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요트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하지민 선수가 금메달을 디시인사이드의 자랑거리 갤러리에 직접 인증한 일이 있었다. 현장에 기자가 가지 않아 나중에야 언론사 몇 군데에서 부랴부랴 하지민 선수가 직접 올린 사진을 이용해 인터넷에 기사를 냈다. 하지민 선수의 예는 스포츠 경기에서 언론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뛰어난 선수,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선수들이 기울인 노력, 심지어 메달리스트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는 언론사의 경영난으로 일부 설명할 수 있다. 기자는 결국 밑바닥을 박박 기어 사실을 취재한다. 언론사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 한 명 한 명을 인터뷰하고 선수들의 국내외 대회 성적을 수집해 아시안게임 성적을 예상하고 각 선수가 어떤 평판을 받고 있는지 사전에 취재할 수 있다.
이 정도 정보를 갖고 있다면 비인기 종목의 선수가 메달을 획득해도 이미 취재한 정보를 기초로 대처할 수 있다. 대회 시작 전 이 많은 정보를 쥐고 있으려면 방대한 사전 취재가 필요하다. 이에는 시간과 인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데 국제 경기 하나에 이 정도 품을 들일 여력이 있는 국내 언론사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하나도 없다.
어뷰징 팀의 팀장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기사가 가장 슬픈 기사라고 했다. 이는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 한 기사로서의 가치는 높게 쳐줄 수 없다는 의미다. 한 언론사의 모든 기자가 동원되어 주말도 반납하고 날마다 야근해서 아시안게임에 대해 이 정도의 자료를 만들었다고 치자. 적게 잡아도 그렇게 취재한 것의 70%가 슬픈 자료가 될 것이다.
어떤 언론사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 스포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언론사 역시 자사 기사만으로 스포츠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시간과 인력이 한정된 언론사 입장에서는 네티즌이 관심을 가질 정보를 골라 취재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게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형태가 ‘취재조차 하지 않고 포털에 매달리는’ 어뷰징이다.
트래픽 1위~10위는 여성 노출 위주 기사
여성 노출 위주의 기사를 언론사가 홈페이지 전면에 배치하는 이유는 그런 기사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냥 높은 게 아니라 상위 13위 정도까지는 여성 노출 기사가 싹쓸이한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압도적인 차이로 상위에 있다. 어지간한 연예인 스캔들을 단독으로 잡아도 그 기사는 트래픽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트래픽 1위부터 10위 사이는 미녀 스타의 노출 사진 업로드를 전담하는 팀이 늘 차지했다. 어뷰징을 담당하던 팀장은 이에 대해 사람들이 머리를 써서 기사를 읽기보다 이동하면서 잠깐 보고 말 기사를 찾는 경향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나는 어뷰징팀에서 일할 때 미국에서 아이클라우드 계정이 털려 헐리우드 여배우 100여 명이 개인 계정에 보유한 누드 사진이 유출되었다는 기사를 작성해 단 한 차례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어뷰징팀이 만들어진 이래로 유일하게 어뷰징팀에서 조회수 1위를 차지한 사례였다. 원했던 바는 아니지만, 회의에서 축하까지 받았다.
당시 나는 드라이하게 팩트만 다뤘다. 기사에 첨부한 사진도 누드 사진이 아닌 레드 카펫 사진이나 출연 작품 스틸컷이었다. 해당 배우들의 누드 사진은 구하지도 못했고 찾아볼 생각도 없었으며 기사 내용도 이게 전부였다. 아마 이 기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유명 여배우들의 누드 사진이 대량 유출된 것은 물론이고 아이클라우드 계정이 뚫린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당시에는 해당 헐리우드 여배우가 주요 포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그 1위를 차지한 배우조차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진 배우가 아니었다. 심지어 연예 뉴스를 담당하던 사람들도 거론된 여배우 대부분을 모른다고 했다.
당시 기사를 본 사람들도 지금쯤은 거의 잊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템이 연예 스포츠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사를 본 사람조차 잊을지라도 여성 노출 아이템이 연예 스포츠지의 상위를 매일 차지한다.
내가 누드 사진을 찾아보지 않았다고 해도 내 기사를 보고 누드 사진을 찾아낸 사람은 있을지 모른다. 무려 1위였다. 그렇게 보면 나도 언론 유통망의 중간 어디쯤 서서 해당 여배우의 사진이 퍼지는 데 기여한 셈이다.
독자의 경향과 옐로 저널리즘
나는 여성 노출을 전면에 내세우는 몇몇 언론사의 행태가 싫고 이 방침에 반대한다. 앞서 밝힌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내가 작성한 어뷰징 기사로 인해 피해가 가속화되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팩트는 팩트라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정보성을 강조한다면 사건에서 여배우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대신 익명으로 처리하고 아이클라우드의 보안상 허점에 관해 이야기했어야 맞다. 실제로 당시 포털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는 아이클라우드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애플의 제품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클라우드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이에 대해 기사를 쓰려면 아무리 인터넷에서 대강 짜깁기를 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 뻔했다. 결국, 그만두었다.
내가 일했던 한 언론사의 기자는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가 시청자의 입맛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독자의 경향을 철저히 분석해 시청자의 입맛을 맞춘 결과는 옐로 저널리즘으로 나타난다. 이게 데이터가 말하는 언론의 현실이다. 그래서 연예 스포츠지는 미녀 스타를 찾고 얼짱 스타를 찾는다.
내가 있던 어뷰징팀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얼짱 선수, 미녀 선수 등의 콘텐츠가 수시로 나올 수 있도록 선수 프로필을 체크하라는 지침만이 내려왔다. 여성이 나오는 경기 가운데 몸에 달라붙는 의상이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경기에 집중하라고 했다. 어뷰징팀에게 선수의 외모를 제외한 요인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대회 성적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녀 선수는 트래픽을 끌기 좋은 아이템일 뿐이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부문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것은 언론에도 호재로 작용했다. 기사에 김연아만 들어가도 클릭을 유도할 수 있었다. 김연아가 올포디움(all podium;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을 기록하기까지 했으니 경기마다 언론은 할 말이 있었다. 언론은 스포츠계의 미녀 스타가 언론사의 수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배웠다. 그러자 리듬체조 분야에서 활약하던 손연재 선수를 언론의 포스트 김연아로 내세웠다.
그러나 국제대회 성적을 봤을 때, 손연재 선수보다 좋은 성적을 보유한 선수는 앞서 말한 하지민 선수를 포함해 적지 않았다. 리듬체조는 한국에서 축구나 야구처럼 고정적인 팬을 가진 인기 종목도 아니고 당시 손연재 선수는 세계대회에서 메달권에 진입하지도 못했는데 언론은 손연재 선수에게 주목했다. 1등만 기억한다는 한국에서 손연재 선수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리듬체조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손연재 선수가 연습벌레여서도 아니다. 전적으로 손연재 선수의 미모와 몸매 덕분이다.
하지민 선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사람들은 하지민 선수보다 손연재 선수를 많이 기억할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손연재 선수의 이야기는 언론들이 받아쓰기 바빴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손연재 선수는 개인종합 금메달을 획득했고 단체전에서도 한국이 높은 성적을 내는 데 공헌했지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소트니코바 선수와 비슷한 의혹에 휘말렸다.
언론이 국제 경기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에 대해 고른 관심을 보이기는 어렵지만 한 선수의 행적을 집요하게 캐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여성의 뛰어난 미모와 몸매를 필요로 하는 연예 스포츠지의 트래픽 분석 결과에 맞아떨어진 스포츠 스타는 하지민 선수가 아니라 손연재 선수였다. 그래서 하지민 선수가 출전한 광저우의 요트 경기장에는 기자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던 반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권 진입이 불투명했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권 진입이 예상되지도 않았던 손연재 선수의 경기장에는 한국 기자들이 운집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기사를 송고한 것이다.
언론은 늘 스토리를 원한다. 연예 매체는 특히 미녀의 스토리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손연재 선수는 언론이 트래픽을 끌기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