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언련 칼럼] 내란정권 최초 언론파업 KBS, 이제는 내란잔당 청산이다. (박상현/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 (⏳4분)
지금 KBS 구성원들은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이 파면되었지만, 여전히 KBS에는 내란 정권에 부역하고 KBS를 용산에 헌납했던 세력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기 잇속을 챙겨 먹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들에게 KBS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본인들이 호가호위할 수 있다면 권력과 거래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긴 싸움의 역사
KBS의 힘든 싸움은 오래전 시작됐습니다. 과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서기원-서동구 사장 반대 투쟁은 KBS가 공영방송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낼 때는 달랐습니다. 당시 KBS 노조는 정권의 정연주 사장 축출에 발맞췄습니다. 그러고는 대통령 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과 손잡았습니다. 어쩌면 KBS의 힘든 싸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구성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언론자유가 짓밟히던 2009년 12월, 정권의 어용이 된 KBS 노조 집행부에 맞서 ‘새노조’를 만들었습니다. 다시 ‘언론노조 KBS본부’의 이름으로 이명박-박근혜 시기를 투쟁으로 헤쳐 나오며, 2017년 고대영 사장을 몰아냈습니다. 고대영을 쫓아낸 142일 파업 이후, KBS는 14년 만에 편성 규약을 개정해 임명동의제 등 공정방송 장치를 제도화했습니다.

수신료 분리징수, KBS 내부 분열시키다
또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송법 개정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서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출범 직후부터 언론 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윤석열 정권은 공영방송 장악에 가장 먼저 나섰습니다. 감사원과 국민권익위원회를 동원해 KBS를 압박하고, 이사들을 몰아냈습니다. 위법적 수신료 분리징수가 추진됐고, KBS는 폭풍 속으로 떠밀립니다.
이때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축출에 발맞추며 대통령 특보 출신 사장과 손잡았던 세력이 재등장합니다. 정권의 KBS 장악에 동조했던 세력이 내란 정권에서 또 KBS 헌납에 나선 겁니다. 이들은 그동안 KBS가 정파적이어서 수신료 분리 징수를 자초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희생양이 필요하다며 김의철 사장 퇴진을 촉구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KBS를 압박할 때, 정연주 사장이 나가야 해결된다고 주장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은 2008년 본인의 영달을 위해서 KBS를 팔아먹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자리욕심과 잇속을 챙기기 위해 내란 정권의 수하를 자처했습니다.
내란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은 과거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사장 교체를 넘어 공영방송 KBS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은 생계 걱정에 내몰렸습니다. KBS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나의 일터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넘쳐났습니다. 정권의 언론 장악이란 불의보다 개인의 생계가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됐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아예 노동조합에서 정치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노동조합은 정치적 투쟁보다 구성원 임금과 복지 등 근로조건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공정방송은 방송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니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공정방송은 방송 노동자의 기본 근로조건’임을 인정받을 수 있던 것은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을 통해 쟁취한 성과인데, 공정방송은 중요하다면서 정치투쟁은 지양하겠다는 형용모순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렇게 정치성을 배제하겠다는 또 다른 노동조합이 KBS에서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공정방송, ‘법비 정권’에 맞서다
KBS는 사분오열됐습니다. 공영방송 장악에 맞서 싸울 단일대오는 KBS에 없습니다. 그래도 언론노조 KBS본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란 정권의 수신료 분리징수를 권력의 공영방송 장악으로 규정하고 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낙하산 사장은 KBS를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정권에 헌납하러 오는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 제작이 중단됐을 때 시민사회와 함께 제작 재개와 방송을 촉구했습니다. 용산의 낙하산 사장이 일방적으로 임명 동의제를 파기했을 때 공정방송 장치를 지키기 위해 법률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7년 만에 조합원 총회를 성사해 공영방송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지켜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내란 정권 아래에서 언론사 최초의 파업 투쟁을 벌였습니다. 낙하산 사장이 또다시 KBS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며 ‘파우치 박장범’ 후보 면접일에 파업을 성사했습니다. 아부의 달인이 사장으로 취임하는 날에도 파업으로 공정방송 의지를 다졌습니다. 시민문화제를 열어 공영방송 KBS를 시민들과 함께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2.3 내란의 밤, 공영방송 KBS가 내란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캐내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다룬 ‘추적 60분’ 방송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취소했을 때 방송 촉구 투쟁을 벌였습니다.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법비(法匪; 법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나 무리) 내란 정권의 수신료 분리 징수, 낙하산 사장 임명, 임명 동의제 파기를 막기 위해 법정투쟁에 나섰지만, 번번이 졌습니다. 공영방송을 권력에 헌납한 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고소·고발에 나섰지만,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기관들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종결 처리해 버렸습니다. 소송 결과와 수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공영방송을 지키겠다는 KBS 구성원들은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내란 잔당 청산이 KBS 가치 실현이다
지난 2년 KBS 구성원들은 힘든 싸움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언론노조 KBS본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수신료 분리 징수 광풍 속 KBS가 사분오열된 상황에서도 KBS를 올곧게 지켜내기 위해 KBS본부를 중심으로 뭉쳤습니다. KBS가 공영방송으로, 국민의 방송으로 살아갈 길은 분명합니다.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시대를 기록하고,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KBS의 역할이 있습니다. KBS 가치를 실현하는 첫걸음은 KBS에 똬리를 틀고 있는 내란 잔당 청산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내란 정권에 맞서 버티는 것을 넘어 국민의 방송 KBS를 올곧게 정상화할 출발선에 다시 섰습니다.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KBS, 국민의 방송으로!’ 오래되었지만, 다시 되새기는 구호입니다.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다시 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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