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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 곧 신분이 되는 현대판 주거 신분사회를 타파하고, 집 걱정 때문에 포기했던 꿈과 희망을 돌려드릴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나가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2022. 10. 26.)

오늘 정부가 ‘청년·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분양 주택 50만호 공급계획’을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청년원가주택, 역세권 첫집주택 등을 구체화한 것으로 향후 5년간 나눔형 25만호(시세 70% 이하 분양), 선택형 10만호(6년 임대 후 분양여부 선택), 일반형 15만호(시세 80% 이하 분양) 등을 공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분양 중심 공급계획만으로는 서민의 주거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공공분양 50만호 공급계획의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자.

윤석열 정부가 “현대판 주거 신분사회 타파”에 기여할 수 있을까. (출처: Joop, “Korean appartments”, CC BY)

문제 1. 공공택지 땅 장사 금지, 건설원가 투명 공개 필요 

청년원가주택과 토지임대부 방식의 역세권 첫집은 건설원가 실태를 드러내고 저렴한 가격의 주택공급으로 서민주거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부는 원가주택은 시세의 70% 수준이라고만 밝힐 뿐 정확히 건설원가가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원가주택이 진짜 원가가 맞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원희룡 장관도 원가공개를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장관은 과거 국회의원과 제주도지사를 역임하던 시절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일관되게 찬성해왔다. 하지만 국토부 장관이 되고 처음 맞는 국정감사 자리에서는 LH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원가공개는 SH나 GH 등 지방공기업들이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LH를 상대로 한 원가공개 소송에서 사법부도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해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모든 공공주택의 건설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건설사의 무분별한 집값 부풀리기를 방지하고 공공기관 투명성도 강화된다.

왜 원가공개를 하지 않을까요? 줄곧 건설원가공개를 찬성해왔던 원희룡 장관은 정작 국토부 장관이 되자 원가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토지임대부 주택에 대해서는 “서울 도심에 도입하겠다”고만 언급할 뿐 구체적인 물량은 밝히지 않아 시행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LH 등 공기업들은 국민으로부터 강제수용한 택지를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여 큰 수익을 얻어 왔다. 건설사들은 이 땅에 아파트를 지어 비싼 가격에 분양하여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앞으로는 강제수용 택지는 팔지말고 건물분양 또는 장기임대 방식으로 분양해야 한다.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하면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으며,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토지가격 상승분은 공공의 몫이 된다. 그러나 이번 발표 중 공공택지매각금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아 공공택지 땅장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건설원가공개와 공공택지 매각금지 등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공공분양 50만호 공급도 땅 장사, 집 장사 논란을 피할 수 없다.

LH의 집 장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이다?!

문제 2. 79만 반지하 등 주거취약계층 문제 

폭염과 폭우 등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고 있다. 반지하 등 주거 취약계층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하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도 오늘 시정연설을 통해 폭우와 재난으로 인한 피해복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밝히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3년 국토부 예산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주거취약계층에게 가장 효과적인 주거안정 대책인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전년대비 5.7조원(28.2%)이나 감축됐다고 한다. 또한 심상정 의원실 국감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이후 LH의 공공임대주택 물량 6만호가 취소나 변경되며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실련 분석 결과, 서민들이 저렴한 임대료만 지불하고도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장기공공아파트 재고 2020년 기준 92.5만호로, 총 주택수 대비 재고율은 4%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OECD평균 장기공공주택 재고율 8%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국민들이 원하는 장기임대아파트로 국한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거불안을 넘어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기위해 정부는 영구, 국민, 장기전세와 같은 장기공공주택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50만호를 모두 분양주택으로 공급한다면 정작 장기임대주택 공급이 축소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더 이상 판매용 주택에 치중해서는 안되며, 지금부터라도 강제수용 토지는 한 평도 팔아서는 안된다. 분양주택은 모두 건물분양으로 공급하고 국민임대와 같은 장기임대주택 위주로 공급해야 한다.

 

문제 3. 세대(계층) 나누지 말고 소득 기준으로 공급해야

대상별 청약자격에 따르면 월 평균 소득 요건이 19세~39세 미혼 청년은 140% 이하인데 비해 신혼부부, 생애최초 130%, 중장년층은 120% 이하로 규정되어 있다. 50만호 중 2/3에 해당하는 34만호는 청년층에게, 청년 외 계층에게는 나머지 16만호가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계층은 사회적 경험과 모아둔 자산이 적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층에 속한다. 그러나 주택공급에 있어 중장년층보다 소득기준을 완화해서 청년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역차별 논란과 세대간 갈등이 조장될 위험이 있다. 최근들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경제 상황을 볼 때 나이를 기준으로 혜택을 차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소득을 기준으로 공급해야 한다.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을 위하여 공공주택공급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최근 들어 경제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경제위기가 또다시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마저 확산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만큼 서민들이 주거만큼은 안심할 수 있도록 공공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공공분양 대책은 결국 분양을 받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공분양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양한 계층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분양과 특정 계층에 집중된 정책으로 정책의 효과가 일부의 계층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정부가 전면적인 정책 재검토에 나서 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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