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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의 흥행 속도가 대단한 기세다. 개봉 15일 만에 1,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4위에 오르더니, 결국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1위에 올랐다. 그것도 최단기간 기록이다.

영화 명량

영화는 개봉 초기의 흥행이 전체 흥행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명량]이 기존의 다른 영화들의 흥행과 어떠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지 자료를 통해 알아보자.

이 글에서 주로 비교하는 대상은 크게 두 분류로 아래와 같다.

  • (A군) 올해 대규모로 상영한 영화 중에서 네 작품 – 군도: 민란의 시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겨울왕국
  • (B군)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흥행 순위 1~4위 작품 – 아바타, 도둑들, 7번방의 선물, 광해 – 왕이 된 남자

빠른 흥행 속도

[명량]의 흥행 속도는 이례적인 수준이다. 역대 흥행 1~4위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그 속도의 차이가 분명하다.

누적 관객수 (역대 흥행작)

위의 영화들이 각각 1천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음과 같았다.

  • 명량 – 12일
  • 아바타 – 38일
  • 도둑들 – 22일
  • 7번방의 선물 – 32일
  • 광해 – 38일

이 흥행 속도를 올해 대규모로 상영한, 하지만 천만 관객을 넘지 못할 게 거의 확실시 되는 작품들과 비교하며 보면 [명량]이 얼마나 빠르게 흥행하는지 알 수 있다.

누적관객수 (역대 흥행작 + 2014년 흥행작)

개봉 일주일, 좌석 점유율 다르다

대형 배급사에서 배급하는 대규모 예산의 영화는 개봉 전 광고와 개봉 초기 성적이 전체 흥행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외일지 모르지만, 평론가의 평은 초기 흥행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아예 영화 평론과 흥행은 서로 반대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화의 흥행을 알아보는 한 요소로 좌석 점유율이 있다. 영화 개봉 전과 초기에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는 이유는 바로 이 좌석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영화가 재미없다면 빠른 속도로 관객이 감소하고 흥행은 실패하겠지만 누구나 초반에 좌석 점유율이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명량]의 좌석 점유율은 올해 개봉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다. 특히 개봉 첫 주의 좌석 점유율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20~40%까지 차이가 난다. 특히 주말을 지나 월요일, 화요일까지도 그 흐름이 이어지는 게 특이하다.

좌석 점유율 (2014년 흥행작)

역대 흥행작하고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개봉 첫 주의 좌석 점유율 차이가 매우 크게 나는 걸 알 수 있다. 아바타 정도가 개봉 2주차 때 좌석 점유율이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좌석 점유율 (역대 흥행작)

혹시 [명량]을 원하는 관객들의 수에 딱 맞춰 개봉관을 잡은 것이 아닐까? 물론 아니다.

그리고 스크린 장악이다

[명량]은 CJ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작품이니 CGV라는 멀티플렉스 체인이 얼마나 든든할까. 얼마나 많은 상영관에서 [명량]을 상영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상영횟수를 살펴보자.

그런데 왜 스크린수가 아니라 상영횟수를 따지느냐고? 한 상영관을 잡아도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을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참고로 명량의 스크린당 상영횟수는 동일 기간 박스오피스 2~10위 영화에 비해 무려 2배가 넘는다. 즉, [명량]이 스크린 10곳에서 50회 상영할 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10곳에서 25회 상영한다는 이야기다.

스크린당 상영횟수 (명량 vs. 2~10위 영화 평균)

따라서, 이와 같은 정보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크린수가 아닌 상영횟수를 체크해 봤다.

상영횟수 (2104년 흥행작)

비교 영화 중에서는 [군도]가 그나마 첫 주말 정도에 [명량]과 비슷한 수준의 상영횟수를 유지했을 뿐 평균 1.5~2배 정도 더 많이 [명량]을 상영했음을 알 수 있다.

역대 흥행 영화와 비교하면 이 차이는 더 확실해진다. 쇼박스가 배급했던 [도둑들]이 1주일에 4,000~5,000회 정도의 상영횟수를 유지했지만 이도 명량에 비하면 75% 수준이다.

상영횟수 (역대 흥행작)

특히 첫 주말의 상영횟수는 무려 하루에 7,960회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올여름 상영작들은 물론 역대 흥행작들과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상영횟수다. 한마디로 정말 많은 상영관에서 [명량]을 틀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작은 영화는 갈 곳이 없다

요즘 작은 규모의 영화들은 사실 여러 상영관을 잡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프라임 타임 시간대에는 이런 대형 영화들에 시간표를 내주는 게 다반사다.

8월 15일 CGV 영등포와 롯데시네마 영등포를 예로 들어보자.

CGV 영등포 8월 15일 영화별 상영횟수

롯데시네마 영등포 8월 15일 영화별 상영횟수

두 상영관 모두 [명량]이 가장 많은 상영횟수를 보여주고 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은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 작품으로 롯데시네마에서는 그나마 많은 상영횟수를 확보했다.

현재 극장 상영작이 총 20개가 넘는데 이 중에서 CGV와 롯데시네마의 해당 지점에서는 각각 10개, 6개의 영화만 볼 수 있다. 영화는 개봉했지만, 영화를 볼 곳이 마땅치가 않은 것이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대로 현재 상영하는 영화 중 [명량]과 [해적]을 제외하고는 상영 시간이 아침 아니면 저녁 시간에만, 그리고 하루 2~3회만 상영하는 영화가 상당수다.

예를 들어 롯데시네마에서 [안녕, 헤이즐]은 오전 7시대에 1회, 오후 6시대에 1회가 전부이며 [비긴 어게인]은 오후 1시대, 오후 11시대, 새벽 1시대에 영화를 상영한다. 이쯤 되면 낮에 편안히 극장에 가서 영화를 이런 영화를 보는 행위는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 뭘까.

독점, 쇼미더머니

[명량]이 개봉 후 2주간 벌어들인 돈은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상영한 모든 영화가 벌어들인 돈의 62.7%나 된다. 극장을 독점했다고 표현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명량 개봉 2주간 매출액 점유율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1위였던 [아바타]의 초기 2주간 매출액 점유율은 어떨까? 51.5%다.

아바타 개봉 2주간 매출액 점유율

기존의 역대 흥행작들과 비교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대형 블록버스터의 흥행 쏠림현상이 더 강화됐다고 보기 충분하다.

도둑들 개봉 2주간 매출액 점유율

15년 전, 스크린쿼터를 외치던 영화인들

우리나라는 1967년부터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했다. 제도가 정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는 146일이었다. 1990년대까지 이 제도가 유지됐고 많은 한국 영화인들은 이 제도의 수혜를 입었다.

1992년 9월 한국과 중국이 한중투자보장협정을 통해 문화투자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는 걸 협의하면서 스크린쿼터제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1993년 한국영화인협회는 스크린쿼터감시단을 운영하며 극장이 이를 잘 지키는지 감시했다. 그러자 1994년 전국극장연합회에서 영화진흥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1995년 7월 21일 헌법재판소는 스크린쿼터제를 포함한 영화진흥법이 합헌이라 판결하며 이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이 한미투자협정을 체결하기로 하면서 다시 스크린쿼터가 축소 혹은 폐지 위기에 이르자 1998년부터 영화인들이 전면 항의가 시작됐다.

1998년에는 강우석, 안성기, 박중훈, 최진실 등의 영화인들이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고 명동성당 앞을 걷는가 하면 1999년 임권택, 강제규, 박광수, 장선우, 박찬욱 등 당시 백여 명의 감독, 배우, 제작자 등 영화인들이 머리를 삭발하기도 했고, 명계남 등 비대위는 명동성당에서 단식 농성을 했다.

영화인들은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스크린쿼터 사수 의지를 천명하고 호소했지만 2006년 7월 노무현 정부는 결국 스크린쿼터를 73일로 줄었고 (당시 문화부 장관은 정동채), 이후 한미FTA는 앞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이 낮아져도 이를 늘릴 수 없도록 ‘현행유보’ 조항에 포함했다.

승자 독식 문화도 지켜야 할까

스크린쿼터가 영화인들 그리고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영화팬들에게 소중한 제도였을 때, 스크린쿼터로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자는 것이 가장 설득력을 얻었던 주장 중의 하나였다. 전 세계가 교역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외 영화를 보지 말고 우리 영화를 보자”는 주장은 국수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협한 것으로 보이기 쉬웠다. 하지만 헐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를 장악한 시기에 한국 영화처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이어주는 창작활동을 이어주는 제도는 필요하다는 주장은 유치해 보이지도 않고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이제 시간이 흘러 이제 스크린쿼터제가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한국영화가 대중들의 선택을 받는 시대가 됐다. 역대 흥행 순위 20위 중 한국영화가 14편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시장을 장악한 영화가 헐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에서 한국 대형 블록버스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여전히 작은 영화들은 갈 곳이 없다.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요구는 (세계로 뻗어 가는) 한국 문화의 싹마저도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다”

[명량]의 주연배우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해 문화훈장을 내놓고 항의하며 한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의 영화 상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형 자본의 극장 장악은 다양한 문화의 싹을 없애버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리 상영관을 늘리고 상영횟수를 늘려도 관객이 선택해 흥행한 것이니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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