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랑콤, 시세이도, 클라랑스, 록시땅, 에스티로더, 디올 등 백화점과 면세점에서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직원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한 지 벌써 10여 년이 흘렀다.
(중략)
2024년 노사 교섭의 핵심은 감정노동 수당(월 2만 원)과 감정노동 휴가(연 1일 확대)였다. (중략) 감정노동의 심각성을 고려한다면 노동조합의 요구는 소박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중략) 2024년 3월 첫 7개 회사와 노동조합과의 집단교섭 상견례를 시작으로 8월까지 약 아홉 차례 노사 간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최종 합의안 문구에서 (중략) 타 회사와 달리 샤넬만 유독 ‘감정노동’ 문구를 넣을 수 없다고 한다. 감정노동은 이미 10년 이상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감정노동’이라는 문구는「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의 법령 개정 모티브가 된 문구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성명서, ‘감정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유한회사 샤넬코리아, 2024.09.04.
감정노동… 6개 노사는 합의, 샤넬 사측만 반대
7개 회사의 사측과 노조가 집단교섭에 참여했다. 집단교섭은 산별교섭의 전(前) 단계로 교섭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하고 이탈할 수 있다. 집단교섭에 참여한 7개 회사는 다음과 같다.
- 샤넬
- 로레알
- 록시땅
- 클라랑스
- 시세이도
- 부루벨
- 하이코스
소위 ‘명품’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 브랜드 회사들이다. 이들은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입점해 고가 물건을 사려는 상대적으로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손님을 상대로 물건을 판다. 대표적인 ‘감정노동’ 분야인 건 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교섭의 주요 안건은 ‘월 2만 원의 감정노동 수당과 연 1회의 감정노동 휴일’. 위 논평 속 표현처럼 “소박하기 짝이 없”다. 이 안건이 관철된다고 해도 노동자가 누릴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현장 노동자가 경험하는 감정노동의 노고와 가치를 상징적으로나마 회사가 존중해달라는 요구였을 거다. 7개 노사 모두 원만하게 이 안건에 합의했다. 단, 샤넬만 제외하고. 왜 샤넬만 ‘감정노동이라는 문구’에 반대했을까. 그게 너무 궁금했다.
샤넬이 ‘감정노동’ 문구 합의를 거부한 이유
이 소식을 접한 건 논평을 통해서다. 논평을 발표한 김종진(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공동위원장)에게 물었다. 김종진은 샤넬 사측이 아래 세 가지 이유로 ‘감정노동’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 감정노동은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 감정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보편적 개념도 아니다.
- 글로벌 기업 샤넬은 다른 나라에서도 감정노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3번은 별론으로, 1번과 2번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감정노동은 논평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 등)에 담긴 핵심 개념이다. 해당 법 규정에 정확한 ‘그 표현'(감정노동)이 없다고 해서 이 규정이 감정노동에 관한 법규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없다. 샤넬만 빼고. 이 규정의 별칭은 ‘감정노동자보호법’이기까지 하다. 다만 아쉬운 건 이 조항 위반 시 벌칙 조항이 따로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샤넬이 ‘감정노동’을 거부한 이유로 제시했다는 두 번째 이유는 더 납득할 수 없다. 감정노동은 이제 사기업은 물론이고, 관공서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넉넉하게 인정되는 개념이다. 오히려 그 중요성은 점차로 커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2023년 안전보건공단과 함께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가이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더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국 사회가 감정노동을 인정해야 샤넬코리아도 감정노동을 인정할까.
감정노동이 익숙한 제도이자 개념인 것처럼 감정노동수당 역시 낯설고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고 김종진은 말한다. 이대목동병원은 감정노동수당으로 9만 원을 지급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은 이미 2015년에 ‘노사 파트너십 프로그램’ 지원업체로 선정돼 병원 종사자의 감정노동 스트레스 예방 및 완화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감정노동은 실제로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넉넉하게 그 의미를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개념이다.
감정노동은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상식적이고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았다. 문제라면 그렇게 넉넉하게 합의된 사회적 가치로서의 감정노동이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아예 제도적 보호 범위에도 포섭되지 못한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라면 모를까. 김종진은 그런 사각지대로 방문 노동자들, 가령 가스검침원, 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A/S기사, 정수기점검기사, 아파트 경비원을 예로 들면서 이들 노동자도 제도적인 보호 범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채윤 샤넬지부장, “인사시스템에 감정노동을 얹을 수 없다”고 하더라
그럼 샤넬코리아 노조 입장은 어떨까. 한채윤(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인사시스템에 감정노동 개념을 얹을 수 없다는 게 회사 인사노무 책임자(ER매니저) 입장이에요.”
“슬픈 일이 있어도 감정 다 감춰가면서 해야 하는 게 우리 일이에요. 사측에서는 백화점에 얽매여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해요. 2만 원 보상을 요구하는 건 겨우 월급 2만 원을 더 받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요. 노동자가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는 감정노동의 가치를 회사가 존중하고 인정하라는 거죠.”
“샤넬이 감정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건 치졸해 보여요. 이름값 못하는 거죠.”
한채윤(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 샤넬코리아지부장)
샤넬은 신규 고객에게 약 20개의 질문이 담긴 링크를 휴대폰 문자로 보낸다. 일종의 고객만족도 설문이다. 그렇게 세세하게 고객의 만족도를 조사하는 업체가 역설적으로 현장 노동자의 ‘감정노동’은 인정하지 않는다. 한채윤은 그런 회사 측 입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늘(9월4일)은 중앙노동위원회 1차 조정 기일이었고, 밤 11시까지 쟁의 찬반 투표가 있었다. 투표는 424명의 노조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98%(416명)으로 가결됐다(아래 이미지 참고). 오는 9월 6일(금) 2차 조정이 있고, 조정 기간에 노사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추석을 앞두고 파업 가능성이 있다. 집단교섭에 참여한 6개 노조에서도 연대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한채윤은 말했다.
샤넬코리아,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샤넬코리아측 입장을 확인하려고 샤넬 측 교섭위원인 최석봉 ER 매니저에게 어제(9월4일)와 오늘 여러 번 전화했다.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기계음만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어쩔 수 없이 문자로 문의했다(2024.09.04. 오후 4시쯤). 문의 내용은 간단하다.
- 감정노동은 법률적 용어가 아니다.
- 감정노동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보편적 개념도 아니다.
- 글로벌 기업 샤넬은 다른 나라에서도 감정노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상 김종진)
- 인사시스템에 감정노동 개념을 얹을 수 없다는 게 회사 인사노무 책임자(ER매니저) 입장이다. (한채윤)
위 네 가지 항목에 관한 샤넬코리아의 공식적인 입장 확인이다. 아직 회신은 오지 않았다. 샤넬코리아 측 입장은 회신이 오는대로 이 글에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문자를 보낸 지 24시간 경과 시점에 기사를 발행할 예정이고, 이게 바로 그 글이다. 이후에라도 회신이 온다면 샤넬코리아 입장을 반영하기로 한다.
샤넬코리아의 2023년 한국 매출은 약 1조7000억 원이다. 본사에 배당금으로 2975억 원을 보냈고, 기부금은 13.1억 원이다.
업데이트: “샤넬코리아 지부 17년만에 감정노동 인정받다”
샤넬코리아지부가 2024년 9월 6일 저녁에 새로운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보내온 소식지(이미지)로 갈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