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나온 판결 285화] 전세사기 판결에서 정의 훼손한 재판부, 피해자 우선한 ‘모범판결’을 읽어라. (김태근 / 세입자 114 변호사) (⏰16분)
재판으로 넘어간 전세사기 사건들에 대해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너무 많이 선고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형량을 감형하고, 전세사기에 연루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게 유리한 판결을 선고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전세사기의 피해자인 세입자를 우선하는 관점이 판결에 필요함은 물론이고, 전세사기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전세사기 형사사건을 모아 김태근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1.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공인중개사 무죄?
미추홀구 전세사기 형사 판결에 대해서는 2차례에 걸쳐 이미 판결비평을 하여, 미추홀구 전세사기 판결의 문제점을 간단히 지적하기로 한다.
- [2심] 2024-09-13 ‘건축왕’ 감형·무죄, 전세사기에 판을 깔아준 법원
- [3심] 2025-01-24 ‘건축왕’ 일당에 감형·무죄 확정, 전세사기 피해 외면한 대법원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은 ①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불리었던 남모씨가 실질적인 임대주택의 건축주이자, 주택의 소유자였고, ② 남모씨가 소유하고 있던 2,700여 세대의 명의를 그 소속 직원들의 명의로 소유권 등기를 해놓고, ③ 그 소속 직원들을 통해 공인중개사 및 그 주택의 관리업체까지 모두 장악하고 있었던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
그 주택의 세입자로 입주하기 위해서는 건축왕의 직원이었던 공인중개사의 중개가 필수적이었고, 그로 인해 건축왕은 본인이 소유하던 주택의 전세금에 대한 시세 조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인천지검은 이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 2021년 3월을 사기의 개시 시점으로 판단하여, 2024.6.13.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총 665세대, 전세금 536억 원(계속 추가 중)의 피해금액에 대해 사기 등 혐의로 기소를 하였다.

💡 공인중개사법 위반죄 무죄, 공소장 변경했어야
1차 기소사건과 2차 기소사건에서는 모두 공인중개사들의 공인중개사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은 남씨의 기망행위 관련 주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판단하였는데, 아래와 같은 판단은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4호에 그대로 부합한다.
기망행위 관련 주장에 관한 판단 (판결문 중)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에서 중개인이나 임대인에게는 임대차목적물이 명의신탁된 부동산인지 여부와 임대인의 자력유무는 임차인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인정되고, 이와 같은 고지의무위반과 피해자들의 처분행위 사이에는 인과관계도 인정된다.
1) 주택임대차계약의 임차인에게는 임대차관계 종료 시에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는 것이 매우 큰 관심사이자 그 반환을 받지 못할 위험 유무가 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24327 판결 등 참조). 만일 임대차계약에서 임차인이 중개인이나 임대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성 및 그와 관련된 사정을 고지 받았다면 당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
2) 통상적으로 임대차보증금 반환가능성과 관련하여 임대차목적물의 시가와 선순위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 등이 주요 고려사항이 되겠지만, 임대차목적물을 명의신탁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소유한 자의 재정상황이 매우 악화되어 임대차목적물에 관한 경매절차가 개시될 가능성이 임박한 사정이 있다면 이 역시 임대차보증금 반환가능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사정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있는 중개인이나 임대인 측이 이를 임차인에게 고지하지 않았다면 이는 고지할 사실을 묵비함으로써 상대방을 기망한 것이 되어 사기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또한 신규 임대차계약에 비하여 중개인이 관여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은 임대차 갱신계약에서도 위와 같은 신의칙상 고지의무는 요구되므로 갱신계약이라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3) 남씨가 2,708채의 주택을 타인 명의로 소유하면서 타인 명의로 대출을 받고, 위 주택들을 임대하여 받은 임대차보증금으로 다시 자신이 반환해야 할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였는데, 위와 같은 구조에서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할 위험성이 매우 높고, 위 사업구조를 알았더라면 임차인으로서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대차목적물의 실제 소유자인 E의 재정상황은 신의칙상 임차인들에게 고지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인중개사들에 대해 유죄가 선고될 수 있는 법률조항은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제4호의 금지행위도 있으며, 필요하다면 공소장 변경을 할 수 있었는데, 검찰과 법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제4호는 징역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고,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제6호는 징역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하는 형량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공인중개사법 제33조 1항 제6호에 대해 무죄 판결이 반복되고 있고, 이에 대해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는 이상, 공인중개사법 제33조 제1항 4호의 공소사실로 공소장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제33조(금지행위)
① 개업공인중개사등은 다음 각 호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4. 해당 중개대상물의 거래상의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된 언행 그 밖의 방법으로 중개의뢰인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행위
6. 중개의뢰인과 직접 거래를 하거나 거래당사자 쌍방을 대리하는 행위
2. 수원 ‘무자본 갭투기’ 사건: 감정평가사 무죄?
수원 정씨 일가 전세사기 형사 판결에 대해서는 이미 판결비평을 하여, 판결의 문제점을 간단히 지적하기로 한다.
- 2025-04-15 건물 감정가 부풀려 전세사기 저지른 수원 정씨 일가, ‘감정평가법 위반’ 무죄?
피고인 정씨(A), 피고인 B는 부부 관계이고, 피고인 C는 위 A와 B의 아들이다. 피고인들은 2013년경부터 수원, 화성, 양평 일대에서 자신들과 다수의 법인 명의로 별다른 자기 자본금 없이 은행 대출금과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을 자원으로 빌라, 오피스텔을 매수하거나 신축하는 소위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대규모 임대사업(2023.10.경 기준 건물 총 46개 동, 총 788세대 보유, 대출금 합계 744억 원)을 영위해 왔다.
이로 인해 500명이 넘는 피해자가 760억 원 상당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 중 1명은 피고인들의 범행이 드러나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된 후 목숨을 끊기까지 하였다(판결문 기재 내용).
💡 전세사기 가담한 감정평가사 무죄? 이런 판결로는 전세사기 고리 끊어낼 수 없어
수원지방법원은 감정평가사인 C에 대하여 감정평가법 위반죄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 해당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감정평가법 제49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규정.
이와 관련하여, 전세사기 사건에서 감정평가사를 통해 이른바 ‘업(up) 감정’을 하는 것은 이미 굳어진 전세사기의 범죄 구조이다.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 ESG사회혁신센터에서 발간한 “전세사기 백서: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에서 발표한 [전세사기 조직 구조도]의 내용을 인용한다. 법원이 이 사건과 같이 공인중개사나 감정평가사의 전세 사기 가담행위에 대해 관대하게 처벌하면, 전세사기의 고리를 끊어낼 수가 없다.

3. 대구 신탁주택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부당한 재량 개입
대구 신탁 주택 전세사기 형사 판결에 대해서는 이미 판결비평을 하여, 판결의 문제점을 간단히 지적하기로 한다. 형량을 정하는 데 있어, 항소심 재판부의 부당한 재량이 개입된 판결이다.
- 2025-03-24 15억 피해 낳은 ‘신탁주택’ 전세사기, 납득 안 되는 반토막 감형
기존 집주인인 피고인(위탁자)이 신탁 주택에 대한 신탁 계약을 통해 확보한 수익권 증서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60% 가량의 1차 대출 29억 3,000만 원을 받은 후, 2차로 신탁주택 또는 신탁주택에 대한 담보 대출에 대한 설명 없이 주택세입자로부터 전세금 약 15억 5,000만 원을 받아 주택 가치의 100% 이상의 자금을 융통한 사건이다.
기존 전세사기 사건 중 전형적인 사건들이 모두 이처럼 주택 가치의 100%를 모두 금융기관 대출금과 전세금으로, 즉 타인 자본으로 충당한 사건들인데, 신탁 사기도 똑같은 구조이다.

💡 피해 회복 난망한데 ‘피해 회복될 것’이라며 절반 감형?
원심판결 선고 이후 이 사건 임대 주택에 대하여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의하여 공매절차가 진행 중이고, “2024.10.10. 기준으로 감정액이 42억 5,900만 원으로 평가되어 우선수익자인 칠곡신협으로부터의 대출금 합계 29억 3,000만 원을 공제하더라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대부분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이유로, 1심 선고형 5년에서, 2심 선고형 2년 6개월로 감형했다.
2024.10.10. 기준으로 감정액이 42억 5,900만 원으로 평가되어 공매절차가 진행 중이더라도, 통상적으로 감정가의 7~80%로 매각되는 것이 현실이며, 이에 따르면, 최소 29억 8,130만 원(70% 매각 가정)에서 최대 34억 720만 원(80% 매각 가정)으로 매각되는 것을 가정하면, 최소 매각금액 가정 시에는 피해자들의 피해가 거의 회복되지 않으며, 최대 매각금액을 가정하더라도, 약 5억 원 정도가 남아 피해자들의 피해가 각 1/3 정도 회복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피해자들의 피해가 대부분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이유로, 1심 선고형 5년에서 2심 선고형 2년 6개월로 감형하였다. 법률가로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판단이다. 그러나 10년 미만의 선고 형량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상고가 불가능하여, 이 판결은 2025. 2. 15. 이대로 확정되었다.
결국 피해자들의 피해는 회복되지도 않았고, 피해자들이 용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정 변경 없이 피고인의 형량만 1/2로 감형된 판결이다. 이런 판결의 내용에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납득을 할 수 있겠는가?
4. 대구 다가구주택 사건: 아쉬움 있지만 피해자 우선 보호와 세입자 감수성 반영
대구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형사 판결에 대해서는 이미 판결비평을 하여, 법리적으로 중요한 무죄 판결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기로 한다.
- 2025-05-20 대구 전세사기 유죄 확정, ‘피해자 보호’ 우선한 결과
대구 다가구 주택 전세사기 형사 판결은, 해당 피고인이 임대업 외에는 별다른 월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소유한 전체 다가구주택들의 잔존담보가치가 -614,538,000원으로, 피고인이 피해자들과 각각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당시 다가구주택 임대차에 따른 수입 외에 다른 수입이 없었고, 피고인이 소유한 전체 다가구주택의 가치가 피고인이 채무를 부담하는 전체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과 선순위 임대차보증금의 합계액에 미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구주택의 잔존담보가치가 임대차보증금을 초과한 특정 다가구 주택의 임차인 18명, 임대보증금 16억 8,000만 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아쉬움과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다가구 주택은 각 주택의 임차인에게 개별적으로 담보 우선순위가 확보되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판결 이유는 납득할 만하다.
1. 임차인이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의 직접 반환을 기대한다는 사정만으로 충분한 담보를 제공한 임대인에 대하여 담보 외의 변제능력을 임차인에게 알려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담보 제도의 취지나 일반적인 거래관념에 맞지 않다.
2. 임대차보증금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므로, 임대차계약체결 당시 임대차목적물의 담보가치가 임대차보증금을 초과한다면 이후 임대차목적물의 시가 하락으로 임대차목적물의 담보가치가 임대차보증금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
한편, 형량과 관련하여 총 105명의 피해자, 피해금액 88억 6,150만 원 중
1) 피해자 87명, 피해금액 71억 8150만 원에 대해 유죄 판결이 선고되고,
2) 다가구주택의 잔존담보가치가 임대차보증금을 초과하였다는 이유로 특정 다가구 주택의 임차인 18명, 임대보증금 16억 8,000만 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피고인에게 징역형 13년형을 선고한 것은 피해자 보호와 세입자 감수성을 우선한 판결로 평가받을 만하다. 참고로 현행법상 전세사기의 가중 형량은 최고 15년이다.

5. 부산 원룸 사건: ‘세입자 감수성’ 헤아린 가장 모범적인 판결
피고인은 부산 소재 원룸 9채 296세대를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취득한 후, 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 합계액이 건물의 가치를 초과하도록 전세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총 229명의 임차인들에게 약 180억 원에 달하는 피해(판결문 기재 내용)를 입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전세사기 사건에 있어 세입자 감수성을 헤아린 가장 모범적인 판결이다.
“① 사법당국은 전세사기 처벌에 있어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② 자신의 탐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탐욕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즉시 멈춰야 한다. ③ 재산범죄에서 형을 감경하는 가장 중요한 양형요소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제임에도, 이 사건 피해는 제대로 회복된 바 없다. ④ 피해회복의 가능성만으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 ⑤ 법원은 형을 정할 뿐 피고인을 용서해 줄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 ⑥ 사기죄의 피해는 재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맞아 생긴 상처가 아무는 데는 2주나 3주, 기껏해야 몇 개월이지만, 사기 피해가 회복되는 데는 수년에서 최악의 경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⑦ 탄원서의 내용을 상세하게 남기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그저 전시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이야말로 이 사건의 형을 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전문은 아래 박스 참고)

부산지법 동부지원 2024. 1. 24. 선고, 2023고단1574 판결(판사 박주영)
2. 유리한 정상
피고인이 법정에 이르러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점, 2023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벌금 30만원의 처벌을 받은 것 외 전과 없는 점, 피고인의 전력이나 원룸 임대사업의 경위 등으로 볼 때 처음부터 불법적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코로나 사태나 금리인상과 금융규제, 전세사기의 갑작스런 사회 문제화로 인한 임대차 만기의 대거 도래 등이 이 사건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점, 소위 바지 임대인을 내세우거나 실제 가치를 초과하는 대출을 받고 보증금을 받아 잠적하는 형태의 소위 ‘빌라왕’ 류의 전세사기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본다.
3. 불리한 정상
① 전세사기 범행은 주택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하고, 서민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임대차보증금을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생활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범죄라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을 통하여 이를 근절하여야 할 공익상 요청이 대단히 큰 범죄다. 이런 범죄에 맞선 사법당국은 그 처벌에 있어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② 피고인은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이 법원에 피고인의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다.
③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부터 줄곧, 정부와 부동산 대책 변화로 인한 각종 규제, 금리 인상, 부동산경기 악화 등으로 보증금을 반환 못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당원도 이런 사정을 일부나마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부동산경기나 이자율 등의 경제 사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 가능한 것이므로, 임대인으로서는 임대차 만기의 대거 도래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 수익을 올리려는 개인의 경제활동 자체를 탓할 수는 없고, 이런 형태의 범죄를 촉발하는 전세 제도나 금융시스템 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탐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탐욕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즉시 멈춰야 한다. 여러 사정에 불구하고,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
④ 피고인은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기 피해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가해자가 나쁜 의도로 돈을 편취한 것과 선한 의도로 돈을 편취한 것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⑤ 피고인은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기망행위의 의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든 다하지 않았든, 현실적인 피해회복이 없는 이상, 그러한 사정은 유리한 양형요소로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
⑥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정말 천만 원이라도 돌려주면 합의해 주고 싶다”고 토로한 한 피해자의 법정 진술처럼, 재산범죄에서 형을 감경하는 가장 중요한 양형요소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제임에도, 이 사건 피해는 제대로 회복된 바 없다.
⑦ 피고인은 다른 부동산이 있어 변제여력이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유보된 약속은 참된 약속이 아니다. 유보된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기망일 뿐이다. 피해회복의 가능성만으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
⑧ 피고인은 공판 과정 내내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항상 지적하듯이 사죄와 용서는 법원에 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형을 정할 뿐 피고인을 용서해 줄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피고인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자 피고인은 ‘자신이 실형을 살게 되면 보증금을 반환해 줄 수 없다’며 피해자들을 압박했고, 아직도 제대로 용서를 구한 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피고인이 과연 진지하게 이 사건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⑨ 피해자들은 한목소리로, “공용전기세, 수도세, 정화조․엘리베이터․주차타워 관리비, 전기안전관리자 선임 비용 등 건물 운영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관리비를 피고인이 납부하지 않아, 그 비용을 세입자들이 갹출하여 부담하면서 자체적으로 시설을 유지하고 있는데, 안전관리자의 부재로 최소한의 시설 점검조차 이루어지지 않아 화재의 위험에마저 노출되어 있는 등 하루하루가 너무 불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임대 건물에 대한 관리 부재로 인한 세입자들의 후속 피해가 극심하다.
⑩ 사기죄의 피해는 재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맞아 생긴 상처가 아무는 데는 2주나 3주, 기껏해야 몇 개월이지만, 사기 피해가 회복되는 데는 수년에서 최악의 경우 평생이 걸리기도 한다. 사기는 피해자의 재산을 가져감과 동시에,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시간을 앗아간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나쁜 범죄다.
⑪ 또한 사기는 피해자로 하여금, 피해를 외부에 드러내어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이해받거나 위로받는 것마저 어렵게 만든다. 같은 상황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은 수많은 사람의 존재 때문이다. 사기 피해자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계속 탓하게 되고,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빠져 고통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다 일상생활마저 평소처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피해자가 무너짐에 따라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 역시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결국 사기는 피해자의 자장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⑫ 모든 사기 피해자들의 처지에 무슨 경중의 차이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사건이 안타까운 점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20대와 30대의 사회초년생들이라는 점이다. 피고인이 편취한 전세보증금 중에는, 그 누구보다 근면하고 착한 젊은이들이, 생애 처음 받아 보는 거액의 은행대출금과, 주택청약부금과, 적금과, 쥐꼬리만 한 급여에서 떼어 낸 월급의 일부와, 커피 값과 외식비 같이 자잘한 욕망을 꾹꾹 참으며 한 푼 두 푼 모은 비상금과, 그들의 부모가 없는 살림에도 자식의 밝고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며 흔쾌히 보태준 쌈짓돈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이들에게 이 돈은 그저 장사 밑천이거나 금리 몇 퍼센트의 수익을 올리는 종잣돈이 아니라, 자신들이 설계한 빛나는 인생의 목표 지점으로 나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여비와 같은 돈이다. 피해자들은 이 돈을 잃음으로써, 희망찬 인생의 출발선에서 뛰쳐나가 보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 주저앉아 울고 있다.
⑬ 이처럼 실의에 빠진 많은 피해자들이 이 사건 공판과정 내내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고, 엄벌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4. 피해자들의 탄원서 내용
피해자가 몇 백 명, 피해액이 몇 백억 원이라고 하면, 일견 어마어마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수치를 아무리 나열해 봐야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의 실체가 잘 와 닿지 않는다. 이에 당원은, 이 사건 양형에 참고하기 위하여 앞선 피해자의 탄원서는 물론 다른 피해자들의 탄원서를 한 장도 빠짐없이 꼼꼼히 읽어보았다. 탄원서에 드러난 피해자들 개개인의 고통은, 객관적 수치로 뭉뚱그릴 수 없을 만큼 고유하고 깊고 막대한 것이었다. 당원이 아래와 같이 탄원서의 내용을 상세하게 남기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그저 전시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이야말로 이 사건의 형을 정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음을 밝히기 위함이고, 피해자들에게 얼마의 재산상 피해를 입혔다는 이 사건 사기죄의 공소사실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피고인의 죄과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리고자 함이며, 이를 통하여 피해자들이 현재 처한 상황과 끝 모를 절망감을 피고인으로 하여금 깨닫게 함으로써, 피고인에게 참된 반성과 피해회복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함에 있다.
법원, ‘납득 불가’ 판결 말고 ‘모범답안’ 읽길
지금까지 비평 대상 판결은 연락 가능한 전세사기대책위 피해자들의 판결에 국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너무 많이 선고되고 있다. 분석 대상 판결을 확대할 경우에는 불합리한 판결이 더 많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바지임대인과 공인중개사가 짜고 친 사건이 명백히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인중개사 위반죄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다. 이로 인해 공인중개사의 공제증서에 근거한 피해자들의 피해회복도 어려워지고 있다.
수원 정씨 일가 전세사기 사건에서는 감정평가사의 이른바 ‘업(up) 감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다. 공인중개사가 감정평가사는 모두 부동산 거래의 중요한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유리한 판결을 선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구 신탁사기 사건에서는 대항력이 인정되지 않는 신탁사기 피해자들의 피해가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피해회복 가능성에 대한 아무런 근거 없이 피고인의 형량을 1/2 감경하였다.
반면에 부산 전세사기 판결에서는 다행히도 박주영 판사님이 법원에 전세사기 사건에 있어 피해자를 우선하는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운 세입자를 헤아리는 세입자 감수성이 충만한 판결이기도 하다.
부디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 전세사기에 대한 형사재판을 진행하기에 앞서, 부산 전세사기 판결을 작성한 박주영 판사님의 해당 판결문을 한 번씩 읽어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후순위 전세계약 차단 대책 마련하고, 더 이상의 희생자 막아야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는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대책 마련이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 2년 간의 전세사기 사건 중 앞에서 설명드린 미추홀구, 수원 정씨 일가, 대구 신탁사기, 부산 전세사기 그리고 다가구 전세사기 모두 본질적으로 담보가 보장되지 않는 후순위 전세사기였다. 이로 인해 생명을 잃은 후순위 전세사기 희생자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분만 아홉 분이다.
이러한 후순위 전세사기로 인한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후순위 전세계약을 점진적으로 차단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본래 전세라는 것은 집을 담보로 잡고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인데, 지금은 아무런 담보 없이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 후순위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치명적인 위험이 한국의 주택 임대차 시장에 만연해 있다. 후순위 전세계약을 차단하는 것, 전세제도 개혁에 있어 가장 본질적인 내용이다.
※ 참고로 “후순위”라는 표현이 어려운 분들의 이해를 위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선순위 전세계약은 임대인이 다른 채무를 갚지 못하여 해당 주택이 경매 절차로 넘어갈 경우, 선순위 세입자는 전세금을 모두 반환받을 때까지 해당 주택에서 머무를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후순위 전세계약은 그러한 권리가 없는 전세계약을 말한다. 그리하여 후순위 전세계약은 담보 보장 순위에 있어 통상적으로 다른 금융기관의 대출에 근거한 근저당권 등이 후순위 세입자보다 우선한다.

광장에 나온 판결: 285번째 이야기
⑴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 미추홀구 1차 기소사건: 인천지방법원 판사 정우영, 이수민, 이정민 2024. 8. 27. 선고 2024노693 – 피해자 191명, 피해금 148억 원 [판결문 보기]
– 미추홀구 2차 기소사건 : 인천지방법원 판사 손승법, 이유영, 유영상 2025. 2. 20. 선고 2023고합548(범죄단체조직) – 피해자 372명, 피해금 304억 5,580만 원 [판결문 보기]
– 미추홀구 3차 기소사건 : 인천지방법원 재판 진행 중(2024고단4475) – 피해자 102명, 피해금 82억 9,555만 원
⑵ 수원 ‘무자본 갭투기’ 전세사기
수원지방법원 판사 김수정 2024. 12. 9. 선고 2023고단8368, 2024고단2043, 3894(병합) [판결문 보기]
⑶ 대구 다가구주택 전세사기
대구지방법원 판사 전명환 2024. 10. 15. 선고, 2024고단2524 판결 [판결문 보기]
⑷ 대구 신탁주택 전세사기
대구지방법원 판사 손대식, 남근욱, 김정도 2025. 2. 7. 선고 2024노2958 [판결문 보기]
⑸ 부산 원룸 전세사기
부산지법 동부지원 판사 박주영 2024. 1. 24. 선고 2023고단1574 [판결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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