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국민연금이 기반을 둔 사회연대보다는 세대갈등만 부각된 2025 연금개혁. (주은선/경기대학교 사회복지전공 교수) (⏳4분)
국민연금 개혁안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모수개혁,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이에 따라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로 올라가고, 소득대체율도 내년부터 43%로 상향 조정된다. 소득대체율은 원래 매년 0.5%p씩 인하되어 올해는 41.5%가 됐고 2028년까지 40%로 조정될 예정이었는데 43%로 고정되게 된 것이다. 더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바뀌는 모수개혁이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이뤄졌다.
- 모수개혁: 연금에 적용되는 숫자를 조정하는 개혁 방식.
- 구조개혁: 연금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개혁 방식.

2025년 연금개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큰 틀에서 이번 연금개혁은 우리 사회가 저연금 노후빈곤 사회라는 오래된 경로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데 실패한 개혁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연금개혁은 국민연금 보장성이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았을 뿐 저연금과 노후불안이 만연한 상황을 반전시키는 제도 전환을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40%에 이르는 노인빈곤율은 더 이상 충격을 주지 않는다. 생애 후반 경제적 불안정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 핵심에는 만성화된 저연금 문제가 있다. 1988년 국민연금이 탄생한 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저연금 노후빈곤 경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연금개혁 시민공론화에서 다수안이었던, 소득대체율 50%로 대표되는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론은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진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여 노인빈곤 사회의 오랜 경로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저연금 경로를 지속할 것인가, 바꿔낼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2025년 연금개혁은 소극적인 선택을 했다. 얼핏 이 개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국민연금 축소 흐름을 멈춰세웠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를 전환시키기에는 소득대체율 인상 폭이 적고 그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이번 개혁은 더 오래 더 많이 보험료를 내는 미래 연금수급자의 연금 급여가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을 막는 정도의 효과를 가진다. 소득대체율이 40%라면 미래 2040년, 2050년 수급자는 국민연금에 더 오래 가입해도 지금 받는 사람보다 연금이 더 낮아진다. 소득대체율을 소폭 올리면 청년세대 연금은 현재 수급자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특히 보험료율은 9%에서 13%로 매해 0.5%p씩 비교적 빠르게 인상하기로 한 것에 비춰보면 소득대체율 인상 폭은 지나치게 작다.
충분한 연금 크레딧 확보도 실패
2025년 개혁으로 기존 둘째 아이부터 부여되던 출산크레딧은 첫째 아이부터 12개월이 부여된다. 군복무 크레딧은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었다. 오랫동안 첫째 아이부터 출산크레딧을 부여하고 군복무 전 기간에 대해 크레딧을 부여하는 것은 입장 차이를 떠나 당연한 개혁 방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 크레딧 확대는 제한적이다. 군복무 전체 기간이 아니라 12개월만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인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회적 기여와 감수해야 하는 자유와 권리의 제한을 생각하면 이는 부당하기까지 하다. 더욱이 국민연금 논쟁에서 혹자는 출산크레딧, 군복무크레딧 등을 확대하면 소득대체율 인상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크레딧 확대 수준은 미미하다.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확대도 포함했지만 그 기준은 구체화하지 않았다. 지역가입자의 요구는 절실하지만 정부 지출 억제를 우선시하는 정부 태도로 볼 때 지원 대상의 과감한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크레딧 확대의 영향을 받는 연령대를 고려할 때 그 효과는 군복무 크레딧은 소폭이나마 2070년 이후에야, 출산 크레딧은 2050년 즈음에야 나타날 것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계속 떨어뜨리는 것이 곧 미래세대를 위한 것이라는 궤변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세대분할로 존재감을 얻고 싶은 여야 정치인, 몇몇 대선주자가 이 주장을 내세운다. 이들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린 것이 미래세대 약탈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국민연금을 없애고 미래 노인은 온전히 사연금과 가족부양에 기대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국민연금 삭감은 미래 노인, 현 청년세대의 노후 불안을 가중시킨다. 특히 국민연금은 강력한 재분배 장치를 가진 제도로서 중간층 이하에게 유리하므로 삭감은 당연히 이들에게 더 위협이 된다. 지금 청년세대가 더 가난하며 더 불안정한 세대라고 말하면서 국민연금을 더 깎을 테니 고소득층에 유리한 사연금에 더 많이 의지하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 중요하게는 공적연금 재정은 가입자 모두가 똑같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보장제도는 필요 재정 규모가 커질수록 ‘부담능력에 따른 부담 원칙’이 요구된다. 연금지출 규모가 커질수록 고소득자와 자본이 더 많이 부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성숙한 연금제도에서 가입자 보험료로 재정을 모두 충당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EU 국가처럼 연금재정에 상당한 국고를 지원하거나, 프랑스처럼 보험료 부과소득 상한을 넘는 소득 부분에 대해 사용자와 고소득 노동자가 초과보험료를 내거나, 대자본이 사회연대세를 내거나, 미국처럼 고연금 수급자의 세금을 연금에 재투입하거나 하는 것은 한국 연금재정의 미래에도 참고할 만하다. 무작정 연금보장을 축소하는 것은 자본과 재정당국이 국민의 노후보장에 대한 책임을 도외시하도록 만든다.
연금개혁의 절반은 ‘노동개혁’
미래세대 약탈을 말하는 이들은 국민연금에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여 축소지향적 연금개혁으로 되돌아가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수급자 80% 가량의 연금액이 8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저연금체제에서 이는 필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이보다는 고령자가 연금수급 전까지는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년연장 등을 포함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더 오래 제대로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연금이 지속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금개혁의 절반은 사실 노동개혁이다.

미흡한 보장성 강화는 과제로 남았다.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노후보장제도로는 전환적 사회개혁이 불가능하다. 노후보장 강화에 크레딧 확대도 필요하지만 그 효과는 너무 느리고 제한적이므로 소득대체율 인상은 여전히 중요하다. 재정 측면에서도 보험료 인상에 따라 노사의 연금보험료 분담률 조정, 보험료 부과소득 상한 이상에 대한 초과보험료 부과, 증가 일로에 있는 플랫폼노동자와 같은 비임금노동자에 대해 플랫폼이 사용자 보험료를 책임지도록 하는 조처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2025년 연금개혁 전후로 노후보장과 사회전환에 대한 철학도 비전도 없는 이들이 재정관료에게 끌려다니고 세대분할을 설파하여, 공적연금이 기반을 둔 폭넓은 사회연대 가능성을 말살시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개혁과제를 나열하는 것보다 소위 정치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먼저인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