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고 충성하던 대한민국이 처한 암담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며 글을 남긴다.
오늘 우리 누나가 코레일과의 10년간의 싸움에서 졌다. 아니, 제대로 말하면 대한민국 노동 현실과 이미 정치권력에 휘둘린 사법부에 뒤통수를 맞았다. 2004년부터 2015년 11월 27일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던 우리 누나의 이야기는 좀 길다.
2004년 4월 1일 수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서 KTX가 개통되었다. 그와 함께 코레일은 ‘선로 위의 스튜어디스’ 1기 승무원 300명을 모집했다. 고속철도 승무원체계가 아직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임시로 홍익회(현 철도유통)의 계약직으로 시작하면 차후 직급체계와 급여제도를 조정해서 ‘항공사 승무원급 대우와 정규직전환’을 시켜준다는 설명을 보태었다.
당시 누나는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체력 검정을 앞두고 수영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과대광고에 속은(누나 말로는 ‘수영연습을 하기 싫어서’) 우리 누나는 안타깝게도 KTX 승무원 채용에 지원했고, 4천여 명 중에서 ‘안타깝게도’ 합격했다. KTX 승무원들은 하도급형태로 고용되었다. 코레일에서 지급하는 230여만 원의 월급은 홍익회를 거쳐서 170여만 원으로 줄었으며 세금 빼고 140여만 원의 월급만을 받았다. 우리 누나는 그래도 동생에게 매달 용돈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약속된 정규직전환이 다가오자 코레일은 코레일관광레저라는 새로운 자회사를 만들어서 승무원들과 비정규직 재계약을 추진했다. 당시의 우리 누나와 몇몇 동료는 코레일의 제안을 수락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철도노조가 이 여성들을 거들었다. 2006년 누나를 비롯한 수십 명의 승무원들은 재계약에 반대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에 코레일은 새로 만든 자회사의 정규직을 시켜주겠다고 그들을 다시 꾀었지만, 노조와 함께였던 그들은 ‘직접고용’ 외치며 다시 버텼다. 하지만 결국 코레일은 시위에 참가한 승무원 모두를 해고했다.
당시의 여론은 이랬다. 자회사 정규직도 감지덕지해라. 공기업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떼써서 들어가려고 하는 너희는 답이 없다. 대부분이 ‘물타기로 공기업에 들어가려 하는’ 파렴치한 승무원들을 욕했다. 코레일의 괴상한 고용형태를 욕한 사람은 내 기억으론 매우 소수였다.
해고된 승무원들의 고용형태를 놓고 철도노조는 그 이후에도 코레일과 계속 싸웠고 법원에서 끝장을 보았다. 2010년 서울지방법원은 코레일이 노동법상 마땅히 져야 할 의무를 피하고자 근로관계를 은폐하고 위장했다고 판결하며 승무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코레일은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 역시 승무원들과 철도공사 간의 암묵적인 계약관계가 성립되므로 복직할 때까지 해고승무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승무원의 손을 들어주었다. 5년간의 싸움이 끝났다. 그 사이 우리 가족은 행복했다. 누나는 연예를 시작했고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하지만 코레일은 2심의 결과에 불복하여 상고하고, 승무원의 복직을 거부했다. 대법원은 올해 초까지 판결을 질질 끌다가 코레일이 맞으니 판결을 다시 하라는 말과 함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다시 내려보냈다. 오늘 열린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에서 승무원들은 패소했다. 2심의 승소로 법정소송 기간 동안 받았던 임시처분 임금 약 8천만 원을 모두 토해내야 한다.
올해 초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난 후 이에 충격을 받은 누나의 동료 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는 스물다섯에 첫 직장을 얻었고 스물일곱에 해고당했으며 서른여섯이 되는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그녀의 삶을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녀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으며, 그녀의 동료가 10년 동안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낭비했을까? 그냥 가만히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몸과 마음도 편하게 아무런 문제 없이 과장까지 승진했을 것을 말이다.
7년간 계속된 이 문제는 채용자의 말만 믿고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서명한 그녀들의 잘못일 수도 있으며 첫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던 그녀들을 시위 판으로 꾀어낸 노조의 잘못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인지해야 할 본질적 문제는 불완전한 법체계를 이용해 괴상한 고용형태를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노동관행과 집권세력에 의해 새롭게 정의되는 ‘헌법적 가치’가 사법부의 존엄성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그녀들의 삶 일부분을 희생하며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제에 대항했던 독립투사들을 존경하고 그들에게 협조한 친일파들을 욕한다. 독립투사들은 그들은 일제에 빼앗긴 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소신을 지키며 싸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은 그녀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생각한다. 암담한 현실 앞에서 소신을 지키기보다 안위를 선택한, 당시로 치면 친일파가 되었을 법한 나는, 10년 동안 소신을 지킨 우리 누나와 그녀의 동료를 존경한다. 잠깐이라도 사회의 관행 속에 몸을 맡기며 그 밖에 사람들을 비정상이라 여겼던 내가 부끄럽다. 그리고 반성한다.
슬픕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글을 보니 그렇네요
불완전한 법이라도 그 취지를 살리는 게 맞지 않나요
법은 몸집이 작고 약자에게는 쉽게 다가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결단으로 쓸수 있는 것이기에 비극적인 결말이 안타깝네요
법 위에 자신의 안녕과 권리와 자유를 추구할 인간이 있고, 법 아래에 사람 없죠
사법부에서도 분명 치열하게 판결을 내리셨겠지만 밖의 시민으로는 정확하게 알기 힘드니 답답합니다
판결 결과를 뉴스로 듣기는 하지만 너무 추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전에 슬로우뉴스에서 쌍용차 이야기를 듣고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했거든요. 이번 판결도 그 의미와 과정에 대해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창구가 생기거나, 있다면 널리 알려지면 좋겠네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근간인 법의 결과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토론할 수 있고, 힘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이런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곳은 결국
이런 문제로 10년을 싸워야 하는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