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미국은 시스템의 나라? 환상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법 위에서 군림한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과 위선을 까발긴 ‘엡스타인 파일’이 최소 300만 건 이상 공개됐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떡밥’의 전설. (⏰12분)
여는 말: 반지, 신비로운 물건
반지는 신비로운 물건이다. 평론가 김현의 지적처럼, 반지의 본질은 동그라미와 ‘구멍’이다. 동그라미만으로도 구멍만으로도 반지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완벽한 형태인 원(결속∙화합∙단결)과 텅 빈 구멍(결핍∙공허)이 합쳐져 반지는 완성된다. 신비롭지 않은가.
그런데 그 ‘구멍’, 그 텅 ‘비어 있음'(그 공허는 진행형이다)을 채울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아무리 거대한 권력과 욕망조차 그 작은 구멍을 채우지 못한다. 그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건 슬픔에서 태어난 연민이거나 희생 속에서 자란 믿음이다. 마르틴 부버식으로 말하면, 너와 나, 그 ‘사이’에서만 본질이나 현재로서 존재하는 사랑이다.

각설하고, 제프리 엡스타인(주: 현지 발음은 엡스틴이지만, 한국 보도에서 일반적으로 엡스타인으로 표기)은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거대한 구멍이다. 그 구멍이 빨아들이는 건 정치∙경제∙문화 엘리트의 배타적이고 특권적 욕망이다. 하지만 엡스타인이라는 구멍은 채워지 않는 구멍이다. 그게 타락한 욕망의 본질이고, 엡스타인이 만든 구멍의 본질이다. 그 텅 빈 공허가 이들 엘리트의 위선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만적인 위선과 허술함을 동시에 보여준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 착취 사건, 그리고 2026년 초, 미국 법무부가 대거 추가 공개해 다시 거대한 ‘떡밥’을 몰고온 ‘엡스타인 파일’(문서 최소 약 300만 건, 사진 18만 장, 영상 2천여 건) 공개의 파장을 캡콜드(김낙호 드렉셀대학 교수)에게 물었다.

김낙호의 캡:콜드케이스 [ep. 30]
엡스타인,
시스템을 삼킨 욕망의 구멍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캡콜드
📢 안내 및 알림: 인터뷰는 2026년 2월 20일 밤 11시에서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했습니다. 질문은 맥락화하고, 캡콜드의 ‘독백 문투’로 정리합니다. 퇴고 과정에는 캡콜드가 참여했습니다.
엡스타인의 친구들, 가령 촘스키와 게이츠
엡스타인은 한마디로 국제적인 미성년자 성매매 네트워크를 만든 범죄자다. 민노씨 말처럼, 미국의 ‘살아 있는 양심’으로 불리는 노엄 촘스키가 엡스타인과 친교했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다. 다만, 엡스타인과 교류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미성년자 성매매범이 되는 것은 아니라서, 엡스타인 네트워크 안에서도 ‘층위’가 있긴 하다. 촘스키를 포함한 어떤 층은 재정적인 지원으로 ‘꼬셔서’ 친목을 다진 케이스로 보인다. 촘스키 부부가 사과했다고는 해도 명성에 당연한 큰 흠결이 생겼다.

촘스키는 엡스타인에 관해 죗값을 다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엡스타인과 아코스타의 추악한 ‘사법 거래'(2008)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훗날 엡스타인에게 미디어 전략을 조언했던 것이 파일 공개에서 드러났다. 촘스키는 오랜 시간 동안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을 통해 미국 엘리트 짬짜미의 폐단을 비판하며 유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지원금’으로 엮인 엘리트 인맥에 들어선 자신에게는 그런 비판적인 인식을 적용하지 못했다. 어이없는 행보다.

📌 엡스타인과 아코스타의 ‘사법 거래'(2008)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해 ‘검찰의 사법 거래'(플리 바게닝, Plea Bargaining)는 2008년 플로리다주 연방 검사였던 알렉스 아코스타(Alex Acosta)가 주도하여 엡스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을 내린 사건을 지칭한다. 이는 미국의 사법 정의가 권력과 돈에 의해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아코스타는 훗날 트럼프 1기 행정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돼 활동했다(2017년 4월). 하지만 2년 3개월 후, 엡스타인과의 사법 거래 이슈가 불거지자 사임한다(2019년 7월).
한편, 빌 게이츠는 성매매까지 했다는 확실한 정황이 있으니 더 큰 비난을 가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건, 게이츠와 같은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거물’도 엡스타인이 주최하던 그 ‘비밀스러운 파티’에 끼고 싶어 했다는 거다.

미성년자 성범죄에 엄격한 미국?
미국이 미성년자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엄격하다는 건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좌우 불문하고 사회적 금기인양 인식시켜 놓았을 뿐이다.
일례로, 지난달에 소셜미디어 플랫폼 X가 인공지능 그록으로 이미지 합성을 쉽게 할 수 있게 했더니 많은 유저들이 딥페이크 합성 아동 성매매 이미지 생산으로 답한 사건이 있다. 언론이 당연히 비판적으로 보도했는데, X 측에선 아무런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잠깐 그록 작동을 껐고, 무언가를 개선했다며 둘러대고 해당 유저들 잘못이라는 간단한 면피만 했다.
미국(특히 우익)은 미성년자 성 착취에 대해 도덕적 절대악으로 포장하지만, 개별 범죄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아도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별일이 없었다. 단순히 트럼프 정부라서 허용되는 위선이 아니라, 더 큰 이익(머스크가 시도하는 사업적 시도들) 앞에서는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는 변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엡스타인은 권력의 욕망을 이용했다. 범접할 수 없는 엘리트라는 자뻑은 ‘보통 사람’의 규칙을 벗어나도 된다는 우월감을 자극할 때 가장 확실히 생겨나는 것이기에, 가장 명백한 사회적 ‘금기’를 깨는 방식의 접대 문화를 만든 셈이다. 그는 그런 인맥을 이용해서 큰돈을 굴렸고, 90년대 초중반부터 그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호화로운 미성년 파티를 매개로 한 폐쇄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파티는 그들만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문’ 역할을 했다. 일종의 엡스타인 네트워크의 통과의례랄까. 이런 것은 한국의 룸살롱 정치와도 접점이 있다. 권력과 재력을 중심으로 금기와 쾌락을 공유한다. 그런 ‘금기의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심리적 방벽’ 역할을 할 수 있고. ‘이렇게 훌륭한 지도층 인사들이 여기에 다 모여 있는데!’ 엡스타인의 중심 그룹은 그랬다.
‘그들만의 리그’는 피해자의 신고와 지역 경찰의 수사, 그리고 검찰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아코스타와의 사법 거래를 거쳐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굳건하게 유지됐다. 그 둘레에는 파티에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후원으로 엮어 놓은 문화적 엘리트층을 겹겹이 쌓아두고 말이다.
‘사법 거래’ 후에도 왜? 시스템 대신 추천 문화
‘미국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시스템은 굳건하지’ 흔히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환상이다.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잘 돌아가는’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계급적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알음알음의 인맥 문화, 특히 ‘추천 문화’가 있다. 엘리트끼리 어울리는 폐쇄 그룹에 끼려면 그 ‘추천’이 꼭 필요하다.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나름 실력을 우선 평가한다는 학계만 해도 든든한 추천서가 없는 고용은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미국 사회에서 인맥이 중요한데, 그 전통(?)은 미국 건국 시절 ‘프리메이슨’의 역할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엘리트를 지향하는 이라면, 그들만의 그룹에 끼고 싶어하는 문화가 있다. 이런 문화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도 잘 그려진 바 있다. 그 욕망이 연쇄살인 피바다를 부르지만.

미국은 그런 전통 위에 있고, 엡스타인은 금융과 학계, 정계의 초엘리트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그런 인맥이 있었기 때문에 아코스타와의 ‘사법 거래’가 가능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절에 열심히 엘리트 인맥을 만들고 싶어 했던 ‘관종’이 또 하나 있었는데, 그게 하필 도널드 트럼프다. 초록은 동색, 두 사람이 무척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은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일인데, 덕분에 오늘날 중요한 이슈가 되어준 셈이다.
기소된 사람은 둘뿐! 하지만 꺼지지 않은 불씨, 타오르는 불길
엡스타인과 그의 연인이자 성범죄 네트워크의 총책 역할을 할 길레인 맥스웰을 빼고는 이 범죄와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없다. 우선은 입증의 문제가 있다. 물론 무려 2006년부터 엄청난 양의 자료를 모으긴 모았다. 하지만 직접 증거가 아닌 ‘전문 증거'(들은 이야기, 전해진 이야기, 즉 간접적인 증거)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여튼 재빠른 사법 거래를 통해서 2008년에는 유야무야 넘어가고 끝났다.
그런데 십여 년이 지난 후 불씨가 다시 타올랐는데, 바로 미투 운동의 여파였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행을 폭로하는 것에서 시작, 소셜 미디어를 주요 발판으로 삼아 여성들이 직접 너도나도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위해 연대하던 대대적 흐름 말이다. 미투 운동이 조성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2017년에 지역지가 엡스타인 이슈를 다시 제기했고, 90년대에 어린 소녀였던 피해자들이 그간 성인으로 성장해서 다시 제대로 제보에 나섰다. 10년 전과 확연하게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생겨난 새로운 기회였던 셈이다.

그렇게 재수사에 들어가며 더욱 많은 자료가 모였다. 당시 정권이 하필 트럼프 1기라서 대충 눙칠 가능성도 다분했지만, 십 년 전의 사법 거래처럼 일이 쉽게 풀릴 상황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미투 운동이 이미 대중의 이목을 모아두고 있었고, 소셜미디어 중심의 환경은 화제 전환을 쉽지 않게 했다. 게다가 하필 2010년대의 미국 우익 문화가 미성년자 성 착취를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두었던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16년 우익 정치의 대표적 음모론 가운데 하나가 민주당의 주류 엘리트들이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고, 비밀 접선지로 워싱턴DC에 있는 피자가게가 사용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누군가가 총을 들쳐매고 그 가게에 쳐들어간 우스운 비극이 ‘피자 게이트’로 명명되었다). 당시 트럼프에 맞섰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아동 성매매 총수로 악마화하던 시절이다.
이제 더는 사법 거래로 빠져나가기 어려운 환경에서, 구속 중이던 엡스타인이 사망했다. 수상한 정황이 워낙 많아서 더 큰 음모론을 남겼으나 어쨌든 죽었으니 그렇게 덮히나 싶었는데, 하필 엡스타인의 오랜 절친이었던 트럼프가 작년부터 다시 대통령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불씨는 또 살아났다.

트럼프가 엡스타인에게 보낸 음란성 생일 카드 친필 낙서를 포함, 수사 자료에 들어있었던 자료들이 조금씩 유출되며 새로운 떡밥이 되어 주었다. 이번에는 엘리트 네트워크의 비도덕성 자체보다도 트럼프의 깊은 관여가 중심이 되었다. 트럼프와 ‘미국을 위대하게’ 운동 지지층의 위선을 한껏 공격하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의 영향이 작용한 셈이다.
원래 트럼프의 가장 유명한 별명 가운데 하나는 ‘테플론’이다. 테플론 코팅을 입힌 논스틱 프라이팬에 음식물이 들러붙지 않고 미끄러지듯, 어떤 스캔들도 그냥 흘러버리고 넘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엡스타인 스캔들은 흘러가지 않고 확실하게 붙었다. 트럼프는 늘 그래왔듯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하고 다른 선정적인 이슈로 넘어가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사람들에게 너무 흥미진진한 사안이었다.
대선 후보가 정치권의 조직적 아동 성매매에 연루되었다는 몇 년 전 음모론만 해도 그렇게 흥미진진했는데, 현역 대통령이 딱 그런 경우라니 얼마나 궁금한가. 게다가 그나마 아직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맥스웰은, 트럼프에게 사면해주면 무죄를 증언해 준다는 식으로 대놓고 거래를 걸고 있다. 스릴러를 빙자한 코미디다.
그간 FBI 수사 자료의 총합인 소위 ‘엡스타인 파일’을 전면 공개하는 것이 정치적 쟁점이었고, 보수 공화당은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우선 엡스타인 파일에 오랜 절친이었던 트럼프가 수천 번 언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의회로서의 기능 따위는 대충 팽개치고 대통령이나 지켜내서 권력만 유지한다는 그간 행동 방식에 계속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아동 성매매 반대라는 사안에 그간 길들여놓았던 보수 유권자들의 표를 잃으면 망한다는 당연한 셈법을 우선시할 것인가.
먼저 하원은 트럼프 보호를 위한 비공개를 택했고, 상원은 어차피 방대하게 얽혀있으니 그냥 열자는 쪽으로 갔다. 그 갈등이 지속되던 중에, 본인의 승부사 기질이 발현되었는지 주변 참모들이 자만했는지는 모르지만, 트럼프가 ‘나는 애초에 공개를 반대하지 않았다’고 언명했다. 그러자 하원에서 공화당이 입장을 바꾸며 엡스타인 파일 공개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엡스타인 파일, 선별적 공개의 문제
파일 공개가 법으로 결정되었으니 정보를 열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세상에 던져놓을 수는 없다. 바로 피해자 신원 보호 때문이다. 특별법은 공개 시한을 정해놓고 있었는데, 현 트럼프 정권의 법무부는 충성에 특화하느라 상식적인 판단력이나 업무 처리는 대단히 떨어지는 편이다.
수백만 문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원래도 어려운데, 그런 팀이라면 처음부터 기대를 접어야 한다. 기한을 꾸물꾸물 미루며 조금씩만 내놓는 방식으로 일하다가 시민 사회 쪽의 엄청난 압박만 쌓였다. 그러다 정말 더 이상 합법적으로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자, 한꺼번에 대량을 털어냈고 아니나 다를까 문서 내용의 보호 조치가 엉망이었다.
미루어 짐작건대 크게 두 가지 원칙을 넣고 AI 툴로 일괄적으로 돌린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원칙은 여자 얼굴이 나오면 무조건 가린다는 것. 그 덕분에(?) 한 문서에 등장하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림도 마치 피해자 보호를 하는 양 얼굴이 가려져 있다(나중에 당국은 해당 그림이 피해자 얼굴을 보여준다는 해명을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다른 하나의 원칙은 트럼프 이름이 나오면 웬만하면 전부 앞뒤로 가린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아니라 엡스타인의 친구 역할이거나 증언자가 지목하는 가해자로 등장하는 것인데 열심히 가려주는 현상이 빈번했다.

그러다보니 거의 페이지 전체가 먹지가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초기 공개본에서는 PDF 파일을 만들 때 검은 박스 입힌 것을 재발간하지 않고 그대로 놔둬서 그냥 박스를 제거하고 원문 내용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물론 공개했다가 부랴부랴 다시 내린 문건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그 모든 버전은 누군가가 백업해두고 공유했다.
그럼에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건도 약 100만 건 이상으로 알려졌다. 우선 자료들을 너무 많이 모았다. 2006년부터 모았고, FBI가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진영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탈탈 털었다. 원래는 다 공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사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어떤 문건은 존재 자체를 숨겨둬야 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는 문건이 정말 그런 범주인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의 깊은 관여를 담고 있어서인지 시민들은 알 길이 없다. 다 공개하겠다고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지만, 뭘 해도 불리한 판이었던 셈이다.
얼마나 드러날까? 걱정하지 마시라! 네버엔딩 떡밥!!
엡스타인에 관한 큰 스토리라인은 뚜렷하다.
- 엡스타인이 브로커 역할을 한 파워엘리트의 파티 네트워크가 있었다.
-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적잖은 정치∙경제∙문화계 거물이 끼고 싶어 안달했다.
- 파티에는 미성년 성 착취가 포함되었다.
- 파티를 누비며 엡스타인과 가장 친하게 지낸 절친 중 영국 앤드루 왕자와 트럼프가 있다.

다만 이 스토리 골격에 오랜 시간을 거치며 다양한 음모론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세부 디테일은 불확실한 점이 많아졌다. 다만, 엡스타인이 죽었다는 점만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엡스타인 파일 공개로 이번에는 모든 것이 규명되고 연루된 자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을 것인가. 2008년, 2017년과는 최소한 확연히 다른 지점이 생겨나고 있다. 원래 트럼프 정권의 성공 공식은, 사건의 모든 것이 명백하게 전면에 다 드러나 있는 상태에서 그냥 당당하게 프레임을 빨리 자기 책임을 없애는 방향으로 선점하고 담론 조작을 하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에 따라서 선명하게 갈라져 있는 사실관계 인식 능력으로 시민들이 분열에 빠져들면 후딱 화제 전환을 해버린다. 무슨 일이 터져도 소셜 미디어에서 이런 공격적 발뺌과 화제 전환이 ‘조건반사’처럼 바로바로 진행되는 게 트럼프다. 가령, 평범한 미국 시민 르네 굿 사살 사건에서도, 아무런 세부 정황이 밝혀지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좌익 폭도가 저항하다가 죽은 사건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발표하고 이제 딴 얘기하자고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엡스타인 파일에 관해서도 그런 전략을 취했지만, 아뿔싸! 이번에는 전혀 다른 조건이었다. 엡스타인 파일은 이미 눈앞에 드러난 사건이라기보다, 수백만 건의 새로운 떡밥이다. 노출된 떡밥의 해석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이 파일을 뒤져가며 능동적으로 떡밥을 새로 찾아내는 과정의 시작이다.
트럼프는 법무부를 통해 사태를 통제할 수 있다는 과신을 했는데, 자신의 충실한 신도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의 능동성을 얕본 셈이다. 그들은 문건들을 뒤지며 끔찍한 것에서부터 멍청한 것까지, 점점 더 많은 떡밥을 발굴해 정리하고 있다. 공개된 순간의 문건들을 법무부에서 다시 내리든 말든 고스란히 백업해서 게시하는 사이트로 ‘제이메일‘이라는 곳이 먼저 생겼다. 여기를 기점으로, 문건을 검색하고,분석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달려들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아직 트럼프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여러 언론사도 분석 능력으로 솜씨 자랑 중이다. 도덕적 선명성을 지니고 분석에 임하는 가디언, 초기 엡스타인 네트워크를 깔끔하게 뽑아낸 이코노미스트, 문건 자료 분석 전통의 명가 프로퍼블리카 등 잘하는 이들이 참 잘 한다. 뉴욕타임스도 이를 갈고 계속 후속 기사들을 뽑고 있고, 소셜 네트워크와 섭스택(Substack; 미국의 구독 기반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개인 분석가들도 종종 중요한 떡밥을 던져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끔찍한 순간’들을 발굴하고 박제한다 (FBI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생생한 피해 증언은 종종 스릴러보다 호러다). 처음에 공개했던 것과 법무부가 지웠다가 다시 공개한 걸 ‘비포/애프터’만 해도 재밌는 것이 나오고, 그야말로 네버엔딩 스토리다.
냉소와 각성 사이에서
엡스타인 사건을 접하면 우선, ‘엘리트 네트워크는 미성년자 성매매도 막 별 것 아니게 생각하는 동네구나’ 라는 냉소가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촘스키가 미성년 성매매 파티에 참가하지 않았다 해도, 그걸 벌인 것이 밝혀진 사람의 인맥 놀음에 기꺼이 참가할 정도로 별일 아닌 취급을 했다는 인식 말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건이, 기존 엘리트들의 알음알음 추천 인맥 키우기 방식이 아니라 공개적인 ‘풀뿌리’로 성장하여 올라오는 새로운 지도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집중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문화적 자본은 금수저이긴 하지만, 정치적 성장은 시의회를 통한 풀뿌리로 성장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사례처럼. 바텐더로 일하다가 차근차근 연방 의원이 되고 소셜망으로 거침없는 진보적 관점을 논하는 AOC(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도 그렇고. 그런 정치적인 수요가 재발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마지노선’
어쨌든 엡스타인 사태의 중요한 지점은, 엘리트가 너도나도 스스로 엡스타인 네트워크에 끼고 싶어 했다는 거다. 다른 엘리트와 쉽게 연을 맺고 자금이든 정책이든 후원을 받아낼 수 있는 지름길인데 왜 안 그렇겠나. 게다가 뭔가 파티도 아주 대단하다고 하고. 그런 욕망은 미국 사회의 ‘마지노선’마저 쉽게 넘어서게 했다.

엡스타인 사건의 미성년 성매매만큼 선명한 ‘도덕적 마지노선’은 사실 흔치 않다. 하지만 그 도덕적 경계가, 실리적 명분 앞에 쉽게 흐지부지되는 건 미국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다. 당장 대놓고 나치 사상을 설파하는 사장(일론 머스크) 아래 딥페이크 성 착취물을 양산하는 극우 쓰레기통으로 변한 지 오래인 소셜미디어 X가 대표적이다. 여전히 효율적 창구라는 이유로 아직도 많은 정치인과 언론사가 X를 애용한다.
물론 X를 쓰면 자동으로 나쁜 놈이라는 건 아니다. 자신이 경계선을 어떤 식으로 저울질하고 있는지, 어느덧 원래 설정한 경계를 넘어도 너무 넘어버리지 않았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내 ‘진영’의 정치인을 비호하고자 내로남불을 시전하는 정도는 마지노선이라기보다 그나마 회색 영역이라고 치더라도. 아니 자기들 눈에만 회색일 때가 더 많지만.
한 가지 더. 물론 도덕적 마지노선을 아무리 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큰 판이라면 지지율의 일정한 하한선은 남는다는 현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005년 남짓, ‘쿵후몽키‘라는 블로그에서 제안한 “미쳐버림 요인”(crazification factor)라는 개념이 있다. 당시 연방 의원 선거에 나왔던 세상 그럴듯한 오바마 후보와 형편없는 광인에 가까웠던 상대 후보가 붙었다. 그런데도 그 ‘미친 후보’가 27%가량 득표했다. 흔한 인종차별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게 그 ‘미친 후보’도 흑인이었다.
그래서 그 수치를 잣대 삼아, 무슨 합리적인 의견, 근거로 설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어쨌든 25~27%는 등장한다는 ‘썰’을 풀었다. 즉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도 깨지지 않는 일정한 ‘콘크리트층’은 남는다. 하지만 그 ‘밑바닥’ 근처까지라도 계속 밀어붙여야 한다. 그래야 인류에 대한 희망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