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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독일 세입자가 본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한미순 / 독일사회복지연구소 대표) (⏳4분)

최근 뉴스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투기 세력에게 더 이상 기회는 없다”며 오는 5월 9일로 예정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예정대로 종료하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기득권 언론과 투기 세력은 ‘시장이 얼어붙는다’며 아우성이지만, 독일 베를린에서 사는 나는 이 방향이 맞다고 확신한다. 아니, 이것만이 우리가 꿈꾸는 ‘대동세상(大同世上)’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월 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도세 중과 유예를 5월 9일 종료하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독일에서는 집을 사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서, 집은 언제 살 거야?”

한국에 사는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면 안부 인사 끝에 종종 따라붙는 질문이다. 독일 베를린에 산 지 꽤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세입자다. 내 주변의 독일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교수도, 의사도, 변호사도 월세집에 산다. 그들이 돈이 없어서 집을 안 사는 게 아니다. 굳이 수억 원의 빚을 지고 ‘내 집’이라는 등기 권리증에 목을 맬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내 집 마련’이 생존의 문제지만, 독일에서는 그저 선택의 문제다.

한국 사회가 ‘부동산 공화국’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세입자의 삶이 너무나 불안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의 ‘전세 사기’ 뉴스나 ‘빌라왕’ 사태를 보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피해자들이 겪는 주거 불안의 공포였다. 한국에서 세입자는 철저한 을이다. 2년마다 짐을 싸야 하고, 집주인의 ‘나가라’는 한마디에 피가 마르는 설움. 그 공포가 온 국민을 ‘영끌’ 투기로 내몰았다.

하지만 독일은 다르다. 독일 민법은 임대차 계약을 단순한 상거래가 아닌, 인간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로 본다. 그래서 이곳에는 쫓겨날 공포가 사실상 없다.

독일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집주인 본인이 들어와 살아야 하는 명백한 사유가 입증되지 않는 한, 세입자는 원한다면 평생 그 집에서 살 수 있다. 월세도 집주인 마음대로 못 올린다. 베를린 같은 대도시는 ‘미트슈피겔(Mietspiegel, 임대료 거울)’이라는 기준표가 있어, 주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올리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다.

베를린 같은 대도시는 ‘미트슈피겔(Mietspiegel)’이라는 임대료 표준표가 있다. 집주인은 리모델링 등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표준표 기준 10% 이상 임대료를 올리지 못한다. 표를 보면 오래된 집일수록, 평수가 클수록 m²당 임대료가 저렴하게 책정된다. 위 표는 베를린 시청에서 발행한 원본 데이터 중 가장 대표적인 평형을 뽑아 재구성한 것이다. ©한미순 정리

이러한 세입자 보호 기조는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에 주거비 부담 완화를 위해 ‘임대료 제동 장치(Mietpreisbremse)’의 적용 기한을 2029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주택 부족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규제 완화가 아닌 세입자 보호 유지를 택한 것이다.

시장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세입자의 주거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공고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독일에서는 소유하지 않아도 평생 내 집처럼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제도로 보장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부동산 정책의 종착역 아니겠는가.

대기업 주택 24만 채 몰수한 베를린

독일도 최근 주택 부족과 임대료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위기가 닥치면 한국은 ‘아파트를 더 짓자(공급)’고 하지만, 독일은 ‘세입자를 더 보호하자(규제)’고 외친다.

베를린 시민은 몇 해 전, 대기업이 소유한 주택 24만 채를 몰수해서 공유화하자는 주민 투표를 통과시켰다. 한국 시각에서는 과격한 빨갱이(?)들의 주장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집은 돈을 불리는 투기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발 뻗고 자야 하는 공공재라는 사회적 합의가 깔려 있다.

한국 정부가 독일을 보며 배워야 할 것은 사회주택이라는 건물의 형태가 아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다. 한국의 청년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사는 이유는 아파트가 좋아서가 아니다. 세입자로 사는 삶이 너무나 비참하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집은 ‘사는 것’ 아니라 ‘사는 곳’

만약 한국에서도 이사 걱정 없이, 터무니없는 임대료 인상 걱정 없이 20년, 30년 살 수 있다면? 그래도 사람들이 미친 듯이 아파트 투기에 매달릴까? 소유하지 않아도 거주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사회. 그것이 독일이 한국의 ‘부동산 계급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보수 세력은 이재명 정부의 기본주택 정책을 두고 재정을 파탄 내는 포퓰리즘이라 공격한다. 하지만 눈을 돌려 독일을 보라. 독일 전체 주택의 상당수는 공공이 통제하거나 사회적 목적을 가진 주택이다. 독일 사회가 증명하듯, 주거가 안정이 되면 사람들은 불로소득인 부동산 투기에 매달리지 않고, 대신 창의적인 노동과 혁신에 집중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경제 활성화로 가는 길이다.

지금 한국의 부동산 기득권 세력은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독일의 강력한 세입자 보호법과 사회주택 모델은 투기를 근절하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꿈이 아님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집이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 되는 세상. 억울한 사람 없이 누구나 따뜻한 보금자리를 누리는 대동세상은 멀리 있지 않다. 독일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재명 정부의 뚝심 있는 부동산 개혁을 베를린에서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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