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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실업급여.

직장을 잃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실업급여가 얼마나 소중한지 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실직자가 됐을 때,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생계를 위해 지급하는 돈이다. 통상 받던 월급의 절반을 준다.

하지만 무조건 기존 월급 절반을 준다면 최저임금이나 아주 낮은 임금을 받던 사람은 사실상 실업급여로 생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인 월급 108만 원으로 살던 사람이 직장을 잃고 실업급여 54만 원을 받아 집세와 공과금, 생활비를 쓰고, 무엇보다, 구직 활동을 할 수 있을까?

거꾸로 매월 500만 원을 받던 사람이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자. 고용보험에서 기존 월급의 절반인 250만 원을 매달 지급해야 할까? 이렇게 운용했다가는 고용보험이 순식간에 고갈돼 누구에게도 실업급여를 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실업급여에는 상한선과 하한선이 있다. 상한 기준은 1일 4만 원으로 고정돼 있고, 하한 기준은 최저임금의 90%다. 올해 월 급여액으로 계산하면 상한액은 120만 원, 하한액은 112만 5,360원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최근 법을 고쳐 하한 기준을 낮추려고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저임금 노동자들은 실직했을 때 최저임금의 90%가 아니라 80%밖에 못 받게 된다. 왜 이렇게 법을 고치려 할까? (편집자)[/box]

지난 6월 20일 고용노동부는 실업급여(정식명칭 구직급여) 하한액 산정 기준을 최저임금 대비 90%에서 80%로 인하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Charles C. Ebbets, "Lunch atop a Skyscraper", (1932년 작)
Charles C. Ebbets, “Lunch atop a Skyscraper”, (1932년 작)

자초지종 (1) 최고보다 높은 최저?

현행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액 원칙은 평균급여의 50%다. 하지만 누구나 월급 반절을 고스란히 받는 건 아니다. 기금 안정과 실업자 지원 취지 때문에 상한액과 하한액을 정해뒀기 때문이다. 현재 상한액은 1일 4만원,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다.

실업급여의 상한액은 고정돼 있다. 2006년에 4만 원으로 오른 뒤 8년 동안 동결됐다. 반면 실업급여의 하한액은 최저임금과 연동돼 있어 해마다 최저임금 인상률만큼 오른다. 올해는 최저임금이 시간당 5,210원이므로, 실업급여 하한액은 1일 3만 7,512원(5,210원×8시간×0.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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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강임성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상한액은 매년 그대로인데 하한액은 최저임금과 함께 매년 인상하면서 상한액과 하한액의 차이가 점차 줄었다. 2014년 현재 하한액은 상한액의 93.8%에 달한다. 이대로라면 하한액이 상한액보다 더 높은,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내년 최저임금이 5,580원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하한액 규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년 실업급여 하한액은 1일 4만 176원(5,580원×8시간×0.9)이 된다.

자초지종 (2) 최저임금 월급보다 높은 실업급여?

하한액과 상한액의 역전은 상한액을 올리면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거꾸로 하한액을 깎는다.

고용노동부는 하한액이 상한액에 육박했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든다.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급보다 많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최저임금의 월 급여 환산액은 108만 8,890원이다. 그런데 실업급여 하한액의 월 소득 환산액은 112만 5,360원이다. 실업급여가 3만 6,470원 더 많다. 분명 실업급여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90%에 불과한데, 월 환산액은 최저임금보다 많다.

이런 난해한(?)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급여 지급일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는 토요일을 임금을 주지 않는 무급 휴일로 치고, 실업급여를 계산할 때는 휴일까지 다 넣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은 월화수목금 5일간 매일 8시간씩 일한 40시간에다 유급휴일인 일요일 8시간을 합해 매주 48시간을 일한 것으로 보고 계산하는 것이다. 한 달로 계산하면 209시간이다. 반면 실업급여는 휴일과 상관없이 7일간 8시간씩 매주 56시간, 매월 240시간이 기준이다.

  • 최저임금 월 급여: 5,210원 × 209시간 = 108만 8,890원
  • 실업급여 하한액 월 급여: 5,210원 × 0.9 × 240시간 = 112만 5,360원
최저임금 실업급여 산정시간 비교(주 단위)
최저임금 실업급여 산정시간 비교(주 단위)

급여 지급일 수가 달라진 이유는, ‘주 5일제'(주 40시간제)가 도입될 때 대부분 회사에서 토요일을 무급휴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의 법정 기준근로시간 설명에 따르면 주 5일 근무일 경우 일요일은 유급휴일, 토요일은 노사가 별도로 정하지 않는 이상 무급휴일이다. 토요일 무급휴일화는 재계가 원했고 정부가 수용했다.

만약 토요일이 무급휴일로 바뀌지 않았다면 최저임금도 실업급여와 마찬가지로 월 240시간이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아질 일은 없다. 그러니까 실업급여 하한액이 애초부터 높았던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이 변화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고용노동부 왈, “일하지 않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

앞서 살핀 것처럼 실업자가 취업한 사람보다 돈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주장은 사실이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실업급여가 지나치게 관대할 경우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실업급여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더 많이 보인다고 주장한다. 장기실업자가 늘고, 장기실업은 실업자의 직업능력을 약화해 재취업을 더 어렵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다.

그래서 고용노동부는 이렇게 말한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의 근로소득보다 실업기간 중 받는 실업급여가 더 커지는 모순이 발생해 일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문제점으로 제기돼 하한액을 깎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현실에서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높아 ‘일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고용노동부 주장은 터무니없다.

1) 우선 한국의 실업급여는 지급 기간이 매우 짧다. 실업급여 수급기간은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기간에 따라 최소 90일에서 최고 240일이며, 2012년 평균 수급기간은 114.6일이다. 기껏 평균 4달 정도 받는 실업급여가 최저임금보다 월 3만 6,470원 더 많다고 ‘일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2) 실업급여 하한액과 최저임금을 비교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실업급여는 실직 전 임금의 절반이고, 이 금액이 하한액보다 낮을 경우 하한액을 적용한다. 2014년의 경우 기존 월급이 196만 원 이하였던 실직자는 모두 하한액인 112만 원을 받게 된다. 월급 196만 원 받던 노동자가, 실업급여 112만 원이 최저임금보다 3만 6,000원 더 많다고 취직 안 하고 ‘일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겠는가?

상한은 올리고(1만 원) 하한은 내리고(-4,464원): 누가 손해고 누가 이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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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강임성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이번 고용보험 개정안은 내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2015년 최저임금 시급이 5,580원으로 결정됐으니 원래 법대로라면 내년 실업급여 하한액은 1일 4만 176원이 돼야 한다. 하지만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내려간다면 하한액은 3만 5,712원이 된다. 1일 기준으로는 4,464원, 월 기준으로는 13만 3,920원이 깎이는 셈이다. (실제로는 올해 하한선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부칙에 따라 올해와 같은 1일 3만 7,512원을 유지한다. 하지만 최저임금도 물가도 오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깎인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하한액 기준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추는 대신 상한액 기준은 1일 4만 원에서 5만 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상한액이 오르면 209만 원 이상 임금을 받다 실직한 노동자들은 최대 30만 원까지 실업급여가 늘어난다. 사회안전망인 실업급여가 저임금 노동자의 몫은 깎고,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의 몫은 올리는 모양새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결국, 대다수 노동자 실업급여가 깎이는 것

공교롭게도 209만 원은 중위임금에 근접한 임금 수준이다. 대략 절반은 인상되고 절반은 깎이는 셈이다. 인상폭은 1만 원인데 깎이는 폭은 그 절반이 안 되니 노동자에게 득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 중위임금: 전체 노동자가 임금 순으로 줄을 섰다고 가정했을 때 한가운데 선 사람의 임금

그런데 일반적인 노동시장의 특성상 임금이 높은 경우(대기업/정규직/남성)에는 실업 확률이 낮고, 반대로 임금이 낮은 경우(영세사업장/비정규직/여성) 실업 확률이 높다.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서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 확률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고용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실업급여 수급자격이 인정된 89만 8천명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22.8%로 가장 많았고, 300인 이상 사업장은 15.3%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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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임금 노동자가 실업에 처할 가능성이 더 큰 만큼 ‘절반은 깎이고 절반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노동자 대다수의 실업급여가 깎이는 것이다.

실업급여, 깎지 않아도 된다

한발 양보해서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게 문제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굳이 하한액을 깎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

1. 최저임금 월급 산정에 토요일 포함(= 토요일을 유급으로 전환) 

문제의 원인이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발생한 휴일(토요일)을 무급화하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토요일을 유급으로 전환해서 최저임금 노동자의 월 급여 수준을 높이면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고용보험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에서 결정해야 할 내용이다. 또 노사를 비롯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당장 시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임금과 노동시간의 격차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가 더는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2. 실업급여 수급일을 주당 1일씩 축소

다음으로 가능한 해법은 실업급여 총 수급일은 유지하거나 확대하되, 주당 1일씩 수급일을 줄이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최저임금의 월 급여 산정과 실업급여 산정 방식이 같아진다. 그러면 법 제정 취지에 따라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90%로 유지된다. 한편 주당 수급일이 줄어든 대신 전체 수급 기간을 늘려 더 안정적인 구직 기간을 확보할 수 있다.

3. 인하 피할 수 없다면 현재 받던 월급의 ‘절반’인 실업급여액 기준 높여야

만약 실업급여 하한액 기준 인하를 피할 수 없다면, 대신 현재 실업 전 월급의 절반인 실업급여액 기준(=급여대체율)을 높여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실업급여 하한액 개정안대로라면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만 실업급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209만 원 이하 임금을 받던 노동자까지 실업급여가 줄어든다. 최저임금보다 실업급여가 높아 생기는 취업 기피 현상을 해결하겠다는 개선책이 이와 상관없는 노동자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셈이다.

급여대체율을 높이면 재정부담이 커진다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처럼 상한액이 인색한 상황에서는 추가 재원에 부담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돈 실업
Truthout.org, CC NC SA

고용보험법, 차라리 그냥 놔둬라

고용노동부 보도자료를 보면 이번 실업급여 개정안은 총 11차례에 걸친 노사정·전문가의 회의 끝에 의견일치를 도출했으며, 노사정 대표로 구성된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의결을 거친 것이다. 노사정· 전문가 회의와 고용보험위원회에는 한국노총은 물론 민주노총도 포함돼 있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양대 노총이 ‘상한액 인상, 하한액 인하’라는 실업급여 개정안에 동의해준 이유는 무엇보다 하한액이 상한액보다 높아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고용노동법 개정안에는 상한액 조정은 없고, 하한액 인하만 담고 있다. 하한액 규정은 법률에 정해져 있어 국회에 상정해 법 개정을 해야 하지만, 상한액 규정은 시행령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국회와 상관없이 고용노동부가 언제든지 단독으로 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로서는 우선 상위법인 법률부터 고치고 이후에 시행령을 고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법 개정을 안 하는 것이 유리하다. 법률에 명시된 하한액 규정과 시행령에 명시된 상한액 규정이 충돌하면 정부로서는 당연히 하위법을 상위법 취지에 맞춰 개정해야 한다. 하한액을 깎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고용노동부는 반드시 시행령을 개정해 상한액을 인상해야만 하는 처지라는 뜻이다.

반면 하한액을 낮추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당장 하한액이 상한액을 역전하지 않기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시행령을 굳이 개정하지 않아도 된다. 노동계와 ‘약속’했다는 점 외에는 시행령을 개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

요컨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현행 고용보험법을 그대로 놔두면 굳이 하한액을 깎지 않아도 고용노동부의 상한액 인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차라리 이번 실업급여 개정안을 처리하지 말고 놔두라고 압박하는 것이 노동자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야당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이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중 '실업급여' 페이지. 하위 관련 항목들은 "Not Found" 페이지만 연결한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중 ‘실업급여’ 페이지. 하위 관련 항목들은 “Not Found” 페이지만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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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8월호에 올린 글입니다.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맞게 표제와 본문을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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