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인터뷰]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 “생산적 금융이 이재명노믹스 키워드, 주담대 위험 가중치만 바꿔도 돈이 돈다. ”
이재명 정부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핵심 경제 전략으로 내세운다. 대통령 이재명은 지난 9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부동산 투자, 투기에 집중된 면이 있는데, 이게 국가 경제를 매우 불안정하게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금융 정책에서 집중적으로 노력하는 건 생산적 영역으로 물꼬를 트는 것이다.”
금융위원장 이억원도 취임 직후부터 여러 차례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열어 “정책 금융이 첨단·벤처기업과 지역 경제로 시중 자금의 물꼬 전환을 선도하며, 금융감독 전반의 개선을 통해 업권별 특성을 살린 금융회사의 생산적 금융 역할을 확립하고, 기업이 성장 단계별로 원활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을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 생산적 금융 정책 방향을 밝혔다.
종합해 보면 금융이 자산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혁신, 고용, 지역 발전을 뒷받침하는 건전한 순환 구조로 전환하는 방향이 생산적 금융이라 하겠다. 마침 최근 출간한 책 ‘생산적 금융’의 저자 김용기(65·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를 만나 보다 상세하게 생산적 금융의 이론적 토대가 무엇인지 경청할 수 있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구조적 모순은 ‘금융’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고용 없는 성장 심화, 생산성 둔화와 구조적 저성장, 청년 실업 증가와 사회적 불만 확산, 금융화 가속과 자산 시장 의존 심화, 부동산 시장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 확대, 가계 부채 누적까지.
- 김용기는 자본(금융)이 경제 내에서 순환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 산업적 순환(industrial circulation)은 ‘기업→생산→고용→소득→소비→재투자’로 이어지는 경로를 따른다. 금융은 기업에 자금을 제공해 생산을 늘리고, 이는 다시 일자리와 임금을 창출한다. 그리고 소득이 소비와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 속에 금융은 실질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매개 역할을 한다.
- 금융적 순환(financial circulation)은 ‘부동산 담보 대출→자산 구매→자산 가격 상승→더 큰 대출→추가 자산 구매’라는 반복적 고리가 형성된다. 여기서 자본(금융)은 생산이나 고용과 무관하게 자산 거래를 반복하는데 사용된다. 단기적으로 금융적 순환은 자산 효과(wealth effect)를 통한 소비 진작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금융과 실물 부문의 단절을 부른다. ‘버블→붕괴→위기’ 사이클이 뒤따른다.

‘생산적 금융’이란 무엇인가.
- 김용기에게 물었다. “저자가 말하는 ‘생산적 금융’과 정부의 ‘생산적 금융’은 동일한 개념인가?”
- 김용기는 “동일하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 “본래 산업혁명 전후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 경제학자의 저작을 보면 ‘자본의 생산적 사용’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자본이 국가의 부를 확장하는데 생산적으로 사용돼야 한다’고 했고, 리카도는 ‘자본의 본질은 생산적 사용’이라고 하며 ‘기계도구·원자재·임금 기금으로 자본이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밀 또한 ‘저축과 투자가 산업 성장을 이끄는 핵심’이라 강조하며 ‘금융 시장 투기로 인해 자본이 산업 투자에서 금융 투자로 유도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기본적으로 금융(자본)은 생산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1930년대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금융이 산업 성장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려면, 자본이 금융 시장에서 투기적 활동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금융이 생산적 과정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 하에서 금융이 실물경제와 유리돼 스스로 자산 증식에 사용되는 일이 만연하게 된다. OECD 선진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이런 현상이 지배적으로 되고, 한국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OECD 선진국의 경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런 금융 모습에 대한 반성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는데, 한국은 2010년대에 실물과 유리된 금융 모습이 오히려 심화돼 나타났다.”
- “내가 ‘생산적 금융’ 책을 쓴 이유나 정부가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을 주창하는 이유는 현재와 같은 금융(자본)의 순환 방식이 저성장과 양극화를 심화시켜, 이제는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생산적 금융으로 어떻게 전환할 수 있나.
- 민간 금융은 담보가 확실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치중한다. 지난 20년간 산업과 분리된 채 자산 중심 순환에 뿌리를 내렸다. 민간금융을 다시 산업과 연결된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하는 게 ‘저성장의 덫’에서 벗어나는 데 있어서 풀어야 할 숙제다. 어떻게?
- 김용기는 이렇게 설명한다. “대출 상품이나 투자 형태에 따라 적용되는 위험 가중치를 재편해야 한다. 그동안 주담대의 위험 가중치가 낮았기 때문에 은행은 동일한 자기 자본을 갖고도 주담대 중심의 많은 대출을 해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생산적 금융이라는 것은 민간은행이 생산적 활동으로, 즉 기업에 투자하도록 유인 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금융 규율을 이렇게 개편하면 주담대 비중은 줄고 기업 대출 비중은 상대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금융사는 자산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게끔 당국 규제를 받는다. BIS 비율은 은행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 자본 비중을 뜻한다.
- 세 차례에 걸쳐 국제 표준이라는 이름 아래 BIS 규제를 금융 당국이 도입했는데, 한국은 국제적 권고보다 주담대는 더욱 낮게 위험 가중치를 설정함으로써 부동산 담보 대출 확대에 기여했다.
-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에 따르면, 국내 20개 은행의 주담대 위험가중치는 평균 18.9%로 기업 대출(57.9%)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 금융위원회는 주담대 위험 가중치를 올리고 주식은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주담대 위험 가중치 하한을 15%에서 20%로 올리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이 오르면 은행이 추가로 쓸 수 있는 자본이 늘어난다. 기업 대출이 73조 원 이상 늘어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의 경제성장? “정책금융기관 빼놓고는 설명 불가.”
- 생산적 금융을 위해서는 정책금융기관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용기는 “정책금융기관은 시장이 스스로 제공하지 못하는 장기, 저리, 위험 자본을 공급해서 경제 순환에 숨을 불어넣는다”고 했다. 민간이 뛰어들지 않는 영역에 자금을 공급하여 기업의 혁신을 돕는 기능이다.
- “한국의 경제 성장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정책금융기관에 의한 생산적 금융은 고도 성장을 가능케 한 버팀목 역할을 했다.” “생산적 금융을 위한 유인책으로 한국은행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행의 저리 정책 자금을 시중은행에 공급함으로써 주담대 보다 리스크가 높은 중소기업 대출에 따른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금융중개지원대출 제도: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중소기업 대출에 활용하도록 한 제도.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 대한 비판.
- 정부가 금융 규율을 손볼 때 듣는 비판 중 하나는 ‘관치금융’이다. 김용기는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을 비판한다. 가급적이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손쉽게 정부 개입을 ‘관치금융’으로 동일시한다.
- “적지 않은 이들이 정부의 규제를 ‘관치금융’이라고 쉽게 비판하지만 정부 규제와 감독은 금융사의 사적 이익보다 금융시스템 안정성 등 사회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한 규제와 감독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제조업 몰락, 부동산 투기와 가격 상승, 일자리 부족을 부르고 있는 현재의 비생산적 금융
을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산적 금융, 성공할까? 성공해야 한다.
- 금융 관료 출신인 김용범(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017년 가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금융권 자본규제 개편 TF’를 출범시킨 바 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정책 우선순위가 위기 대응과 유동성 공급으로 전환되면서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 김용기에게 이재명 정부는 성공할 수 있을까 물었다. “지금은 문재인 정부 당시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이다. 제조업 몰락, 부동산 투기와 가격 상승, 청년 일자리 부족 등은 금융적 순환이 지배하는 자산경제 사회의 풍경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떨어지는 잠재 성장률을 역전(반등)시킬 최초의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생산적 금융 밖에 없다. 이점에 관한 한 관료들도 문재인 정부 때보다 훨씬 진심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금융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용기는 누구.
-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경제학 석사, 국제정치경제학 (금융) 박사 학위 취득.
- 박사 학위 논문 ‘금융규제제도와 정책선택’(Regulatory Institutions and Policy Choice)에서 금융 안정과 성장 촉진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가 상충 또는 상보할 수 있음을 분석.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를 지낸 후 2025년 8월 퇴직.
-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2020. 2.~2022. 5.) 역임. 재임 중 일자리위원회 내 ‘일자리금융 TF’를 설치, ‘생산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지역금융 활성화 방안’ 추진.
-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 사단법인 국제금융센터 이사회 의장, 공적자금관리위원, NH농협금융지주 이사회 사외이사 겸 리스크관리위원장 역임.
- 현 연구단체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