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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그는 자칭 비운의 기자(였)다. 슬로우뉴스 필자로도 활약한 그의 자기소개는 다음과 같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인터넷 서비스 영역을 취재하나, 개그맨 ‘유재석’에 묻혀 기사 검색이 잘 안 되는 비운의 기자”

MC 유재석과 이름이 같아 검색이 안 되는 비운의 (전) 기자  유재석. (출처: 위키백과 공용)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e/%E5%8A%89%E5%9C%A8%E9%8C%AB.jpg
MC 유재석과 이름이 같아 검색이 안 되는 비운의 기자 유재석(왼쪽). (출처: 위키백과 공용)

2011년, 프리랜서로 1년간 이데일리TV에서 조연출, 작가, 리포터를 가리지 않고 했지만, 이때까지는 아직 기자는 아니었다. 2012년 4월, 아시아투데이에 입사해 정식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년 6개월간 일한 뒤 2013년 11월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로 이직, 2015년 8월까지 이커머스, 소셜미디어, 인터넷 서비스, 중국 IT 분야를 취재했다. 그리고 2015년 9월, 언론계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기자라는 옷을 벗고, 언론계 바깥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기자들이 늘고 있다. 사양산업이라는 언론업계의 상황을 반영한 것일까. 아니면 몇몇 기자들의 새로운 시도가 우연히 시기적으로 겹쳐 도드라져 보이는 걸까. IT 기자로 친숙한 유재석 기자도 이런 흐름에 몸을 실었다. 혹은 이 우연에 또 하나의 우연을 더했다.

유재석 ‘전(前)’ 기자에게 그동안 체험한 IT 저널리즘의 과거와 현실을 물었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도전이 내포한 다양한 의미를 함께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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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2015년 9월 10일
  • 인터뷰이: 유재석 ㅣ 인터뷰어: 이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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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만남 

– 기자 생활 초창기는 어땠나. 

아시아투데이 수습 시절에는 내근직으로 일하면서 ‘클릭을 부르는 기사'(?)를 썼다. 이후 연예팀에서 영화 쪽 취재를 6개월여 했다. 회상하면, ‘놀면서 일한다’는 게 딱 맞던 시기였다. 신작 영화를 개봉 전에 공짜로 보고(간담회), 출연 배우들의 멘트를 받아 기사를 만드는 게 주 업무였으니까. 이 시기에는 페이스북에 연예인이랑 찍은 셀카 올리는 재미로 기자 생활을 했다.

– 처음부터 IT 전문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가. 

이후 다시 내근직으로 발령이 나서 클릭을 부르는 기사를 썼다. 데스크가 IT 분야를 전문으로 취재해온 분으로 바뀌면서 IT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된 거다. 당시 화두였던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아 개인적으로 외신, 책, 논문 등을 보며 기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때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 운명적인 만남? 

“네가 쓴 기사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친한 기자를 소개해줄 테니 만나서 배워라.”

도안구 (링크드인)   https://kr.linkedin.com/pub/%EC%95%88%EA%B5%AC-%EB%8F%84/43/8b/71
도안구 (링크드인)

데스크가 이렇게 말하면서, 당시 디퍼스를 창간했던 도안구 선배(사진)를 연결해줬다. 도 선배는 내가 다른 매체 기자였음에도 빅데이터 분야 전문가들을 소개해줬다. 그리고 저녁을 함께할 때마다 장장 5~6시간 동안 IT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때 아마 IT 전문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이라고 쓰고 세뇌당했다고 읽는다)하게 된 것 같다.

이후 유통부로 발령이 나서 소셜커머스, 오픈마켓 등을 취재했다. 도 선배에게 배운 IT 지식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려고 했지만, 대부분 ‘킬’됐다. 이때부터 경제지(일간지)에서 IT와 빅데이터 기술에 관해 기사 쓰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 “대부분 킬” (…) 그래도 결국 IT 기자가 됐는데. 

고민이 깊어갈 즈음, 페이스북에서만 봤던 주민영 선배에게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이 왔다. 본인이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월간지에 가게 됐는데, 같이 일해보자고 말하더라. 주위 선배들이 일간지에서 월간지로 가면 일간지로 못 돌아온다고 우려하면서 말렸지만, IT 전문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인해 그때 이직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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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기자로서의 기쁨과 슬픔 

– 우여곡절 끝에 IT 기자가 됐다. IT 기자로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디지털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을 주제로 한 ‘유재석의 데이터 인사이트’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 약 30명의 현업 전문가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유재석

내친김에 지난 1년 반 동안 만나온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콘퍼런스를 열어보자고 했고, 사업팀 도움을 받아 150~200명 단위의 콘퍼런스를 기획하는 데 이르렀다. 참가비가 꽤 비싸서(16만 5,000원) ‘사람들이 올까?’라는 의심도 들었지만, 다행히 150명이 넘는 분들이 와주셨고, 행사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유재석 마소 데이터 인사이트

– 그 체험이 가장 인상적인 이유는? 

기자가 매체의 브랜드가 아니라 기자 이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컨퍼런스가 성공했다는 것보다는 1년 반 동안 꾸준히 한 영역에서 취재한 것을 매체 영향력과 상관없이 인정받았다. 그래서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 그럼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영어지금 돌아보면 너무 무식한 생각이지만, IT 분야에서 영어가 이렇게 중요한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가서야 알게 됐다. 매일 밤 11시부터 뜨기 시작하는 외신을 보고 소화한 뒤 번역해 기사를 쓰는 게 초반에는 참 고역이었다. 물론, 아직도 어려운 부분이지만, 입사 초반에는 나 스스로 IT 분야에 적합한 기자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다.

– 외부 요인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내 취재 기반은 전자상거래 쪽이었다. 아시아투데이 때 가장 재미있게 취재했던 영역이기도 했고, 이쪽 업에 관심도 많았다. 문제는 이직 후 전자상거래 쪽 사람들이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개발자들에게는 전통 있고, 유명한 미디어지만, 현업 마케터나 유통업 종사자들은 잘 몰랐다. 보도자료 메일링을 요청해도 보내주지 않는 곳들도 많았고, 만나자고 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좀 힘들었다.

– 기자라서 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이 첫 한국 기자들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간담회장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인으로 보이는 여성분에게 다가가 명함을 주고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마윈의 팬이었는데, 오늘 이렇게 간담회에 참석하게 돼 너무 기쁘다.”

명함을 받고 보니 그분은 알리바바 그룹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소속 직원이었다. 간담회에서는 AP통신, 로이터, 조선일보, 한국경제 등 기자들의 질문과 마윈 회장이 답이 이어졌다. 나도 질문하고 싶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들어도 사회자가 시켜주지 않더라.

– 그래서 결국 질문하긴 했나. 

예정된 시간이 다 끝나고 나는 ‘마윈 앞을 막아서라도 질문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가방을 싸고 있었다. 그때 알리바바 본사 쪽에서 어떤 여자분이 사회자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더라. 그러더니 사회자가 “질문 두 개만 더 받겠습니다”라며 나를 보고 “질문하세요”라고 했다. 준비했던 질문을 중국어로 말해 눈도장을 찍었다.

– 의지가 대단하다. 

간담회가 끝난 뒤 마윈 회장에게 갔다.

“당신이 10여 년 전부터 내부 직원들에게 말해온 ‘마윈내부지앙화’(马云内部讲话)라는 책을 몇 년째 보고 있는데, 너무 감동적이다. 명함 한 장 받고 싶다.”

마윈이 웃으면서 명함을 주더라. 그 장면이 연합뉴스 사진기자에게 찍혔다. (웃음)

마윈

– 기자 생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영어,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다. 그리고 R이나 파이썬 같은 언어를 배워서 데이터에 기반한 뉴스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 시간이 주어진다고 할 수 있는 일일지는 의심이 들긴 하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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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자를 그만 둔 이유 

– 나름대로 잘 나가던 기자를 그만둔 이유는 뭔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기자는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 있을 직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질문해 봤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줄 만한 미디어가 10년 뒤에도 있을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는 기자의 역량을 키워주는 데 회사의 힘을 집중하는 이상적인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어디를 가야 하는지가 막막해지더라.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좋고, 편집부 선후배들과 참 행복하게 취재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자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자립? 

기자를 시작하게 됐던 목적을 돌아봤다. 나는 2009년 중국서 1년간 공부를 하면서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니기에 현지에 오래 산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언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전공도 인문학(국사학과)이었다.

아무리 중국을 좋아하더라도 전문성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겠단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인문학도로서 전문가 위치까지 오를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그게 기자였다. 하지만 연예인들이랑 만나 밥 먹고, 이후에는 IT 기사 쓰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중국’이란 키워드를 어느새 잊어버렸다.

– ‘중국’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2015년 5월 간담회에서 만났던 마윈이 나를 다시 자극했다. 그는 알리바바닷컴을 설립했던 1999년부터 16년간 ‘소기업을 돕는 일을 하는 비전’을 지켜오고 있다. 그제야 잊어버렸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기자라는 직업이 참 좋고, 나에게 많은 기회를 줬지만, 이제는 내려놓을 때라고 생각했다.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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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저널리즘

– 한국 언론의 디지털 역량을 평가한다면?

내가 한국 언론을 평가할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동안의 체험으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은 스노우폴 같은 단발성 대형 기획 이상의 콘텐츠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용자가 언론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하기보다는 보여주기식 디지털 콘텐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 보여주기식 콘텐츠를 탈피해 어떻게 하면 디지털 역량을 보완할 수 있을까. 

단순 페이지뷰(PV)를 핵심 지표로 평가하는 태도를 내려놔야 한다. 아마도 많은 미디어의 일일 데스크 회의에 나오는 수치가 뉴스 사이트 PV 수치일 것으로 짐작한다. 이런 수치에 의존하니 검색어 뉴스, 자극적인 연예 뉴스, 베끼기(우라까이)로 점철된 콘텐츠가 나온다. 뉴스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 뉴스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모든 언론사 웹페이지에는 구글애널리틱스(GA)의 추적 코드가 설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용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뉴스페이지를 방문하고, 어떤 콘텐츠를 자주 보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특히 모바일은 모바일에 맞춤화된 전략을 따로 세워야 한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온라인 뉴스 = PV’라고 생각하는 언론사의 기조가 바뀌어야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생각한다.

– 요즘 많은 기자, 특히 테크 기자들이 기자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으로 간다. 그중 한 명인데, 이런 현상은 구조적 이유가 있다고 보나? 아니면 우연의 일치라고 보나?

많은 선후배 테크 기자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합류했다. 각자 이유는 다르기에 일정 부분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테크 기자들이 만나는 인터뷰이의 많은 숫자는 세상을 바꿀만한 꿈을 꾸고 있는 스타트업 종사자다. 기자란 직군을 선택한 많은 이들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언론사에 입사한다. 이들이 스타트업 종사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그 결과 많은 테크 기자들이 다시 꿈을 꾸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작 편집국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쓰고 싶은 기사를 쓰기보다는 위에서 주는 취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꿈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커지는 게 아닐까. 오해할까 봐 다시 이야기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이상적인 미디어라고 했던 이유는 기자의 자율성을 100% 존중하기 때문이다. (웃음)

– 테크 기자에게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나. 

기자라는 타이틀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업무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대립하는 기업 입장을 중립적인 논조로 전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기업 이야기를 옮기는 역할이다.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기자라는 직업은 인류의 멸망 전까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 영역은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라기보다는 B2B(Business-to-Business; 기업과 기업간 거래)에 가깝다.

정작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가 원하는 글을 쓰기 점점 더 어려운 환경으로 더욱 갈 것으로 생각한다. 기업 광고 기반으로 운영하는 미디어 수익구조의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 후배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자는 제너럴리스트이지만 이에 기반을 둔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 자신이 잘하고, 관심 있는 분야는 깊이 있게 취재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반적인 상황을 진단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기자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어와 중국어는 필수로 공부해야 한다. 4년 차 기자가 조언을 하려니 약간 민망하긴 하다. 후배보단 선배가 많은 연차라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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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어 중국의 IT 

– 중국을 자신의 “키워드”라고 했는데. 

IT 분야만큼 사대주의가 만연한 곳도 없는 것 같다. 늘 실리콘밸리 기업에는 혁신이 있다는 기사와 글이 쏟아진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표현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고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은 진보한 나라고, 우리는 그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열등한 나라라는 인식이 있다. 바이두 검색 엔진에 머신러닝 기법이 들어가 있고, 타오바오에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이미지 인식 기술이 담겨 있음에도 주목하지 않는다. 중국 IT 산업은 이미 한국을 넘어섰고, 미국까지도 초월해 성장하는 중이다.

중국

 

일례로 마윈은 20년 내로 중국 인터넷 기업이 미국 기업을 능가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아마존과의 경쟁에서는 아직 70억 인구 중 인터넷을 활용하지 않는 65억 인구에게 누가 먼저 진출하는지 지켜봐 달라고.

– 중국어를 잘하는데, 공부 팁이 있다면?

팁은 하나, ‘간절함’이다. 나는 중국어를 어학으로 배운 건 딱 한 달 반이다. 학원에서 배운 중국어 초급반이 전부다. 내가 배운 중국어는 ‘생존 중국어’다. 교환 학생으로 중국 상해에 갔을 때 초급 수준에서 중국 본과 학생들과 경쟁하며 PPT, 리포트를 작성했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교환 학생 때 학점은 C나 D를 받기 일쑤였지만, 그들이 이해하는 중국어 문장을 말하는 법을 배웠다. 물론, 중국어 고수들이 보면 비웃을 실력이지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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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 어떤 회사로 가나?

모비데이즈모비데이즈라는 모바일 마케팅 회사로 간다. 2014년 7월 1일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조민식 다음카카오 사외이사, 민용재 YJM 엔터테인먼트 대표(전 넥슨 사업본부 총괄이사), 김정현 우주 대표(전 딜라이트 창업자) 등 총 6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곳이다. 내가 스타트업을 만들러 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다.

– 모비데이즈로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유범령 모비데이즈 대표와 세 차례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생각하는 미디어(컨텐츠 플랫폼)의 이상향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더불어 그동안 기자로서 디지털 마케팅 영역을 취재해왔지만, 정작 현업에서는 수박 겉핥기 수준의 이야기라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모비데이즈는 모바일 애드 에이전시로서 내가 관심 있는 디지털 마케팅 솔루션, 플랫폼을 직접 활용하는 회사란 점도 이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관련 분야 전문가로 거듭날 기회라고 생각했다.

– 이번 이직은 키워드인 ‘중국’과도 관련이 있나. 

모비데이즈는 모바일 광고 스타트업이다. 최근에 ‘모바일 시대? 이제 막 시작’이라는 당돌한(?) 글을 썼다. 현재 모바일 광고는 전체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이지만 앞으로 엄청나게 성장할 분야다. 모바일로 본격 이윤을 창출하는 격변의 시기,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은 컨텐츠를 제작하는 나에게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모비데이즈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한 회사다. 회사 인원 절반이 한국어보다는 영어, 중국어가 편하다고 하더라. 중국 시장을 배울 기회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중국 모바일 광고 관련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페이스북에 이직한다는 글을 올리자 많은 이들이 반응했는데. 

다시는 기자로 돌아오지 말라는 의미? (웃음) 농담이다. 페이스북에 달린 800여 개의 ‘좋아요’는 기자를 그만두고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도전을 응원해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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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는 이유 

– 기사 말고도 다양한 채널과 형식의 글쓰기를 시도해왔는데(미디엄, 브런치 등).

기사가 정장이라면 블로그는 캐주얼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자유로운 글쓰기를 허용하더라도 확실한 사실에 근거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반면 블로그는 자유로운 생각을 현재 주어진 상황에 대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했다면, 기사에서는 신분이 분명한 담당자 멘트와 숫자에 근거한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 하지만 블로그에서는 ‘쿠팡이 도대체 로켓배송을 왜 시작했을까?’,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식으로 글을 쓸 수 있다.

블로그는 나에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대나무숲 같은 공간이다.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을 글로 풀다 보면 다음 기사를 작성할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 기자를 그만둔 후에도 계속 블로그는 하겠다고 했는데. 

네, 앞으로도 블로그는 계속할 거다. 주제는 O2O(Online to Offline), 모바일, 중국 IT, 이커머스 등이 될 것이다. 브런치 페이지를 만들었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 모비데이즈에서도 미디어 역할을 하는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계획인데,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너지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할 거다.

브런치

– 앞선 질문엔 없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

이런저런 질문들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슬로우뉴스이기에 가능한 인터뷰라는 생각이 든다. (웃음)

– 끝인사를 겸해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끝이지만, 동시에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라는 타이틀은 내려놓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역할은 변함없이 계속할 생각이다. 모비데이즈, 블로그, 페이스북, 그리고 슬로우뉴스를 통해 좋은 콘텐츠들 준비하겠다.

“앞으로도 많은 충고와 조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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