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무한 루프에 빠진 농협 개혁. 이번엔 그 끈질긴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문제의 핵심은 농협중앙회, 해체 수준의 인적 분할과 권한 축소가 필요하다. (⌚6분)
📰 관련 기사
🔖 강호동 5성급 스위트룸? 더 심각한 건 4년 35억 원 연봉과 폐쇄적 방만 경영. (2026.01.09)
🔖 ‘5성급 스위트룸’ 농협회장 강호동 사과 “정부 개혁에 동참.” (2026.01.13)
농협 개혁 논의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 먼저 농협중앙회장이 사고를 친다. 억대 금품 수수 및 불법 선거자금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 언론이 농협을 탈탈 턴다. 지역 농협 인사가 돈 해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싣는다.
- 농림축산식품부가 감사에 나선다.
- 문제가 드러나면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내놓는다.
- 대통령이 “농협은 그 자체가 파워다”(노무현), “농협은 진짜 문제”(이재명)라며 개혁에 힘을 싣는다.
- 국회가 이를 받아 농협법을 개정한다.
- 한참 있다가 다시 “농협에 문제가 많다”며 농협 개혁 토론회가 열린다.

이게 왜 중요한가.
- 이재명 정부도 농협을 수술대에 올렸다. 지난 10일 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 특별감사’ 발표 이후 불과 2개월 만이다.
- 농협중앙회장 강호동과 핵심 간부들이 농협 공금을 빼돌려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이 드러났다.
- 언론은 강호동이 지역조합 운영위원회로부터 회장 취임 1주년을 명목으로 ‘황금열쇠 10돈’(580만 원)을 수령했다고 크게 썼다. 앞서 ‘호화 스위트룸 출장’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적 있어 기시감이 든 발표였다.
강호동과 이재명 정부의 잘못된 만남.
- 강호동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3월 취임했다. 1987년 경남 합천 율곡농협에 입사해 37년간 농협 생활을 이어온 ‘농협맨’이다.
- 김용범(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24년 말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유력했으나 막판에 이찬우(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낙점돼 화제였다. 당시 “강호동이 김용범이 아닌 이찬우를 선택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기초해 이재명 정부와 농협중앙회의 향후 불협화음을 관측하는 언론도 있었다. [관련 기사: 대통령실 핵심 참모 김용범 정책실장과 어긋난 인연]


농협 개혁은 왜 매번 미완인가.
- 정부 감사 결과를 놓고 “농협이 농협했다”는 게 중론이지만, 우려 목소리도 있다.
-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협을 협동조합이 아니라 정부 산하 기관이라 보고 기관장 바꾸듯, 회장 교체를 압박하는 것으로 비친다”며 “강호동 회장이 잘못한 것도 크지만, 선출직 사퇴를 종용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누가 와도 정권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 구조·제도적 한계가 있다. 1962년 농협법 제정 당시부터 농협 목적은 ‘국민 경제 발전’이다. 조합원 자주 조직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정책 기관으로 설립된 태생적 한계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은 개혁 대상이 됐지만, 정부는 농협중앙회와 타협하는 것으로 개혁에 마침표를 찍었다.
- 정부 감사에서 드러난 농협 비위와 비리는 혁파해야 한다. 그러나 비리만 해체한다고 농협 문제가 모두 해소되는 건 아니다.
본질: 중앙회를 인적 분할하자.
- 박진도(충남대 명예교수)가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제안한 개혁 방안은 농협중앙회를 인적 분할하자는 것이다.
- 중앙회의 세 가지 기능인 비사업기능, 경제사업, 신용사업을 분리하여, 중앙회는 사업을 하지 않고 회원(농민) 조합에 대한 지도, 교육, 감독 및 조사 연구, 농정 활동만 담당하자는 제언이다.
중앙회는 왜 막강한가.
- 농협중앙회는 협동조합의 중앙 조직이면서 초대형 금융·경제 사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물적 분할을 통해 중앙회를 ‘1중앙회-2지주(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 체제로 개편했지만 주식회사 성격이 더 강화했다.
- 지주회사 체제로 중앙회와 금융지주는 대박이 났다. 중앙회는 브랜드 사용료와 배당금 등으로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했다.
- 금융지주도 5대 금융그룹에 진입했고, 연간 수조 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중앙회에 배당과 브랜드 사용료를 지급하는 ‘캐시 카우’ 역할에 충실했다.
- 그러나 농협금융지주의 금융업은 일반 시중은행과 차이가 없다. 지역 조합과 농민 조합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농업과 농민을 앞세워 전 국민 상대로 ‘돈 장사’한다”는 냉소가 쏟아지는 이유다.

소비자보다 농민 상대로 장사를 잘하는 농협.
- 중앙회와 금융지주와는 달리 경제지주는 누적 적자로 경영 위기 상태다. 2023년 331억 원, 2024년 847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2025년도 800억 원대 이상의 영업 손실이 전망된다.
- (주)농협유통, (주)농협하나로유통 등 농산물 판매 및 유통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적자 탓이다. 반면, 농민들에게 비료, 농약, 사료를 파는 (주)남해화학과 (주)농협사료 등은 흑자다. 일반 소비자한테는 잘 못 팔면서 농민한테만 잘 판다는 우스갯소리가 과언이 아니다.
- 박진도는 “경제 사업을 해본 적 없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본부를 경제지주회사 바꾸고, 자회사 설립과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서 부족했던 판매 사업 능력이 갑자기 제고될 리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우량 기업이었던 (주)목우촌은 경제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후 경영이 악화했다.
- 경제지주 적자를 중앙회를 통해 금융지주 수익으로 메워주는 금융사업 의존 구조에서는 경제지주가 자립할 유인이 떨어진다.

박진도 주장을 다시 요약하면.
- 첫째, 중앙회, 금융지주, 경제지주를 인적 분할한다.
- 둘째, 중앙회는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거느린 사업 조직이 아니라 비사업 기능을 담당한다.
- 셋째,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는 중앙회 출자 자회사가 아니라 중앙회로부터 독립한 회원 조합의 연합회인 신용사업연합회와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한다.
- 경제지주를 경제사업연합회로 개편해야 한다. 왜? 그래야 △경제 사업을 중앙회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농민 조합원 중심의 지배구조가 강화되며, △경제 사업 전문성 및 공익성을 회복할 수 있다.
“중앙회, 비영리법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 세 가지 이유에서 중앙회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된다.
- 첫째, 인적 분할 시 중앙회장은 상징적 존재가 된다. 기존의 막강한 인사권과 통제력을 상실한다.
- 둘째, 중앙회와 금융지주가 독립적 법인이 되면, 중앙회가 금융지주 수익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기 어렵다. 자금줄이 차단된다.
- 셋째, 조직이 축소되고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중앙회 본부에 근무하는 방대한 인력이 오갈 곳 없어진다.
- 박진도 “중앙회 입장에서 인적 분할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사실상 ‘중앙회 해체’이자 ‘기득권 완전 상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 중앙회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 첫째, 정치적 결단과 입법 강행. 중앙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대 위에 입법 결실을 맺어야 한다.
- 둘째,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강화. 정부는 금융지주의 자본 건전성을 이유로 ‘비금융 부문(중앙회·경제사업)으로의 과도한 자금 유출’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금융 사고나 부실로 인한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해 ‘계열 분리’에 준하는 독립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 셋째, 지역 조합들의 ‘반란’이 필요하다. 지역 조합장들이 “중앙회 본부 조직만 비대해지고 정작 우리에게 오는 실익이 없다”며 인전 분할과 권력 이양을 요구해야 한다.

‘농협 개혁’ 이재명은 합니다?
- 당정은 11일 전문가, 농업계 및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농협개혁 추진단’이 제안한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입법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 특히 농협 임직원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직무 정지를 시키는 내용으로 농협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회장 선거 관련 금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강호동을 겨냥한 입법으로 해석된다.
- 범농협 차원의 통합 감사 기구인 농협감사위원회(가칭)를 신설해 중앙회, 조합, 지주회사 등에 대한 감사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 비리·금권선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거 제도도 개편하겠다고 했다. 중앙회장 선출 시 조합원인 농민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조합원(204만명) 직선제, 선거인단 제도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전국 조합장 1110명이 투표로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조합장 직선제다. 지방선거 전 신속하게 후속 입법을 진행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 송미령(농식품부 장관)은 “앞으로 관계부처, 농업인단체, 이해관계자 등과 긴밀히 협의해 개혁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농협이 농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역조합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사업 활성화 등에 대해서도 농협개혁 추진단을 통해 후속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농업 개혁? 농촌 현장은 허탈해.”
- 농협개혁 추진단이 ‘내부 통제 강화’와 ‘선거 제도 개선’을 큰 축으로 1차 개혁안을 내놓은 가운데,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사업 중심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송원규(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정책실장)는 “내부 통제 강화와 선거 제도 개혁 논의가 마무리되면, ‘인적 분할’이라는 주제를 경제 사업 활성화 방안으로써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정부 농협 개혁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취지다.
- 정부 주도의 제도 개혁에 농업계 일각에서는 비판 목소리도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협은 농업계 큰 자산인데도 정부 주도 개혁 논의가 학계, 법조계 등 비농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농촌 현장은 허탈함을 느낀다”며 “농협 제도 개선은 지역, 품목, 영농 규모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범농업계 차원의 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 한편, 강호동은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 합동 특별감사 결과에 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