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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오전 6시 20분께 경기 평택에 위치한 SPC그룹 계열사 SPL 빵반죽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끼임 사고는 기본 안전수칙 준수로 예방 가능한 재래형 사고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컸는데요.

사고 당일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SPC그룹이 사고 직후에도 공장 일부를 가동하고, 숨진 노동자 장례식장에 SPC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 빵을 보내는 등 부적절한 대응에 시민 분노도 커지고 있습니다. 사고 1주일 뒤인 10월 21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으나 이틀 만에 또 다른 계열사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며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언론이 SPC 빵공장 노동자 사망 사고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고 있지만, 보수언론‧경제지를 중심으로 해당 이슈를 외면하는 현상은 이전 노동 보도와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노동자 사망 사고의 원인 규명을 촉구하기보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으로 경영진 처벌을 걱정하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겨레 24건 vs 조선일보 3건

사고 이후 첫 평일인 10월 17일부터 1주일 간 8개 신문 지면과 7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룬 SPC 빵공장 사고 관련 보도를 분석했습니다. SPC그룹 계열사 광고를 제외한 사망 사고와 손 끼임 사고 관련 보도량을 살펴보니 신문 중에선 조선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방송 중에선 TV조선·채널A의 보도량이 적었습니다. 1주일 간 관련 보도가 2~4건에 그치다 보니 다른 언론과 비교했을 때 관련 보도 역시 부실했습니다.

신문 중 가장 보도를 많이 한 한겨레(24건)가장 보도 건수가 적은 조선일보(3건)의 경우 보도량이 8배나 차이 납니다. 특히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는 사고 이후 첫 평일인 10월 17일, 관련 기사를 지면에 싣지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 날에야 [가족 부양하던 제빵공장 20대 여성 근로자, 원료배합기에 빠져 숨져] (10월 18일 조철오 곽래건 기자)에서 사망 사고 소식을 알렸습니다.

중앙일보도 다음 날 경제섹션에서 SPC그룹이 10월 17일 허영인 회장 명의로 발표한 사과문을 옮겨 적은 [허영인 SPC 회장 “직원 사고 깊은 애도…작업환경 개선할 것”] (10월 18일 백일현 기자)을 다뤘습니다. 매일경제도 같은 날 [계열사 제빵공장 사망사고에 SPC그룹 “깊은 애도와 사죄”] (10월 18일 송경은 기자)에서 SPC그룹 공식 입장문을 주로 다뤘습니다. 중앙일보와 매일경제는 노동자 사망 사고 소식에 관심 갖기보다는 SPC그룹 입장문이 나오자 이를 기사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방송의 경우 사고 당일인 10월 15일 MBC, SBS, JTBC가 저녁종합뉴스에서 다뤘고, 사고 후 첫 평일인 10월 17일엔 7개 방송사 모두 다뤘습니다.

사망 사고 이후 회사는 해당 작업이 ‘2인 1조로 운영됐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는 동료 증언이 한겨레 [SPC “2인1조” 해명에…동료들은 “혼자 배합작업”] (10월 18일 박태우 장현은 전종휘 기자), 경향신문 [“끼임 사망 SPC 빵공장, 2인1조 규칙 안 지켜”] (10월 18일 김태희 정유미 기자), 한국일보 [허울뿐인 2인 1조…“배합실 일을 둘이 나눠할 뿐 홀로 작업”] (10월 18일 박지영 오세운 기자) 등을 통해 보도됐습니다.

MBC가 [사고 많은 빵 공장] (10월 21일 차주혁 기자)에서 SPC 식품계열사 10곳의 산업재해 현황 문서를 입수해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 반 동안 758명이 일하다 다쳤”다며 SPC그룹 전체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고, SBS는 [SPC 산재사고 ‘일주일에 3번꼴’…안전점검이 해결책?] (10월 23일 이혜미 기자)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SPC 계열사 산업재해 신청 건수를 분석해 “계열사 곳곳에서 일주일에 세 번꼴로 산재 사고가 발생한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JTBC는 [인터뷰/“사과한다면 우리에 먼저 알렸어야”] (10월 21일)를 통해 피해자 어머니를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보도량이 적은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TV조선, 채널A 등에선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SPC 계열사에서 지난 5년간 758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를 겪었다고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 (자료: 우원식 의원실, 2022. 10. 21.)

조선 중앙 매경… 노동자 사망사건보다 ‘파리바게뜨 런던1호점’ 먼저 보도

조선일보는 SPC 빵공장 사고와 관련해 3개 기사를 싣는 동안 홍보성 짙은 기사를 2건 냈습니다. 10월 17일[파리바게뜨 영 진출 런던에 1호점 열었다] (송혜진 기자)를 통해 SPC그룹이 영국 런던에 바리바게뜨 매장을 연 것을 보도했고, 10월 21일엔 [‘쫄깃 촉촉’ 돌에 구운 베이글] (이미지 이정구 기자, 참조: 지면 기사는 발행되었지만 현재 온라인 기사는 본문이 삭제된 것으로 보임)을 내고 파리바게뜨가 새롭게 출시한 돌판에 구운 베이글을 소개했습니다. 10월 15일 사망 사고가 있었음에도 사흘 지난 10월 18일 뒤늦게 사망 사고 소식을 처음 지면으로 전한 조선일보가, 그보다 앞선 10월 17일엔 ‘파리바게뜨 영국 런던 1호점 개장’ 기사를 실은 것입니다. 10월 21일 베이글 출시 소개는 기사형 광고 특집지면인 애드버토리얼 섹션(Advertorial section)에 실렸습니다.

‘파리바게뜨 영국 런던 1호점 개장’ 홍보기사를 조선일보만 쓴 것은 아닙니다. 10월 17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도 지면에 실었습니다. 중앙일보와 매일경제 역시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SPC 빵공장 사망 사고 소식을 10월 18일 뒤늦게 보도한 곳입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의 섬뜩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파리바게뜨 런던 1호점’ 기사… 이래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중앙일보가 조선일보와 같은 점은 더 있습니다. 10월 21일 애드버토리얼 섹션에 [‘짱구 캐릭터 키링’ 20종 출시…MZ세대 굿즈 맛집 등극] (박지원 중앙일보M&P 기자)을 싣고 SPC그룹 베스킨라빈스에서 출시하는 캐릭터 굿즈를 홍보한 것입니다. 모니터링 기간 경향신문은 기사형 광고 [싱가포르 비샨 최대 쇼핑몰에 ‘쉐이크쉑 9호점’ 개점] (10월 21일)에서, 매일경제는 유통업계 관련 기사 [“맛있는 걸 안주면 장난칠거야” 핼러윈시즌 한정판 즐겨보세요] (10월 20일 송경은 기자)에서 SPC그룹 홍보성 내용을 실었습니다.

한술 더 떠 “중대재해법 효과 없다”는 조선일보

한편 조선일보[중대재해법 9개월…하루 1.8명꼴 사망, 줄지가 않는다] (10월 24일 이준우 기자)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 효과를 지적했습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올해 1월 27일부터 “9월 말까지 일어난 중대 재해는 443건, 사망자는 446명”으로 “하루 1.8명”의 사망자가 나와 “법이 새로 생겼지만 산업재해로 숨진 근로자가 거의 줄지 않고 있는 셈”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조선일보는 SPC 빵공장 사망 사고 사흘 뒤 첫 관련 기사를 낸 것과 달리 허영인 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은 바로 다음날 지면에 [SPC, 대국민사과] (10월 22일 이정구 기자)를 낸 바 있습니다. 10월 23일 SPC 계열사인 경기 성남 샤니 빵공장에서 일어난 또 다른 손가락 끼임 사고는 보도하지 않다가, 다음날인 10월 24일 중대재해법 효과를 지적하는 기사를 실은 것입니다. 노동자가 일하다 죽거나 다친 덴 관심 없던 조선일보가 중대재해법 효과를 지적하니 의아한 부분입니다.

조선일보는 중대재해법 관련해 줄곧 기업 경영진이 처벌될까 우려하며 규제 완화를 주장해왔습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조선일보 등의 우려대로 중대재해법이 ‘기업을 죽였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조선일보 보도처럼 “지난달 19일까지 고용부가 중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사건은 56개, 이 중 21건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현재까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2건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새 세상을 떠난 노동자는 446명인데 말입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거의 1년, 2022년 9월 19일까지 고용노동부가 중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사건은 56개, 기소 의견 21건, 검찰 실제 기소 2건…. 그 사이 세상 떠난 노동자는 446명.

민주언론시민연합은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를 배포한 2021년 11월 17일부터 두 달여 간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보도를 살핀 모니터 보고서를 지난 2월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안전담당 임원 있어도, 중대재해땐 대표도 처벌…재계 “과잉 처벌”] (2021년 11월 17일 곽래건 기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반대하는 재계 입장을 실었고, [사설/5년간 “정부가 고용주” 고집, 이제 와 “일자리는 기업 몫”이라니] (2021년 12월 28일)에선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기업 경영진을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라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기업이 고용을 의욕적으로 늘리나”라고 반발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설명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은 ‘기업이 스스로 경영책임자를 중심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 및 이행하여 현장의 안전보건관리가 철저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지 경영책임자를 조건 없이 처벌하려는 법이 아닙니다. 게다가 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무조건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다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도 경영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 등 보수지와 경제지는 처벌을 우려하는 재계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부각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의 미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입법 논의는 어려워지고,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개정 시도만 부추긴 꼴이 되었습니다.

언론이 중대재해처벌법 효과를 높이고 노동자 죽음을 막고자 한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 “기업 숨통 죄는 법”(9월 16일 조선일보 1면 기사)이란 프레임 씌우기는 멈추고, 노동 사건‧사고 보도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SPC그룹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 노동조합 탄압과 같은 부당노동행위 등 언론의 관심을 기다리는 노동 문제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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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대상: 2022년 10월 17일~24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2022년 10월 17일~23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뉴스7](평일)/[뉴스센터](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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