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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고 항의하고 사과받다 – 어느 필리버스터 방청 후기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많은 시민을 국회로 불러왔습니다. 한국 정치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오늘부(2016년 3월 2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중단되겠지만, 그 열기와 시민의 관심,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여기 조금은 특별한 국회 방청 체험을 한 윙고니 님의 사연을 독자와 공유합니다. (편집자) 

며칠 전 친구와 함께 국회 필리버스터 현장을 방청하고 왔습니다.

첫 번째 분노 

국회 안내소에 가서 우선 안내소 직원이 시키는 대로 지역구 의원실에 전화해 방청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 지역구 국회의원 보좌관은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내일 오시라고 했죠.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역구 의원으로 둔 강남구민은 서러웠습니다. 그래서 총선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이니 “그럼 다른 의원실에 전화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보좌관은 “그러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첫 번째 분노를 느꼈습니다.

Rick&Brenda Beerhorst, “you are not listening”, CC BY https://flic.kr/p/axXBSs

Rick&Brenda Beerhorst, “you are not listening”, CC BY

그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안내소 국회 직원은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까운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래 국회의원실에 배당된 방청권이 있어요. 그게 없으면 의원실이 당 사무실에 가서 얻어오면 되는데…”

국회 직원에게 다른 방법은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직원은 주민등록증과 방문증을 맞바꿔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의당 원내대표실에 보내줄게요.”

그래서 2층 정의당 원내대표실에 가서 본회의장 방문증을 받아 4층 방청석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을 때는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재미없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2시간 반을 꼬박 국정원에 관한 강의(!?)를 들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분노 

우리가 안내받은 자리는 너무 뒤쪽이라 좀 더 앞에 가고 싶었습니다. 아래층에 앉은 의원 몇과 신경민 의원을 좀더 가까이 보고 싶었죠. 그래서 친구와 자리를 옮기려는 찰나, 큰 배지를 단 중년의 국회 직원이 우리를 제지하며 돌아가 제자리에 앉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조금 더 앞에 가서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뭐가 더 보고 싶어서! 여기 앉아!”

다짜고짜 반말이었습니다. 저는 열 받아서 말했습니다.

“저는 방청 온 국민이고, 그냥 두 줄만 앞에 가서 앉겠다는데…”

“여긴 방청석이야. 들으라고 있는 데라고.”

분노 화 짜증

국회 직원은 자신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며 윽박질렀습니다. 제가 계속 말을 이으려 하자 “여기 지금 조용히 해요!”라고 고압적으로 우리를 대했습니다. 솔직히 그 대화를 시끄럽게 만든 건 그 국회 직원이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그 직원이 “여기 계속 시끄럽게 할거냐”고 하자, 뒤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이 “시끄러워서 안 들리잖아요!”라고 해버린 것도 원망스러웠습니다. 만약 그 어른이 ‘젊은이들이 조금 앞에 가서 보고 싶은 모양인데, 좀 보내줘요.’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 직원이 더는 기세등등하게 저를 윽박지르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가 “아니 왜 두 줄 옮기겠다는 걸 못하게 하느냐”라고 말하니, 다른 젊은 직원이 달려왔습니다. 우리를 윽박지르던 그 국회 직원은 젊은 직원에게 지시했습니다.

“여기 말을 못 하게 해. 그냥 무시하라고.”

저는 이 나라 국민이고, 공부하겠다고 국회에 와서 잠깐 자리를 옮기겠다고 움직였을 뿐인데 말 못하는 짐승 취급을 받으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신경민 의원의 말이 귀에 들리질 않았어요. 그리고 저는 계속 저를 윽박지른 그 직원과 거기 동조한 젊은 직원을 쳐다봤습니다. 제 시선을 의식할 때까지.

제가 “나가면서 뭐라고 좀 해야겠다.”고 친구에게 말하자, 친구는 제가 불이익을 받거나 찍힐까 봐 걱정이 됐는지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오면서 그 젊은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말이 있어요. 우리가 자리 옮기려고 했을 때, 친절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그러자 그 직원은 제 말을 자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옛날에 정치 깡패들이 여기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고 했기 때문에 저희가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저희 지시에 무조건 따라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여기 또 그런 사람들이 와서 난동을 부립니다.”

“그런 역사가 있는 줄 들으니 이제 이해가 되네요. 이렇게 들으면 이해를 하잖아요. 우리가 여기 국민이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아닌데, 좀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다른 나라 국회에 가보세요. 여기보다 더 합니다. 좀 가보세요.”

“영국 의회 가봤는데 안 이러던데요.”

저는 젊은 직원의 프레임에 휘말린 채 유치한 대답을 하고 방청석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 젊은 직원도 제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아니었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에 바쁜 것으로 보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이해해 주려고 했던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자살 우울 절망

우리는 1층에 내려왔습니다. 정의당 원내대표실을 통해 우리를 들여보내 준 국회 직원 성함을 수소문해 고객 칭찬함에 감사하다고 쓰고, 국회 본청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욕지거리를 하면서 걸었습니다. 나라가 국민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건지 분노하고, 성토하면서요.

결국, 경복궁역 근처에 와서 밥 먹고 술 마시다 기분 좋게 헤어졌지만, 저는 그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국회 직원의 태도를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두 줄 앞에서 필리버스터를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제 젊은 날의 기억 속에 이 에피소드는 결코 작은 일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다음 날)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이뤘습니다. 커피 한 잔 안 마셨는데 종일 각성상태라, 오늘 개인적인 일정을 취소하고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저와 제 친구를 방청석에 들여보내 주셨던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과 국회 민원실에 전화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정진후 의원실의 김순이 보좌관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국회 경호처에 연락해보겠다며, 2시까지는 제게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전화를 걸어서야 연결된 국회 민원실에서는 국회 경호담당 부서에 연락해서 제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민원실에서 제게 다시 연락을 줄지, 경호부서에서 연락을 줄지, 언제까지 연락을 줄지는 알려드릴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고마운 김순이 보좌관 

2시 반쯤 정진후 의원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국회에 방문한 국민을 그렇게 대하면 되느냐고, 아무리 학생이라지만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했습니다. 김순이 보좌관은 어제 그 경호 직원이 누구냐고 물었지만, 경호처에서는 죄송하다고, 교육을 다시 시킬 테니 그 사람 신원만큼은 좀 안 물어봐 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필리버스터 정국으로 국회 경호 직원들이 60시간 넘게 근무하느라 예민해져 있고, 기본적으로 경호원들은 국회의장의 말을 따르기 때문에 정의당도 때때로 그들과 부딪힌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략하게 경호처 입장을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저는 보좌관과의 통화에서 ‘아, 이 사람은 내가 직접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잘 대변해주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사슬 연결 링크

게다가 김순이 보좌관은 제 입장을 잘 대변할 뿐 아니라 저와 경호처 중간에서 정말 훌륭한 중간자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은 보좌관이었지만, 몇 해 전 대학의 한 수업에서 대의제에서의 정치적 대표(representative)가 지녀야 하는 자질에 관해 논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김순이 보좌관은 정말 일을 잘하시는구나, 잘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잘 말씀하시는구나, 최선을 다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어제 방청석에 들여보내 주신 데 이어 오늘 고생해 주신 데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항의하다 

그리고 3시쯤 또 전화가 걸려오더군요. 어제 저를 윽박지른 직원처럼 50대 정도의 아저씨가 “홍OO 학생이죠?”라고 하셔서 “아뇨, 홍OO 시민인데요.”라고 응수하고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전화해 주신 분은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실의 최오호 서기관이었고, 본인을 경호업무 책임자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먼저 그분 말씀을 들어보니, 현재 경호처 직원분들이 며칠째 근무를 서느라 예민해져 있는 상태고, 저를 고압적으로 대한 그분은 전화해 주신 분의 동기이기도 한데 의욕이 넘치고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한국노조가 4층 방청석에서 본회의장인 3층으로 뛰어넘어 난입하려 한 적이 있어서,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 더 심하게 그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책임자로서 정말 죄송하다고 제게 연거푸 사과하시더군요. 그리고 심지어 경호처 안에서 자기네들도 그 직원과 일하거나 얘기할 때 너무 우락부락하고 거칠어서 피할 때가 있다고 제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분 말씀을 다 들은 후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회 속기사분들과 경호처분들을 비롯한 직원분들이 며칠째 고생하고 있는 걸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제 당했던 일은 인간으로서 받아야 할 당연한 존중을 무시당한 일이에요. 저는 입장하기 전에 방청석 자리를 옮기면 안 된다는 안내를 받은 적도 없어요. 자리를 옮기지 말아야 한다면, 들어가기 전에 안내를 제대로 해줬어야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지만,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들인데 갑자기 제지하고 하대하고 제가 보는 앞에서 저를 무시하라고 지시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겁니다.”

매거폰 스피커 고함 여자 소리 호소

사과받다 

그랬더니 최오호 서기관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희가 그걸 교육하는데, 사람마다 방청객을 들여보낼 때 (안내가) 달라지기도 하고 그래요. 앞으로 좀 더 교육을 잘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서기관과의 통화에서 받은 인상은, 우선 자신들을 좀 이해해 달라고 말을 하지만 아버지 나이뻘 되시는 분이 직접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고 하는 데서 그 나잇대 남성들의 문법을 알 것도 같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제 그 무례한 직원이 아니라 전화해 주신 최 서기관에 한정해서 말입니다.

그분은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한 다음에는 생각보다 제 말을 잘 들어주셨고, 전화 중에 몇 번씩 죄송하다고 사과하셔서 저로서도 마음이 좀 풀렸습니다. 어쩌다 보니 최 서기관께선 “저도 C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이제 마지막 학기라 논문 써야 되는데 바쁘네요.”라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성함을 여쭤보니, 통화가 끝나고 본인 명함을 찍어서 보내주겠다며 나중에 다시 국회에 오면 자신을 찾아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해서, 어제 일은 결국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실 서기관의 사과를 받고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위에 도와주신 정진후 의원실의 김순이 보좌관님,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신 여러 오프라인과 페이스북 친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쩌다 당한 봉변이지만, 제 권리와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조차 무시했던 국회 시스템과 문화 개선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와 제 친구가 겪었던 일에 공감하고, 제 의사를 국회에 전달할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땡큐 감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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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학생

대학생이라는 공인된 백수 시절을 한껏 누리며 사는 청년. 거주지는 호기심 천국. 좋은 사람들 있는데라면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일단 하는 얘길 들어 본다. 그래서 가끔은 본인이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재밌는 얘길 해주는 사람들(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건지 헷갈린다. 어쨌든 이런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볼 작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태어나 줄곧 자란 한국이 담론과 성찰이 자유로운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 →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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