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칼럼] “문재인 정부 28개 부동산 규제를 합친 것만큼 강력하다”(?) 6.27 부동산 대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13분)
최근 집값 상승 추세가 심상치 않았다. 이에 새 정부 출범 이후 3주 정도 만에 강도 높은 대출 규제 방안이 발표되었다. 빈틈을 찾아 돈이 몰릴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지 모르나, 어느 정도는 상승추세가 진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주말을 끼고 언론은 대체로 ‘효과 없음’보다는 ‘부작용’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대출로 내 집을 마련하는 길이 막혔다’며 ‘사다리 걷어차기’ 정책이라는 비판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몇억 이하는 얼마를 빌릴 수 있다며 복잡한 시뮬레이션과, 사실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며칠 사이 기가 막히게도 확보해 낸 당사자들의 육성 인터뷰들 틈 사이에, 대책의 이름을 제대로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책의 이름은 그런데 ‘주택 가격 안정화 방안’이 아니다. ‘내 집 마련 활성화방안’도 아니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다. 혹시나, “집값을 잡지 못하면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함일까? 글쎄, 한번 살펴보자.


집값이 잡혔던 몇 안 되는 시기 중에 IMF 구제금융 시기가 있다
1998년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12.4%, 서울은 13.2%가 떨어졌다고 한다. 당시엔 집값만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비싸진 기름값으로 차량 통행이 줄어 교통혼잡도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고환율로 인하여 치솟은 휘발유 가격이 일종의 주행세 내지는 혼잡통행료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기름값이 부담되지 않는 이들은 그래서 오히려 차가 덜 막히고 좋다며, “이대로!”를 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엇인가 기시감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현금 부자’들만 신나서서 주택을 ‘줍줍’한다는 이야기와 흡사한 상황이다.
혼잡통행료가 부담되지 않는 집단은 오히려 그 규제의 수혜자가 된다. 푼돈 조금만 내면, 경쟁자들이 사라진 공간을 독차지하게 된다. 통행료가 비싸질수록 수혜자의 범위는 줄어들겠지만, 그 허들이 별 문제가 안 되는 이들에게는 경쟁자들이 줄어든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편익이 더 커질 것이다.
또 다른 수혜 집단은 어디일까? 대중교통 이용자들일까? 버스, 택시, 지하철 등 세부적으로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택시의 경우는 (택시가 대중교통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넓어진 길의 편익을 함께 누릴 것이다. 그리하여 만족도가 10점 늘었다면, 이용자가 많아져서 예전보다 택시를 잡기 어려워지는 바람에 5점이 감점되어 총점 +5점이 된다고 쳐보자.
버스의 경우는 길이 넓어진 효과를 일부만 누려서, 만족도가 +5점이 늘어나는데, 이용객이 많아져서 7점이 감점되어 총점은 -2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지하철의 경우는 어떨까. 이용객은 버스만큼 안 늘었다 쳐도(7점이 아니라 5점 감점?) 혼잡통행료로 한산해진 길의 편익은 ‘전혀’ 누리지 못하여(+0점), 전체적으로는 -5점이 된다면 버스보다도 불리한 상황이 되겠다. 그렇다면 지하철 이용객들이 제일 피해자일까?
피해 집단을 생각해 보자. 운전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우선 떠오른다. 이들은 혼잡 통행료 정책에서 아예 예외로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혼잡통행료 징수 대상이 되는 경우 중에는? 우선 어제 막 자가용을 계약한 사람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아니 그동안 대중교통만 이용하다가 이제 돈 좀 모아 막 차를 샀는데!’ ‘아이도 생겨서 육아 때문에도 차가 필요한데, 저출생 대책과 충돌하는 것 아닌가.’ ‘아주 작은 소형차를 사려 했던 나는 통행료 부담으로 하지도 못하고, 저 연비도 안 좋은 대형 구급 차량을 모는 금수저는 더 넓어진 길을 신나게 달리고!’
이렇게 보면 혼잡통행료 정책은 교통편의 정책이 아님은 물론이요, 사회정의에도 역행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를 시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차량이 배출하는 매연이 주원인이던 시절에 대기오염이 너무 심하다면, 교통편의 보다 시급한 과제가 통행량을 줄이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체가 너무 심해져서 긴급차량이나 버스도 너무 다니기 힘든 상황이 너무 심각한 경우에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올림픽과 같은 큰 국제 행사가 열릴 경우는 ‘돈을 내면 통행을 허용해 준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량 2부제를 실시해서 강제적으로 운행을 못 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상황에도, 각각 홀/짝 번호로 차량을 2대 소유한 이들은 혼잡통행료나 차량 10부제보다 훨씬 더 넓어진 도로 위를 유유히 달릴 수 있다. 규제의 숙명이다. 규제를 강화할수록, 그 정도 규제는 부담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 유리한 판이 펼쳐진다.
그런데도 규제를 해야할 수도 있다. 이런 역설적인 숙명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말이다. 규제의 목적에 따라 차량 통행량 전체를 줄여야 하는 비상한 상황이라면, 혼잡통행료 정도는 너무 온건한 것 아니냐는 평가 속에서 도입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혼잡통행료 자체는 필요하면 시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서민층의, 교통약자의 교통난 해소책”이라고 홍보하거나, 스스로 그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 앞서 +5점을 매긴 택시 이용객들은 고개를 끄떡일지 모른다. 그러나 -2점을 매긴 버스나 -5점을 매긴 지하철 이용객들의 반응으로는 “도대체 이 정부는 믿을 수 없어”가 자연스럽겠다.
이렇게 되면 애초 목적이었던 ‘절대 통행량의 감소’도 달성하지 못하고 악화한 여론 속에 정책은 좌초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부의 정책을 저주할 만반의 준비가 된 이들로 둘러쌓이기까지 한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나서 ‘역시 차를 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하는군’이라며, 엉뚱한 반성문을 쓰면 더더욱 곤란하다. 정책의 취지를 스스로부터 혼동하고 시행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혼잡통행료 제도를 통해 서민층의 출퇴근길 고통을 줄여주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악화하면 황급히 이를 거두고, 태풍이 와서 사람들이 집에서 안 나오니 교통난이 해결되었다고 한숨 돌리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 될 것이다.
서민층의 교통난 해소는, 혼잡통행료 제도로 거리가 한산해져서가 아니라, 공공의 적극적 개입으로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해야 해결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혼잡통행료로 걷힌 돈이 요긴하게 쓰일 순 있을 것이다.)

주택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면, 정부는 소비자 대출을 조일 수 있다. 아니, 그래야 마땅하다. 소비자들이 빌리는 돈이 줄어들면, 집값 상승 추세는 멈출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의 ‘내 집 마련’이 쉬워지는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은, 당분간은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이용객만 많아지고 길이 넓어진 효과는 전혀 못 누렸던 지하철과 같은 영역이 주택 분야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은 그래서, 이번 대책의 이름은 “내 집 마련 진흥 방안” 또는 “주택 가격 안정화 방안”이 아닌 것이다. 보도자료에서 정책의 도입 배경이나 향후 계획을 보라. 우려를 표하거나 챙기겠다고 하는 과제에 ‘자가 소유 진흥’은 물론이거니와,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표현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집값이 안 잡히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정책의 본령이 그런 것임을 가감없이 드러낸 것이다.
물론 대출 규모 제한의 결과로 주택 가격의 안정이 뒤따라올 수도 있다. (죽, 안 그럴 수도 있다.) 이번 대책의 결과는 가격 안정을 가져올 확률이 좀 있어 보이긴 하는데, 며칠 사이 제2금융권이나 다른 빈틈을 찾아낸 선수들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규제를 우회해서 이익을 챙기게 될지도 모른다. 벌써부터 외국인들의 줍줍을 걱정하는 기사들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내국인의 거래량은 전체적으로 좀 줄고, 국내의 가계부채 규모는 제어가 되어도, 생각보다 집값이 잘 안 잡힐 수도 있다. 그건 그거대로 막아야 할 일이다.
한편으로는, 내 집 마련에 필요한 각자의 소득 대비 대출액의 규모는 어느 수준이 적절할지에 대해 별도로 토론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소득의 절반을 30년 동안 갚는 선 이상은 곤란하다는 기준은 하나의 그럴듯한 예시가 될 수 있다. 사실 그 이상의 집은 사지 않는 것이 본인이나 경제 전체를 위해서도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물론 이에 대한 토론은 가능할 것이다. (대출을 그만큼 안해주면 평생 저축해도 못사는 집값이라는 항변도 있는데, 이 말은 뒤집으면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집값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집을 사게 도와주는 것이 맞을까? 결국 오르면 팔아서 갚겠다는 이야기라면, 조카세대는 40년, 자식세대에겐 50년동안 갚아도 못 갚을 집값을 물려주고 우리는 망하지 않을까?)
그러나 경제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 부채 총량을 제어하겠다는 취지의 정책에 대고, “그럼 자수성가한 고소득층은 강남의 비싼 집을 사지 말라는 말인가요?”라는 항변은, 마치 출동하는 소방차에다 대고 ‘왜 하필 내가 신호를 건너려는 지금 사이렌을 울리며 들이닥치냐?’는 항변만큼이나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소방차는 불을 끄러 가야 하고, 이미 횡단보도에 서 있던 분이라면 다음 신호에 좌우를 잘 살피고 건너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차피 횡단보도와 좀 거리가 있어서, 이번 신호에 건널 생각도,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 너무 한가한 이야기 같으면, 별도의 대안들도 물론 요구해야겠다. 혼잡통행료의 시행(만)으로는, 앞서 막 자가용을 산 사람이나, 더 붐비게 된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처럼, 실제로 당장은 더 불리해지는 사람들이 분명 생겨난다. 그러나 배출가스 때문에 전체 통행량을 줄이는 게 더 시급한 문제라면, 차라리 일시적인 (또는 지속적인) 대중교통 무료화를 요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대중교통 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전기차 도입을 활성화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다. 나아가 주4일제 근무도 획기적인 교통문제 해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주택 분야에서라면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할까?
대출규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금이나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세금 걷는다고 집 값이 안 잡힐 수도 있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매도자나 임대인의 권리에 비해 매수자나 임차인의 권리는 매우 취약한 매도자 우위의 시장에서 별도의 조치가 없는 한, 세금은 전가되기 십상이다. 세제를 강화하면 기대수익률이 낮아진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이야기이겠지만, 행위자와 제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실의 복잡계에서는 항진명제가 아닐 수도 있다. 우회로가 있다면 불을 끓는 물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 기름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해는 마시라. 그래서 세금을 걷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세금은 조세 정의의 원칙에 따라 제대로 걷어야 한다. 자산가치 유지의 대가라 할 수 있는 보유 단계의 세제든, 소득이 발생한 것에 과세하는 양도 단계의 세제든, 기타 취득 시의 경우든, 조세 정의에 따라 합당하게 걷어야 한다. 지금까지 너무 낮아 조세 정의에 부합하지 않았다면 더 걷어야 하고, 지난 정부에서 부당하게 낮췄다면 원상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세금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라고 봐야 하는지는, 또는 매도자 우위의 시장에서 그게 가능한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그럼에도, 다시말하지만, 세금은 조세 정의에 맞춰 걷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집값이 잡히지 않거나, 또는 집 값이 잡혔거나 해서, 올렸던 다시 세금을 낮출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세금은 세금의 논리대로 걷을 일이다.

정비사업은 어떨까. 공급을 해도 아무 곳에나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입지 조건이 갖춰진 곳에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므로, 이미 검증된 곳에 자리한 기존 시가지를 재개발하거나 주거 단지를 재건축하는 것이 (유일하게 효과적인) 공급 방안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다. 일정 부분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과연 정비사업을 하면 집값이 안정될까?
생각해 보자. 정비사업을 하면서 지금 집값보다 나중 집값이 더 싸지길 바라는 조합원은 없을 것이다. 늘어나는 물량 덕분에 공급 효과가 있다고는 하는데, 글쎄, 아주 예전에 지어진 용적률 100% 근방의 저밀 단지들이라 해도 순증 물량은 그리 많지 않거나, 그나마 운 좋은 경우라 해도 여전히 자기 분담금이 너무 커서 진행이 순조롭지 못한 경우도 많다. 여기까진 많은 이들도 지적하는 바다. 더 큰 문제는 멸실 효과다. 전면 철거 방식의 정비사업은 이주 난을 대량 발생시킨다. 도시화 초기에야 논밭에 아파트 단지를 짓니 한 번에 대규모 단지를 지어도 이주민 문제가 양적으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많은 이들이 2010년대 후반의 주택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코로나 대응을 위한 경기부양책 외의 요인으로는 정비사업의 정체로 인한 신축 물량의 부족, 1인 가구 증가, 임대 사업자의 특혜 등을 꼽는데, 증가한 1인 가구가 주로 찾는 주거유형이나, 임대 사업자로 등록된 이들이 주로 보유한 주택을 들여다보면, 가격이 폭등한 주택들과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조금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정비사업으로 인한 멸실 효과다.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라서 직접 수치를 찾아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2017년에 서울에서는 주택이 4만 7천 채가 넘게 사라졌다.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으나, 이들 중 대부분은 정비사업으로 인한 철거 때문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017년 서울에서 준공된 아파트 물량 3만 가구보다 1.5배 이상 많은 수치다. 집값이 안 오르면 신기하다.

오해는 마시라. 그래서 정비사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훗날 새집이 부족해져서 집 값이 오른다는 걱정 이전에도 정비사업은 해야한다. 당장의 주민이 낡은 집에서 억지로 사는 건 주거권의 차원에서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은 필요하면 해야 한다. 하지만 정비사업을 한다고 집 값을 잡기를 기대하는 것은, 혼잡통행료를 매긴다고 지하철이 편해지길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비약이다.
정비사업은 집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집이 낡아서 할 일이고, 그로 인해서 집 값이 오르거나 내리는 건 다음 문제고, 대처할 과제다. 뒤집어 말하면, 집값이 잡히지 않더라도 필요한 정비사업이라면 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한 공공의 대책은 형평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서 마련할 일이다. 이주민이 좀 발생해도, 집값이 좀 비싸져도, 정말 낡고 위험한 집에서 살고 있다면 철거하고 이주대책을 마련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정부는, 세금, 공급 계획, 소비자금융, 그리고 앞에선 생략했지만, 공급자금융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는 애초의 취지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지거나 엉뚱한 반성문을 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애초의 목적 달성과 별개로, 혼잡통행료만 부과할 것이 아니라 대중교통수단을 확충해야 하듯, 집값, 또는 주거 안정은 별도의 대안으로 계속 추구해야 한다. 이제 너희들은 붐비는 지하철만 타라고 손을 떼면 정말 큰일이 날 것이다.

별도의 대안이라면?
자세한 설명은 주제별로 별도의 지면이 필요하겠지만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⑴ 자가 마련을 돕고, ⑵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며, ⑶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면서 민간 임대 부문의 체질도 개선되도록 임대 부문의 공급생태계를 다변화하고, ⑷ 전세는 월세 부담이 커지지 않도록 하면서 질서 있게 월세로 전환하며, 월세나 전세에 대한 현금 지원이 주택의 품질이나 안전성과 연동될 수 있도록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방안들이 있을 것이다.
그린벨트 대신 신도시? 부정적이다. 어떤 신도시도 3기 신도시보다 빨리 공급할 수는 없다. 10년 뒤 수치 200만호를 220만 호로 늘리는 것보다, 3년 뒤 5만호가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신경 쓰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속도로 따지면 정비사업이나 신도시보다는 차라리 남산을 밀거나 한강을 복개하는 것이 빠를 것이다. 경복궁 자리도 좋겠다. 말해 놓고 보니 정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까 봐 두렵다. 그러나 그렇게 주택으로 채우면 그 중요한 ‘서울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까? 아니, 그 전에 그 많은 물량을 착공할 수나 있을까? 망할 것이 뻔한 사업에 건설사들이 뛰어들 것인가?
자가 부문에서는 적립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지분 공유형 주택이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지 않으면서 내 집 마련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환매’를 의무화하여, 첫 분양자가 시세차익을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2기 입주자도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자세한 설명은 ‘리스가 ‘반값’ 자동차가 아니듯 토지임대부 주택은 그냥 ‘반전세’일 뿐’ 참고).
그리고 얼마 전에 정부에서 추진하려다가 유보 중인 ‘지분형 모기지’와 달리, 일반 시중의 주택을 구입할 때 적용하여 기존의 높은 주택 가격을 떠받치는 것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공분양주택 또는 민간 주택이라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주택에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추가하자면, 자기 분담금이 부담되는 정비사업 조합원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로에너지주택으로 짓기 위해서 투입되는 ‘녹색금융’이 결합한다면, 에너지기업도 지분권자로 참여할 수도 있겠다.

한편, 이에 대해 ‘(가칭)국민주 리츠’가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차원이기도 하고, ‘투기까지는 굳이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벼락 거지가 되기는 싫고’, ‘집 한 채를 다 살 돈은 없지만 그래도 모은 돈이 어찌 됐든 잘 불려 가고 싶은’ 분들의 조각 투자를 선한 방향으로 활용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주택도시기금의 역할을 더욱 진취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다수의 비슷한 연구보고서나 선거 공약이 나오고 있고, 최근에는 일반 시민의 참여 폭을 더욱 넓혀 ‘시민 주 리츠’라는 이름으로 제시되는 안들이 있다.
공공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세 가지 차원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소유와 임대의 대립’의 관점에서 마치 무소유를 실천하자는 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자가 소유를 돕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 적극적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쟁상대는 흔히들 오해하듯, ‘자가 소유’가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이다. 부담할 수 있는 임대료와 안정적인 거주기간을 통해 주거 안정을 누리면서, 열심히 저축해서 적정한 시점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주택이 공공주택인 것이다.
또한, 노동이 유연화된 시대에는 더 이상 ‘빚내서 집 사기’가 보편적인 전략이 될 수 없기에, 공공임대주택은 꼭 필요하다. 집이란 게 애초에 비싼 재화고, 투기가 없고 토지비가 0원이어도 건물값으로만 해도 이미 웬만한 이들의 10년 저축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물건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는 대출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런데 비정규직자에게는 은행이 대출을 잘 안 해주니, 결국 주택 문제는 노동문제와도 연결된다. 물론 주택 정책 차원에서 노동문제까지 다룰 순 없기에, 주택정책 차원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이 꼭 필요한 것이다.
둘째, 공공주택은 ‘시장에서 자력으로 집을 구하기 어려운 계층’에게 시혜적으로 제공하는 주택이라는 것이 기존의 인식이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정치 세력이 같은 입장이다. 그게 아니라, ‘시장의 결함으로 인해 공공의 개입이 없다면 현대 사회에서 적정 품질과 입지 조건을 갖춘 주택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공급하는 주택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존의 인식은 개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에서 문제는 그러나 시장에(도) 있다. 좀 더 자세한 맥락과 배경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셋째, 공기업 만능주의보다는 사회주택, 또는 풀뿌리 부문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공공 혼자서 공급하는 것보다 공공과 시장, 그리고 제3 섹터 혹은 소셜 섹터 등 풀뿌리의 자발성과 호혜성의 원리가 결합해, 공급생태계를 다변화하는 것이 변화하는 인구, 사회, 공간구조에 더욱 적합한 대안이다. 방식은 공공주택의 기획과 운영을 제3 섹터에서 맡는 방법도 있고, 앞선 리츠를 활용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저 ‘어쩌면, 사회주택’ 또는 이에 대한 서평들이나 인터뷰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공공주택 비중이 높은 나라 중에서 싱가포르 모델이 있고 오스트리아나 네덜란드 모델 등이 있는데, 어느 하나만을 우리 상황에 베껴올 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시국가 싱가포르 모델보다는 균형발전에 근거한 모델 쪽이 낫지 않나, 보고 있다.
균형발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마지막으로, 주택 이외의 분야와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 공간적으로는 균형발전이고, 개인의 생애주기와 재무적 차원에서는 노후보장이고, 가구 차원에서는 돌봄과 교육, 그리고 앞서 언급한 노동 등이다. 노동 의제에서는 고용 안정성 차원도 있지만 노동시간 단축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이렇게 부동산에 올인하는 이유는 불안한 노후 때문은 아닌가? 교육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강남이 강남이 되었을 것인가?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균형발전도 좀 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의 주택문제는 주택 분야 내부에서의 노력보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해결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선은 균형발전의 문제가 시급하다. 단순한 기관 이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고속철도 역 중심으로 유기적 연결을 꾀하는 다극-스마트 분산 국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에 관해서도 ‘컨팩트 시티 오독 배판: 대안은 초고밀화가 아니라 다핵화×연결’을 참고해 주시길.)
오해는 마시라. 주택 분야는 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도 차차 이야기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