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칼럼] 경남도민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한 필자가 부산과 창원에서 오랫동안 판사 생활한 문형배(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여러분과 나눕니다. (⌚6분)


👨‍⚖️문형배 이야기
  1. 민주주의자
  2. 강강약약
  3. 법원주의자
  4. 공엄사관
  5. 지역법관
2025년 4월 4일 역사적인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 결정문(요지)을 읽고 있는 문형배.

선거법은 장식이 아니다

문형배에게 선거 부정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권재민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드는 반민주주의 사범이기도 했다. 그는 표를 사기 위해 돈을 뿌리는 금권선거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하게 판결했는데 앞서 얘기한 한나라당 당시 국회의원 김정부의 아내에게 내린 징역형 판결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다른 금권선거에서도 문형배의 엄정한 선고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았다.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평범한 시골의 마을 주민 8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무더기 기소된 적이 있었다. 이장이 한나라당 특정 후보 지지 부탁과 함께 60만~100만 원을 나머지 7명에게 건넸고 돈을 받은 이들 중 3명은 다른 주민에게 다시 나눠주었고 4명은 그냥 갖고 있었다.

문형배는 이들에게 차등을 두면서도 단호한 판결을 내렸다. 600만 원에 가까운 거금을 뿌린 마을 이장에게는 가장 센 징역 1년을, 자기가 받은 돈을 이웃에게 다시 나눠준 3명에게는 집행유예 없는 징역 6월을, 받은 돈을 나눠주지 않고 갖고만 있었던 4명에게는 집행유예 2년이 달린 징역 6월을 각각 선고했던 것이다.

2006년 7월 문형배 당시 창원지법 제3형사부 부장판사는 어찌 보면 가혹하다 싶은 이 판결을 깊은 고뇌 끝에 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뒤떨어진 정치 수준이다. 선거법은 장식이 아닌 만큼 단호하게 처벌해 불법 선거는 꿈도 꾸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금권선거의 악습을 끊기 위해 실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

금권선거와 뇌물 사건은 쌍둥이

선거 부정과 부패 범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선거에서 엄청난 금품을 썼다면 당선되고 나서 뇌물이나 횡령 등으로 그만큼 벌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권 선거는 반드시 처벌받고 당선 무효가 되도록 만드는 한편, 뇌물 또한 한 번만 받아도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때그때0년 전 법원은 온정주의 판결을 내놓기 일쑤였다.

문형배는 이런 시대의 요구를 앞장서 실천했다. 의장 당선을 위해 아내를 통해 같은 시의원들에게 1000만 원을 뇌물로 건넨 배영우 창원시의회 의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고 뇌물 1500만 원을 준 업체에게 낙동강 모래 채취권을 넘겨주려고 했던 김종규 창녕군수에 대해서도 징역 2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부패 사범에 대한 엄정 처벌은 대법원의 일관된 방침이고 그 약속을 지켜야만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생계형 범죄는 곤궁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엄벌해도 다시 생기지만 고위층 부패는 싱가포르처럼 엄정 처벌하면 재발 방지가 된다”였다.

일반 형사 사범에겐 관대한 처분

문형배는 법은 장식품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법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잘못을 저지른 본인뿐임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에게 법은 그리로 이끄는 통로이고 수단일 따름이었다. 그가 고위층의 반민주주의 부패 사범에는 엄격했지만 일반 형사 사범에는 관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문형배는 2005년 7월 필로폰을 투약한 30대 여성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형사 처벌은 보복이 아니라 교화(敎化)가 목적이다. 징역형은 마지막 수단이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최대한 찾아보고 그래도 도저히 안 될 때만 교도소에 보내야 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궁리한 끝에 보호관찰 3년에 다달이 소변검사를 조건으로 석방하기로 했다.” 소변검사로 마약 투약 재범을 막을 수 있으니 풀어주어도 되겠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갈치 가운데토막’을 꺼낸 적도 있다. 2005년 9월 20대 청년을 벌금형으로 풀어주면서였다. 그는 “갈치가 긴 것 같지만 머리 떼고 꼬리 자르면 얼마 안 남는다. 그조차 내장을 덜고 나면 남는 것 없다. 인생 가운데토막은 18~36살이다. 피고인은 12년이나 남았다 할지 모르지만 살아보면 짧고 그 후에는 새롭게 고쳐 살려 해도 그러기가 참 어렵다”고 타일렀다.

2006년 2월에는 형량이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인 강도 상해를 저지른 대학생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기도 했다. “중한 것은 중하게 가벼운 것은 가볍게 판결하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부드럽게 한다는 원칙도 있다. ‘죄는 무겁지만 사람은 약자’인 이 상황에 고민을 많이 했다”라면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2019년 3월 7일 진주문고에서 강연하는 문형배의 모습.

책 선물과 ‘자살’ 10번 외치기는 방편

문형배 헌법재판관의 판사 시절 일화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30대 방화미수범에게 2007년 2월 선고 공판에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인생 지침서로 선물하면서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했던 일이다.

피고인은 영문도 모른 채 열 번을 외쳤고 이를 다 듣고 난 문형배는 이렇게 말하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우리 귀에는 ‘자, 살자’로 들린다.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새롭게 고쳐 생각하며 살아보시라.”

이를 두고 문형배가 한 번 튀어보려고 꾸며낸 일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징역형이냐 벌금형이냐 하는 판단보다 사람을 우선시하고 중심에 놓으면서 생각하고 궁리한 끝에 찾아낸 방편이었다. 그날 우연히 그 법정에 기자들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기사로 나오지도 않았을 그런 이야기다.

책 선물보다 울림이 큰 그의 당부

책 선물은 이 밖에도 많다.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문형배에게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선물 받은 사람은 앞서 2006년 7월에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선물보다는 그가 그 자리에서 했던 이런 말들이 더 큰 울림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연민과 배려와 존중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오면서 성공 못한 일이 많겠지만 실패했다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이번에 미수에 그쳤으니 다행이지 자살이 성공했다면 이 자리에 설 수라도 있었겠느냐? 꼭 해야 할 49가지 가운데 피고인이 해본 것보다 하지 않은 일이 더 많을 것 같다. 죽을 생각일랑 하지 말고 하지 않은 일을 실천하면서 살기 바란다.”

문형배는 ‘마시멜로 이야기’도 선물한 적이 있다.

대리번역(정지영) 논란으로도 화제였던 추억의 책 ‘마시멜로 이야기’

2006년 8월 본드 흡입 재범으로 구속된 26살 청년이 대상이었다. 범죄를 구성하는지 여부만 보고 판결해도 되지만 문형배 재판부는 청년의 인생을 통째 살펴보고는 벌금 800만 원을 선고했다. 800만 원은 구속 기간 160일을 일당 5만 원의 노역 유치형으로 환산한 것이라 더 내야 하는 벌금은 없었다.

그는 창원보호관찰소를 통한 조사에서 청년이

  •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고
  • 16살 때 어머니가 재혼했으나
  • 여전히 가난해 함께 지낼 방이 모자랄 정도였고
  • 어머니와 동생만 새아버지와 같이 지냈으며
  • 청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혼자 나와 살았는데
  • 한 해 전에는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문형배 재판부는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판시했다. “풀어주면 안 된다는 검찰도 맞고 징역형을 선고한 1심도 옳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과거 불행에 주목하고 나아질 앞날에 기대를 걸겠습니다.” 그러면서 세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는 ‘포기하지 마십시오’입니다. 둘째도 ‘포기하지 마십시오’이고, 셋째 또한 ‘포기하지 마십시오’입니다.”

당시 이 판결에 대해 물었을 때 문형배는 이렇게 말했다. “징역이냐 아니냐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고 법원이 병원·상담소 등을 활용해 이를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책을 선물하는 것도 별나게 보이는 모양인데 사실 선배 판사한테 배웠을 뿐이고 혼자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의 이런 발언에는 솔직·담백·겸손이 함께 깔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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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댓글

  1. 눈시울이 뜨끈해지네요. 좋은 이야기를 찾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장하 선생님께도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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