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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240만 노동자의 삶, 지방정부의 선택에 달렸다” 잿빛 산업단지를 ‘희망의 일터’로 바꾸는 길. (이창근 /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4분)

산업단지는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반이다.

지역 제조업 핵심 ‘240만’ 노동자 일하는 산업단지의 문제

전국 1,341개 산업단지에서 약 240만 명이 일하고, 제조업 고용의 60%가 이곳에 모여 있다. 특히 전남과 울산, 경남에서 산업단지 노동자가 제조업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 전남: 94%
  • 울산: 82%
  • 경남: 77%

이처럼 일부 지역은 산업단지 의존도가 더 높다. 그러나 평균 종업원 수 18.2명의 영세사업장이 다수인 산업단지근로기준법의 실질적 사각지대가 되기 쉽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위험의 외주화’가 구조적으로 고착돼 있다. 산업단지가 ‘생산 기지’로만 취급되는 한, 노동권은 공장 담장 안에 고립된다.

산업단지 노동자 보호를 개별 기업의 지불 능력이나 선의에만 맡길 수 없다. 기업별 노사관계가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지방정부가 ‘모범 사용자’이자 ‘적극적 중재자’로 나서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1. 생산 기지, 기업 복지 아닌 ‘공공 인프라’로 접근해야

첫째, 지방정부는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의 질과 재생산에 필수적인 시설을 기업 복지가 아니라 ‘공공 인프라’로 규정하고,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 의무가 부과됐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20인 미만 사업장(청소, 경비 등 취약 직종 노동자 2인 이상 보유 사업장의 경우, 10인 미만)은 과태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돼 법적 강제력이 약하고, 영세 사업주에게 좁은 작업 공간을 비워 휴게 공간을 확보하라고만 요구하는 방식은 실행 가능성이 낮다. 실제로 2024년 조사 대상 104개 산업단지 가운데 공동휴게시설을 갖춘 곳은 7곳(6.7%)에 그쳤고, 실제 운영은 2곳(1.9%)뿐이었다.

바로 여기서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다.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을 설치하면서 인근 주민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듯, 산업단지의 휴게실·식당·세탁소 같은 필수 시설도 특정 기업의 복지 차원을 넘어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공공재로 봐야 한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한국산업단지공단 등과 협력해 부지·예산·운영 모델을 마련하고, 조례와 예산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기름때와 유해물질이 묻은 작업복을 집으로 가져가지 않도록 돕는 ‘작업복 공동세탁소’는 노동자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권까지 지키는 확장된 산업안전 정책이 될 수 있다. 아침 식당조차 부족한 공단을 위한 ‘천원의 아침밥’은 식사권 보장을 넘어 노동자와 지역사회를 잇는 접점이 되고, 대중교통 취약지를 연결하는 ‘공영 통근버스’는 이동권을 보장해 인력난 완화에도 기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업을 시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2. ‘초기업 교섭’이 해법이다

둘째, 산업단지 문제의 구조적 해법은 초기업 교섭에 있고, 그 실현의 열쇠 역시 지방정부가 쥐고 있다. 공공 인프라 확충이 노동자의 ‘현재’를 지키는 일이라면, 초기업 교섭은 노동자의 ‘미래’를 바꾸는 제도적 장치다. 산업단지의 저임금과 격차는 개별 사업장 단위로는 풀기 어렵다.

📌 초기업 교섭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 등 더 큰 단위(초기업 단위)로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함께 근로조건 등을 교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하청 간 임금 격차 완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목표로 한다.

지불 능력이 낮은 영세기업과 교섭력이 약한 소수 노조가 기업별 교섭을 반복하면 ‘낮은 기준’이 산업 전체로 확산되기 쉽다. 동일 산업·업종에서 표준적 노동조건을 만드는 초기업 교섭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미조직 사업장에도 긍정적 파급효과를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낮은 조직률과 사용자 측의 거부감 속에서 이를 노사 자율에만 맡겨서는 교섭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

법도 지방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한다.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산업·지역별 교섭 등 다양한 교섭방식의 선택을 지원하고, 단체교섭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30조 제3항). 지방정부는 인허가권자이자 지역 예산의 ‘최대 발주자’로서 산업단지에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다. 부산시가 관급 공사 현장의 안정을 위해 레미콘 업종 노사 간 초기업 교섭을 중재했던 경험, 구로구·금천구가 노동청과 협력해 ‘일하기 좋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위한 공동선언’을 이끈 사례는 지방정부가 교섭의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적 경로는 단계적으로 열 수 있다. 당장 법적 구속력을 갖춘 교섭이 어렵다면 ‘노정협의’나 ‘지역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해 임금·고용안정·복지 기준을 논의하고, 이를 ‘지역 산업단지 표준협약’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나아가 노조법 제30조 제3항을 근거로 ‘산업단지 초기업교섭 활성화 조례’를 제정해 지방정부의 역할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공동 휴게실, 작업복 세탁소, 통근버스, ‘천원의 아침밥’처럼 합의 가능성이 높은 생활밀착 의제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고, 이를 초기업 교섭의 마중물로 키워야 한다.

산업단지는 기계만 돌아가는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인 노동자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다. 지방정부가 ‘기업 하기 좋은 도시’라는 구호를 넘어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도시’를 목표로 삼을 때, 산업단지는 ‘잿빛 공장’에서 ‘희망의 일터’로 바뀐다. 생활 인프라의 공공화로 현재를 지키고, 초기업 교섭의 토대를 만들어 미래를 바꾸는 것. 지방정부의 선택이 240만 산업단지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올해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이러한 지방정부의 선택이 공론화되고, 현실화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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