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딩] 대전 직전 노골적인 정치 개입을 시도한 조희대의 대법원, 윤석열 탄핵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만장일치로 수행한 헌법재판소,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김기영(전 헌법재판관)의 책 ‘헌법을 생각하는 일’이 질문에 답한다. (⌚8분)

내란과 탄핵을 거치면서 우리는 사법부를 재발견했다. 대선 직전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정치 개입이었다. 대통령 후보를 날리려다 실패한 쿠데타였다. 대법원장은 속셈이 있었다 해도 다른 대법관들은 무슨 생각으로 대법원장을 따랐을까? 반면 여야 추천으로 구성되어 당시 여당 쪽 입김 가능성을 우려했던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윤석열 탄핵을 선고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소신과 독립성을 지키는 것일까?


법관 22년을 거쳐 헌법재판관으로 6년 동안 일했던 김기영 전 헌법재판관의 책 ‘헌법을 생각하는 일’은 이같은 궁금증에 대해 실마리를 보여준다. 법원에서는 제도가 독립을 위협하고, 헌재에서는 문화가 독립을 지킨다고 했다.
우리 사법부는 대법원장 한 사람이 모든 법관의 인사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극도의 권한 집중이다. 다들 인사권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헌재는 수직적 권위 대신 수평적 소통 구조를 택했다. 위계를 챙기는 대신 형암님, 청광님, 고암님, 서로 호를 정해 부른다. 전직 대법관이든 교수 출신이든, 선배든 상관없이 논리만 따진다. 회의 때 말문은 막내가 연다. 선배들 눈치 보지 말라는 배려인 동시에 더 철저히 준비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법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도 구분해야 한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사법부는 종종 법원의 독립을 말하지만 조직 보호 논리로 빠진다. 김 전 재판관은 법관의 법원 내부(조직)로부터의 독립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기에 저마다 편견과 욕망,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승진을 의식하거나, 여론에 휩쓸리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양심이 개인적 취향이나 편견에 불과하다면?
법관의 양심, 확신 대신 의심이 관건
“어떤 재판관은 당사자의 고통에 먼저 주목했고, 어떤 재판관은 법리의 정합성을 먼저 따졌다. 어떤 재판관은 국제적 추세를 중시했고, 어떤 재판관은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했다…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다.
김기영, ‘헌법을 생각하는 일’
군 복무, 학생운동, 시민운동 같은 공동체 경험을 가진 법관은 연대의 가치를 체득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 유학이나 연구기관 경험이 있는 법관은 이론적 체계를 중시하고 비교법적 관점을 갖는다. 검사나 변호사 경험이 많은 법관은 실무 감각이 뛰어나고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장점만큼 한계도 품고 있다. 공동체 경험이 강한 법관은 개인의 자유를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학문적 배경이 강한 법관은 이론에 매몰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법관은 단기적 실용성에 치우쳐 원칙을 놓칠 수 있다.“
어떤 배경과 성향이 더 올바른 판단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김 전 재판관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확신에 차 있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보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하는 저자의 태도는 수도사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가 법관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 정도일까?

사법농단 사태 때 어디에 섰는가?
그의 엄격함은 사법농단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두드러진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원 내 비판적 인사들을 사찰하고 보직에서 배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청와대와 재판거래까지 했다는 논란의 사법농단 관련, 저자의 입장은 단호하다: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후보를 평가할 때, 우리는 종종 엉뚱한 것에 매달린다. 출신 연구회, 학벌, 고향, 종교, 재산.
김기영, ‘헌법을 생각하는 일’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르다.
“그는 사법농단 사태 때 어디에 섰는가? 권력의 압력 앞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켰는가? 동조했는가, 침묵했는가?”
사법농단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그 시기 법관들의 행동은 그들의 진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2008년 봉합해버린 법관 독립에 대한 고민
사실 사법농단은 6차 사법파동으로 불린다. 어떤 법관들은 계속 저항했고 어떤 법관들은 계속 순응했다. 1970년대 긴급조치를 합헌이라고 본 법원은 정말로 합헌이라고 믿었을까? 김두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의 ‘법률가들’에는 5공 시절 “분단국의 현실에 비추어 사법부의 수장은 정치적, 공안적 사건에서는 정부에 협력해야 한다”는 유태흥 대법원장의 발언이 박제되어 있다.
저자는 양승태 사법농단에 앞서 2008년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압력을 행사했던 사건의 당사자다. 당시 신 법원장은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고 일부 재판 처리 방향을 종용했으며, 김기영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이를 폭로했다. 진상조사에도 불구, 경고 조치에 머물자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면서 ‘5차 사법파동’으로 역사에 남았으나 신 법원장은 대법관으로 승진, 임기를 모두 마쳤다.
지난달 서울 종로 북살롱 오티움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김 전 재판관은 “그때가 갈림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사법행정은 결코 재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한 책임으로 못 박았더라면, 대법원장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구조를 손봤더라면, 몇 해 뒤 더 큰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부적절했다는 정도로 봉합될 일이 아니었다. 저자는 역사는 한 번 비껴간 책임을 반드시 더 큰 청구서로 돌려보낸다는 것을 그 사건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날씨 대신 시대의 기후를 읽는 법정
미국 헌법학자 폴 프로인드는 “법정은 그날 그날의 날씨에 휘둘려서는 안 되지만, 시대의 기후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역사적 흐름을 살피라고 했다. 저자는 간통죄가 네 번의 합헌 끝에 위헌이 된 것은, 재판관들이 시대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책은 여러 차례 시도 끝에 결정적으로 뒤집힌 헌재의 중요 결정문들을 이같은 맥락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어떤 헌재 결정들을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평했다. 어쩌면 좌절이 반복될 때마다, ‘Mr.소수의견’으로서 자신의 소신과 다른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최소한 ‘미래를 위한 씨앗’을 남겼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낙태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외로운 소수의견이 십수 년 뒤 다수 의견이 되어 사회가 진보했다. 잠시 후퇴하더라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그를 지켜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유족들이 국가 책임을 물은 헌법소원이 10년이나 걸려 끝내 각하된 것은 너무한 것 아닐까? ‘느리게, 신중하게, 겸손하게’가 헌재의 시간이라 해도 너무 오래 걸린 것은 아닐까? 저자는 북토크에서 “한 사람의 억울함을 푸는 ‘구제’가 늦어지는 것과, 사회 전체의 헌법 인식이 더디게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앞의 것은 늦으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불의”라고 분명히 했다. 실제 헌재가 잽싸게 움직인 사건들은 저마다 사연이 있다.
저자는 12.3 계엄 직후 다들 ‘미쳤네’라고 생각했던 것을 헌법에 기반해 풀어내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게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의 많은 쟁점에서 여전히 확신보다 고민이 많지만 적어도 어떤 질문들이 있었는지, 그 질문 앞에서 어떤 고민이 오갔는지 기록을 남겨준 것에 독자로서 감사한다. 헌법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대법원장 권한 분산을 통한 법관 독립이 왜 중요한지 놓칠 수 없다.
“권력이 헌법을 넘어서려 할 때, 다수가 소수를 억압하려 할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 바로 사법부다. 그 언덕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무너진다.”
김기영, ‘헌법을 생각하는 일’
깊이 공감하는 만큼, 시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사법부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더 강고한 독립을 기다린다.

내가 썼던 짧은 추천사 옮겨본다:
이제야 알겠다. 우리는 앞으로 법관을 평가할 때, 출신 연구회, 학벌, 고향을 묻는 대신 “당신은 사법농단 사태 때 어디에 섰느냐? 권력의 압력 앞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켰는가? 동조했는가? 침묵했는가?” 물어야 한다. 어려운 법조계 용어 대신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 고백이 헌법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법으로 밥벌이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가, 그들의 행태에 고개를 갸웃했던 시민들에게는 참고서가 될 것이다.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 본문 메모
🔖 헌법 제103조가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제왕적 사법행정 시스템을 개혁하고 실질적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분산된 임명권, 평등한 토론 문화가 법원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22년의 법원 생활과 6년의 헌법재판소 생활을 마치며, 그 질문을 던져본다.
🔖 그런데 만약 그 양심이 개인적 취향이나 편견에 불과하다면?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승진을 의식하거나, 여론에 휩쓸린다면? 그 결과는 단순히 한 사건의 잘못된 판결에 그치지 않는다.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한다 동료 재판관들과 평의를 하다 보면, 같은 사건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놀라곤 했다. 어떤 재판관은 당사자의 고통에 먼저 주목했고, 어떤 재판관은 법리의 정합성을 먼저 따졌다. 어떤 재판관은 국제적 추세를 중시했고, 어떤 재판관은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했다.
🔖 공동체 경험이 강한 법관은 개인의 자유를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학문적 배경이 강한 법관은 이론에 매몰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릴 수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법관은 단기적 실용성에 치우쳐 원칙을 놓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배경을 가진 동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의 시각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 확신에 차 있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사람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보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후보를 평가할 때, 우리는 종종 엉뚱한 것에 매달린다. 출신 연구회, 학벌, 고향, 종교, 재산.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다르다. “그는 사법농단 사태 때 어디에 섰는가? 권력의 압력 앞에서 법관의 독립을 지켰는가? 동조했는가, 침묵했는가?” 사법농단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너진 사건이었다. 그 시기 법관들의 행동은 그들의 진정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 과거에는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있어서,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이 승진심사를 앞두고 판결을 내릴 때마다 ‘사심에서 나온 판결’이라는 의심을 받곤 했다.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사라진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큰 조직에서 승진이나 보직으로 인한 유선호하는 임지배치, 해외연수 기회, 법원행정처 근무,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험. 이를 두고 판사들 사이에서 암묵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법원행정처 보임은 ‘엘리트 코스’로 불린다. 재판이 본업인 판사가 행정업무로 평가받는 아이러니.
🔖 우리 사회에는 묘한 이중잣대가 있다. 정치적 성향은 ‘편향’이라 낙인찍고, 종교적 배경이 담긴 보수적 판결은 ‘양심’으로 미화하는 경우가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리면 ‘좌편향’이라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낙태나 동성애에 반대하는 판결은 ‘신앙에 따른 양심적 판단’이라고.
🔖 차별과 혐오는 의견이 아니다.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폭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