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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개혁 논의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1. 먼저 농협중앙회장이 사고를 친다. 억대 금품 수수 및 불법 선거자금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2. 언론이 농협을 탈탈 턴다. 지역 농협 인사가 돈 해먹었다는 이야기까지 싣는다.
  3. 농림축산식품부가 감사에 나선다.
  4. 문제가 드러나면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내놓는다.
  5. 대통령이 “농협은 그 자체가 파워다”(노무현), “농협은 진짜 문제”(이재명)라며 개혁에 힘을 싣는다.
  6. 국회가 이를 받아 농협법을 개정한다.
  7. 한참 있다가 다시 “농협에 문제가 많다”며 농협 개혁 토론회가 열린다.
농협 개혁의 무한 루프. 이것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이게 왜 중요한가.

  • 이재명 정부도 농협을 수술대에 올렸다. 지난 10일 합동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의 ‘농협 특별감사’ 발표 이후 불과 2개월 만이다.
  • 농협중앙회장 강호동과 핵심 간부들이 농협 공금을 빼돌려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 등이 드러났다.
  • 언론은 강호동이 지역조합 운영위원회로부터 회장 취임 1주년을 명목으로 ‘황금열쇠 10돈’(580만 원)을 수령했다고 크게 썼다. 앞서 ‘호화 스위트룸 출장’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은 적 있어 기시감이 든 발표였다.

강호동과 이재명 정부의 잘못된 만남.

  • 강호동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4년 3월 취임했다. 1987년 경남 합천 율곡농협에 입사해 37년간 농협 생활을 이어온 ‘농협맨’이다.
  • 김용범(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024년 말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유력했으나 막판에 이찬우(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낙점돼 화제였다. 당시 “강호동이 김용범이 아닌 이찬우를 선택했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기초해 이재명 정부와 농협중앙회의 향후 불협화음을 관측하는 언론도 있었다. [관련 기사: 대통령실 핵심 참모 김용범 정책실장과 어긋난 인연]

농협 개혁은 왜 매번 미완인가.

  • 정부 감사 결과를 놓고 “농협이 농협했다”는 게 중론이지만, 우려 목소리도 있다.
  •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협을 협동조합이 아니라 정부 산하 기관이라 보고 기관장 바꾸듯, 회장 교체를 압박하는 것으로 비친다”며 “강호동 회장이 잘못한 것도 크지만, 선출직 사퇴를 종용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꼬집었다. “앞으로 누가 와도 정권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비관했다.
  • 구조·제도적 한계가 있다. 1962년 농협법 제정 당시부터 농협 목적은 ‘국민 경제 발전’이다. 조합원 자주 조직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정책 기관으로 설립된 태생적 한계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은 개혁 대상이 됐지만, 정부는 농협중앙회와 타협하는 것으로 개혁에 마침표를 찍었다.
  • 정부 감사에서 드러난 농협 비위와 비리는 혁파해야 한다. 그러나 비리만 해체한다고 농협 문제가 모두 해소되는 건 아니다.

본질: 중앙회를 인적 분할하자.

  • 박진도(충남대 명예교수)가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제안한 개혁 방안은 농협중앙회를 인적 분할하자는 것이다.
  • 중앙회의 세 가지 기능인 비사업기능, 경제사업, 신용사업을 분리하여, 중앙회는 사업을 하지 않고 회원(농민) 조합에 대한 지도, 교육, 감독 및 조사 연구, 농정 활동만 담당하자는 제언이다.

중앙회는 왜 막강한가.

  • 농협중앙회는 협동조합의 중앙 조직이면서 초대형 금융·경제 사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 2012년 이명박 정부가 물적 분할을 통해 중앙회를 ‘1중앙회-2지주(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 체제로 개편했지만 주식회사 성격이 더 강화했다.
  • 지주회사 체제로 중앙회와 금융지주는 대박이 났다. 중앙회는 브랜드 사용료와 배당금 등으로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했다.
  • 금융지주도 5대 금융그룹에 진입했고, 연간 수조 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중앙회에 배당과 브랜드 사용료를 지급하는 ‘캐시 카우’ 역할에 충실했다.
  • 그러나 농협금융지주의 금융업은 일반 시중은행과 차이가 없다. 지역 조합과 농민 조합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농업과 농민을 앞세워 전 국민 상대로 ‘돈 장사’한다”는 냉소가 쏟아지는 이유다.
농민을 위한? 농민을 앞세운?

소비자보다 농민 상대로 장사를 잘하는 농협.

  • 중앙회와 금융지주와는 달리 경제지주는 누적 적자로 경영 위기 상태다. 2023년 331억 원, 2024년 847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다. 2025년도 800억 원대 이상의 영업 손실이 전망된다.
  • (주)농협유통, (주)농협하나로유통 등 농산물 판매 및 유통을 담당하는 자회사의 적자 탓이다. 반면, 농민들에게 비료, 농약, 사료를 파는 (주)남해화학과 (주)농협사료 등은 흑자다. 일반 소비자한테는 잘 못 팔면서 농민한테만 잘 판다는 우스갯소리가 과언이 아니다.
  • 박진도는 “경제 사업을 해본 적 없는 농협중앙회가 경제사업본부를 경제지주회사 바꾸고, 자회사 설립과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서 부족했던 판매 사업 능력이 갑자기 제고될 리 없다”고 꼬집었다. 과거 우량 기업이었던 (주)목우촌은 경제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후 경영이 악화했다.
  • 경제지주 적자를 중앙회를 통해 금융지주 수익으로 메워주는 금융사업 의존 구조에서는 경제지주가 자립할 유인이 떨어진다.
박진도(충남대 명예교수)가 4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유튜브 채널 임미애TV 화면 갈무리.

박진도 주장을 다시 요약하면.

  • 첫째, 중앙회, 금융지주, 경제지주를 인적 분할한다.
  • 둘째, 중앙회는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를 거느린 사업 조직이 아니라 비사업 기능을 담당한다.
  • 셋째, 금융지주와 경제지주는 중앙회 출자 자회사가 아니라 중앙회로부터 독립한 회원 조합의 연합회인 신용사업연합회와 경제사업연합회로 전환한다.
  • 경제지주를 경제사업연합회로 개편해야 한다. 왜? 그래야 △경제 사업을 중앙회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있고, △농민 조합원 중심의 지배구조가 강화되며, △경제 사업 전문성 및 공익성을 회복할 수 있다.

“중앙회, 비영리법인으로 다시 태어나야.”

  • 세 가지 이유에서 중앙회의 격렬한 반대가 예상된다.
  • 첫째, 인적 분할 시 중앙회장은 상징적 존재가 된다. 기존의 막강한 인사권과 통제력을 상실한다.
  • 둘째, 중앙회와 금융지주가 독립적 법인이 되면, 중앙회가 금융지주 수익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기 어렵다. 자금줄이 차단된다.
  • 셋째, 조직이 축소되고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중앙회 본부에 근무하는 방대한 인력이 오갈 곳 없어진다.
  • 박진도 “중앙회 입장에서 인적 분할은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사실상 ‘중앙회 해체’이자 ‘기득권 완전 상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 중앙회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선 세 가지가 필요하다.
  • 첫째, 정치적 결단과 입법 강행. 중앙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치권이 국민적 공감대 위에 입법 결실을 맺어야 한다.
  • 둘째, 금융당국의 건전성 규제 강화. 정부는 금융지주의 자본 건전성을 이유로 ‘비금융 부문(중앙회·경제사업)으로의 과도한 자금 유출’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금융 사고나 부실로 인한 리스크 전이를 막기 위해 ‘계열 분리’에 준하는 독립성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 셋째, 지역 조합들의 ‘반란’이 필요하다. 지역 조합장들이 “중앙회 본부 조직만 비대해지고 정작 우리에게 오는 실익이 없다”며 인전 분할과 권력 이양을 요구해야 한다.

‘농협 개혁’ 이재명은 합니다?

  • 당정은 11일 전문가, 농업계 및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농협개혁 추진단’이 제안한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입법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 특히 농협 임직원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1심 유죄 판결을 받으면 직무 정지를 시키는 내용으로 농협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회장 선거 관련 금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강호동을 겨냥한 입법으로 해석된다.
  • 범농협 차원의 통합 감사 기구인 농협감사위원회(가칭)를 신설해 중앙회, 조합, 지주회사 등에 대한 감사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 비리·금권선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거 제도도 개편하겠다고 했다. 중앙회장 선출 시 조합원인 농민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조합원(204만명) 직선제, 선거인단 제도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재는 전국 조합장 1110명이 투표로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조합장 직선제다. 지방선거 전 신속하게 후속 입법을 진행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 송미령(농식품부 장관)은 “앞으로 관계부처, 농업인단체, 이해관계자 등과 긴밀히 협의해 개혁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농협이 농업인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지역조합을 중심으로 한 경제 사업 활성화 등에 대해서도 농협개혁 추진단을 통해 후속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농업 개혁? 농촌 현장은 허탈해.”

  • 농협개혁 추진단이 ‘내부 통제 강화’와 ‘선거 제도 개선’을 큰 축으로 1차 개혁안을 내놓은 가운데,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사업 중심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송원규(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정책실장)는 “내부 통제 강화와 선거 제도 개혁 논의가 마무리되면, ‘인적 분할’이라는 주제를 경제 사업 활성화 방안으로써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명 정부 농협 개혁은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취지다.
  • 정부 주도의 제도 개혁에 농업계 일각에서는 비판 목소리도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농협은 농업계 큰 자산인데도 정부 주도 개혁 논의가 학계, 법조계 등 비농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농촌 현장은 허탈함을 느낀다”며 “농협 제도 개선은 지역, 품목, 영농 규모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범농업계 차원의 숙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 한편, 강호동은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 합동 특별감사 결과에 관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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