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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드리는 말씀:

한동안 모든 글에 이태원 참사를 함께 애도하는 머리말을 붙이려고 합니다. 본문과 관련 없는 글이 불편하고 낯선 독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런 독자의 마음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의미는 완전히 별개인 것처럼 보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의미들은 결코 사라지는 법 없이 언젠가는 귀향의 축제를 맞이할 테니까요.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 하는 일보다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하는 일은 더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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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를 함께 애도합니다.

유족들께 위로를 전하고, 작은 마음이나마 함께 해야 할 시간입니다. 놀란 마음, 상처받은 마음, 서로 다독거려야 할 시간입니다. 부상자들의 회복을 함께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생명과 상처와 죽음과 눈물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는 저 무서운 클릭 저널리즘을 단호히 거부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이 참사는 막을 수 있는 참사였습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간 희생자의 책임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책임이고, 실패입니다. 거기엔 대통령이 있고, 행안부가 있으며, 경찰이 있습니다.

마치 SPC의 희생과 죽음이 충분히 예견된 것처럼, 하지만 이윤을 위해 그  예견된 위험을 무시한 것처럼, 이태원 참사는 경찰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찰력이 우선순위에서 그 이태원 청년들을, 그 국민들을 배제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불행과 우연이 겹쳐친 ‘사고’가 아닙니다.

그러니 참사의 책임자들에게는 혹독하게 그 ‘실패’의 책임을 묻고,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로 삼아야 합니다.

유족과 함께 슬픔을 함께 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유족들과 함께 분노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자)

Pamela Kelly,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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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사용료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합리적인 정책인가. 망사용료법은 일반 이용자를 위한 법안인가 아니면 망사업자를 위한 법안인가.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망사용료법에 관한 판단에 참고가 될 영국 오프콤 보고서가 지난 10월 24일 발표됐다. 오프콤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하기 전에 우선 몇 가지 용어와 개념을 짚고 넘어가자.

1. 오프콤 » 방송통신위원회

오프콤(Ofcom)은 영국의 방송통신규제기구다. 정식 명칭은 커뮤니케이션청(Office of Communications)이다. 영국의 방송, 통신과 우편 산업 부문을 총괄해서 정부의 승인과 규제 및 경쟁을 관리하는 기구다. 우리나라로 치면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2. 발신자 과금제 법안 » 망사용료법

영국에서 논의 중인 ‘발신자 과금제'(charging CAPs) 법안은 우리나라로 치면 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 중인 ‘망사용’ 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해당한다.

3. 인터넷 접속료 ≠ 망사용료

망사용료 논의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망사용료를 당연히 내야지?’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망사용료 논의의 출발점은 망사업자(SKT 등)가 자신의 고객인 콘텐츠 제공자(네이버 등)가 이미 내고 있는 ‘인터넷 접속료’라는 망사용료 외의 별도 대가를 종량제와 같은 별도 형태로 받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망사용료’는 인터넷 접속료 외의 별도 비용을 의미한다.

2020년 당시에는 서비스안정화법(일명 ‘넷플릭스법’)으로 논의된 바 있는 망사용법은 인터넷의 철학과 원리를 깡그리 무시하고, 통신사가 ‘이중과료’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결국 콘텐츠제공자(CP)의 부담은 소비자에게 최종 귀결될 수밖에 없다.

4. ISP(망사업자)와 CP(콘텐츠 제공자)

참고로 망사업자는 영문 약자로 ‘ISP'(Internet Service Provider)로 자주 표기되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를 의미하며, 가령 우리나라로 치면 SKT, KT, LG유플러스 등이 망사업자에 해당한다. 이들의 고객 중에서 콘텐츠 제공자는 영문 약자 ‘CP'(Contents Provider)로 자주 표기되며, 이는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를 의미한다. 가령 구글, 넷플릭스, 네이버, 카카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일반 유저인 인터넷 이용자도 본질에서는 콘텐츠 제공자에 해당하지만, 망사용료 논의에서 CP는 특히 ‘대형업체’를 가리킨다.

5. 국내 업체만 내는 망사용료의 규모 (네이버 연간 1천억 규모)

앞서 살핀 것과 같이 구글이나 네이버와 같은 콘텐츠 제공자(CP)는 당연히 ‘인터넷 접속료’를 내고 있다. 다만, 네이버와 카카오 등과 같은 국내 대형 인터넷 기업은 이와 별도의 ‘망사용료’를 이중으로 내고 있다는 점이 외국 업체인 구글이나 넷플릭스와 다른 점이다. 참고로 네이버가 통신3사에 내는 망사용료는 2016년 약 734억원, 2017년 약 1,141억원에 이른다(출처: 2019년 국회 국정감사).

정치권에서 추진 중인 ‘망사용료법’은 쉽게 말하면, 네이버와 카카오가 내고 있는 망사용료를 구글이나 넷플릭스에도 물리겠다는 법이다. 물론 구글이나 넷플릭스는 인터넷 접속료 외에 별도의 ‘망사용료’를 전 세계 어디에서도 따로 지급하고 있지 않다.

6. 망사용료와 망중립성

망사용료 논의는 데이터(유형, 내용, 전송 방식)을 사용자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 되며, 동등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에 명백하게 반한다. (이상 편집자)

망사업자와 컨텐츠사업자의 거대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는 사실 ‘이용자’다. 이용자의 자유로운 접속이 보장되는 방법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망중립성 원칙 하에서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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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넷 발표 자료를 참고해 오픈콤 보고서를 요약정리한다. 요약문 말미의 괄호 안 숫자는 오프콤 보고서의 해당 페이지를 의미한다. (편집자)

오프콤 보고서 요약

1. 효과? 증거 없음! 

발신자 과금제가 망 성능에 도움이 된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have not seen sufficient evidence”)

2. 다른 방법이 오히려 효과 

발신자 과금제보다는 캐시서버 등 다른 유연한 제안들이 망 성능 향상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Our other proposals. . mitigate. . .issues identified by ISP”)

3. 오픈인터넷명령

유럽의 망중립성 규제인 오픈인터넷명령(Open Internet Order)은 이용자의 콘텐츠 접근권을 보장하고, 따라서 망사업자가 금전적 이유(“commercial considerations”)로 특정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82).

4. 망 성능 영향: 일반 이용자 > 콘텐츠 제공업체 

콘텐츠 제공업체(CP)보다 일반 사용자가 망 성능에 더 큰 영향을 준다. 발신자 종량제의 명분은 1) 특정 콘텐츠제공자들이 많은 데이터를 발생시키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과 2) 일반 이용자와 콘텐츠 제공자의 선택에 의해 전체 망성능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프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것, 특히 콘텐츠 접근 시점을 결정하여 망 성능 즉, 피크 트래픽(peak traffic)에 영향을 주는 것은 망사업자의 일반 고객이고, 콘텐츠 제공업체가 망 성능에 주는 영향은 한정적(“limited”)이라고 판단했다(88).

5. 콘텐츠 제공업체의 투자

콘텐츠 제공업체는 망 성능을 높이기 위해 이미 충분히 투자하고 있다. 콘텐츠 제공자들이 콘텐츠를 전달할 때 이미 전체 망 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전달하는 기술(캐시서버, CDN등) 및 트래픽양을 줄이는 코딩 기술 등에 충분히 투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88, 91).

6. 망사업자의 방해 

오히려 망사업자가 망 성능을 높이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망사업자들이 캐시서버를 설치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거나 캐시서버 설치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위와 같은 기술을 구사함에 있어 장애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89).

7. 망중립성이 망사업자 투자비용 회수에 장애요인인가? (‘증거 없다’) 

오프콤 보고서는 현재의 망중립성 체제가 망사업자들이 트래픽 수요를 감당하기에 필요한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것에 장애가 된다는 증거는 없다고 봤다(89). 더불어 망 설치 비용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기 때문에 망 투자비용 역시 하락해왔다고 지적했다(90).

8. 일반 이용자의 망접속 가격이 내려간다고? (‘불확정적인 예측’) 

대형 콘텐츠 제공업체에 대해 발신자 과금제를 물게 하면 일반 유저인 소비자의 망 접속료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오프콤 보고서는 망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인 경우 그리고 콘텐츠 제공업체가 일반 이용자에게 (자신이 발신자 과금제에서 지출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구독료를 따로 받지 않는 경우에만 가능한 이론이라면서 현재 상황에서는 불확정적인 예측이라고 평가했다(93).

9. 이중계층 인터넷 발생 위험 → 망중립성 파괴 

특히 오프콤은 법 개정을 통해 망사업자에게 발신자 과금을 허용하면, 매출 최대화를 위해 지위가 남용돈을 낸 콘텐츠는 우선 전달되고(“fast lane”), 돈을 내지 않은 비과금 콘텐츠는 지연 전달되는 비포장도로(“dirt road”)로 데이터가 전송되는 이중계층 인터넷(“two-tier internet”)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95).

망중립성은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차별도 금지한다. 하지만 망사용료 법은 ‘특별히 돈 더 내는’ CP에게 더 빠른 길을 내주는 ‘차별’을 합법화할 위험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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