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객석에 있었다. 늘 객석에서 무대를 즐겼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도 찾아보았다. 전시회, 뮤지컬에도 관심을 두고 평균 이상의 문화생활을 즐겼다.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다양한 의견으로부터 다양한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너무 재미있어했다. 한 마디로 그는 ‘호기심이 너무 많아 주변 온갖 것이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했다.
그러던 그가 무대 조명을 자신에게 비추고 한걸음에 무대에 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지난 1월 발간한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 일명 ‘나찍스’ 책이 꾸준히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책 소개 글처럼 ‘평범한 중년 남성의 사진 놀이’가 놀랄만한 폭발력을 가져온 것이다.
드디어 무대에 오르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선배이자 ‘작가’ 한창민을 만나 무대에 오른 소감을 물었다.
내게 조명이 비치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에 올랐다는 실감은 나는데, 사실상 계획된 출연이 아니어서 아직도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이제까지는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 상상도 하지 않았고 사실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무대에 올랐으며, 나를 바라보는 객석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무엇이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그는 어떻게 계획도 없이 사진전도 열고, 책도 내고, 좋은 반응까지 얻는 이토록 멋진 ‘무대’를 만들었을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점이리라. 그 비결에 관해 묻자, 그는 ‘습관’과 ‘일관성’, 그리고 ‘호기심’을 들었다.
그건 어찌 보면 내 성격과 살아온 습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정말 ‘일관되게’ 놀았다. 천성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겼다.
대학 때 운동권이 된 것도 어찌 보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자각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운동권 활동을 하다 보니 감옥에도 가게 됐는데, 심지어 나는 감옥 생활조차도 재미있었다. 처음엔 잡범들, 도둑놈들이 우글거리는 방에 있다가 나중에 경제사범 방으로 옮겨졌는데,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도 새로운 세상을 배웠던 것 같다.
어찌하다 보니 소프트웨어 벤처, 미디어, 인터넷 등 다양한 회사들을 옮겨 다녔는데 그때그때 모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심지어 연애도 참 많이 했는데 여자친구들로부터도 다양한 분야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이 학습만으로 가능할까? 역시 마지막을 채우는 건 ‘사람’과 ‘시각’이었다.
그런 호기심과 함께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잡스러울 만큼 다양한 ‘시각’을 내 안에 담아내게 되었고, 그게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해 자연스레 표현되었던 것 같다.
한창민의 사진들
사실 그랬다. 한창민 작가의 사진은 시선이 독특했다. 좋은 사진의 절반은 ‘카메라 성능’이 좌우한다. 아이폰을 들고 사진 찍는 그는 ‘성능’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데도 그의 사진이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남들이 생각지 못한 시각(앵글)과 색감을 찾아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사진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것도 중년을 넘기는 나이에 뒤늦게 찍기 시작한 사진이 이처럼 한 번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다양한 경험과 사람들로부터 얻은 다양한 시각의 힘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었다.
부족한 2% 채워준 SNS
그는 한 가지를 덧붙였다.
또 한가지, 만약 SNS가 없었다면 내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을 트위터로, 인스타그램으로 올렸는데 친구들이 좋다고 반응을 보이고 리트윗도 하고 ‘좋아요’도 찍어 주어서 그게 힘이 되어 계속 찍을 수 있었다고. 그렇게 1년에 1만 장을 찍을 수 있었고, 그 가운데 100장을 추려서 지난해 3월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이었다. 사진전도 우연한 기회에 친구에게 등 떠밀려 열게 됐다. 결과는 상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다양한 체험을 한 한창민에게도 사진전을 열고 책을 내는 지난 일 년 사이 경험이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을 텐다. 그는 그런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보다도 냉소적인 내 태도가 바뀐 것 같다. 게으른 탓도 있었지만 나는 아주 젊었을 때 내가 인생을 (남들처럼 직위나 성공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대신 ‘유명해지지 않겠다’, 그리고 ‘돈에 욕심내지 않으며 살겠다’ 두 가지를 결심했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좋은 것이기는 한데, 어떤 측면에서는 내 것을 챙기고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도 심드렁한 태도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옛날의 나는 내 책이 나왔다고 SNS에서 동네방네 떠들고 나서서 내 책을 홍보하고 하는 일들은 계면쩍어서도 절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위터나 SNS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그렇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심인 것이 결국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진전이나 책 내는 일을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무대에 섰다’고 표현하는 것 또한 앞으로 이 일을 지속하겠다는 뜻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앞으로의 무대에서는 무엇을 보여 줄 것인지. 그건 나에게 스스로 질문해보는 것이기도 했다.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심은 비워 두기로 했다. 하지만 무대에 섰으니 나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움직여 볼 것이다.
그는 일상처럼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자신만의 플랫폼에서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도 만들고 ‘나찍스’ 책을 영어, 일어로도 번역 출간했으면 한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바람을 얘기했다.
[box type=”note”]한창민 님은 현재 오픈넷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편집자)[/box]
잘 읽고 갑니다. 일관된 호기심! 묘사된 글만 읽어도 괜히 제가 다 기쁨에 차오르네요. 마지막 웃고 계신 얼굴이 보기 좋습니다^^
창민이형 20년전 미국에서 지낼때도 참 호기심이 많으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