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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코리아 칼럼] 제113차 ILO 총회 “플랫폼 노동자도 노동자”···권리보장 첫걸음. ‘권고로 보완한 협약’ 채택 (우지혜/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변호사) (⏳5분)

올해(제113차) 국제노동기구(ILO) 총회가 이 달 2일부터 13일까지(현지시간) 총 187개 회원국의 노·사·정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한국을 대표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노동자 대표, 양대노총 위원장이 격년으로 번갈아 맡는다)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사용자 대표)이 참가했다. 정부 쪽에선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 윤성덕 주제네바대표부 대사가 참여했다. 나는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필두로 한 한국노총 노동자 대표단의 일원으로 이번 행사에 동참했다.

질베르 응보 ILO 사무총장은 개회사에서 “지정학적 긴장, 특히 무역 긴장 등으로 세계 경제 성장이 침체되면서 2025년 창출되는 일자리 수는 작년 예상치보다 700만 개 이상 적을 것이고, 여러 직업군에서 노동자들의 취약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는 “ILO가 국제노동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사회 정의를 증진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공정·공평한 게임 규칙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 열띤 논의


올해 ILO총회의 핵심 의제는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이다. 플랫폼 노동자 증가에 대응해 디지털 플랫폼 기반 노동의 공정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기준 마련이 핵심의제로 채택된 것이다. 앞서 ILO 이사회는 지난 2023년 3월 제347차 회기에서 이 의제를 올해 총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에 사무국은 2024년 1월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각국의 법률 및 관행을 정리한 예비보고서(ILC.113/Report V/1)와 설문지를 작성하여 회원국에 배포했다. 사무국은 올해 2월 3일 회원국의 정부·사용자·노동자 대표, 국제기구들이 회신한 설문조사 응답을 정리하고 제안하는 결론을 담은 두 번째 보고서(ILC.113/Report V/2, 이하 ‘V2 보고서’)를 발간했다.

사무국이 V2 보고서에서 제안하는 결론은 총 78조로 구성됐다. 보고서는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기준의 형태
  • 개념의 정의
  • 플랫폼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노동권의 내용
  • 회원국에 부과되는 플랫폼 노동시장의 고용 관계·적정 보수·노동시간·고용 조건·산업안전 보장 및 사회보장, 차별금지, 이주민과 난민 보호 의무
  • 분쟁 해결 및 구제 등

이는 제113차 총회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 기준설정위원회 회의의 기초자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기준설정위원회 회의는 다음과 같이 전개됐다. 먼저 노동자 그룹과 사용자 그룹은 각기 하나의 의견을 제출하고 각 대표가 발언권을 갖는다. 정부와 정부 집단(유럽연합, 아프리카 국가, 걸프만 국가, 중남미 등)도 제각기 발언권을 가진다. 총회 직후부터 1주일간 각 그룹은 사무국이 V2 보고서에서 제안한 결론에 대해 조항별 수정안을 제출한다. 이어 매일 오전 회의를 통해 원안에 대해 수정안을 마련하고 자신들이 제안한 수정안을 관철하거나 혹은 상대방의 수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전략을 구상한다.

각 그룹은 오후부터 밤까지는 노사정 회의에서 원안과 수정안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노사정 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르면 수정안을 채택하지만 합의 도출이 어려운 경우에는 보류한 뒤 수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마련하여 논의에 올리기도 한다. 끝끝내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제안자는 스스로 수정안 내지 수정안에 관한 수정안을 철회하는 식이다.

‘권고로 보완한 협약’ 형태로 합의

총회 첫날부터 노동자 그룹과 사용자 그룹은 원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격돌했다. 사용자 그룹은 ILO 총회를 통해 마련하는 기준은 각 지역의 특수성과 회원국의 법체계를 고려하여 유연하고 간결한 내용으로 이뤄진 권고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반면, 노동자 그룹은 대다수 플랫폼 노동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자영업자로 볼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아가 ILO는 새롭게 등장해 확산 중인 플랫폼 시장에서 노동자들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을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강제력 있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배달 노동은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이고, 액화노동이다. 이제 알고리즘을 AI가 대체하고, 인간의 노동을 프로그래밍하고 통제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총회 둘째 날부터 이틀 넘게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 기준을 협약, 권고, 권고로 보완한 협약 중 어떤 형태로 정할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ILO에서 채택한 국제노동기준의 형태가 ‘협약’인 경우 비준국에 대해서는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게 되어 법적 구속력이 있다. 반면, ‘권고’는 조약이 아니기에 비준을 요하지 않고 회원국의 자발적 수용을 기대하면서 국제적 공감대의 확산을 기대하는 의미로 채택하는 것이어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노동자 그룹과 대다수 정부는 원안대로 ‘권고로 보완한 협약’을 지지했으나, 일부 정부와 사용자 그룹이 수정안으로 제출된 ‘권고’ 형태를 지지했다. 결국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 기준은 사흘간의 격론 끝에 ‘협약’의 지위를 얻고, 각 회원국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지침을 담은 권고로 보완하게 되었다.

이어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는 디지털 노동 플랫폼이 조직하거나 촉진하는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보수 또는 대가를 받고자, 고용 상태 분류와 관계 없이 고용되거나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정의되었다.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정의도 앞서 기준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만큼이나 각 그룹 간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플랫폼 종사자의 지위를 구체화하는 차원에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정의 이전에 ‘디지털 플랫폼 작업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규정을 추가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 그룹과 일부 국가는 고용된 자와 자영업자를 구분하고자 한 해당 수정안의 제안 취지를 지지하기도 했으나, 노동자 그룹과 대다수 국가가 원안대로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 개념은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정의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수정안이 철회되었다.

이번 총회는 ILO가 처음으로 디지털 노동 플랫폼을 규제하고 그 발전이 노동자의 권리를 희생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할 명확한 의무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플랫폼 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간 플랫폼 노동자를 사업자로 오분류하는 것은 전 세계적 문제였는데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제 근무 현실을 기준으로 플랫폼 노동자를 정의하게 되었고, 알고리즘 관리 정보 접근이 가능하게 되어 플랫폼 노동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되었다.

2026년 총회에서는 이번 총회에서 시간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 플랫폼 노동의 고용 분류, 사회보장, 단체교섭, 집행 및 분쟁 해결 등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노동권의 내용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보장 합의 등의 과제가 남아있다.

이번 ILO 총회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과제

한국 사회에서 플랫폼 노동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상의 분류 기준에 따라 ‘노무제공자’로 여겨진다. 과거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 개념에서 노무제공자로 재정의되면서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고, 플랫폼 노동자까지 보험 적용 대상으로 확대되어 일단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법률상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는 사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일 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차량호출 서비스의 드라이버(운전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대법원 2024두32973 판결). 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의 인정 범위를 사실상 플랫폼 노동자에게까지 확대한 첫 판결로 의미가 크다. 그러나 향후 모든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플랫폼 노동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 규정 등으로 인해 노동조합으로 인정받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 보호의 최소 기준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심지어는 최저임금법 적용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대표적 플랫폼 노동인 배달 노동은 대개 고체의 안전망이 녹아내린 액화노동(불안정노동)이다.

2026년에는 플랫폼 경제의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기준이 권고로 보완한 협약 지위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탄생할 해당 협약을 비준하고 국내법 역시 협약에 맞춰 제·개정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ILO 총회에서 김민석 고용노동부 차관은 정부 대표로 “정책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취약 계층의 교육, 상담 및 분쟁 조정 접근성을 개선하고 사회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장 적용 논의를 넘어 근로기준법 적용, 적정(최저) 임금 보장,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의 논의로 나아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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