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34세, 무슬림, 인도계, 우간다 태생, 문화 엘리트 부모라는 ‘표면’에 가려진 맘다니 돌풍의 ‘심연’. 친근한 다가섬, 솔직한 드러냄, 합리적인 설득 그리고 과감하고 혁신적인 공약과 정책. 뉴욕 시민의 눈높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약속하고 결국 승리한 맘다니. (⌚10분)
34세의 무슬림이 뉴욕시장으로 선출됐다. 조란 맘다니(이하 ‘맘다니’)의 아버지는 우간다 국적의 인도계 미 컬럼비아 대학교수 마흐무드 맘다니, 어머니는 ‘살롬 봄베이'(1988), ‘몬순 웨딩'(2001,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으로 유명한 인도 최고의 영화감독 미라 네어다. 뉴욕을 지배하는 자산가 가문은 아니지만, 맘다니에게 남다른 문화자본, 지식 유산을 전해줬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물론 그것만으로 뉴욕이라는 거대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우간다, 미국, 인도라는 ‘다중 정체성’을 품고 성장한 조란 맘다니는 그런 자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정체성을 약점으로 숨기지도 않으면서, 다양한 부류의 뉴욕 시민들을 상대로 투명하고 친근한 소통과 과감하고 삶에 밀착한 공약을 제시해 ‘뉴욕 시민의 눈높이’에서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선거 승리를 ‘자신의 힘으로’ 얻어냈다고 캡콜드(김낙호 드렉셀대학 교수)는 말한다.
그리고 캡콜드는 맘다니 돌풍을 이해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김낙호의 ‘캡:콜드케이스’ [ep. 26]
맘다니 세 가지 키워드:
정체성, 세대, 포퓰리즘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캡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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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5년 11월 10일(월) 밤과 그다음 날 새벽까지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가독성을 위해 질문은 소제목과 본문에 함축했고, 본문은 문답 형식이 아닌 답변자(인터뷰이) 1인칭으로 정리했습니다. 최종 정리 과정에서 질문자와 답변자가 함께 내용을 확인하고 협의하여 퇴고했습니다.
🔖 여는 말(질문자): 민노
🔖 본문(답변자): 김낙호(캡콜드)
1. 정체성 정치와 다중 정체성
맘다니는 나는 무슬림이다 혹은 나는 인도계다 또는 내 출생지는 우간다다와 같은 단순한 정체성을 내걸어 성공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인도계다 아니다 이런 게 아니라, 맘다니의 ‘다중 정체성’이다. 아버지는 인도계 무슬림이고, 어머니는 인도계 힌두며, 우간다에서 태어났다.
맘다니의 정체성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들어갈 때 인종을 적게 한다. 현대에 와서는 흑인의 경우에는 인종을 ‘블랙’이라고 하지 않고, ‘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쓴다. 맘다니는 자기가 우간다 출신이므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라고 기입했는데,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경쟁자들로부터 ‘흑인 입학 쿼터’를 노리고 그렇게 쓴 게 아니냐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인종 정체성과 지역 정체성, 사회의 언어습관의 교차로에서 생긴 코미디랄까.
맘다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은 편이다. 즉, 무슬림이니까 나를 뽑아라, 인도계니까 나를 뽑으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중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자신은 ‘그 모두’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어필했다. 기성세대와 기성 정치는 맘다니를 어느 특정한 단일 범주로 가두려 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인종학살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반유대주의 낙인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나다’,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다’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다중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낸 맘다니의 대결에서 결국 맘다니가 승리했고, 선택받았다.

이런 다중 정체성의 정치에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맘다니가 뉴욕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이들을 정치적인 지지자로 포용하는 방식이다. 맘다니는 소통의 방법론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서, 자신을 덜 지지하는 그룹들에게 선거 후반으로 갈수록 더 적극 다가섰다. 이런 접근은 특히 당선 직후의 수락 연설에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투표 결과를 보니, 트럼프 대선에서 잃었던 흑인과 히스패닉 표를 대부분 다시 회복했다.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가 많은 지역에서 더 길거리를 파고 들었고, 이를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적극적으로 일상으로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뉴욕시 선거는 결국 다중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내세운 맘다니와 뉴욕주지사를 지낸 앤드루 쿠오모라는 뉴욕에서 잔뼈가 굵은 거물 정치인의 대결로 압축됐고, 결국 맘다니라는 새로운 세대가 승리했다. 그것도 자신의 다중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기성세대의 프레임을 깨뜨리면서 승리를 챙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남다르다.
2. 세대적 감성
맘다니는 소위 ‘서민 투어’하는 기성 기득권 정치인과 대비되는 현장 ‘바이럴 비디오’를 만들면서 유세를 시작했다.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약간 덜 산만한 ‘왓썹맨’ 같은 느낌으로 “저 아세요? 저는 뉴욕시장 후보 맘다니입니다! 요새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식으로 다가섰고, 그걸 비디오로 찍어 소셜에 공유했다.

맘다니는 그런 ‘바이럴 비디오’를 통해서 첫째 자신의 유쾌한 친근함을, 둘째 뉴욕이 얼마나 활력 넘치는 다양한 생활감의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인지 보여줬다. 이 선거 전략은 우리나라로 치면 2004년쯤, 노무현 탄핵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이 성공적으로 펼친 ‘행복의 나라로’ 홍보 캠페인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거운 좌파가 아니라 행복한 미소 짓는 진보, 노동하고 즐거운 삶의 희망을 이어가는 노동자의 긍정적 이미지. 맘다니 캠페인에는 그 당시 느꼈던 강렬한 발상의 전환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있다.

‘요즘 물가 올라서 살기 정말 힘드네’ 그런 삶의 팍팍함이 담기긴 하지만, 생동감 있는 바이럴 비디오는 소셜에 긍정적인 에너지로 퍼지고, 젊은 감성이 여기에 시너지를 더하면서 틱톡과 인스타 감성으로 퍼졌다. 나아가 이런 전략은, “성장캐” 서사를 품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미국에서 BTS가 처음 입소문으로 히트를 이룩한 소셜미디어 전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밤늦게까지 땀 흘려 연습하고 고생하면서 그래도 쾌활하게 희망을 품고 조금씩 성장하는 BTS 멤버들의 일상을 보면서, 팬들도 자신의 지지 행동을 통해서 그들을 성장시키는 적극적 참여의 효능을 느끼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팬들도 함께 성장하고 더 응원하게 되는… 그리고 어느덧, 내가 아주 처음부터 응원했던 아이돌이 이제는 스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된다.
이런 맥락을 더욱 강화시켜준 것은, 맘다니가 기성 정치권의 냉대, 나아가 노골적 반대를 당했던 점이다. 미 민주당의 경선을 승리한 이후에도 당 지도부 인사들이 맘다니 지지 선언을 머뭇거렸고, 블룸버그 같은 뉴욕의 전통적 민주당계 큰 손도 경선 불복하고 무정당 후보로 나온 쿠오모 후보에게 돈을 쏟아부었다. 뒤로 갈수록 맘다니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각종 인종차별적 흑색광고가 난무하고 말이다.

흔히 고품질 저널리즘의 기준처럼 인식되는 그 동네 지역지인 뉴욕타임즈도 맘다니를 지지할 수 없다는 논설로 사실상 반대를 표명했다. 표면상의 논리는 경험 부족이었는데, 실제로는 해당 신문의 오랜 경향성인 풀뿌리 시민 운동에 대한 폄하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에 가까웠다 (비슷한 예로, 트럼프 독재를 경계하고자 하는 올해의 ‘노 킹’ 시위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동원력 강한 시민 행사로 번지고 있는데도 관련 기사들을 깊숙히 묻어버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최애는 우리가 키워줄 수밖에.
지지자들에게 맘디니라는 정치 아이콘은 마치 게임 캐릭터처럼 느껴지기도 할 법하다. 내가 성장시키는 캐릭터에 더 큰 자부심을 품고, 지지자는 더 적극적으로 팬덤화할 수 있다. 여기에 맘디니의 소통 방법과 선거 전략이 절묘하게 호응했는데, 정치 메시지도 그런 팬덤 눈높이에 맞춰서 선명하지만 단순하고, 일상의 삶을 그 바닥에서 바꿀 수 있는 공약으로 다가섰고, 캐치프레이즈를 무한 반복했다.
임대료 동결, 무상 버스, 무료 보육원, 시 직영 식료품점, 트럼프 박해에 무너지지 않는 뉴욕. 그리고 이 모든 걸 품는 전체적 프레임은 바로 뉴욕에서 살아가는 것의 ‘감당 가능함'(affordability). 다양한 삶의 체험적 어려움들을 해결할 일대일 답이 있고, 그게 사실은 큰 틀에서 한 가지 방향인 명료한 구조다. 한국에서도 온라인에서 흔히 통용되는 “세 줄 요약” 문화의 느낌도 있고. 옛날 오바마 대통령 선거 시절의 히트작 ‘YES WE CAN’ 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기도 하다.
나아가 맘다니 캠프의 선거 팸플릿은 보라색과 노란색인데, 그야말로 딱딱한 글꼴, 파란색과 붉은색으로 이뤄졌던 미국 기성세대의 정치 디자인과는 확 구별되는 튀는 색채다. 레트로하면서도 독특한 디자인 감각으로 젊은 감각의 정치인이구나, 젊은 감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구나. 그런 이미지를 잘 구현했다고 본다. 그런 세대적 감성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잘 축적했다.
3. 성공한 포퓰리즘
맘다니의 승리가 역사적인 이유는 정치적 무력감에 빠진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불러냈다는 사실이다. 그 동력을 좌파 포퓰리즘으로 명명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뉴욕시장 선거에는 지난 20여 년간 매번 통상 110만~120만이 투표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170만 명이 투표했다. 특히 고무적인 건, 투표한 유권자 중에는 젊은 층의 비중이 아주 높다는 거다. 이로써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지지층의 조합이 만들어졌고, 전선이 더 선명하게 그어졌다.
자산가 vs. 비자산가
흔히 ‘여피족’이라고 부르는 전문직이라도 하더라도 임금노동자 월급쟁이는 뉴욕 물가가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선거에서는 맘다니 쪽으로 편입했다. 반면에 경쟁자인 쿠오모 쪽으로 몰린 것은 자산가 계층이었고. 선이 이렇게 그어지니, 블루칼라라면 확실히 맘다니 쪽으로, 그리고 흑인, 히스패닉도 맘다니 지지 전선에 가담했다. 오랫동안 민주당이 잃어버린 ‘블루칼라’ ‘히스패닉과 흑인’ 그리고 선거에 잘 나오지 않은 젊은 층까지 다시 불러와서 승리했다는 점은 기념비적이다. 세대적 구별선은 더 뚜렷한데, 40대 이하는 맘다니 지지가 아주 뚜렷하다. 그야말로 맘다니의 지지층이 미래를 상징했으며, 그리고 그 미래가 승리했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정치 체제를 건너뛰려는 의지를 담기에 그것만 있으면 망한다. 하지만 기성 정치가 너무 일상에서 유리됐을 때라든지, 그런 일정한 역학과 맥락 속에서 일정한 정도의 포퓰리즘은 긍정적인 효과로 발현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 우익 포퓰리즘이 트럼프 재선을 거치며 미국 민주제 정치의 근간을 파괴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로 심화하고 있는 이 순간, 좌파 포퓰리즘이 ‘다른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야말로 활로를 개척하고, 숨통을 틔었다.

사회 민주주의, 좌파 포퓰리즘
맘다니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념은 민주 사회주의자인데, 이것은 십 년 전 버니 샌더스 돌풍 당시에 영감받은 것이다. 미국의 민주사회주의는 우리가 흔히 들어본 사회민주주의 개념과 유사하다. 개혁의 최종 목표라든지 몇 디테일은 다르지만, 내놓는 정책으로 보자면 기존 정치 경제의 틀을 인정한 상태에서 사회적 개입의 폭을 늘린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개입을 통해서 공동체 안에서 생활의 기본조건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명백하게 좌파적인 지향점이다. 이번 맘다니 선거에서 성공적으로 어필한 공약들인 임대료 동결, 무료 버스, 시 직영 식료품점 등은 그야말로 거주, 노동, 식사 등 생활 조건에 관한 것들이다.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좀 그렇지만, 지배층이 아닌 일반 다중의 의지를 직접 투영하자는 발상 자체가 본연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다. 체계적인 취합과 조율을 등한시할 때 생기는 난맥상이 문제지만, 기성정치에 대한 좌절을 넘어 정치가 내 문제를 해결하도록 참여를 이끌어내는 민주제의 근간이기도 하다.

맘다니의 승리에는, 이 두 가지의 결합이 큰 시너지를 냈다. 십 년 전 버니 샌더스 돌풍도 좌파 포퓰리즘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미국 전체를 다루는 선거이기에 정책의 생활감 넘치는 디테일도 느슨했고 소통의 친밀감도 애매했다. 그렇기에 붐을 넘어서는 온전한 경선 승리까지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비슷한 구조에서 맘다니가 성공했는데, 지역에 따른 구체적 생활 감각, 다양한 인종에 대한 호소력, 무엇보다 젊은 층에 대한 압도적 소통력 (젊은 팬이 있는 노인이 아니라, 아예 젊은 눈높이를 맞추는) 등으로 일반 다중들 사이에 뚜렷한 지지 그룹을 규합해 냈다.
기업∙자산가 뉴욕 떠날 것…? ‘개뻥’이다!
맘다니의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예산과 예산 집행의 과정은 고도의 정치적인 이합집산화 타협과 투쟁의 과정이지 그 자체로 처음부터 ‘올 오어 낫씽’은 아니다. 맘다니 공약을 실현하는 과정과 그 단계 단계의 결과를 찬찬히 지켜보면서 판단할 문제다.
모든 정상적인 정책이 그래야 하듯, 제한된 범위에서 실험하고, 시행착오로 개선하며, 확대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 된다. 무료 버스 공약만 해도, 출퇴근 저임금 노동자 많은 노선으로 먼저 배차 실험하고 예산 측정하고 시작해 보면 되는 것이다. 예산 확보 역시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경제효과 측정하고, 세제 개편도 서서히 병행할 수 있다. 맘다니에게 투표한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뉴욕이 하루아침에 ‘사회주의 낙원’이 될 걸로 기대하면서 뽑지는 않았다.
특히 미국 보수 언론 프레임 중에서 ‘기업가∙자산가가 뉴욕을 떠날 것’이라는 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개뻥’(격한 표현을 용서하시라)이다. 미국 우익의 공포마케팅을 한국 언론과 유튜버들도 아무 생각 없이 주워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닥에 떨어진 수상한 음식쓰레기를 그렇게 별생각 없이 삼키면 안 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있어왔던 협박이고 공포마케팅이다. 모든 선거에서 진보적이고 공익적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에게 계속해 왔던 허풍이다.

하지만 정작 맘다니가 당선되자 그런 협박을 했었던 당사자, 기업과 기업을 대표하는 이들이 직접 회유적 제스처로 돌변했다. 협력과 상생을 표시하면서 태세 전환했다. 뉴욕이 지닌 세계적 경제 구심점으로서의 실질적, 상징적 인프라는 뉴욕시장이 바뀐다고 그냥 증발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경제인이라면 그 정도 셈법은 당연히 하고 산다. 그러니 그런 협박을 믿는 게 괴상한 일이고, 그런 것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면 저널리즘의 게으름이다.
당선 직후 5명의 인수위원을 전부 여성으로 뽑은 것도 그렇다. 마치 페미니즘 이벤트인 것처럼 폄하하는 설왕설래도 있는데, 면면을 보면 그냥 민주당 중진 인맥이 별로 없는 사람이 정책 일머리 좋은 젊고 진보적인 인재를 배치했고 그게 그냥 다 여성인 것이다. 마치 미국이 그냥 수학 올림피아드 대표단을 꾸렸는데 전부 중국계와 인도계인 것처럼, 분야의 경향성이 결과로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정말 이벤트를 하고 싶었으면 성별 하나가 아니라 피부색, 연령, 성적 지향, 종교 다 함께 고려했을 것이다.
맘다니 돌풍의 의미,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맘다니 당선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맘다니의 승리는 한국 정치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 민중의 힘과 좌파적 가치의 재발굴? 그건 너무 멀리 가는 것 같다. 중요한 건, 지금 정치가 보여주어야 할 하나의 모범 사례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고, 또 결국은 정치적인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지.
맘다니가 보여준 건 대중과 기성 정치권의 괴리, 그 유리된 틈을 연결하고 다리를 놓는 방법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미디어 환경과 소통방식에 맞춘 대화법, 평범한 사람의 눈높이에서 삶의 문제를 그 본질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큰 방향에서 그 삶의 방향성, 미래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고(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내 도시), 합리적이고 유쾌한 대화와 설득의 방법론을 보여줬다.

우선 사회적 개입을 중심으로 하는 큰 비전으로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과 고민을 연결했다.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이념 간판 너머,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인 사회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바로 당신 삶에 지금 필요한 것임을 너무나 일목요연하게 풀어내 주었다. 또한 그저 시민에게 아부하고 젊은 층에게 비위를 맞추며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거는 젊고 솔직한 감각으로 어필했다.
그 과정에서 혐오를 무기로 삼지 않고, 합리성과 유쾌한 유머 감각을 동원했다. 맘다니는 ‘싸움꾼’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다. 공약은 아주 과감하고 투쟁적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는 대결적 자세보다는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면서, 너의 목표도 내가 제시한 공약 안에 있음을 자연스레 설득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정책은 과감하고 전투적인 기획으로, 소통은 눈높이에 맞춰 현장감 넘치는 친근함으로. 직접 밑바닥에서부터 부딪히며, 그 모든 과정을 소통하고 참여의 즐거움을 열어주기. 어떤 의미에서 너무나 정석적인 접근이, 이런 이상한 현실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