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일상,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이야기들이 지금도 우리의 시공간 속을 흘러갑니다. 그 순간들을 붙잡아 짧게 기록합니다. ‘어머니의 언어’로 함께 쓰는 특별한 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box]
빨갱이
적대자들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여지없이 깨지는 경우가 있다. 어머니가 나를 ‘빨갱이’로 몰 때가 바로 그 때다. 살살 웃으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맞아요, 제가 빨갱이에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들도 다 빨갱이구요.’ 라고 말하는 법을 배우려면 아직 먼 거 같다.
왜 어머니에겐 이렇게 ‘쿨하기’ 힘든 것일까…
아마도 이런 생각의 밑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의 (정치적) 지향도 가장 잘 이해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응원도 해주어)야 한다’는 가정이 깔려있기 때문인 거 같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나를 오해하건 말건 내 소신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머니가 그럴 땐 차분히 대응하기 힘든 거 같다. 수십 년 간 사람 가리지 않고 누구든 먹이기 위해 봉사하고 힘써온 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안타깝기도 하고.
암튼, 조금 힘든 저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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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마음이 조금 분주해졌습니다. 논문이란 걸 써야 졸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덩달아 몸도 바빠졌습니다. 논문 과정에서 참으로 멋진 분들이 연구에 참여해 주셨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고, 좀 더 많은 이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저의 게으름으로 인해 논문 작성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 정도라도 맘에 드는 글을 써내는 건 쉽지 않네요.
어머니랑 가끔 전화합니다. 요즘 들어 통화할 때마다 어머니께서 빼놓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우야, 네가 너의 논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거 잊지 마라.”
때론 저와 제 삶의 가장 중요한 일부인 논문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만, 어머니의 이 말씀이 얼마나 큰 감동과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의 연구를 직간접적으로 도와주시는 많은 분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수많은 손길들, 저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깨우쳐 주시는 어머니. 모든 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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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소천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의 어머니가 되어주신 여사를 기억해 본다. 그리고 이제 전태일 열사와 같이 계실 모습을 그려본다.
“전태일, 민중의 나라”
그 나라에서 다시 뵈어요, 어머니.
우린 그저 기득권층의 꼭두각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