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칼럼] 경남도민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한 필자가 부산과 창원에서 오랫동안 판사 생활한 문형배(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여러분과 나눕니다. (⏳4분)


👨‍⚖️문형배 이야기
  1. 민주주의자
  2. 강강약약
  3. 법원주의자
  4. 공엄사관
  5. 지역법관

재건축조합 부패 사건, 3명에게 징역 5년

금권선거나 부패 사건에 대한 문형배의 엄정한 판결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사법부가 신뢰를 되찾으려면 그동안 온정주의 판결을 내렸던 공무원·기업가 등 사회지도층의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자기 생각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엄정한 판결에 지역사회는 환호했으며 창원지법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곧바로 수직상승했다.

문형배의 이런 판단은 공무원 등 공직 사회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공적인 성격이 조금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그의 엄단 의지는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문형배 재판부가 2006년 1월 업무상 배임·횡령으로 기소된 의령농협 미곡 처리장 소장에 대해 실형을 선고한 것도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소장은 다른 공범 2명과 함께 쌀 3468t 69억 원어치를 빼돌려 의령농협에 커다란 재산상 손해를 끼쳤고 아직 회복하지 못한 피해액도 10억 원을 웃돈다. 또 감사를 피하기 위하여 시가가 4억1000만 원 정도인 부동산을 9억3000만 원짜리로 속여 담보로 잡히기도 했다”면서 징역 2년6월에 이르는 실형을 선고했다.

반송주공아파트1단지 재건축조합 노 모 조합장·조모 총무이사와 이 모 씨가 업자로부터 1억 원을 받아 나눠 가졌다가 뇌물죄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2005년 9월 검찰이 구형한 징역 5년을 하나도 깎지 않고 돈을 받은 3명 모두에게 선고했다. 앞서 뇌물 1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김종규 창녕군수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데 비교해도 센 판결이었다.

민간 부문인 재건축조합 임원이 공무원에게만 적용되는 뇌물죄로 처벌받은 것과 법원이 검찰이 구형한 형량 그대로 선고한 것에 대해 당시 지역 법조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재건축조합 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한 것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검찰의 판단이었지만, 검찰 구형에 손대지 않은 것은 문형배의 의지였다.

필자인 김훤주 기자가 2005년 당시 쓴 관련 기사. 경남도민일보 갈무리.

사적 영역은 자정 기대, 해고 안 되도록 배려

반면 같은 부패 사건이라도 사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경우는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그는 2005년 8월 입사추천서를 써주는 대가로 1인당 150만 원 안팎씩 모두 2900만 원가량을 받았다가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한 마산버스노조 장모 지부장에 대해 원심을 깨고 집행유예를 붙여 풀어줬다.

그는 “장 씨가 지부장에서 물러났고 또 이 사건 이후 지부장 입사추천서 제도가 폐지되어 재발할 우려가 없어졌다”며 이같이 선고한 다음 “사규에는 형사 고의범으로 징역형을 확정받으면 사원 자격이 박탈되도록 규정되어 있으므로 징역형 집행유예도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지부장에게는 해고를 피할 수 없는 형량을 선고했지만, 그보다 죄질이 덜한 공범에게는 더 가벼운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진 모 부지부장에 대해서는 벌금 450만 원을 선고했다. 사규에 걸리지 않도록 하여 해고만큼은 면할 수 있게 배려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대목이었다.

2022년 윤석열이 지명한 오석준 대법관은 800원을 횡령한 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고 이번에 한덕수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함성훈 판사도 2400원을 횡령한 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문형배는 선고에 앞서 피고인과 그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까지 헤아렸지만, 함성훈·오석준에게 이런 문제는 처음부터 살펴볼 생각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공은 엄정하게 사는 관대하게

그는 이때 공과 사를 구분해서 얘기했다. “노동조합은 사적인 영역으로 볼 수 있으므로 자정을 기대해 보겠다. 이번 지부장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후보가 깨끗한 노조 운영을 다짐한 만큼 노조가 스스로 맑아지기를 바란다”면서 “지금은 공공 영역의 부패가 더욱 중요한 문제이며 따라서 부패 척결 노력도 여기에 집중돼야 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때 사적인 영역도 같은 부패라면 똑같이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 한 사람이 단독으로 했다면 몰라도 조직을 끼고 벌어진 부패라면 처벌이 달라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어용노조의 집행부들이 사용자와 붙어서 일반 조합원은 억누르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지역 현실에 넌덜머리가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판사실을 찾아가 왜 그렇게 양형이 달랐는지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명쾌한 설명이었다:

“아, 그거요? 공적 영역은 주권자인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지 않습니까? 또 잘못되면 자치단체 구성원 전체가 피해를 봅니다. 반면 사적인 영역은 세금도 투입되지 않고 피해 규모도 해당 조직으로 국한되잖아요.”

문형배

공직 부패만 해도 아주 버거웠다

나름 짐작되는 다른 사정도 있었다. 그는 그날 판결에 앞서 “공적 영역의 부패 척결만으로도 힘겹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는 판결을 하면서 기분이 좋고 즐거운 법관은 없다. 그런데 공적인 영역에 구속해서 엄단해야 할 사건이 넘치니까 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되도록 구속 판결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패 사건은 눈에 띄게 진행되지 않는다. 뚜렷한 물증이 없어서 부인하면 그만인 경우가 많다. 하나같이 예민해져 있는 가운데 길고 지루한 공방이 계속되는 공판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이끌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사실관계 확정부터 유·무죄 판단까지 손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문형배 재판부는 그런 사건을 여러 개 동시다발로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굵직한 것만 해도 배영우 창원시의장, 김정부 국회의원 아내, 황철곤 마산시장, 김종규 창녕군수, 김 모 마산시의원 등 다섯 개였다. 전부 내용이 복잡하고 증인도 많아 방청만 해도 골치가 아팠으며 배영우와 김정부 아내는 재판 지연 술책까지 부렸다. 이밖에 자잘한 규모까지 치면 10건을 넘었으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웠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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