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많은 기대를 받고 구글 로봇사업의 총 책임자에 올랐던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Andy Rubin)이 2014년 10월을 마지막으로 구글에서 떠났습니다.
사실 2013년 3월 루빈이 구글의 로봇사업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로봇계는 큰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작은 스타트업의 기술에 불과했던 안드로이드를 10억 명이 사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으로 변화시켜 놓은 주인공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구글 로봇에 대한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작년 8개의 로봇 기업을 연달아 인수하며 적극적인 개발 행보를 펼쳤으며 무인 자동차에서 조금씩 성과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루빈은 구글을 떠났고, 로봇계는 이로 인해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퇴임 이유에 대해서는 순다 피차이(Sundar Pichai)가 구글의 2인자에 오른 데에 따른 입지 변화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지만, 이에 대해 구글의 CEO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루빈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아름다운 결별이라 일축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오늘 할 이야기는 앤디 루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루빈의 뒤를 이어 로봇 사업을 맡게 된 뛰어난 로봇공학자 제임스 커프너(James Kuffner)에 대한 이야기이죠.
많은 언론이 루빈의 퇴임에 따라 로봇 사업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른 예상을 해봅니다. 왜냐하면, 사업적으로는 커프너가 루빈보다 영향력이 적을 수 있겠으나 기술에 대해서는 로봇의 모든 분야를 꿰뚫어볼 줄 아는 전문가이자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구글 로봇 ‘왕좌의 게임’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 떠난 자리에
본격 로봇 전문가 제임스 커프너가 오다
저는 5년 전 제임스 커프너의 논문을 모티베이션으로 하여 연구를 진행, 관련 논문을 제출한 바 있어 그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는 편입니다.
학계에 몸담은 뒤 구글에 합류한 커프너
커프너는 1999년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과학부에서 박사를 마치고(학위논문: 실시간 애니메이션을 위한 자율 에이전트), 2년 동안 동경대에서 휴머노이드 연구와 관련하여 박사 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2002년부터는 최고의 로봇공학 프로그램(Robotics Institute)을 자랑하는 카네기 멜론 대학의 교수로 일해왔습니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교수직과 함께 구글의 연구원을 겸임하였는데, 구글에 합류한 이후부터는 학계보다 구글의 로봇 연구에 더욱 힘써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문 분야는 ‘동작 계획’
커프너의 전문 분야는 로봇의 동작 계획(motion planning)입니다.
사람과 달리 로봇은 원하는 동작을 생성하기 위해 자유도마다 달린 모터를 적절한 궤적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이 궤적 생성의 방법론을 다루는 연구분야가 바로 로봇의 동작 계획입니다.
다시 말해 로봇의 동작 계획은 ‘작업 목표를 위해 로봇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에 대한 연구이며 로봇 움직임에서의 두뇌 역할(정확히는 운동 역할을 담당하는 소뇌의 역할)을 수행, 로봇의 최상위 명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올바른 명령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로봇의 동역학이나 주위 환경과의 상호작용, 사용자의 요구사항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인데, 이런 면에서 보자면 로봇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 커프너를 구글 로봇의 최종 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어쩌면 옳은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다관절 동작 계획의 대가
커프너의 연구분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그는 다관절 동작 계획 분야의 대가 중 한 명 입니다.
커프너는 1999년 스티브 라발레(Steve M. LaValle, 일리노이대 교수 겸 오큘러스VR의 수석연구원, 사진)와 함께 동작계획 알고리즘인 RRT(Rapidly-exploring random trees)를 개발했는데요.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작 계획 알고리즘 중 하나로 그의 논문은 3,000회 이상 인용됐습니다.
이후 RRT 알고리즘의 수학적 진보에 힘썼던 라발레와는 달리 커프너는 휴머노이드, 로봇 팔, 로봇 손 등의 실제 적용에 힘썼으며, 2008년엔 다양한 동작 계획 알고리즘들을 담은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오픈레이브(OpenRave)를 발표하여 로봇의 동작 계획법의 폭넓은 보급에도 기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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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너의 연구분야 중 하나였던 구속조건 하의 휴머노이드 동작 계획 영상. 로봇의 동작 계획은 ‘손 사이의 간격이 박스의 너비와 같아야 한다’와 같은 구속조건이 있을 때 더욱 어려워진다. 커프너는 바로 이러한 복잡한 동작계획의 전문가이며 로봇의 전체 움직임을 관장하는 만큼 로봇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box]
2009년 구글 합류, 무인자동차 실용화
로봇 동작 계획의 대가인 그가 구글에 합류한 것은 2009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의 선택이 고개를 약간 갸웃하게 만들기도 했는데요, 왜냐하면 그는 구글이 주로 연구하던 무인자동차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고(물론 RRT가 무인자동차 분야에도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커프너는 주로 휴머노이드 로봇의 적용에 더욱 관심이 많았습니다.), 또 당시 IT 기업과 로봇산업의 접점이라 여겨지던 로봇 비전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합류한 이후 구글의 Project X가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냐 관측을 낳기도 했지만, 그는 기존의 무인자동차 팀에 합류하여 이를 실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죠. 결국,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100만km의 실제 도로주행 테스트를 마칠 정도로 성공적인 발전을 거듭했으며, 이를 통해 커프너의 입지는 더욱 다져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8개 로봇 회사 인수한 구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글은 2013년, 빅독을 개발한 보스턴 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와 DARPA 챌린지 우승팀 샤프트(SCHAFT)를 비롯한 8개의 로봇 기업을 인수하며 로봇 분야의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 갔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구글은 여러 로봇 기업들의 기술을 이해하고 이를 통합하는 것이 큰 과제였을 텐데, 아무래도 이 경우엔 안드로이드를 오랫동안 이끌다 막 로봇분야를 접한 앤디 루빈보다는 20년 가까이 로봇을 연구해 온 제임스 커프너가 할 수 있는 일이 더욱 많았을 것이로 추측합니다.
따라서 기술 통합과정 속에서 제임스 커프너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이며, 이것이 또한 앤디 루빈이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 구글에서 나온 한 가지 이유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커프너가 이끌 구글 로봇의 미래
‘클라우드 로보틱스’
구글 로봇의 미래는 바로 ‘클라우드 로보틱스’다!
커프너가 이끄는 구글 로봇의 미래는 어떨까요? 그가 최근에 학회에 발표한 논문들을 보면 그가 상상하는 구글 로봇의 미래가 어떨지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그가 그동안 해왔던 ‘동작 계획’ 이외에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바로 ‘클라우드 로보틱스’입니다.
로봇 + 클라우드 컴퓨팅
그동안의 로봇 개발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하나의 로봇에 너무 많은 기술을 포함하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클라우드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제는 어디에서나 자료가 존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로봇도 클라우드 컴퓨팅의 장점을 결합한다면 방대한 양의 지식을 로봇끼리 서로 공유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컴퓨팅 파워를 절약할 수 있으며, 심지어 쌓이는 데이터를 학습함에 따라 점점 나아지는 로봇을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글의 강력한 클라우드 컴퓨팅 능력을 이용한다면?
예를 들면, 이제까지는 로봇이 물체를 인식하기 위해 방대한 물체 데이터베이스를 가져야 했으며, 이를 스테레오 비전으로 인식하고 처리하는데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구글의 클라우드 컴퓨팅을 이용한다면 어떨까요?
로봇은 무거운 물체인식 모듈을 탑재하는 대신 간단히 물체의 사진을 찍어 구글로 검색한 후 구글의 처리 결과를 이용해 물체를 인식하면 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음성인식, 로봇끼리의 지식공유 등 클라우드 로보틱스의 가능성은 정말 무한합니다. 특히 이를 연구하는 주체가 세상의 가장 많은 사용자 정보를 가진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이라는 점에서 그 전망을 더욱 밝게 예측하게끔 합니다.
세상을 경악시킨 ‘페퍼’에 숨겨진 클라우드 전략
로봇 인공지능의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더욱 강력한 처리 능력을 발휘하는 클라우드 로봇은 사실 이미 우리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를 발굴해 아시아 최고의 혁신가임을 증명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2014년 6월 감정로봇 페퍼 공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로봇을 원가에도 못 미칠 것이라 예상되는 단돈 200만 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엔 바로 클라우드 로보틱스에 대한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소프트뱅크는 값싼 가격을 통해 먼저 로봇을 널리 보급하는데 주력하고, 이를 통해 충분한 사용자 데이터를 쌓은 후 클라우드 로봇의 선두주자를 꿰차겠다는 야심이 들어있는 것이죠.
더욱 강력한 구글 로봇 시대 개막
구글 로봇의 새 수장 제임스 커프너가 노리는 것 역시 구글의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녹여낸 미래의 클라우드 로봇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타겟은 일반 가정을 노리는 페퍼와 달리 중국의 폭스콘과 같은 산업현장에 맞춰질 가능성이 큽니다.
인공지능의 빅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딥 러닝 분야에도 막대한 투자를 쏟고 있는 구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처리하는 딥 러닝 기반의 거대한 두뇌가 구글에 있고 이를 클라우드로 이용하는 로봇들이 바로 구글이 그리는 미래 로봇의 모습입니다.
앤디 루빈이 떠난 구글의 로봇 사업은 어두운 미래가 드리워졌을까요? 아닙니다. 아마 더 강력한 구글 로봇의 시대가 펼쳐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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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T-Robotics(t-robotics.blogspot.kr)에도 실렸습니다. 글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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