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콜드케이스] 인종차별과 반이민이라는 광기에 휩싸인 채 공권력의 이름으로 평범한 ‘엄마’와 보훈병원 ‘간호사’를 길거리에서 쏴 죽이는 나라. 2026년 1월, 미국. (⏰15분)
여는 말: 죽음으로 연 2026년의 문
2026년의 문을 연 건 죽음이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외치며 쓰러져간 수많은 이란 시민의 죽음이고, 미국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평범한 엄마 르네 니콜 굿의 죽음이다. 이들을 죽인 건 국가라는 살인 기계이고,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살인귀다. 르네 굿 사살 사건은 한때 현대 민주주의를 대표했던 미국이라는 시공간의 조건을 생각하면 더 절망적이다. 국가공무원이 대낮에 6살 자녀가 있는 엄마를 사살해 죽였다.
사살 직전 모습은 그 비현실성을 극대화한다. 아래 사진은 6살배기의 엄마 르네 굿이 죽임을 당하기 26초 전 모습이다. 이 사진에서 우리는 어떤 죽음의 그림자도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 평범한 모습이 찍힌 26초 뒤 이 평범한 미국 미니애폴리스 시민은 ‘아이스’(ICE; United State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요원에 의해 사살당한다. 이 살인자는 자동차 앞창문을 통해 르네를 정면에서 사살하고, 멈춰진 자동차 옆창문을 통해 두 번 더 확인 사살한다. 2026년 1월 7일의 일이다. 개인적 일탈이 아니다. 공인된 살인 기계다. 국가 폭력 시스템의 한 부품이 되어 버렸다.
평범한 미국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국가에 의한 살인. 그 끔찍한 지옥도는 ‘백인 크리스찬 국가’를 건설하려는 트럼프와 트럼프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밀러라는 젊은 광신도가 함께 만드는 악몽에서는 필연적으로 거쳐가야 할,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가위 눌림’일지도 모른다. 캡콜드에게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는 미국의 악몽, 그 끔찍한 악몽의 설계도, ‘백인 크리스찬 국가’에 관해 물었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마무리 정리하는 지금, 또 다른 평범한 미국 시민이 ICE의 총에 의해 살해당했다(2026년1월24일). 그의 이름은 알렉스 프레티(Alex Jeffrey Pretti). 전과가 없는 37세 남성 미국 시민권자이자 미니애폴리스 보훈병원 간호사. 5초 미만의 짧은 시간 동안 10발이 넘는 총을 맞았다. 프레티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김낙호의 캡:콜드케이스 [ep. 29]
백인 크리스찬 국가:
트럼프와 밀러가 꿈꾸는 미국, 그 악몽
질문 정리: 민노
답변: 캡콜드
📌 인터뷰는 2026년 1월 16일 밤11시에서 새벽까지 진행했다. 질문은 맥락화하고, 캡콜드의 ‘독백 문투’로 정리한다. 퇴고 과정에는 캡콜드가 참여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 신곡 ‘지옥’ 편. 중에서
트럼프와 밀러가 꿈꾸는 미국은, ‘백인 크리스찬 국가’다.
캡콜드. 2025.01.
백인 크리스찬 국가
트럼프의 인종차별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인 노동자 수탈 방식이다. 자신은 우월한 회장님, 유색인종과 이주노동자는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부하들, 열등한 종족이라는 이분법이 그 수탈을 정당화한다. 상하 관계와 기능적 분업에 바탕한 고전적인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노예제의 전통이지, 문화 충돌 우열과는 결이 다르다. 일례로, 트럼프가 기업인이었던 시절에는 딱히 반무슬림 행보를 보인 적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인종에 기반한 반이민 정책이 골격을 갖추었다. 그나마 1기에서 반이민, 인종차별적인 드라이브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반이슬람 정서를 극대화한 무슬림 입국 제한 등에 집중했는데, 이는 트럼프 1기 집권 직전에 IS(이슬람국가) 등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반이슬람 흐름에 올라탄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의 이민 정책을 일임해온 스티븐 밀러는 좀 다르다. 인종차별 소재 영화에 나올 법한 ‘악인’ 그 자체랄까. 우리나라로 치면 윤석열을 망친 윤석열 – 고성국 관계보다도 더 가깝다. 밀러는 아예 트럼프 정부로 들어와서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하며 트럼프에게 영향을 미쳤으니까. 그렇게 영향받는 트럼프가 다시 밀러에 의해 더 강화된 인종차별 정책을 실행한다.

트럼프 1기에서는 기존 공화당 보수 정책 브레인의 자장권 안에 있었다면, 좀 직관적으로 비유해서, 아직 트럼프의 ‘극우팀’이 그 진용을 제대로 꾸리지 못했다면, 트럼프 2기에는 완벽하게 ‘극우팀’이 세팅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 극우팀을 대표하는 게 바로 이제는 모호한 배후가 아니라 아예 전면에 있는 스티븐 밀러다.
밀러는 더 깊고 어두운 곳으로 뛰어든다. 밀러의 인종주의는 더 순혈적이고 더 근본주의적이다. 인종차별의 진화라면 진화다. 이제 트럼프와 밀러가 꿈꾸는 미국은 ‘백인 크리스찬 국가’다. 그건 정말 무시무시한 악몽이다. 르네 굿 피살 사건은 그 거대한 흐름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
스티븐 밀러의 위상
밀러에 주목하는 이유는, 트럼프는 겉포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에서 트럼프는 정상적인 사고나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치매 노인’ 정도의 위상이다. 정상적으로 10분 이상 연설할 수 없고, 프롬프트를 앞에 두고 있어도 그걸 집중해서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수준이다. 백악관에서 기업인들과 막 도둑질한 베네수엘라 석유 갈라먹기를 논의하다가도 갑자기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헛소리 하는 정도의 건강 상태다.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박제된 마스코트로 본다. 물론 아집이라는 태도나 적들에 대한 증오와 같은 원초적인 감정은 남아 있지만, 정교한 논리적인 판단은 불가능한 상태로 본다. 오죽하면 주치의가 주기적으로 치매검사를 시키고 있겠는가(본인은 그것을 ‘지능검사’라고 여기며 고득점 받았다며 소셜미디어에 자랑하고 다닌다). 트럼프가 돌출 발언하면 그것은 예측불가성을 활용한 고차원적 정치 술수가 아니라, 그냥 정신상태 혼미한 자가 아무거나 던져놓는 것이라는 것을 다들 좀 받아들일 때가 되고도 남았다.
이민 사안, 즉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키를 쥐고 있는 스티븐 밀러의 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꺼져!’다. 트럼프의 ‘물렁한’ 인종차별, 그러니까 내게 복종하면 오냐오냐해주는 방식과 좀 다르다. 다른 인종 이주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미국 문화’를 정화해야 한다는 게 밀러의 생각이다. 문화적 순혈주의에 가깝다. 미국의 노예제에서 이어져온 고전적인 인종차별과는 그 궤가 다르고, 오히려 가장 가까운 건 2차대전 독일의 나치즘이다.

이런 시대 착오적인 정서가 부흥할 수 있었던 건, 2010년대 이후 크게 유행한 주류 백인 남성의 피해의식과 매칭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의 주류였던 백인 남자가 이렇게 빌빌거리게 된 건 (사회보장제도의 붕괴, 정치시스템의 부패 뭐 그런 이야기는 모르겠고) 저 이민자, 유색인종, 여성, 잘난 다문화 좌파 엘리트 때문이야, 라는 사회적 내러티브 말이다.
다만 한동안은 다문화 혐오, 인종차별적 인식이 미국 우파의 주류는 아니었고, 오히려 PC를 강요하는 좌파가 문제다라는 식의 프레임에 머물렀다. 아주 소수의 극우에서만 횡행하던 그런 지나치게 배제적인 ‘순혈’, ‘백인 크리스찬 국가’가 주류 정치에 등장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그 어려운 일을 트럼프가 발판을 닦았고, 트럼프 1기에서 그런 소수 극우 문화의 상징이었던 밀러 같은 자들이 2기에서는 본격 권좌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밀러, 권좌에 오르다
밀러는 트럼프 정부의 넘버 2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식적인 직함은 국토보안보좌관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과’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강한 입지를 마련했다. 극우 순혈주의, 인종차별 등이 주류 정치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불과 10년, 20년 전 상황을 고려하면 정말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고, 그 변화를 상징하는 게 밀러다.
밀러는 트럼프를 ‘열쇠’ 삼아서 극우적인 정책을 하고 싶었던, 그래서 미친듯이 트럼프에게 아첨을 해서 자리를 마련한 족속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다. 그 과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조직인데, 바로 헤리티지 재단이라는 곳이다. 이들은 2023년부터 ‘프로젝트 2025’라고 행정부 정권을 장악해서 ‘백인 크리스찬 국가’를 만드는 마스터플랜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올바른 국가 문화로서 크리스찬 문화를, 그걸 실현하는 좁은 의미의 주체로 백인을, 그리고 그것을 국가의 가간 정체성으로 세우는 것.
헤리티지 재단의 ‘인종주의 국가’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실 이런 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극우 정부의 이상향에 가깝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학살이나 자국 내 팔레스타인계들에 대한 기본권 박탈을 생각해보면 쉽다. 종교라는 문화적 구심점과 인종적 순수성으로 어떤 경계가 확실한 국가를 만든다는 것 말이다. 트럼프 본인이야 개인 주머니 부풀리는 것 말고는 국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기에, 사실상 미국은 스티븐 밀러와 같은 대리인들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 헤리티지와 ‘그림자 정부’
헤리티지는 70년대부터 시작해서 결국 레이건 시대를 설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년에는 보수 우익의 권위 있는 싱크탱크였다. 주류 보수에 가까웠는데, 오바마 시대를 통과하면서 헤리티지발 제안이 정치적으로 반려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힘이 쪼그라들었다. 그렇게 역사에서 밀려나는 걸 거부하는 인정투쟁의 과정에서 더 선명한 가치를 지향했다. 온건 주류 보수주의 연구원들이 극우적인 성향을 가진 연구원들로 교체됐고, 이론적 정교함은 퇴화하고, 반대로 극우적인 정치 선동은 강화했다.
그 결과는 음모론적이고 퇴행적인 괴작 아이디어들의 양산이고, 그 금자탑에 있는 것이 바로 ‘플랜 2025’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되는 바람에, 그 조악한 음모론들이 정책으로 둔갑했다. 그 전제가 되는 가장 큰 전략 중 하나는 대통령을 당선 시키고, 의회를 약화하고, 사법부가 대통령 개인의 권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손을 들어주게 만들어서 (소위 ‘단일 행정부론’), 그간 만들어진 여러 민주적 합의들을 마음대로 막 엎어버리겠다는 것.
민주당이 악당으로 등장하는 음모론인 ‘딥 스테이트’를 부수자고 한 게 트럼프 1기였는데, 정작 트럼프 2기의 실질적인 ‘그림자 정부'(딥 스테이트) 역할을 헤리티지가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밴스, 허영꾼에서 야심가로
오늘날 미 행정부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있다고 본다.
- 오만한 허영꾼
- 위험한 야심가
우선 오만한 허영꾼은 아무 생각 없이 허영과 권력 과시 욕구만 넘치는 쪽이다. 트럼프 본인은 물론이고 자칭 ‘전쟁부’라는 국방부 장관 헤그세스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의 유형인 위험한 야심가는 스티븐 밀러 같이 명확한 계획을 가지고 악을 실현하는 자다.
허울뿐인 2인자인 미 부통령 밴스는, 시작은 전자였으나 전개는 명백하게 후자로 흘러가고 있다. 그는 원래 트럼프에 비판적이었으나, 정치계에 입문하고, 극우 정치를 적극 지원하는 IT회사 팔란티어의 돈을 받아먹으면서 명쾌하게 극우에 줄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트럼프 2기 정부의 부통령으로 나서면서는 ‘인종차별’로 코드를 정립했다. 선거 국면에서 아이티 난민이 당신들의 개와 고양이 잡아먹는다! 소문을 가장 적극적으로 만들어 뿌린 것이 밴스다. 거짓말이 들키면? 상관 없다. 이슈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짓말도 불사하겠다고 대놓고 말했으니까. 밴스는 지금 현재 노골적인 반이민, 인종차별의 화신이다.

사실 모든 정치인들에게 보이는 일종의 패턴은, 어떤 신념(예를 들어 인종차별, 반이민)을 오래 표방하다 보면 그게 어느새 그냥 기믹이 아니라 실제 정체성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나경원을 보면, 초기에는 판사 출신의 논리적이고 스마트한 이미지로 정계에 데뷔했다. 그런데 오랜 기간 관심을 끌고자 온갖 우익 컨셉을 다 차용하다가, 이제는 그냥 극우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밀러의 집권 가능성?
밀러 개인은 그다지 정치적 위상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민주당으로 미국 정권이 바뀌면, 사법 처벌을 받아야 할 처지라고 할 수도 있다. 공화당으로 정권이 연장된다면? 스스로 선거에 나서기에는 대중적 매력이 없고, 선거를 노리는 정치인들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이므로 아마도 ‘토사구팽’당할 거다.
그래서 밀러의 역사적 역할을 아주 짧고, 한시적이긴 하다. 그걸 밀러 자신도 그걸 잘 알 것으로 본다. 그야말로 ‘불나방’ 같은 친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뭐 그래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폭스뉴스 같은 우익 채널의 스타 패널은 충분히 될 수 있을테니까. 물론 제정신을 차린 정치세력이 집권하고 미국이 정상적 민주제로 돌아온다면, 패널 참여를 평생 감옥 안에서 줌으로 해야겠지만.

르네 굿 피살 사건
르네 니콜 굿은 평범한 백인 여성이었고, 미니애폴리스 시민이었다. 만약 히스패닉이나 흑인 혹은 동양계나 이주노동자가 살해됐다면, 부정적인 인종 프레임이 덧씌여졌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르네 굿은 그렇지 않았기에 도화선이 됐다. 백인 주류의 코드를 다 갖춘 평범한 시민이 사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백인 중산층이 막연하게 믿어온 ‘레드 라인'(최후의 금지선)이 깨졌다. 르네 굿 피살 사건을 통해서 기존 인종적, 계층적, 계급적 편견과 선입견은 더는 무의미해졌다.
요원들이 그런 무리수를 두고 있는가. 가장 간단한 이유는, 실적이다. 자신들에게 하달된 전혀 근거가 없는 엄청나게 부풀려진 불법이민자 숫자에 근접하려면, 무슨 중범죄자가 아니라 체류 신분에 문제가 조금이라도 있어 보여도 그냥 붙잡아 내쫓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속 요원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빨리 더 많이 채용하고, 자격요건도 낮추고 훈련도 대거 생략한다. 총 들고 남에게 폭력 휘두르는 것에 환장하는 우익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자석 같은 것으로, 한국 역사 속의 서북청년단에 정말로 국가 기관의 권위를 부여해줬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리고 그들을 트럼프가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대도시로 투입한다. LA이나 시카고가 그 첫 번째 타깃이었는데, 그 다음 타깃이 된 게 미네소타의 ‘미니애폴리스’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대표적인 이민자 그룹은 소말리아계 이민자와 (베트남전 난민 출신인) 몽족 이민자로 크게 나뉜다. 몽족은 좀 더 오래 전에 미니애폴리스에 정작했는데,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미니애폴리스에 정착한 건 불과 20년 남짓이다. 인종차별적 ‘순수’ 회복을 부르짖기 안성맞춤이다.
나아가 트럼프가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소말리아계 진보 여성 정치인 일한 오마(Ilhan Abdullahi Omar, 1982년생) 의원이 자리잡고 있고, 나아가 지난 대선에서 우익들의 남성 에너지 과시를 우습게 만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가 주지사로 있다. 그래서 미니애폴리스를 타깃으로 삼고 아이스 깡패들을 대규모로 보내 타격한 거다. 이렇게 멀쩡한 시민들을 작정하고 못 살게 구니 이에 대응해 시민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권력 감시 역할을 나눠 하면서, 그런 시민 저항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자들에 의해 결국 르네 굿 피살 같은 사달이 난 셈이다.

여전한 30% 극우 맹신도
이 사건이 일어나자 국토부를 비롯한 트럼프 정부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건을 왜곡하는 프레이밍을 재빨리 대대적으로 시도했다. 가령, 르네 굿의 차가 아이스 요원을 치려고 했다라는 거짓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객관적인 영상 자료 덕분에 그런 거짓 주장에 현혹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극우에 빠져있는 이들에게 객관적인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직후에 실시된 여론 조사를 보면 미국인 35% 정도는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이토록 명백한 살인 행위에도 30%대의 ‘콘크리트 극우’가 존재하는 셈이다. 트럼프의 뻔뻔한 선동에도 불구하고 르네 굿 사건에는 너무 명백한 영상 증거가 있다. 해당 설문에서도 82% 정도가 살해당하는 영상을 봤다고 답했으니, 그걸 보고서도 정권의 변명을 믿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아이스 요원들을 더 많이 투입하겠다는 게 트럼프다. 사실상 준계엄에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그런 명백하게 불법적인 국가 공권력에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한다면, 그때는 내전을 불사해야 한다. 다시 우리 역사에 빗대면, 미네소타에서 ’80년 광주항쟁’이 벌어지는 걸 감수해야 한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는 더 많은 불법의 증거를 확보하고, 시위를 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선을 시민들이 지켜가고 있는 상태다.

언론들
영상 증거가 너무 명확하다. 거대 언론사는 비디오 분석에 집중하며 사실을 그 자체로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설명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이미 자본에 물든 워싱턴 포스트 같은 곳에서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흐리멍텅한 관점으로 물타기 한다. 물론 이런 ‘감상적인’ 물타기 보도는 시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뉴욕타임스 같은 겨우 사실 보도팀에서 적극적으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하지만 정치 섹션 기사는 ‘트럼프적 시각’에서 마치 ‘궁중 사극’스러운 스타일로 이 문제를 다룬다.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지 않고, 마치 정치 무협 드라마의 방식으로 독자의 관극틀을 왜곡한다. 그래도 사설이나 칼럼은 이 사건의 의미를 냉정하게 비판하려는 목소리들이 많다.
아쉬운 건 한국 언론이다. 미국 언론의 속보를 너무 자주 검토 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쓴다. 그 중에는 아예 우익 언론도, 우익 소유주의 입김 아래에서 몸 사리는 언론도, 객관의 허울을 추구하다가 우익의 프레이밍이 경도되는 언론도 많은데 말이다. 차라리 제발 현지에서 직접 목소리를 전하는 명망 있는 개별 정보원들의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좋겠다 (나치 꽃밭인 X말고). 특히 연합뉴스 같은 곳에서 트럼프 정부의 프레이밍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데 문제로 본다.
한국 언론, 미국 언론 통틀어 요즈음 가장 큰 문제는, 신뢰할 정보 출처의 재검토 문제다. 원래는 정부 당국의 발언을 받아쓰며 기사화하는 것이 당연한 방식이었는데, 그것이 가장 공식적인 상황 설명이고 그래서 공신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사실 관계를 가장 앞장서서 왜곡하는 집단이 바로 미국 정부라서, 그런 관행은 여론 공작에 적극 협조하는 꼴이다. 현 미국정부의 발언들은, 대략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 정도로 취급하면 적절하다.

윤 어게인? 트럼프의 유산?
이렇게까지 하는데고 극우는 계속 갈 수 있는가. 일단 한국 사회에서 윤 어게인이 쪼그라들고 있는 건, 윤석열이 더는 강한 리더로 보이지 않기 때문으로 본다. 극우든 극좌든 극단주의가 발호하려면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 강력한 권위에 복종하면서 복종을 거부하는 다른 이들을 대놓고 해코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이 잠깐 가졌던 강한 카리스마를 모두 잃어버렸다. 그냥 비겁하고 우둔한 권력을 잃은 정치인으로만 보인다.
윤석열로 표현된 권력의 실체, 그 아이디어의 주체는 거의 다 김건희였던 걸로 밝혀지고 있다. 박근혜가 박정희의 유산으로 승계한 카리스마를 잃은 것도 박정희 딸의 정체성이 아니라 ‘최순실 꼭두각시’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물론 언제든 강력한 카리스마가 등장하면 한국 극우는 더 크고 길게 불타오를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다시 미국 이야기로 돌아가면, 트럼프 유산의 연속성은 다행스럽게도 이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트럼프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으려면, 파시즘 추종자들 가운데 트럼프 정도의 카리스마가 보여야 하는데, 그런 잠재력을 가진 인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의 카리스마는 기본적으로 리얼리티쇼의 스타덤을 통해서 만들어진, 사람들에게 험하게 대하지만 항상 옳은 경제적 결정을 내리는 보스라는 이미지다. 정치판 안에서 그런 번영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란 무척 어렵다.

우린 다를까? 한국판 트럼프, 한국판 밀러…
K-민주주의니 뭐니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지만, 국뽕에 취할 때는 아니다. 한국 극우도 큰 틀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 국우의 중국 혐오도 밀러류의 인종차별적 인식과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전광훈이 조금만 더 똑똑했더라면? 정말 미래를 보장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판 트럼프의 출현, 한국판 밀러의 출현이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버텨낸 그 바탕에는 ‘국가(사회)가 망하면 내(개인)가 잘 살 수 없지’라는 기본적인 인프라 의식이 있는 것 같다. 타인도 잘 살아야한다는 공동체 의식 그런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인프라가 어쨌든 받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나만 잘살면 되지’가 훨씬 더 팽배해 있다. 사회가 주는 인프라 효과에 대한 인식보다는, 내가 잘하면 큰 성공을 거둔다는 기회의 땅 아메리칸 드림이 좀 비현실적으로 깔려있다.
하기야 우리는 어릴 적부터 ‘한국은 약소국’이라고 배워왔다. 외세의 침약에 단단히 뭉쳐서 버텨왔다고 배웠다. 그래서 아무리 ‘K국뽕’에 취해도, 아무리 잘나가도 강대국 등쌀에 새우등 터진다는 관성적 인식은 남은 것 같다. 아무리 국뽕이 넘쳐도 강대국에 의해 휘둘리는 지정학적인 위기 의식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런 역사적 경험의 바탕 위에서 ‘인프라 의식’이 생긴 것으로 본다. 그런데 미국은 그런 경험이 역사적으로 잘 안 남은 탓에, 국가나 사회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희박하다.

분기점
21세기 초 미국의 큰 분기점이었던 9/11 테러 사태 당시만 해도, ‘붕괴’가 이런 식으로 오리라고 예상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부시 부자는 그래도 정통적인 공화당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정치인이었다. 그게 미국의 사회적 합의라고 생각했다. 반대급부로 오바마도 진보의 희망을 타고 올라갔으나 제도권 정치의 느린 틀 안에서만 움직였기에 더욱 미국의 비효율적인 민주제의 안정성은 오래 갈 것 같았다.
그런데 트럼프가 왔다. 하지만 트럼프 1기의 충격을 맞고도, 이런 건 미국 민주제의 큰 흐름에서 여전히 일회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나다를까 코로나 위기를 거쳐 바이든이 왔고, 다시 사회는 정상화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트럼프의 악몽이 시작했고, 미국 민주제의 기본 합의 같은 한가한 인식은 과거의 향수가 되었다.
전 세계적인 극우의 흐름이 분명히 있다. 아르헨티나, 윤석열, 스웨덴… 여혐으로 발현됐다가 반이민, 인종차별까지 진화하는 그런 세계사적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 20년을 돌아보면,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였던 것 같다.

그 위기 자체라기보다는 2008년 이후 더 극단적으로 심화한 양극화, 빈부 차이 등으로 자본주의의 위기가 축적했다고 생각한다. 그때를 직후로 좌파 포퓰리즘도 있었지만, 좌파의 정치적 해결 능력은 검증받지 못했고, 결국 실패했다. 대중의 정치 혐오가 오히려 더 커졌고, 축적하면서 그 정치 혐오와 불만의 타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여성, 노인, 외국인 노동자…
항체: 남태령과 키세스
쇠퇴하는 미국 민주제를 반면교사 삼아 극우 사회를 방지하려면, 한국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사실 뻔하다. 지난 비상계엄 국면에서 가장 평가해야 하는 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바로 행동했다는 거다. 기본 전제는 보수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든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든, 어쨌든 민주적인 사회라는 인프라를 잃으면 안 된다는 기본 전제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위기 의식을 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서 지키려면, 획일화된 권력의 압제에 맞서는 다양한 이들의 연대가 제 맛이다. ‘남태령 정신’일랄까. 지금은 뒷전으로 밀렸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주변화됐던 사람들이 연대해서 힘을 키울 수 있는. LGBT와 농민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그것만 제대로 해도, 트럼프나 윤석열 같은 역사가 되풀이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트랙터 몰고 온 농민에게 무지개떡을 나눠 먹는 풍경이 가지는 힘이다. 연대의 과정에서 서로의 처지에 귀를 열고, 복잡하고 지난할 해결 과정을 인정하되 그 첫 걸음에 필요한 기반에 대한 합의도 납득할 수 있게 된다. 예컨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든지.
물론 김병기-강선우-이혜훈… 권력을 자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더 냉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은박지를 뒤집어 쓰고 눈이 오는 차가운 겨울 보도블럭에서 버텼는가. ‘키세스’ 시위대를 이야기하고, 남태령을 이야기해야 한다. 냉소는 쉬운 방법이다. 기억을, 문제의식을, 그때 떠올렸던 과제들을, 계속 되새기고 일상에 각인시켜야 한다. 특권의식과 피해의식을 전략적으로 부풀리는 세상 재밌고 자극적인 미디어 세태, 담론 환경이라 할지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