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이제 로봇은 공상과학영화 속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현실 속으로 성큼 다가온 로봇. ‘로보틱스 서포트베이’에서 흥미로운 로봇 원리와 로봇 뉴스를 독자에게 전합니다. (편집자) [/box]
지난해 12월,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지상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 경연이 펼쳐졌습니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DRC(DARPA Robotics Challenge)가 바로 그것이었는데요, 이 대회에서는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전문가들이 모여 극악 난이도의 재난구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로봇과 로봇 기술력을 겨루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가 끝난 후 기쁨의 미소를 감추지 못하는 이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구글이었습니다. 구글이 이토록 표정관리 하기 바빴던 이유는 바로 작년에 인수했던 일본의 휴머노이드 기업 샤프트(SCHAFT)가 이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 차로 다른 팀들을 누르고 우승하였기 때문이죠.
구글이 인수한 핵심 로봇기업 샤프트
구글은 지난해에만 총 여덟 개의 로봇 기업을 인수하며 로봇 시장 진출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었습니다. 제게 그중 가장 핵심적인 로봇 기업 둘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첫째로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둘째로 휴머노이드의 최강자 샤프트를 꼽을 것입니다. (참고로 셋째는 인간과의 편리한 협업을 꿈꾸는 레드우드 로보틱스(Redwood Robotics)입니다.)
그만큼이나 샤프트는 구글이 로봇산업 진출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는 알짜배기 기업이죠. 사실 샤프트는 DRC 출전 전까지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최고의 휴머노이드를 만든 연구진들이 모인 그룹이니 이번 대회에서 무언가 보여줄거야…”라는 기대감으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기도 했었죠. 그러더니 결국 DRC에서 일을 냈습니다.
일본의 벤처기업 샤프트, 과연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일본의 휴머노이드 그리고 샤프트의 탄생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일본의 휴머노이드 개발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죠. 만화영화 아톰의 추억이 강렬한 나라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휴머노이드 개발에 집착해 왔었습니다. 이족보행 로봇에 대한 실용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아톰의 꿈이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휴머노이드에 연구비를 투자할 수 있었고, 또 많은 인재가 휴머노이드 연구를 위해 매진했었죠.
우리에게 가장 깊은 인상은 준 일본 휴머노이드 로봇은 뭐니뭐니해도 혼다의 아시모(ASIMO, Advanced Step in Innovative Mobility)였습니다. 2000년에 처음으로 발표된 아시모는 기존의 무시무시하고 불안정하던 휴머노이드들과는 달리, 아담한 키, 수려한 외모로 이전에 볼 수 없던 부드러운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었죠. 정부도, 대학도 아닌 일본의 자동차기업 혼다가 1980년대부터 끈질긴 집념으로 일구어낸 값진 연구 결과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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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이어져 온 혼다의 휴머노이드 개발 이야기. 혼다가 아니었어도 자동차 기술은 지금과 다름 없었겠지만, 혼다가 없었다면 휴머노이드 기술은 지금보다 훨씬 뒤쳐져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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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의 휴머노이드 로봇 프로젝트 HRP
일본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의 또 한가지 축이 있다면 바로 일본의 정부지원 휴머노이드 로봇 프로젝트 HRP(Humanoid Robotics Project)입니다. HRP의 첫 시작은 1997년 혼다로부터 3대의 P3 로봇을 사옴으로써 시작되었죠. 130kg의 거대 로봇에서 시작하였던 HRP-1은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액추에이터를 강화하는 등의 발전을 거듭하여 2010년 HRP-4에 이르러서는 39kg의 홀쭉한 로봇으로 거듭났습니다.
샤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나카니시 유토와 우라타 주니치는 바로 이 HRP와 연관되어 공동 연구를 하던 많은 연구진 중 하나였습니다. 동경대 JSK 로봇연구실의 멤버였던 이들은 10여년간 휴머노이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기술적 한계는 바로 액추에이터(모터나 유압장치와 같이 로봇 관절을 움직이는 구동원)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사람의 경우 달리기를 할 때 약 400W의 출력을 무릎에서 내는데, 이러한 출력을 위해서는 2.5kg 이상의 모터를 써야 하죠. 무거운 모터를 쓰면 중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더욱 높은 사양의 모터를 써야 하고, 그럼 더 무거워지고, 그럼 더 큰 모터를… 따라서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가벼우면서도 고출력을 내는 액추에이터 개발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샤프트의 공동 설립자인 우라타 주니치는 물로 냉각하는 방식을 이용해 고출력 모터의 고질적 문제이던 발열 문제를 해결하였고, 기존의 휴머노이드 로봇 HRP3L을 개선한 우라타 레그(Urata Leg)를 선보임으로써 소형 고출력 액추에이터의 가능성을 입증하여 보였습니다. 이 액추에이터의 개발로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자신감이 생긴 동경대 JSK 로봇연구실은 극악 난이도의 휴머노이드 대회 DRC 참가를 결정하였고, 군사 관련 투자를 받지 못하게 하는 동경대의 방침에 따라 새로운 스핀오프(spin-off) 기업을 설립하여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업이 바로 DRC를 뒤흔든 충격의 기업 샤프트입니다.
극악의 대회 DRC 제패한 휴머노이드 최강자 샤프트
DRC 대회는 2011년 쓰나미에 의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재난구조로봇 경연대회입니다. 당시 사고현장에는 누출된 다량의 방사능에 의하여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았었는데요, 이를 위해 일본이 자랑하던 무인정찰로봇들을 다량 투입되었습니다. 하지만 비정형의 대지와 열악한 통신환경 등 여러 가지 어려움 들로 인해 재난 현장 정찰에 성공한 로봇은 하나도 없었다고 하네요. 이를 계기로 그동안 무인자동차 대회(DARPA Grand Challenge)를 이끌던 DARPA는 “재난 현장에 실제로 투입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보자”라는 취지로 대회를 새롭게 정비하여 DRC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DRC는 차량 이동, 장애물 통과, 사다리 오르기, 잔해 치우기, 문 열기, 드릴로 벽 뚫기, 밸브 잠그기 등 8가지 과제에 대해 디비전(Division) A/B/C로 나누어 총 16개 팀이 자웅을 겨루었습니다. 이들 중 실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개발하여 겨루는 디비전 A(6개 팀) 경기는 대회의 메인이벤트라 할 수 있었는데요, 여기에는 한국계 팀이 두 팀이 있어서 더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 드렉슬 대학 폴 오 교수 등이 참여한 ‘DRC-휴보(Hubo)’ 팀과 버지니아 공대 데니스 홍 교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댄 리 교수, 마크 임 교수, 한국 기업 로보티즈 등이 참여한 ‘토르(THOR)’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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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트의 로봇은 DRC에서 모습만큼이나 괴물 같은 성능을 선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구글의 쇼핑 능력에 감탄했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로봇 기업들만 사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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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샤프트의 압도적인 승리(32점 만점에 27점)였습니다. 디비전 A 팀들 중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던 팀이 18점을 얻은 카네기 멜론 대학교 팀이었으니, 샤프트의 승리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죠. (DRC-휴보는 3점, 토르는 8점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DRC-휴보 팀은 연습 중간에 로봇이 크게 망가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고 하고, 토르는 최신 로봇 개발이 늦어져 로보티즈의 똘망으로 대체 참가하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하네요.) 동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샤프트는 안정된 보행 능력은 물론 뛰어난 작업수행 능력까지 보여주며 많은 여성 로봇들에게 “부족하지만 잘생긴 나사(NASA)의 발키리냐 못생겼지만 능력 좋은 샤프트냐”라는 난제를 던졌다고 하네요.
구글, 중국의 폭스콘과 접촉하다
이제 세계의 눈은 샤프트를 인수한 구글이 앞으로 어떠한 로봇의 미래를 보여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샤프트는 대회 내내 사진, 동영상 촬영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보안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었고, 대회 후에는 기업 소개나 관련 영상 등을 대부분 삭제하며 다시 베일 속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 때 샤프트가 올해 개최되는 DRC 2차 대회에 참가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특히 DRC에 참가하여 연구와 관련된 투자를 받게되면 많은 기술적 부분들이 DARPA에 귀속되는 만큼, 그리 돈이 궁하지 않는 구글로서는 굳이 DRC에 참가하여 DARPA에 발목 잡힐 이유는 없겠지요.
최근에는 구글이 세계 최대규모의 위탁 제조업체인 중국의 폭스콘과 접촉했다고 합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많은 제품을 저렴한 중국 인력으로 위탁 제조해 온 폭스콘으로서는 로봇으로 대체되는 노동시장에 매우 큰 관심이 있고, 또 로봇시장을 개척해 나가려는 구글로서는 이보다 더 좋은 고객이 없었겠지요. 정말 이대로라면 육체노동부터 시작해 지식노동까지 로봇으로 대체되는 미래가 얼마 멀지 않은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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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4OIxWMTrGl8
구글이 인수한 기업 중 하나인 레드우드 로보틱스는 메카 로보틱스(Meka Robotics), 윌로우 가라지(Willow Garage), SRI 인터내셔널의 조인트 벤처기업으로서 노동시장을 대체하는 저가의 제조 로봇을 타겟으로 하는 기업이다. 현재 이 시장은 리싱크 로보틱스(Rethink Robotics)가 선두업체이며, 이들은 지난해 단돈 25,000달러(약 2,700만원)의 저가 제조 로봇 백스터(Baxter)를 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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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트의 미래, 군수용 로봇 시장 공략할 듯
하지만 이는 구글이 인수한 기업 중 레드우드 로보틱스와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일 뿐, 아직 샤프트의 미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예상하건대, 샤프트는 보스톤 다이나믹스와 결합하여 산업용 로봇보다는 군수용 로봇 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미국은 2019년까지 군인을 54만 명에서 42만 명까지 감축하고 그 공백을 로봇 병력으로 채운다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현재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 탈레스 그룹(Thales Group), 보잉(Boeing) 등이 이끌고 있는 육해공 병력 중심의 방위산업시장은 무인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그 판도가 변화하고 있으며, 어느 곳도 이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글이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방위산업의 새 이정표를 세울 가능성도 큽니다.
바라건대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그들의 모토답게 단지 돈 만을 목적하여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내는 방위산업이 아닌, 정말 무고한 생명을 지켜낼 수 있는 평화로운 방위산업 체계를 구축하는 구글의 행보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는 방위산업에 기술력을 쏟기보다는 의료로봇이나 노인/장애인 보조 로봇에 힘써주길 하는 바람도 있고요. 2013년부터 시작된 구글발 로봇계 지각변동, 과연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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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인 T-Robotics (t-robotics.blogspot.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의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언젠가는 로봇과 함께하는 세상이 오겠지요. 로봇세계에서 선구자가 되어 달려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