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 ]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상헌 박사의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box]
매년 9월 첫째 월요일은 미국 노동절이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공장 (factory)”이다.
평생 공장에서 일한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다. 다른 노래와는 달리 부드러운 피아노의 선율로 시작되고 목소리 한번 높이지 않는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듯 고백하듯 부른다. 조금은 어색한지 노래는 3분이 채 되지 않는, 2분 20초짜리 짧은 노래다.
그와 아버지 더글라스는 오랫동안 불화했다. 술에 취해서 돌아온 아버지는 브루스를 기어코 찾아내 험한 소리를 해대었고, 가혹한 폭력이 이어졌다. 그의 기타는 바닥에 내팽개쳤고 부서졌다.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면,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로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깊어졌고,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도 깊어졌다. 훗날 노래를 성공한 후에도, 그는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흠칫했다. 아버지가 간혹 그를 찾는 날에 그는 어쩔 줄 모르는 아이처럼 초조했다. 깊게 팬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카펫 공장 노동자였다. 꿈이 컸다. 기술을 연마해서 어느 날 누구나 인정한 장인 노동자가 되길 원했다. 대공황의 화마가 덮칠 때도 그는 꿈을 접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황이 끝나고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을 때, 그의 꿈을 키워왔던 공장은 값싼 노임을 찾아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유일했던 카펫 공장이 없어지자, 그의 기술은 길거리의 나뒹구는 빈 병 신세가 되었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을 근근이 이어갔다. 술도 늘고, 주먹다짐도 늘었다. 세상은 무서웠고, 그렇게 커진 공포감은 집에서 음주와 폭력으로 드러났다. 브루스는 아버지의 절망과 공포감의 희생자였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 브루스는 그의 아버지가 겪었던 세상을 알게 된다. 그의 나이가 서른 가까이 되어서, 그는 아버지를 위해서 노래를 쓴다. 그가 겪었을 일상을 그대로 그렸다.
“이른 아침 공장에서 호각 소리 들리면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집어 입고
도시락을 챙겨 들고 아침 햇살 속으로 걸어나가네
이것은 노동, 노동, 단지 노동의 삶
공포의 저택을 지나서, 고통의 저택을 지나서
나는 비 오는 날 아빠가 공장문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네
공장은 그의 청각을 앗아가고, 공장은 그에게 삶을 주고
노동, 노동, 단지 노동의 삶일 뿐
하루가 끝나갈 때 공장에서 호각 소리가 울부짖네
눈에 죽음을 담고 그들은 공장 안으로 걸어들어 가네
그럴 거야, 오늘 밤에 또 누군가가 다치겠지
이건 노동, 노동, 단지 노동의 삶
왜냐하면 이건 노동, 노동, 단지 노동의 삶이기 때문이야.”
1978년에 그는 피아노 한 대만 가지고 이 노래를 발표했다. 노래도 단출했고, 악기도 단출했다. 그리고 그답지 않게 축 처진 어깨 위로 회한이 흘렀다. 아버지에게 위로의 노래를 전하기가 쑥스러운 듯 좀체 앞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부르스의 극진한 도움 때문에 극적으로 회복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순하고 사랑스러운 아빠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그렇게 다시 이어졌다. 30년이 넘는 불화 끝에 20년에 가까운 화해의 시간이 뒤따랐다.
그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을 브루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난 뒤 오랫동안 비가 왔어요. 몇 주 내내 비가 내렸지요. 난 집 안에 있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바깥으로 떠돌았지요. 오랫동안.”
브루스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어쩌면 노동절은 평생 일했던 아빠와 엄마와 화해하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회한과 마주하는 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