥상 바닥부터 가장 아래에 있는 주거층 바닥까지의 거리로 삼는다. 저층부 상가는 그늘이 좀 져도 된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계속 ‘좁혀지는 것’은 우리나라 정도 인구밀도에서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정말 이 인구를 수용할 땅이 없어서 그렇다면 받아들일 노릇이다. 그런데 에너지효율화가 목표라면? 난방 부하도 커지고(중편 참고), 수직 교통에 드는 에너지와 유지비와 건축비도 비싸지니(상편 참고), ‘에너지 비용’은 늘어난다. 직주 근접을 통한 교통량절감 등의 ‘에너지 편익’이 이를 상쇄 혹은 상회할지는 살펴볼 문제다. 이 비용과 편익에 대한 본격 분석은 별도의 보고서 감이고, 여기선 그 얼개를 파악해보려 한다.

사대문 안 위성 사진 (출처: 구글어스)
사대문 안 위성 사진 (출처: 구글어스)

강남북과 사대문 안의 실제 상황

시청 근처에서 경복궁 까지는 이미 상당히 고층화되어 있으니 (위 사진에서 그림자가 팍팍 지는 부분들), 그리고 빌딩 유형들을 보아하니 저 지역 건물들을 증축해서 주택을 더 집어 넣기는 힘들 것 같다. 프레스센터나 교보문고를 주상복합으로 바꾸긴 힘들 것이니, 주로 을지로 3가 정도에서부터 동대문까지가 고밀화가 가능한 지역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종묘에서 세운상가를 지나 남산까지 가는 경관축을 다 가리자는 이야기인데, 뭐 직주 근접이 그렇게 시급한 문제라면 좋다. 그런데 그런다고 직주 근접이 실현될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주간 인구와 야간 인구라고도 하고, 그 차이로 보는 통근 흐름이라고도 하는, ‘출퇴근’의 지점과 종점의 인구에 대한 통계를 살펴봐야 한다. 이른바 통행량(O/D) 분석이다. 우선 큰 틀에서 강남북의 인구 이동을 보자.

강북과 강남간 통근 흐름

통근 인구를 보면, 강북 → 강남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38만 6천여 명, 강남 → 강북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30만7천여 명다. 순유입은 강남쪽이 약 8만 명 더 많은 것이다. 이 수치만 보면, 강북 사대문 안이 아니라 강남에 집을 더 짓는 게 직주 근접을 위해선 시급한 과제 같다. 그렇다면 사대문 안이 아니라 강남의 용적률을 높여 주택을 더 공급해야 하는가? 아니면 강북으로 일자리를 옮기던가?

그런데 생활권 차원에서는 또 그렇지 않다. 많은 분들은 아직도 강남에서 강북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서울플랜2030(서울시 도시기본계획)에서 서울을 더이상 단핵도시로 보지 않고 다핵도시로 본 이유다. 2010년대 이후의 서울시 도시계획 체계는 서울의 도심을 3개로 설정한다. 이전의 사대문 안 중심업무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 한 곳에서, 이제는 YBD(여의도)와 GBD(강남) 업무지구를 도심으로 추가한 것이다.

서울플랜 2030의 중심지 체계 및 광역 교통체계. (출처: 서울시)
서울플랜 2030의 중심지 체계 및 광역 교통체계. (출처: 서울시)

사실 강남과 강북은 별개의 생활권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기 북부 ↔ 서울 강북], [경기 남부 ↔ 서울 강남] 사이의 통근인구가, [강남 ↔ 강북] 사이의 통근 인구보다 많아진지 오래다. 이렇게 생활권 중심으로 접근하면 강북 곳곳에서 전통적인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의 직주 근접 여부도 무시할 순 없다. 강북도 좀 넓은가.?

강남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157만 명에 비하면 조금 적지만, 강북 내에서의 출퇴근도 144만 명이나 된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출근하는 8만 명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긴 하다. 하여 ‘사대문 안’의 동별 통계는 찾지 못하여 우선 구별 통계(2015)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사대문 바깥은 업무용 건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니, 굳이 동별로 세분해서 보지 않고 구별로 봐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 종로구는 주간 유입(=출근) 인구가 21만 명이다. 주로 경기도, 성북구, 은평구 등에서 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하철 3, 4호선의 영향이 큰 것 같고, 버스의 경우도 아마 일산 쪽도 있고 분당쪽에서 오는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 중구는 유입이 29만이고, 주로 경기도, 성동구, 노원구 등에서 온다. 4호선의 영향이 큰 것 같다. GTX B노선이 생기면 상당히 겹치는 동선이다.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숫자도 물론 많을 것이다. 종로구와 중구를 합치면 아침마다 50만 명이 이리로 들어오고 있다. 종로구 중구에 살면서 다른 지역으로 출근하는 유출 인구는 6만이다.

여기서 몇 가지 논점을 정리한다.

A. 매일 50만 명이 오가는데 6,000가구 더 넣으면 직주 근접 상승 효과는? (별로)
B. 이 50만 명의 직종이나 인구사회학적 특징은 어떻게 될까?
C. 용적률 1,000% 짜리 건물에 들어가는 주택 유형은 대체로 어떤 유형일까?
D. 이 지역 출근자 50만 명(B) 중, 공급가능한 주택(C)에 살려고 이사 올 사람은?

A에 대한 답은, ‘별로 크지 않다’고 하겠다. 굳이 역사도심의 경관축을 깨고, 주택에너지 효율은 희생하면서까지 추진하기에는 교통에너지 효율의 개선효과도 불투명하다. 여전히 다른 데로 출근할 사람들이 이 곳으로 이사오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B, C, D의 측면도 마저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교통에너지 효율 개선이나 직주 근접 효과를 위해서 혹은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해서 6,000가구가 부족해서라면, 한 15,000가구를 들이면 또 될지도 모르니까.

우선 서울시 직업유형별 취업인구 통계를 보면 종로구와 중구의 취업 인구가 다음 박스와 같이 나오는데, 이건 현 거주지 기준 13만 2천 명에 대한 것이다. 아쉽지만 유입인구 50만 명의 직종이 무엇인지는 이 자료로 유추할 순 없겠다. 다만 (학생의 경우는 제외한다면) 이 인구에서 위의 유출인구 6만 명을 뺀 7만 명 정도가 ‘현재 직주 근접하여 사는 인구’인 셈이라는 것만은 알겠다.[footnote]이 발견을 어디다 써먹을 수 있을지도 아직은 모르겠으나…[/foot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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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 3만2천 명 (24.2%)
  • 사무 종사자 2만5천 명 (19.4%)
  • 판매 종사자 2만3천명 (17.4%)
  • 서비스 종사자 만 오천 명 (11.4%)
  • 기능원 및 관련 기능 종사자 1만4천 명 (10.6%)
  • 단순노무 종사자  (9.9%)
  • 장치기계 조작 6천 명 (4.5%)
  • 관리자 (2.2%)
  • 농림어업 숙련 종사자 (0.1%)
  • 기타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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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대문 안으로 출근하는 이들의 인구학적 특징은 뭘까? 이들의 주거지를 감안하고 상식을 보태 짐작을 해보면, 상당수는 1인 가구도 있겠으나, 40~50대의 경우 노원구나 경기도 신도시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서 자녀와 함께 사는 직장인(F)일 확률이 크겠다. 그렇다면 추가된 6,000호의 주택이(C)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를 보자.

고밀화될 여지가 주로 남아 있는, 사대문 내에서도 동쪽 지역의 주거환경을 보면 1, 2인가구들을 위한 원룸이나 오피스텔의 수요가 높을 것도 같다. 실제로 이 지역엔 최근 1, 2, 3룸으로 구성된 도시형 생활주택 군데군데 들어서고 있다. 따라서 만약 1,000%로 고층화 된다면, 추가로 공급될 주택 유형은 물론 중대형 주택도 전혀 없진 않겠으나 주로 1, 2인 가구를 위한 고급 주택이나 오피스텔일 확률이 크다(C).

이렇게 될 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던 자녀가 딸린 3-4인 가족이 이사를 오고 싶어할 주변 환경이나, 주택가격이 형성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특히 교육환경을 중시하거나 어린이집이 근처에 있어야 할 가족이라면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주로 1, 2인가구 위주로만 오게 될 것 같고, 자녀가 있는 40-50대 직장인(F)에게는 직주 근접의 효과가 없을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노원구가 아니라 다른 동네에 사는 경우도 마찬가지고, 특히 강남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예측이 어려운 직주 근접으로 인한 교통절감 효과, 예측가능한 다른 대안

현재 사대문안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중에서 (3, 4인가구는 아니더라도) 1, 2인가구라도 충분히 들어오면 직주 근접의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들어올지 솔직히 판단의 근거가 아직은 많지 않다. 시내 오피스로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최근 레트로 감성으로 까페나 술집들이 들어서고 있는 을지로에서 여가를 즐기는, ‘여피’족에게 각광받는 ‘직-유-주’ 근접의 주거지로 재탄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편, 입지 조건상, 에어비엔비로 활용될 여지도 클 것이라는 예측도 충분히 가능하다. 에어비엔비 자체가 좋다 나쁘다는 논의 이전에, 이렇게 되면 관광객이나 중단기 체류객이 늘지는 몰라도, 직주 근접의 효과는 그나마도 더 적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든 직장인의 꿈 '직주 근접'
모든 직장인의 꿈 ‘직주 근접’

그리고 이 지역에 살면서 역외 지역으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3, 4인 가구의 주거지 선택요인에서 자녀교육이나 통근편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1, 2인가구는 직장 위치와 무관하게 ‘힙한 동네’라던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동네에 사는 것을 더 중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통에너지 절감에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경우지만,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직장별 거주지를 할당해 줄 수는 없다.

어쩌면 ‘정부가 주택공급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효과는 확실할지 모른다. 또한 ‘에너지’가 이슈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도심 공동화’가 심각한 문제가 되어 야간에도 이 지역에 상주하는 인구가 필요한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면, 직주 근접이든 아니든 주택은 늘려야 할 것이다.

차라리 주4일 근무를! 

아이를 맡기기 어려운 직장인이 이 동네에 오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면 이 지역에도 어린이 집을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직장내 데이케어 시설이 늘어나면 그것은 그대로 좋은 일 일수 있다. 또는 주상복합빌딩 안에도 얼마든지 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1,000%로 고밀개발된 사대문 안 ‘일반상업지구’에 어린이집을 넣으려면, 교통 편의를 위한다 해도 지하층에 배치하긴 곤란할 것이다. 아이들이 햇살을 만끽하도록 하려면 건물 상층부에 놓아야 할텐데, 이렇게 되면 외부인의 접근은 매우 힘들 것이고, 내부 입주자 전용이라 하더라도 아침마다 피크 타임에 사람들이 몰릴 걸 생각하면 그 건물에 엘레베이터는 넉넉히 설치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또는 유동인구 분산을 위하 시차출퇴근제가 도입되면 개별 건물도 피크 타임을 위한 시설 용량의 부담을 좀 덜수도 있겠다.

이러한 비용과 고단함을 생각해 보면, 시차출퇴근제도 하는 마당에, 차라리 주4일근무제를 실시하는 것이 훨씬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별 다른 대안이 없다면 을지로와 종로를 주상복합 건물로 가득 채우는 것도 받아들여야 할 미래상일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주 4일 근무제를 실시하고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거나 맡기는 게, 가계에도 환경에도 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 주3일 근무와 주4일 근무가 대중화된 시대라면, 이 두 근무형태를 짝 지으면 오히려 일주일 내내 쉴틈없이 사용하게 되어 ‘공간효율성’은 더 증대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동네에서 키우거나 맡기느냐?’

피에르 라루튀르, 도미니크 메다 저/이두영 역 | 율리시즈 | 2018년 03월 14일
피에르 라루튀르, 도미니크 메다 저/이두영 역 | 율리시즈 | 2018년 03월 14일

답은, 기존 사대문 안 도심을 고밀화하고 확대해 가는 것보다 분산된 도심간의 연결성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경쟁력 측면에서나 에너지 측면에서나 3핵 도시인 서울이 취하기에 더 바람직한 전략이다. 국토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다핵화되고 강남과 여의도의 ‘경쟁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듯, 국토도 단핵의 수도권으로 초고밀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핵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시리즈의 최종 결론은 그래서, 각각의 컴팩트 도시들을 스마트하게 연결하자는 제안이다.

9. 스마트한 연결, 그게 필요하다

서..서..서..서마트! 서마트 연결! 어? (출처: 영화 '넘버3', 송능한, 1997, 프리시네마)
서..서..서..서마트! 서마트 연결! 어?
(출처: 영화 ‘넘버3’, 송능한, 1997, 프리시네마)

무조건 흩어지는 것이 결코 환경에 도움이 안되는 것임은 글레이저도 [도시의 승리]에서 올바로 지적했다. 무조건적인 분산은 또한 ‘혁신’에도 불리하다. ‘균형 발전 잘못하면 하향평준화된다’고 (나를 포함하여) 수도권 경쟁력 걱정할 때의 ‘집중의 잇점’도 주로 ‘혁신’과 관련된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 이같은 삶의 모든 편의를 누리고 매혹적인 물품들을 고를 수 있을 것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토록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을 것인가.

-1631년 5월5일 데카르트가 암스테르담에서 쓴 편지 중에서 –

혁신은 사람들이 일하면서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게 마주치고, 자유롭게 의견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창출된다. 앞서 인용한 중세 격언이 말하는 ‘자유케 하는 도시의 공기’ 역시 혁신의 바탕일 것이다. 그런데 서울 도심은 ‘집중의 불경제(不經濟)’[footnote]불경제: 불경제라 할 때는 사적 편익보다 사회적 편익이 작거나 피해를 보는 경우다. 음(-)의 외부효과로 인하여 전체적으로는 피해를 보는 ‘외부 불경제’로 흔히 알려져 있다.[/footnote]의 한계선에 있어서 더 이상 고밀화할 수는 없다고 앞에서 계속 이야기했다. 결국은 흩어져야겠는데, 에너지 효율 등 컴팩트 시티의 덕목이나, 혁신도 포기할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드디어 결론을 말하자면, 흩어지더라도, 에너지 효율적으로 교통에너지를 적게 들이고, 스마트하게 연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흩어지되 파편적으로 산개하는 것이 아니라 ‘뭉쳐서 흩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연결은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컴팩트 시티로 국토를 다핵화하고, 이들 사이를 스마트하게 연결하자.’

주택난 해결의 공간적 궁극: 스마트하게 연결된 다핵 국토

좀 더 엄밀하게는 다핵화가 아니라 ‘다핵-계층화’이겠다. 이는 다핵 도시가 내부를 도심-광역중심-지역중심의 3단계로 위계화 했듯, 다핵 국토 역시 단순히 핵을 몇 개 만드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층화된 구조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핵들끼리, 그리고 핵의 주변을 핵과 스마트하게 연결하자는 것이다.

요즈음 회자되는 ‘메가시티’는 이 ‘다핵 국토’의 핵이 주변과 계층적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권역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론이 대표적이고, 서남권, 세종-대전권 등도 가능하겠다. 이러면 전주나 강원이나 대구가 섭섭해 할 것 같다. 저는 일단 예를 든 것 뿐이구요…

무엇보다, 어디를 다핵화 할 것이냐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그 다핵들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느냐가 이제 부터 할 이야기다. 서울플랜 2030에 빗대자면, 3도심에 강남을 넣을지 영등포를 넣을지를 따지는 것은 별론으로, 그 각각의 3도심이 서로 긴밀하고 원활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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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화살표(업무시간 중 동선)가 쉽게 엮이고, 그  이동 비용이 적어질 때 혁신도 쉬워진다.

위 그림에서 보면, 외곽의 주거지(파란점)에서 도심 업무공간(빨간 삼각형)으로 출근한 이들의 동선은 ‘검은 화살표’로 도식화 했다. 이들이 낮시간에 업무상 회의 등으로 이동하는 동선은 ‘파란 화살표’다. 이 ‘파란 화살표’가 쉽게 엮이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비용이 적을 때 혁신이 쉬워지고 ‘도시 경쟁력’이 강해질 것이다. (편의상 육각형으로 그렸다)

물론 통근교통이 너무 고단해도 ‘집적의 불경제’가 강해지며 도시 경쟁력은 약해진다. 이 두 교통, 업무교통과 통근교통이 어느정도 균형을 이루며 전체 도시의 범위가 커져가는게 도시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범위는 교통수단의 발달에 발 맞춰 커졌다. 이 때 도시가 확대 되기보다는 주변에 여러 도시가 생겨나는게 아래 그림의 왼쪽 경우라면, 도시회랑(urban corridor: 그물망 도시의 코어들 간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고 묶어주는 ‘통로’ ‘복도’ 역할을 하는 도로)이 형성된다든지 연담화(conurbation: 도시의 확장과 팽창에 따라 다른 행정구역 시가지와 맞닿는 현상)되는 것이 오른쪽 경우다. 현재의 성남에서 오산까지가 이런 연담화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도시화와 도시 확산 방식들 중 두 가지
도시화와 도시 확산 방식들 중 두 가지

또는 그냥 도시 자체가 커져서 ‘과밀화’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아래 그림 오른쪽의 큰 육각형이다. 그냥 중앙의 도시가 모든 도심 기능을 빨아들이고 주변에는 주거지 또는 베드타운만 남은 경우다. 왼쪽은 중앙의 핵은 약간만 커지고, 주변에 6개의 도시가 존재하는 상황을 추상화한 것이다. 그런 7개의 도시들을 광역교통으로 연결했다(빨간선).

오른쪽은 그냥 도로나 교통수단간 위계가 뚜렷하지 않은채 도시 하나가 비대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검은 화살표나 파란 화살표 모두가 길어진다. 왼쪽과 달리, 일상의 통근 및 업무, 그리고 간혹 있는 광역간 회합에 따라 교통수단의 위계와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다.

교통수단의 위계와 역할분담
교통수단의 위계와 역할분담

이런 상황이라면 왼쪽의 지역에 사는 주민은 평소에는 15-30분 거리의 직장에 통근을 하고(직주 근접), 일상적 업무는 20여분 거리 내에서 해결을 하다가, 인접 도시로 가야 할 때는 광역 연결망을 이용해서 빠르고 편리하게 가서, 그 지역에도 광역연결망의 결절점(node – 다른 말로, 환승역) 근처에 있는 업무지구에서 볼 일을 보고 돌아오면 된다.

예를 들자면 서울 아현 쯤에 사는 사람서울역 앞의 회사에 다니면서 평소에는 사대문 안에서 업무상 회의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광명역이나 대전역, 멀리는 부산역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돌아오는 경우이겠다. 환승지향개발(TOD: Transit Oriented Development, 대중교통을 염두에 둔 것이므로 ‘대중교통지향개발’이라고도 한다)은 이 때 환승역 주변을 고밀개발하자는 것이다. 적절히 구사할 개발수법이라고 본다.

반면 오른쪽은 평소의 통근에도 한 시간 또는 그 이상, 업무상 이동에도 한 시간 또는 그 이상이 걸리는 경우다. 일산 신도시에 살면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데, 평소는 여의도나 강남에서 회의를 자주 하는 경우라고 가정할 수 있겠다.

왼쪽의 공간구조라면, 예를 든 아현 같은 정도의 접근성을 가지는 곳이 경기도 이곳 저곳에 자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 가까운 오른쪽 그림에서는 가운데 파란 도심 내의 몇 군데 밖에는 자리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희소하니 당연히 인기가 있고, 즉 수요가 높고, 비싸진다. 최근에 (과거엔 그림의 흰 부분에 있던) ‘마용성'(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의 주택 값이 부쩍 뛴 이유이기도 하겠으며, 기왕 커진 파란 도심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여 더욱 고밀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앞서 우리는 오른쪽 도심의 한국형 버젼은 이미 ‘컴팩트 시티의 효용의 한계선’에 도달했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이제 왼쪽의 국토공간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팬더믹 시대’의 주거문화나 국토공간구조에는 더더욱 어울리는 구조다.

지역 거점 오피스로 평소에는 출근하고, 정 대면회의를 해야 할때만 광역교통망을 이용하고, 어지간하면 지역 거점 오피스에서 비대면회의를 할 수 있다면, 국토공간구조가 다핵화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스티븐 존슨 지음 |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04월 10일 출간
스티븐 존슨 지음 |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20년 04월 10일 출간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팬더믹 이전에도 여론의 수면 밑에서 심각해지고 있던 ‘쓰레기 배출’ 등 자원 순환 문제의 해결에도 유리하다. ‘대체’ 에너지의 ‘사용’뿐만 아니라 위생과 방역, 폐기물에 대한 처리 등 ‘우리가 한 때 다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다시 문제로 부상하는 시대에는 더욱 중요해질 문제다.

수요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오만한 생각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방식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때때로 수요는 이미 검증된 모델만을 채택하려 하고 새로운 변화는 눈 앞에서 성공 사례를 보여줄 때 까지 시도하기 어려워한다. 믿을 만한 신모델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고 지난한 길이지만, 공급자가 해내어야할 일이다. 국토공간구조라면, 공급자는 공공이다.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

부산’역’과 서울’역’ 사이의 만 놓고 보면, 서울-부산 사이 이동이 서울 강서구 끝에서 강동구 끝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시간이나 혼잡도에 따른 비용이 덜 든다. 총 시간도 중요하지만, 갈아타야 하거나 차안에서 흔들리거나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것 보다 그냥 열차 한번 타는 것이 훨씬 ‘덜(!)’ 힘든 것이다.

심지어 서울 상암에서는 43km 떨어진 분당 서울대병원이나 176km 떨어진 대전의 카이스트 문지캠퍼스에 업무미팅하러 (운전을 하거나 기차를 탄 뒤 여러번 갈아타며) 가는 것보다 그냥 저 멀리 부산역에서 회의하고 돌아오는 게 ‘덜(!)’ 고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래 그림은 KTX 개통에 따른 시공간 거리의 변화를 나타낸 지도다. 시간만 따질 때 서울과 부산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가까와진 것이야, 일제시대 경부선 개통 이후 새삼스러울게 없는 일이지만, 이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냈다.

KTX 개통에 따른 국토공간 압축효과 (출처: 국토연구원)
KTX 개통에 따른 국토공간 압축효과 (출처: 국토연구원)

잠깐 옆으로 새자면, ‘경부축 중심 발전’을 마치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왜곡된 국토개발방향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오해라고 본다. 거꾸로 일본이 우리의 식민지였어도 철도는 경부축부터 발전했을 것이다. 향후 이웃 국가와의 지역(Region) 차원에서의 호혜로운 협력을 가정해도, 기왕 형성된 경부 발전축은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이 동남권에 비해 서남권이 겪은 차별이 정당했거나 이를 지속하자는 말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는 ‘스마트 연결 다핵 국토’의 이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실은 아래의 오른쪽 그림 처럼, 집에서 도심으로 출근을 했어도, 광역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한참을 가야 한다. 심지어 KTX역이 주택가 뒤 한적한 외곽에 있는 경우도 있고(진주), 허허벌판에 있기도 하다(오송). 이래서는 서울에서 지방에 업무를 보러 오기도 불편하다.

기차 타고 40분 걸려 와서 또 버스를 갈아 타고 40분이 걸리는 세종시가 좋은 예다. 철로가 세종시를 안 지나가는 것도 아닌데. 충북 청주에 대한 배려 외에도, 연결이 원활하면 이사를 안 오고 서울에서 출퇴근할까 걱정되어 그랬다는 설이 있다. ‘설’이길 빈다.

광역 연결의 '이상'과 '현실'
광역 연결의 ‘이상’과 ‘현실’

직주 근접은 그렇게 강제해서 될 일도 아니고, 오히려 가끔이라도 서울에 가는 게 편해야 지방에도 내려와 살 거라는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 ‘교통이 불편해야 도망 못가고 눌러산다’가 아니라, ‘이 동네 살아도 불편할 게 없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마트 연결의 철도체계 사례들

앞에서 이야기한 ‘스마트 연결’이 잘 된 도시와 국토 공간체계로 나는 네덜란드의 헤이그(현지에서는 덴 하그)를 꼽는다. 헤이그 중앙역은 고밀개발됐고, 길을 건너에는 (사진엔 잘렸지만) 바로 중앙정부 부처 건물이 있다(왼쪽 사진).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윗층에서 시내 연결망인 트램을 탈 수 있으며(오른쪽 사진) 버스 환승 정류장도 공중데크로 바로 연결된다. 역 앞으로 나와도 여러 다른 트램 노선이 있다. 이는 독일의 주요도시들도 비슷하다. 그 아래 사진은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다. 역 자체는 복합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고밀개발된 도심과 바로 연결된다.

네덜란드 헤이그 중앙역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헤이그 중앙역 인근을 지도에서 보면 아래과 같다. 노란 별표는 중앙부처들이다. 가까운 곳은 바로 길 건너에, 먼 곳도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조금 옆으로 새면,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그림으로 유명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옆에 있는 의회(호수 아래쪽)도 가깝다. 한국의 사회주택협회에 해당하는 네덜란드 주택협회총연합회(Aedes)는 아예 헤이그역 위의 복합 오피스에 있다.

헤이그 중앙역(Den Haag Centraal) 인근의 주요시설
헤이그 중앙역(Den Haag Centraal) 인근의 주요시설

옆으로 샌 김에 마저 지도에 나온 차이나타운에는 이준 열사가 순국했던 당시 호텔이 지금 기념관으로 바뀌어 있다. 기념관의 전시물을 보면, 당시 이준 열사 일행은 대륙횡단 열차로 유럽까지 와서 만국평화회의 장소(현재 의회)에 들어가려 했다가, 그 숙소를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 그 의회에는 관광객들도 평화롭게 드나들고, 당시 일본 대표가 머물렀던 호텔(호델 데 인데; ‘Hotel des Indes’)에서는 2015년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의 퇴임 리셉션이 열리기도 했다.

본론으로 돌아오면, 요는 ‘광역 쾌속 교통망’이 도심에 연결되고, 이 광역교통망으로부터 도시내 일상 교통망으로의 연계가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는 로테르담 중앙역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도심 내 위치를 나타내는 지도다. 로테르담은 지상 트램 중심 체계라 지하철망만 보이지만, 프랑크푸르트는 전철노선도가 잘 보인다. 멀리서 광역교통망을 이용해서 도착한 이가 별 번거로움 없이 환승하거나, 도심의 업무지구에서 일을 볼 수 있는 시스템들이다. 또한 지역 주민들도 일상 통근을 하는 업무 공간에서 광역교통망에 접근하기가 용이한 시스템들이다.

로테르담 중앙역의 위치(빨간 포인트)
로테르담 중앙역의 위치(빨간 포인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위치(빨간 포인트)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의 위치(빨간 포인트)

어느 정도로 연결성이 원활할까? 자전거를 주차하고 바로 계단 한층만 내려가거나 올라가면 바로 기차 플랫폼인 경우도 있다. 아래는 로테르담 정도로 큰 도시는 아니고, 각각 인구 15만과 5만의 도시 델프트시와 하우턴시의 지하철 역 모습이다. 인구로만 따지면 관악구 인구가 50만이고, 서울의 동 하나가 2~3만 명의 인구인 것과 비교하면, 동 몇개가 모인 정도의 수준의 동네들이다.그래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고, 네덜란드 전체가 산지가 별로 없는 평탄한 곳이이니 애초에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 되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연결성 하나는 최고다.

델프트 역 플랫폼. 자전거 주차장과 바로 연결된다.
델프트 역 플랫폼. 자전거 주차장과 바로 연결된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하우턴 역 플랫폼. 마찬가지로 자전거 주차장와 직접 연결된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하우턴 역 플랫폼. 마찬가지로 자전거 주차장와 직접 연결된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 정도면, 델프트 구석에서 살아도 자전거 타고 10분 가서 세워 놓고 바로 기차를 타고 로테르담까지 15분, 거기서 고속철도로 파리까지 2시간 반, 즉 환승시간 고려 3시간 조금 넘으면 파리에 갈 수 있다. 오히려 거리가 애매하게 떨어진 파리 근교 보다도 델프트로부터 파리 도심까지의 시간거리는 더 짧을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그 근처로 이사갈 이유가 없다. 연결성이 좋아서 오히려 분산이 가능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암스테르담 외곽의 주거단지에서 트램과 버스로 암스테르담 도심까지 가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인구 5만의 하우턴에 살면서 매일 자전거를 기차역 플랫폼 밑에 세우고 암스테르담 시내로 출퇴근 하는 사람의 고생이 훨씬 덜하기도 하다. 같은 도시 내에서라도 엉망인 환승시스템속에 버스와 전철을 타고 가야하는 것 보다는, ‘광역교통망의 기점’과 평소 업무지구가 멀지 않고, 그 업무지구와 주거지 사이의 통근이 용이한 경우가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가까운 것이다.

이곳 시민들은 평소에는 거점 업무 중심—델프트 시내, 혹은 좀 더 가 봤자 로테르담 시내—으로 출퇴근하면 된다. 탄소 배출도 교통체증도 별로 없고, 주거비도 저렴하다. 과밀의 부작용도 없다. 그렇다고 혁신을 위한 업무협의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로테르담이든 프랑크푸르트든 파리든, 회의 장소로 잡는데 부담도 없다.

유럽 지역의 경제사회 특성에 따른 클러스터와 경제 규모 (출처: Geza Zoltan and Kincses, 2015)
유럽 지역의 경제사회 특성에 따른 클러스터와 경제 규모 (출처: Geza Zoltan and Kincses, 2015)

그래서 그런지, 유럽의 ‘푸른 바나나’지역(위 그림의 푸른 타원)20%의 면적에 인구의 40%와 GDP의 50%를 소화하며 전체 유럽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보기엔 푸른 바나나 내부도 상당히 다핵-분산되어 있는데, 쉽게 말해 ‘널널한 느낌’인데, 유럽 전체에서는 이 지역에만 지나친 집중이 이루어졌다며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쟁 중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떨까? 아래 그림은 우리 나라를 과감하게 도식해보았다. 실제 축척과 무관한 ‘개념도’다. 반복하지만, 두 도시 사이의 허허벌판에 위치한 오송역, 시 외곽의 구석에 있는 진주역은 ‘스마트한 연결’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참 ‘알지만 모르겠다’. 오송역 같으면 차라리 한군데를 정해서 그 곳에 정차하고, 그 역으로부터 다른 역에 다시 쾌속 전철을 놓으면 안 되었는지.

인구 중심지와 동 떨어진 곳에 세워진 기차역의 예
인구 중심지와 동 떨어진 곳에 세워진 기차역의 예

만약 국회가 세종시로 정말 옮겨간다면, 오송역을 복합용도 고밀개발하고, 그 위에 국회의사당을 놓으면 안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종 시내에 있는 것보다는 국회의원들도 좋아할 것 같다. 보좌관들이 서울에서 출퇴근 할까 싶어 싫어할까? 초기엔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중에는 조치원이나 세종시에 거처를 잡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일상 통근 교통’은 세종시(혹은 조치원이나 청주)에서 오송역까지 오고 가도, 업무상 미팅을 위해 서울이나 전국 어디서나 사람들이 오고 가기에는, 차라리 국회의사당이 오송역에 있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세종시내에 있어봤자 편리한 것은 정부청사 직원들 뿐.

위 그림은 슬픈 현실을 묘사했다면, 좀 더 이상적인 모델은 아래 그림이다. 이걸 전 국토로 여기지 말고 하나의 메가시티의 내부 구조로 보면 좋겠다. 서울시가 CBD, YBD, GBD의 3핵 도시였던 것처럼, 아래의 메가시티 역시 (가운데 육각형의 규모에 따라) 3핵 메가시티로 볼 수 있다(각각 중앙, 9시 방향, 5시 방향의 육각형들). 나머지는 부도심 내지는 광역중심이 된다.

이상적인 광역 네트워크. 하나의 메가시티의 구조로 볼 수도 있다.
이상적인 광역 네트워크. 하나의 메가시티의 구조로 볼 수도 있다.

결절지에는 점(點)적인 차원에서는 초고밀 수준의 개발도 가능하다고 본다. 면적 고밀화와 도심의 비대화를 막기 위해서다. 다만 면(面)적 차원에서의 초고밀개발은 오히려 주택에너지효율이나 집중의 불경제를 야기하고, 40년 뒤 대규모 슬럼화의 위험이 있기에, 막아야 한다.

이를 확대해 보자. 현재 대한민국에 이러한 메가시티 4개를 두고 연결한다면 아래 그림과 같을 것이다. (전문가의 손길로 제대로 된 그래픽으로 그려야 좋겠지만, 이번에는 독자들께서 인내심을 발휘해 주십시오), 요는 초쾌속의 국가연결망(초록)이 각 메가시티를 엮고, 이 연결망의 메가시티 내부에서의 정차역 수는 최소화할 것이며, 각 메가시티 내부는 광역연결망(적색)으로 엮고, 그 광역연결망에서 개별 주거지역까지는 30분 이내에서 접근 가능한 일상 통근권(검은색)이 될 수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연결망이 KTX라면, 광역연결망은 GTX수도권, 동남권, 서남권 등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연결망이 위상학적으로 나뭇가지 같은 형태가 아니라 원이나 나아가 그물 같은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굳이 대전까지 와야 여수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간 교류의 합종연횡이 가능해야 한다. 그림은 편의상 아래와 같이 그렸으나 광역연결망이 굳이 메가시티끼리 분리될 필요는 물론 없다.

스마트하게 연결된 다핵 국토의 개념도
스마트하게 연결된 다핵 국토의 개념도

문제는 이미 지어진 철도나 도로 인프라다. 이 글에서 이상적으로 제시한 구조대로 바꾸기엔 이미 자리를 다 잡았다. 헤이그처럼 세종시 정부청사 바로 앞이나 지하에 KTX 세종역이 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인제와서 무슨 소용인가. 절충안이라도 생각해보면, 예컨대 이제라도 세종시 남단을 지나는 철로에 세종역을 신설하고 세종시 내부와 조치원, 청주등을 연결할 광역 쾌속 연결망을 설치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오송역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지금도 시스템은 오송역의 존재에 이미 어느정도 맞춰졌고 ‘경로의존적(path dependent)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이를 뜯어고치자고 책임 있게 유권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엄두를 정치권에서 내기는 물론 쉽지 않겠다.

그러나 안 그러면 여전히 중앙부처 공무원들과 선량(選良)들은 길바닥에 시간과 에너지를 뿌리고 다녀야 할텐데. 오죽하면 오송역 위에 국회의사당을 두자고 제안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앞으로의 메가시티나 지역별 GTX를 설치할 때에라도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고, 모쪼록 원활한 연결성이 실현되길 바랄 뿐이다.

오죽하면 오송역 위에 국회를 짓자고 할까...
오죽하면 오송역 위에 국회를 짓자고 할까…

10. 결론: 다핵 국토의 스마트 연결 그리고 시간

이제 컴팩트 시티 오독 시리즈의 이야기는 끝났다. 주택 정책의 공간적 궁극에 있는 국토도시 정책에 관한 긴 이야기였다. 서울 주요지역의 인구밀도는 이미 고밀화로 얻는 효용의 한계에 도달했기에, 더 고밀화하기보다는 퍼져야 한다. 퍼지되 지역별 핵으로 ‘뭉쳐서’ 흩어지자. 그러면서도 연결되고, 연결이 계층화되고, 원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게 씨줄이었다면, 날줄은 ‘시간’이다. 용적률을 완화해서 미래세대의 재산을 가져다 쓰며 고밀화하는 것보다 주4일 근무나 재택근무의 효과가 교통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기에 훨씬 확실하다. 분산된 다핵이라 해도, 원활하게 연결되면 된다. ‘시간거리’상으로는 특정지역에 과밀하게 몰려서 사는 것과 다름없거나, 오히려 유리할수도 있다.

평소에는 가까운 거리의 거점업무 중심으로 통근하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광역중심이나 인접 메가시티로 가서 일을 한다면야, 굳이 모두가 광역중심이나 수도권에 살 필요는 없어진다. 서울의 토지 희소성이 완화되는 것이다. 주4일 근무나 재택근무 등으로 업무공간으로 직접 이동해야 하는 날짜 수가 줄어드는 것도 ‘다핵 국토’의 주거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요소다.

'달리 생각하면 '어디' 사는가가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일하는 곳과 내가 만나야 할 사람에게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다.
‘달리 생각하면 ‘어디’ 사는가가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일하는 곳과 내가 만나야 할 사람에게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다.

물론 모두가 주3일만 출근하고 하루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을 가질 순 없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시내에 살아야만 하는 이들도 좀 더 숨통이 트일 것이다. 주택 가격은 그렇게 특정지역만의 입지상의 유리함을 분산시켜야 안정화될 것이다. 소수의 인기지역만 남겨 놓고 그 곳만 고밀화하는 것으로는 당장의 수요 증가나 미래의 수요 감소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 뭉쳐야 살지만, 동시에 흩어져야 산다.

특히나 팬데믹 시대에서 분산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당장은 재택근무 형태가 두드러지는데, 모든 직종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직장이 용케 허락한다 해도 각자의 주거 환경이 그렇게 재택근무 환경을 갖추었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나오는 것들이 거점의 공유 오피스들이다. 팬데믹 시대가 가져올 변화에 대한 자세한 탐구는 다음을 기약하겠지만, 저 위의 ‘거대한 6각형’보다는 메가시티의 네트워크가 더 유리할 것이라는 강력한 심증이 있다.

이상, 주택 가격 중에서 토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법이자, 국토균형 발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앞의 시리즈에서 ‘유동화 매개’를 통한 주택 장수명화가 주거비를 낮추는 중요한 수단일 수 있다고 한 것도 결국은 ‘시간’의 함수였다면, ‘노동시간 단축’이나 ‘이동시간 단축’ 역시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목을 매는 것이 노후 보장 때문이고, 또 자녀 교육 때문이라면, 주택문제 해결의 사회적 궁극에는 연금이나 교육 문제가 있겠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이 같이 해결되지 않으면서 주택정책 하나만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택정책에 손을 대려거든, 이러한 공간인지적 관점시간인지적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이 목표라 해 보자. (개인적으로는 매매가격은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 해도 용적률 500%로 미래세대의 세금까지 끌어다 쓰고 에너지효율개선도 없이 쾌적성만 파괴하는 방식으로 잡을 것이 아니라, 이렇게 국토를 다핵화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 

참고 문헌

  •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활용한 도시 간 통근유형 분석, 박시내 2014, 통계개발원 연구보고서
  • Geza, Toth & Nagy, Zoltan & Kincses, Aron. (2015). Modelling the spatial structure of Europe. Regional Statistics. 4. 40-54. 10.15196/RS04203.

예고 

다핵화된 국토를 어떤 주택들로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은 다음 시리즈의 주제다. ‘공공주택 유형통합’이후 사회주택 및 시장(market) 주택과 함께 ‘주거중립성’이 구현되어 ‘주택선택권’이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주거체제에 대한 이야기다. 내년 설 이전에 내는 것이 목표다. 그 전에 다른 원고가 많이 밀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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