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 칼럼] 경남도민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한 필자가 부산과 창원에서 오랫동안 판사 생활한 문형배(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의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여러분과 나눕니다. (⏳4분)


👨‍⚖️문형배 이야기
  1. 민주주의자
  2. 강강약약
  3. 법원주의자
  4. 공엄사관
  5. 지역법관

고법에 가면 구부러지는 기준

내가 아는 문형배는 법원주의자다. 법원을 아끼고 사랑하며 나아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는 법원이 잘 되려면 무엇보다 주권자인 국민의 믿음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인 법원이 공평무사하게 판결해야 하고 여태 그렇지 못했으면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보았다.

문형배는 열성을 다해 공정한 재판을 위해 애썼고 그에 힘입어 창원지법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5년 배영우 창원시의회 의장과 김종규 창녕군수를 실형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했을 때 지역사회는 온통 환영 일색이었다. 약하고 없는 이에게 가혹한 반면, 강하고 가진 이에게 관대했던 잣대가 이제야 비로소 가지런해졌다며 다들 통쾌해했다.

그러나 사건이 문형배를 떠나 고등법원 항소심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졌다. 부산고법은 배영우와 김종규 둘 다를 한 달가량 지난 시점에 보석으로 풀어주었다. 배영우는 의장직 사퇴가 전제 조건이었고 김종규를 위해서는 ‘한 달 가까이 구속돼 있었고 망신도 톡톡히 당했으며 선출직 공무원의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었다.

선고 내용은 더 놀라웠다. 배영우에게는 고작 벌금 1000만 원이 내려졌다. 징역형이 아니라 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부산고법 재판부의 감경 사유에 다시는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양아치 같은 뻔뻔함으로 이듬해 지방선거에 또 나섰다가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떨어졌다.

김종규는 이보다 덜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이 나왔지만 비판은 거셌다. 일부 무죄를 내리면서 형량을 낮추었는데 이는 당시 이미 위증으로 유죄가 확정된 증인의 법정 증언 번복을 기초로 한 잘못이 있었다. 또 재판부가 꼽은 감경 사유에는 앞서 경남도의회 의장을 지낸 전력이 있었는데 이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법원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해야 하나

지역에서 한순간 높아졌던 법원 신뢰는 원래보다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당시 대법원이 각급 법원마다 ‘부패범죄 전담 재판부’를 두게 하면서 다른 강력 범죄보다 판결이 관대한 경향을 경계하고 앞으로 부패 범죄는 더욱 엄정하게 형량을 산정해 공직 청렴과 사법부 신뢰를 높이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는데도 그랬다.

실제 판결은 이처럼 예측불가능한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양형(量刑·형벌의 정도를 헤아려 정함) 기준이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법원행정처에서 펴낸 [양형 실무]가 있었지만 지나치게 허술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당시는 양형 기준을 만들면 양심과 법률에 따라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법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부 반발까지 있었다.

이 [양형 실무]의 치명적 결함은 위에서 내리꽂은 지침이라는 것이었다. 일선과 떨어진 탁상에서 현장과의 교감 없이 제대로 된 양형 기준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여러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법정에서는 정실·인정 또는 관행에 따른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새로 온 김종대 창원지법 법원장

이런 상황에서 2006년 창원지법에 김종대 법원장이 새로 오면서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법원이 국민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친절도 좋지만 부패사범 엄정 처벌이 최고입니다. 당선을 위해 돈을 뿌린 배영우 창원시의장과 뇌물을 받은 김종규 창녕군수를 지난해 법정 구속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반겼습니까!”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법원은 사회·경제·정치적으로 크게 권한을 누리는 사람일수록 관대하게 판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혹하게 처벌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지키는 한편 믿음과 감동을 주는 법원이 되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양형 기준을 세우려고 합니다.” (김종대 창원지법 법원장, 2006)

문형배에 앞서 지역법관 출신으로는 처음 헌법재판관(2006~12년)을 역임한 김종대 법원장은 이밖에도 많은 작업을 벌여 법원을 국민 친화형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사법 서비스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해 알기 쉬운 판결문 작성 원칙을 만들고 법정언행개선위원회를 운영했으며 시민사회단체를 상대로 법원 평가 설문조사도 실행했었다.

들쭉날쭉한 판결을 가지런하게

김종대가 언급한 양형 기준은 문형배 팀장 등 법관 6명으로 꾸려진 형사실무개선팀이 치열한 검토와 토론 끝에 만든 초안을 바탕으로 삼았다. 초안은 곧바로 수정·보완·첨삭을 위해 두 차례 판사 회의에 제출되어 찬반 토론과 의견 수렴을 거쳤다. 창원지법은 모든 판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최종 확정된 양형 기준을 2월 28일 공개했다.

여기에는 △양형의 원칙, △형량의 상한선과 하한선, △구체적인 표준 양형 △경감·가중 요인 등이 담겨 있었다. 강제력이 없어서 제대로 지켜질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판결은 대체로 여기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첫째 법관들이 스스로 자기 판결에 적용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고 둘째 기준을 벗어나면 판결문에 사유를 적도록 했기 때문이다.

창원지법 양형 기준은 곳곳에서 나비효과를 발휘했다. 여러 지방법원과 법원행정처에서 자료를 받아갔고 전국 초임 판사 교육과 전국 재판장 연수에도 소개되었다. 또 전주지법 등은 창원보다 더 강력한 양형 기준을 마련하기도 했다. 문형배가 팀장을 맡았던 이 작업은 사회고위층 범죄 처벌 수준을 전국 차원에서 상향평준화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예전에는 판사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공직을 성실히 수행했고, 공무원 신분을 박탈당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라고 하면 그 재판은 으레 집행유예 선고로 끝나곤 했다. 그런데 이 양형 기준 이후 지역 법조계에서는 집행유예도 줄어들었고 실형 형량도 1년가량 높아지는 효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주의자 문형배

하지만 이런 엄정한 처벌은 사실 문형배는 물론 어떤 법관도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괴로워한다. 김종규 창녕군수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할 때 문형배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버지 같은 분인데 집어넣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어떻게 부담이 되고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지 않을 수 없기에 자기 직분을 피하지 않았다. 배영우 창원시의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할 때 이렇게 밝혔다:

“의장 선거 승자가 지지 대가로 뇌물을 제공했음에도 시의원직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향후 다른 후보자도 ‘당선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라며 거리낌 없이 매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문형배)

문형배는 어떤 논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전체 판결의 1%밖에 안 되는 사회고위층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이 법원 인상의 99%(불공정하다)를 결정했다. 사법부가 신뢰를 되찾으려면 공무원·기업가 등 사회지도층의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다쳐가면서 법원 신뢰 회복을 위해 강강약약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문형배는 그야말로 진정한 법원주의자다.

2025년 4월4일 역사적인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 선고(파면) 요지를 읽는 문형배(헌재 소장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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