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커뮤니티 자본론’ 저자 전정환, “연결을 넘어 커뮤니티로… 변화는 장기 복리와 네트워크 승수 효과로 온다.”
지역 소멸과 공동체 붕괴, 해법을 찾아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에 더 깊숙이 뛰어들고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가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그 과정을 추적하고 해법을 모색하자는 제안입니다. 슬로우뉴스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 두 번째 시리즈로 “오래된 질문: 지역 소멸과 공동체 붕괴, 해법을 찾아서”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정확한 질문과 현장의 통찰에서 최선의 해법이 나온다고 믿습니다. 학교폭력 시리즈도 추가 취재를 하고 있고 계속 보완할 계획입니다. 슬로우뉴스의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과 조언,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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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로 보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지역소멸, 돈 준다 집 준다로 해결할 수 없다
“지역의 문제는 기회의 소멸, 우연히 운좋은 기회를 맞닥뜨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
2021년 12월, 제주 원도심의 중앙로 사거리에 38년 만에 횡단보도가 들어섰다. 횡단보도를 만들면 지하상가에 손님이 끊긴다는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동문시장이나 탑동을 찾는 사람들은 지하상가를 찾기보다는 아예 길을 건너지 않게 됐다.
결국 상가진흥회가 나서서 상인들을 설득했고 제주시가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걸 조건으로 횡단보도를 놓기로 했다. 이해관계를 조금씩 내려놓고 멀리 내다보기 시작하니 비로소 변화가 가능하게 됐다.
네 가지 원인과 네 가지 접근.
전정환(커뮤니티엑스 대표)은 ‘커뮤니티 자본론’에서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 첫째, 경계인 커뮤니티 리더가 없기 때문이다. 지하상가 상인들과 중앙로 상인들의 이해관계가 다른데 둘을 조정할 리더가 없었다.
- 둘째,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지금도 안 좋은데 횡단보도를 놓으면 지하상가 손님이 더 줄지 않을까.
- 셋째, 협업의 커뮤니티 문화가 없다. 양보하면 손해고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 넷째, 정치와 행정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서 이해 관계를 조율하고 시너지를 끌어내는 경험을 해본 적 없다.
문제를 정의하면 해법도 명확해진다.
- 첫째, 커뮤니티 리더를 키워야 하고,
- 둘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 셋째, 공감과 협업, 시너지 창출의 경험을 만들어야 하고,
- 넷째, 커뮤니티 자본을 키우고 중장기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정치와 행정도 진화해야 한다.
제주 중앙로 사거리의 문제를 해결한 것과도 같은 방식이지만 38년이나 기다릴 수는 없다. 그래서 전정환이 만든 것이 ‘커뮤니티엑스웨이’다. 연결과 융합을 촉진하고 원주민과 이주민, 경계인을 넘나드는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 부딪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우연히 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시.
전정환은 다음커뮤니케이션 개발 본부장 출신으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7년 동안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을 맡았다. 제주 기반의 스타트업 기업들에 직접 시드투자를 하고 인큐베이팅 사업을 벌였고 로컬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육성했다. 로컬 브랜딩 스쿨과 혁신 창업 거점 W360 등을 운영했다.
전정환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7년 동안 “우연히 운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실험을 했다. 기업과 인재들이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 서울에 가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지역은 황폐화되고 기회는 줄어든다. 문제가 달라졌으면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전정환은 성장의 기회를 복원하려면 커뮤니티 기반의 선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봤다.
전정환의 커뮤니티 생태계 실험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했다.
- 첫째, 제주 안에 있는 분절된 주체들을 발굴해서 연결했고,
- 둘째, 제주에 없는 자원을 갖고 있는 주체를 초청해서 연결했다.
전정환은 커뮤니티를 끊임없이 재탄생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연결(Connect)과 커뮤니티(Community), 공동창조(Co-creation)의 3C 방법론으로 정의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3층에 마련한 제이스페이스(J-Space)는 공유 업무공간이다. 전정환은 이곳에서 달마다 ‘런치합시다’와 ‘사업 아이디어 피칭 데이’를 운영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문가 초청 워크숍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제주에서 창업한 사람들이나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확장해 나갔다. 주변부에서 가볍게 참여하다가 중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공간과 프로그램을 디자인했다. 담배 피우러 갈 때나 만나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났다.
워케이션과 네트워크,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
물론 공간을 마련했다고 저절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정환은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커뮤니티 생태계를 만드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굳이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리를 지킬 이유가 없게 됐다. 단순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일하고 오는 게 아니라 경계를 넘어 새로운 커뮤니티와 얽히게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게 핵심이다.
‘제주다움’(2015~2019, 현재는 코로나19로 중단된 상태)은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이다. 10~15명의 스타트업 임직원과 예비 창업자, 창작자들을 선정해서 숙소를 제공하고 공유 오피스를 제공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네트워킹 시간에 필수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제주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있었지만 어느 지역에서나 해볼만한 시도다. 사람을 중심으로 관계를 확장하고 우연한 기회를 늘려나가는 전략이다.
전정환은 “선의의 덫을 놓았다”고 표현했다. 다양한 가능성이 다층적으로 부딪힐 때 청년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도시가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지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이곳에 머물다가 입주기업이나 보육기업이 되기도 하고 입주 기업들이 멘토를 만나거나 협업의 기회를 찾기도 했다. 전정환에게는 “여럿이 공감하고 실천하는 스토리는 비전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제주다움’에서 만난 어반플레이와 재주상회가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고 입주 기업이 ‘제주다움’에 참여한 건축가와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체류했다가 입주 기업이나 보육 기업이 된 사례도 많다. 전정환은 “인재와 커뮤니티를 연결해 선순환 생태계를 만든다는 전략이 작동하는 모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자본에도 근력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자본론’을 읽으면서 몇 가지 질문이 있었다. 지역의 해법을 지나치게 창업과 스타트업 생태계 중심으로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전정환은 모두가 창업에 뛰어드는 건 곤란하지만 도전과 새로운 발상에 부딪혀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계속해서 시도하고 시행착오 끝에 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계에 부딪히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핵심은 “내가 가진 리소스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트러프러너십(기업가 정신)에는 계산된 위험 감수가 필요하다. 해보고 안 되면 접는다고 생각하고 뛰어들면 된다. 실패하더라도 남는 게 있다.
“지역에 변화를 만들 때 역방향의 리질리언스(회복 탄력성)이 작동한다. 원래의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있다. 그걸 이겨내려면 루틴이 필요하다. 피트니스센터의 PT(퍼스널트레이닝)랑 비슷하다. 꾸준히 했을 때 근력이 생기는 것처럼 커뮤니티 자본도 근력이 필요하다.”
전정환 커뮤니티엑스 대표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에서 확장 가능하고 복제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것과 달리 전정환은 “변화는 장기 복리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매뉴얼이 있는 게 아니고 지역마다 커뮤니티마다 조건과 환경이 모두 다르다. 전정환이 발견한 매뉴얼은 커뮤니티 자본을 늘려나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한계를 넘어서라는 조언이다.
지역 소멸의 해법으로 꼽히는 일본 카미야마(神山)의 경우도 ‘커뮤니티 조성자’들과 이들이 30년에 걸쳐 구축한 커뮤니티 자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정환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넘어서서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연결하고 융합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모두가 단기적인 성과를 바라지만 10년 이상 중장기 전략을 잡고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협력을 끌어낼 때 네트워크 승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커뮤니티 자본의 격차를 허물자.
전정환도 “원래는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스타일이었는데 바뀌었다”고 한다. 결국 모험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 위험을 줄여주는 시스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했고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커뮤니티 자본이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지역 단위에서 커뮤니티 자본의 격차를 허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창조경제혁신센터 같은 네트워크 허브도 중요하지만 지역 기반의 다양한 커뮤니티 실험이 늘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창의적 경계인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흥미롭다. 서로 다른 커뮤니티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융합하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창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커뮤니티 자본이 일단 선순환을 통해 성장 궤도에 오르면 한 사람의 커뮤니티 리더의 영향력을 넘어서서 많은 커뮤니티 리더가 등장하게 된다. 그들이 다양한 영역과 지역에서 커뮤니티 자본을 키워감으로서 커뮤니티 자본은 시간이 지날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한 사람의 커뮤니티 리더가 많은 사람들을 동참시키면서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전정환 커뮤니티엑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