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슬로우 리스트 세 번째. 편집팀원들이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느낀 짧은 단상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편집자)[/box]
대선 결과와 관련해서 국민 탓, 세대 탓, 지역 탓을 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그래서 나는 내 가까이 있는 특정 인물 몇 명만 찍어서 탓하기로 했다. (…)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랑 이모들한테 둘째 손자(종손) 보고 싶으면 박근혜 찍지 말란 드립이라도 한 번 쳐볼걸 그랬나 싶다. 오늘 어머니한테 둘째 가지라는 얘기 듣고는 침착하게 말 돌리고 전화를 끊었지만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진정해야 하고 진정하고 싶지만, 한동안 어머니를 보면 제 2의 사춘기를 느끼게 될 것 같다. 이유없이 불만스럽고 이유없이 반항했고 이유없이 미웠던 그때처럼.
뭐 여기까지는 괜한 투덜거림이고… 제 3의 후보를 지지하고 투표한 나로서는, 5년 후의 내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싶어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세력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끈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by 뗏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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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이 몰려온다.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진 느낌. 알 수도 없고, 너무도 기이하다. 내 질문은 이렇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민족, 그런 공동체가 어떻게 내일을 바랄 수 있는가.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역시 역사다. 이 역사를 붙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대선은 죽은 자들의 선거, 그 유산에 관한 선거였다. 한 쪽에는 좌절한 개혁가,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타락한 군인이자 역시 실패한 대통령 박정희가 있었다(우리나라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란 표현은 얼마나 형용모순인가!). 그리고 결과적으로 박정희가 이겼다. 노무현의 승리를 역사적 진전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지만, 박정희의 승리는 명백한 역사적 퇴행이다. 우리 공동체가 도달한 가장 강력한 정보 인프라 시대에서 가장 反정보적이고, 非이성적인 방식으로 대선의 향배가 결정되었다. 그 결과 뿐만 아니다. 우리 역사가 도달한 가장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에 가장 정신적으로 빈곤한 선거 과정을 보여줬다. 이것이 내 도저한 절망과 슬픔이 머물고 있는 내 인식의 우물이다. 그렇지만 가장 빛나는 아침은 가장 깊은 새벽 뒤에 찾아왔다. 이 미스터리하고, 그로테스크한 슬픔으로부터 우리는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by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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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지만, 정작 그 불확실성이 극단적으로 치닫으면 감당하기 버거운 커다란 충격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간사하게도 일단 그 충격을 온전히 느끼고 나면 그 엄청난 사건을 다시 해석 가능한 사례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알았으면 진작에 잘 할 것이지. 미래는 어차피 또 변할텐데 자기 분석이 맞다고 우기는 건 또 하나의 슬픈 코미디라고 할 수 밖에. 게다가 제1야당의 지리멸렬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속되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들의 볼모로 잡혀있을 것 같다.
최선의 공약을 내고 진 것도 아닌데 전략이니 세대별 성향이니 하면서 바람을 잡는 사람들이 유치하게 느껴지고, 최선의 공약을 내고 이긴 것도 아닌데 벌써 그 공약마저 포기하라는 주문을 하는 사람들이 치사하게 느껴진다. 부디 그 어느 쪽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끈은 놓지 않기를 빌 뿐.
한 가지 더. 이번 선거는 주류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오히려 미디어의 영향이 가장 크게 반영된 선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의 뉴미디어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엉뚱하게도 정치를 통해 가속화될 것 같은 느낌이 3mg 정도 든다.
by 써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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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만은 않은 선거였다. 누가 뽑혔든지에 앞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가 복지를 외쳤다는 점에서 이미 변화는 이끌어냈다. 앞으로는 박근혜의 리더십이 포용을 얼마나 발휘할지가 관건이라 생각한다. 박근혜는 보수층이 널리 컨센서스를 공감하기에, 대한민국을 좀 더 진보로 이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이다. 그 누구도 이전 대통령들의 5년 행보를 예측하지 못했 듯, 미래는 알 수 없다. 박근혜가 노무현과 이명박의 편가르기 리더십을 반면교사 삼아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by 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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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후, 사실 글 한 줄,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게 고통스럽다. 앞으로 5년, 더 나은 가치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퇴행에 맞서 싸워야 할 거라는 예감이 괴롭고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텐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더욱 참담하다. 더 많이 분노하는 유권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게 게임의 룰이라지만 100만표의 차이로 전혀 다른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다수결 민주주의의 딜레마일 수도. 위너 테이크스 잇 올. 진짜, 그게 민주주의야? 반문하고 싶은 심정인데, 그동안 나름 그래도 변화의 동력은 결국 민주주의 밖에 없다고 믿었던 터라 더욱 멘붕이 큰 걸 수도. 강물은 굽이굽이 흘러 결국 바다로 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믿는다면,) 김순자 4만 6,017표와 김소연 1만 6,687표, 이게 진보진영의 밑천이고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5년을 더 견디고 나면 차악이나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보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술 밖에 없다. 어설프게 타협할 게 아니라 선명한 가치를 위해서 싸우자. 거짓 선동가들을 따르지 말고,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을 위해 싸우자.
by leejeong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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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은 다른 분들이 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2030으로 불리는 ‘젊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민주당이 왜 졌느냐, 어떤 선거전략이 문제였느냐에 대한 분석은 많지만, 그런 차원을 넘어 박근혜 당선은 그 자체로 ‘멘붕’을 준다. 과거사 진상 조사 등이 이뤄지면서 쌓인 우리 세대의 역사 의식에 있어, 박근혜의 재등장은 어떤 도덕률의 부정이었기 때문.
박근혜가 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어떤 공약에선 박근혜가 낫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 그 자체가 넘어서는 안 될 어떤 마지노선을 넘은 일이라는 인식이 있다. 우리가 부모님 말씀과 도덕 교과서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착하게 살아야’ 한다던 그런 당위의 붕괴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 세대가 아닌, 우리 부모 세대의 투표를 통해.
by 임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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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2명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토론 안 하고 구시대적으로 전국을 누비니까 그렇지”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게 박근혜의 힘이었다. 15년 국회의원 하면서 의정활동 실적이 거의 없고 서재엔 책도 없다지만, 그는 대신 전국을 돌아다니며 손에 병이 날 정도로 악수를 했다.
박근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민생’을 외쳐댄 반면 문재인 측은 ‘진보’와 ‘민주주의’를 외쳤다. 지식인들에게 발언의 자유를 빼앗는 ‘민주주의의 후퇴’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그러나 월 200만원도 못 버는 저소득층에게 평소 악수한번 나눠본 적도 없는 이들이 외치는 추상적 가치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서민들이 왜 계급투표를 하지 않았냐고? 물론 그들이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인 ‘지상파 방송’이 장악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계몽주의적 접근이 문제였다. 사람이 희망이라고 하면서, 우리와 의견을 같이 하는 절반의 사람들만 소통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부모와의 의견대립을 피하려고 애써 정치 얘기를 하지 않다가, 이번 선거로 멘붕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부모 세대들이 왜 박근혜를 선택했는지 궁금해서 이유를 물어본 자녀들이 많다.
계몽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용기를 내어 소통해야 할 때다. 고령화 사회는 계속 진전되고 있다. 20대는 줄고 60대는 는다. 말하고 만나고 소통하지 않으면, 생활 속에서 직접 부딪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 5년 후에도 미래는 없다.
by 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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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평가: 큰 선거의 그냥 뻔한 기본이 있다. 삶의 물적 토대인 지역성을 챙기고, 구체적 물질적 비전을 세워주고, 투표하러 나올 층들에게 맞는 좋아하는 스토리들을 심어주고. 야권은 그게 역시 중요함을 이미 4월 총선의 패배에서 겪었고, 그걸 할만한 소재들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을 터부시하며 그나마 부산에만 몰빵하고, 세기의 명컨셉 “저녁 있는 삶”을 손학규 것이라 대충 팽개치고, 딱 수도권 2-30대 중산층의 모호한 정의감에 호소하는 스토리 이외의 것들은 그냥 방치 또는 적극적으로 배격했다. 공백을 채우는 것은 닳고 닳은 유신후손 반대 민주화 열망을 아주 살짝 정도만 변형한 도돌임표.
그런데 ’87년 체제’가 헌법으로 만들어낸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여전히 건재하지만, 민주’화’의 정의감을 구심력으로 하는 사회멘탈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04년 총선 후 이미 끝났는데 아직도 못 깨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표가 나온 것은 눈물 머금고 비판적 지지(!)를 한 호남인들, 더 진보적 세상을 꿈꾸면서도 표를 모아준 어떤 사회적 약자들의 힘이다. 이들마저 소홀히 하지 말기를.
그리고 내일: 선거결과 직후에 남긴 짧은 글로 대체한다 – http://capcold.net/blog/9350
by capcold
저는 정말 궁금한 것이 10년전에 386 세대로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지금 50대 초반?) 왜 반대편 지지로 돌아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정말로 “잃어버린 10년(5년?)”이라고 생각하는가요?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옳은 것을 위해 싸우자’
이 말이 왜 이렇게 슬픈 걸까요? 옳은 것과 이기는 것의 감추어진 내면을 느끼기 때문일까요?
혼란스럽지만 하루 하루 노력하는 이들이 온당한 댓가와 처우를 받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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