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신념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신념주의’가 문제다. 우리가 바라보는 ‘토끼’만 옳다고 주장하지 않고, 그들이 바라보는 ‘오리’도 함께 인정하는 방법에 관하여. (⏳5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더니, 실제 우리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린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온라인 알고리즘은 진보와 보수가 서로 발견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현실 세계도 다르지 않다. 한때 술 한잔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여야 정치인이 이제 원수처럼 지낸다는데, 내 주변도 어느새 대체로 닮은 꼴이다.
행동과학자이자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교수인 폴 돌런은 나와 다른 생각, 신념을 가진 이들을 차별하거나 배척하는 ‘신념주의’를 경계한다. 누구나 여러 가지 ‘신념’을 가질 수 있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만 곁에 둔다면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라면서 아예 ‘신념(belief)’에 ‘주의(ism)’를 붙여버렸다.
책의 원제가 신념주의(Beliefism)다. 다른 관점을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피하는 상태. 우리가 그렇게 편협하다고? 우리는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부제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미움을 멈추는 법’(How to stop hating the people we disagree with)이다.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리다는 신념
알고 보면 인간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근거, 정당화하는 이유에만 주목한다. 반대 증거에 부딪치면 타당성이나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오히려 내 신념이 옳았다는 확신만 굳힌다. 19세기에 등장한 이 그림은 사람들이 오리 혹은 토끼 어느 한쪽만 인지하는 현상을 드러냈다.

우리는 어떤 문제든 오리 아니면 토끼 중 한 가지 방식으로만 바라본다. 일단 그렇게 인식하면 나머지 복잡한 문제는 따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바꾼 순간을 떠올려보자. 언제였고, 어떤 문제였는가? 한때 토끼로 보았던 것을 나중에 오리로 보게 된 적은 있는가?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고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것도 우리 본성이다. 흑백논리가 훨씬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가 훨씬 증폭시키기는 했지만 인간은 원래 ‘우리’에게 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고 ‘그들’을 악마화하곤 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민주당 지지자 3명 중 2명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다른 미국인보다 부정직하다고 생각했다. 공화당은 4명 중 3명이 상대를 그리 여긴다. 양쪽 진영 모두 상대 진영 사람들이 지능이 떨어진다고 인식하는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보수와 진보 막론하고 상대방을 정직하지 않으며 지능이 낮다고 인식하는 비중은 몇 년 새 크게 늘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될 때 친절함과 관대함, 유머 감각 같은 성품이 정치적 성향보다 우선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민주당 당원의 66%, 공화당원의 55%가 가까운 친구 중에 상대 진영 사람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회는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사람을 더 포용할 때 발전해 왔다. 지구는 둥글다고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 상대성 이론을 주창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배척했지만 그런 소수자 관점 덕분에 인류가 진보했다. 기득권이 장악한 기존 합의가 도전받을 때 세상은 조금 더 나아졌다.
저자는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각자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반대 의견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다른 신념을 지닌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집중했다. 오리가 보이는 사람에게 토끼를 보라고 설득하는 대신, 우리가 오리를 볼 때 다른 사람들이 토끼를 봐도 괜찮다는 마음을 갖는 법이다. 신념 자체를 바꿔서 어떤 합의를 모색하는 게 아니라 신념주의 파급 효과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신념주의를 완화해 주는 여러 가지 시도들
그가 제안한 ‘EMBRACE’(안다, 포옹하다; 받아들이다, 수용하다) 체크리스트는 과연 신념주의를 줄여줄까?
- E: 저마다 다른 환경(Environment)을 이해하고,
- M: 상대의 실수(Mistakes)를 허용하며,
- B: 특정 현안에서 갈등해도 다른 면에서 서로 연결되는 유대(Bonding),
- R: 더 확실한 증거를 찾는 이성(Reason),
- A: 정서적 반응(Affect)을 더 챙기고,
- C: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관점과 사람을 결합하고(Collection),
- E: 생각이 다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노출(Exposure)을 설계하면 달라질까?
어디선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별별 노력을 실행하는 이들도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 출근 전 함께 모여 춤을 추는 행사를 기획한 미국 데이브레이커(Daybreaker)는 66개 도시에 조직을 두고 춤이 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믿는다.


피스 플레이어스 인터내셔널(PeacePlayers International, PPI)이라는 단체는 분열된 공동체에서 화해를 돕는 도구로 농구를 활용한다. 스포츠는 신념주의를 초월하거나 완화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갈등이 있는 양 측 당사자들을 섞어 혼합 팀을 구성하고, 전문가가 토론 세션을 진행한다.
미국의 한 연구는 정치적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25가지 개입 방법을 평가했다. 대립하는 정당 간 공통점과 공유 정체성을 강조하거나, 상대 진영의 사람을 공감 가게 그려낸 이야기, 상대 정당원의 신념에 관한 흔한 오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 등이다. 실제 당파적 적대감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게 적지 않다. 공화당 사람들은 민주당원의 32%가 LGBT라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6%에 불과하며, 민주당원은 공화당원 38%가 연 소득 25만 달러를 벌고 있다고 믿었지만 2%가 정답이다.
상대방 관점을 진지하게 살펴볼 기회는 언제나 옳다. 보수주의자에게 애국심과 권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동성결혼 찬성 논리를, 진보 성향 참여자에게 평등과 공정을 바탕으로 동성결혼 반대 논리를 생각하도록 한 실험은 ‘도덕적 재구성’을 통해 각자 더 유연하게 만들었다. 이런 토론 수업이 학교에서는 불가능할까?
생각이 바뀌는 경험
저자의 가장 큰 미덕은 신념에 가득 찬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원래 경제학자로 출발, 행복 연구자로 변신했던 그는 이번에 신념주의를 줄이는데 진심이다. 학계 연구 결과들을 딱 맞춰 인용하면서도 현학적∙학술적 언어를 버리고 동네 술집에서 만난 친구처럼 우리를 안내한다. 신념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7가지 방법을 ‘EMBRACE’ 체크리스트로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덕분에 어느새 내가 신념에 가득 찬 옹고집 아재란 걸 확인하고, 평소 질색하던 생각을 다시 보게 됐다.
결정적으로 책의 도입부에서 확인했던 내 신념의 지형이 책 마지막의 체크리스트에서 바뀐 것에 놀랐다. 구체적 쟁점에 대해 나이 들면서 생각이 바뀐 저자의 솔직한 논증에 의구심을 품다가도, 결국 어떤 문제에서는 설득되어 버렸다. 예컨대 나는 불법 약물 사용에 찬성하는 이와 대화를 나눌 의지가 전혀 없었는데, 저자가 들려주는 양쪽 주장을 살피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대화와 토론을 되살릴 가능성을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기를.

또 이민에 반대하는 이와 어디서부터 부딪쳐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손해 보는 저임금 노동자들과 이민 노동자 덕분에 이득을 취하는 자본가, 별 상관없는 엘리트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손해 보는 이들을 이득 본 이들이 충분히 보상하지 않고 옳고 틀린 문제로 접근해 온 게 문제였다.
저자는 안되는(?) 유머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쉽게 설명하는 데 온 힘을 다한다. 유머는 토끼파와 오리파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귀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차분하게 대화하는 게 먼저이고, 대화가 안 통해도 일단 유머로 분위기를 바꿔 음악 취향 스몰 토크라도 나눠볼 수 있을까?
그는 싫어하는 이의 신념에 귀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자존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보람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솔직히 말해 나 역시 이것이 정말 지독하게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래도 다양한 생각을 살피면, “지적 겸손함이 커지고, 관대함과 인내심이 더해져 인간관계가 개선된다”는 건 팩트 아닐까? 분발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