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은(4월 20일)은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었습니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과 투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사회 장애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 또한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지하철에서 진행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과태료를 통지하는 등 강경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장애인 인권에 주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들을 대상으로 특집 판결비평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 판결비평은 공무원 채용 면접에서 발생한 장애인 차별을 인정하고 불합격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한 판결을 살펴봅니다. 피고는 공무원 채용 면접에서 편의제공에 대해 사전에 공고 받지 못했고, 면접 과정에서는 장애 자체에 대한 차별적인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불합격된 피고는 소를 제기했고, 2심 재판부는 차별을 인정하며 불합격처분의 취소를 결정했습니다. 법무법인 원곡의 서치원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 대상판결: 수원고등법원 2020. 11. 18. 선고 2019누13363 판결
장애인 인권 판례
- 장애 질문 불합격 사건 (2020): 서치원
- 중증장애인 일실손해 불인정 사건 (2023): 조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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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상상을 해보자. 전 지구인을 대상으로 화성탐사대를 꾸리는데 한국인 2명을 뽑는다는 시험공고를 보게 된 당신. 피나는 노력 끝에 필기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 면접시험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그런데 면접 당일 면접관은 당신에게 “왜 한국어를 사용하느냐”,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이 무엇이냐” 묻는다.
화성탐사와 전혀 무관할뿐 아니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질문에 당황한 것도 잠시. 당신이 뭐라 답할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예정된 면접시간이 지나고 준비했던 말을 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잘 봤다고 애써 위안을 삼아보지만 며칠 뒤 날아든 불합격 통지서. 불합격 사유는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부족. 한국인을 뽑기로 해 놓고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불합격이라는 기막힌 결과 앞에 망연자실한 당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판결을 소개한다.
쟁점: 편의제공 여부, 장애 관련 질문
원고는 청각장애인이다. 원고는 2018년도 제1회 경기도 여주시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에 지원하였다. 원고는 2018. 5. 19. 필기시험을 치렀고, 2018. 6. 25.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의 유일한 필기시험 합격자로 결정되었다. 원고는 2018. 7. 13.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의 면접시험(1차면접)에 응시하였고 ‘미흡’ 평정(評定; 평가하여 결정함)을 받아 재시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2018. 7. 18. 추가 면접시험(2차면접)을 치렀다.
2차면접에서도 원고는 ‘미흡’ 평정을 받았고 피고 여주시인사위원회위원장(이하 ‘피고’)은 2018. 7. 24. 원고에 대하여 최종 불합격처분을 하였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불합격처분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불합격처분의 취소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①피고는 1차, 2차 면접을 실시하면서 장애인 응시자가 받을 수 있는 정당한 편의 제공에 관한 ‘공고’를 하지 않았다. ②피고는 1차 면접위원들에게 원고가 수화(손말에 의한 의사소통)나 대화(입말에 의한 의사소통)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사전에 알렸고, 1차 면접위원들은 원고에게 다수의 장애 관련 질문을 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하여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법 제4조 제1항 제3호), “장애인을 장애를 사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제한·배제·분리·거부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경우”(법 제4조 제1항 제1호)를 금지하는데, 위 ①, ②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위반되는지가 사건의 쟁점이다. 이에 대해 1심과 2심은 상반된 판결을 했다.
엇갈린 판결: 차별 아니다(1심) vs. 차별이다(2심)
1심은 피고가 면접시험 실시과정에 편의제공에 관한 ‘공고’를 하지 않았지만 원고의 어머니를 통해 요청받은 편의제공을 다 해주었으므로 비록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사소한 것에 불과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불이익을 당한 바도 없으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절차위법의 행정행위 치유 인정)고 판결했다. 원고의 장애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는 면접시험의 특성상 면접위원은 고도의 교양과 학식, 경험에 기초한 자율적 판단권한이 있는데 이 사건 장애 질문은 그러한 판단권한 내에서 행해진 것으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면접위원의 재량권 일탈·남용 불인정)고 판결했다.
이에 반해 2심(이하 ‘대상판결’)은 편의제공에 관한 ‘공고’ 의무 위반은 중대한 절차적 하자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왜냐하면 면접시험의 특성상 법원이 면접의 당부를 심사하기는 매우 어려운 반면 면접결과는 전체 시험의 당락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절차적 요건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고, 사후적으로 원고의 어머니가 요청한 사항이 실제 면접시험 과정에서 대부분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공고’ 의무 위반이라는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치유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절차위법의 행정행위 치유 불인정).
또한, 장애 특성에 대해 면접위원에게 사전고지하는 이유는 응시자에게 차별적인 질문을 하거나 응시자의 장애종류 및 정도에 관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원고가 수화나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고지한 것은 도리어 면접위원들에게 원고가 청각장애인으로 비장애인과는 달리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대상판결은 면접위원들이 원고에게 한 장애에 관한 질문도 위법하다고 판결했다(면접위원의 재량권 일탈·남용 인정).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애에 대한 질문은 비장애인에게는 물어보지 않을 사항을 묻는 것이어서 장애인과 장애가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인데, 장애에 관한 질문으로 장애인 응시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위축되게 할 수 있으며 다른 질문에 할애할 시간을 빼앗기 때문에 장애인 응시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면접위원들이 원고에게 ‘집·학교에서의 소통 방법, 수화를 배우지 않은 이유, 장애로 오해나 갈등이 있었던 경험’ 등 여러 차례 장애 자체에 관한 질문을 하였는데 이것은 원고의 의사소통 방법과 능력에 대한 질문으로 원고의 장애를 면접시험의 평가요소로 삼은 것이고, 면접 결과 과반수의 면접위원이 원고의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항목을 ‘하’로 평정하여 ‘미흡’ 등급을 부여하였으므로 원고의 청각장애를 이유로 원고를 불리하게 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적극적 사법심사 단초 제공
그동안 장애인의 공무담임권 침해 사건에서는 주로 절차적 하자가 다투어졌고 면접시험 결과의 당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판단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상판결은 면접시험에 부여되는 고도의 재량권으로 인해 사법심사는 어렵다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오히려 절차적 요건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함을 지적하는 한편, 면접위원들에게 부여되는 고도의 재량권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테두리를 넘을 수 없음을 확인함으로써 장애인 차별시정에 관한 적극적 사법심사의 단초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판결로 평가할 수 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는 평등권의 대원칙이다. 장애인 구분모집 전형을 실시하는 취지는 장애의 특성을 이해하고 공정한 시험을 진행함으로써 평등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행정은 거꾸로 원고의 장애의 특성을 장애인에 대한 차별사유로 합리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다행히 원고는 대상판결로 불합격처분 취소 후 다시 면접시험을 보게 되었고 최종합격할 수 있었다.
원고를 돕고 지지하는 공익변호사들이 함께 했다고 해도 만 2년이 넘도록 진행된 재판은 무척 힘들었을 테다. 불합격에 낙담하고 말았다면 십중팔구 패소했거나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법부의 적극적 장애인 차별 시정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끼는 이유다. 장애를 고려한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면접위원에게 장애인 구분모집과 장애인 응시자의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장애인의 공무담임권 침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행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