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도 약속했었지.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라도 되는 것처럼.”… ‘어머니 대자연’에게 야단맞는 팀쿡.
애플의 이번 신제품 공개 행사는 특별했다.
USB-C 포트를 도입한다는 건 이미 알려졌고 아이폰 15나 애플워치 울트라 2 등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누군가는 또 “혁신은 없었다”고 외칠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탄소중립 선언에 무게가 실렸다. 에너지 소모를 줄였고 재활용 부품을 쓰고 포장재에 플라스틱을 없애고 항공 운송 대신 선박 운송을 늘리기로 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애플이 넷제로 달성 계획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0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이 가는 길이 다른 기업들의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넷제로(Net-Zero)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Net) 배출을 0(Zero)로 만드는 것을 뜻하고,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은 개인 또는 단체가 직접·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의미한다.
- 애플은 2030년까지 100% 청정 에너지로 전환하고 2050년까지 탄소 발생을 90%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탄소 배출량을 45% 이상을 줄였고 같은 기간 매출은 65% 늘었다.
- 애플 본사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 업체들에도 탄소중립을 요구했고 배출량의 90%에 이르는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제품을 이용할 때 드는 전기도 청정에너지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를테면 애플워치를 충전하는 데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한지 예측하고 그만큼의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
-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배출하는 만큼 배출량을 상쇄하겠다는 계획이다.
좀 더 들어가 볼까.
- 애플 워치 시리즈 9는 최초로 100% 재활용 알루미늄을 썼다. 아이폰 15 패키징은 99% 이상 섬유 기반이다.
-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해상과 철도 운송을 늘리기로 했다. 해상 운송은 항공 운송보다 95% 적은 탄소를 배출한다. 포장을 줄여서 같은 컨테이너에 25% 더 많은 제품을 실을 수 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 코발트와 텅스텐 같은 희토류 소재를 재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4만 톤 이상의 전자 폐기물을 재활용 시설에 보냈다고 한다.
- 2025년까지 모든 배터리에 100% 재활용 코발트를 쓰고 모든 인쇄 회로 기판에 100% 재활용 주석과 재활용 금도금을 쓴다.
- 맥세이프 가죽 지갑도 파인우븐(FineWoven; 직물 소재)으로 바꿨다. 68%의 재활용 원료로 만드는데 가죽보다 훨씬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 애플의 감가상각률은 5년이 지나도 52.5%나 된다. 안드로이드 플래그십 모델과 비교하면 30% 이상 높다. 심지어 2016년에 출시한 아이폰7도 보상 판매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 애플의 탄소 발자국 가운데 24%가 소비자들이 제품을 충전할 때 발생한다는 접근도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320MW 규모의 태양광 프로젝트에 투자했고 유럽에서도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어머니 자연’의 경고.
- 신제품 출시와 함께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이라는 광고를 공개했는데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긴 하지만 진정성과 야망이 엿보인다.
- ‘어머니 자연’을 맡은 배우는 옥타비아 스펜서였다. (영화 ‘헬프’와 ‘히든 피겨스’에 출연했다.) 그는 ‘어디 한번 말해 봐’ 하는 삐딱한 표정으로 앉아 보고받는다.
- “자네가 2020년에 약속했지. 2030년까지 탄소 발자국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무슨 대단한 환경주의자라도 되는 것처럼.”
- “우리는 모든 포장에서 플라스틱을 뺐습니다.” “모든 맥북과 애플TV, 애플워치의 외장에 100% 재활용 알루미늄을 쓰고 있습니다.”
- “아이폰 케이스에서 가죽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자연’이 가죽점퍼를 입은 임원을 가리키면서 툭 쏜다. “당신부터 단계적으로 퇴출해야겠네.”
- “100% 청정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건물도요.” “항공 운송을 줄이고 있습니다. 배출량이 95% 줄었습니다.”
- “파라과이, 브라질, 우루과이, 콜롬비아, 케냐에서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물 사용량도 줄였습니다. 630억 갤런을 줄였습니다.”
- 마지막으로 팀 쿡이 나서서 말한다.
Tim: 2030년이면 모든 애플 제품이 기후에 끼치는 영향이 넷제로가 될 겁니다.
어머니 대자연: 모든 제품 말인가?
Tim: 네 모든 제품이요.
어머니 대자연: 그래야만 해.
Tim: 꼭 그럴 겁니다.
- 그제야 어머니 자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떠난다. “엄마 실망하게 하면 안 된다.”
생각해 볼 부분.
-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윤석열(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걸 두고 “과학적 근거가 없고, 산업계의 여론 수렴도 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부담이 어떤 건지 과연 제대로 짚어보고 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 지난 3월 발표한 탄소중립 기본계획에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설정한 산업계 탄소 감축 목표 14.5%를11.4%로 낮춰 잡았다. 녹색연합은 성명을 내고 “이번 기본 계획안은 과학의 경고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못한 채 10년의 결정적 시간을 허비하게 될 졸속적인 계획”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