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운 칼럼] “왜 유독 삼성에 직업병 피해자가 많은가요?” 반올림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늘 접하는 질문이다. 이에 관한 대답은 처음 그때와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 크게 달라졌다. (⌚7분)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상한제(주52시간)를 반도체 연구개발직에 한해 풀자’는 주장이 삼성 등 기업, 경제지 중심의 언론, 국민의힘(당론), 민주당 일부로부터 계속 나오고 있다. 어제는 최상목 대행도 강하게 한마디 했다지.

우선 나는 이 논란이 좀 이상하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할 수 있는 전제가 뭉텅이로 빠져 있다고 생각돼서다.

노동시간 문제가 무슨 정치와 경제(기업)의 타협 거리처럼 취급된다. 노동자 건강권이 타협 대상인가?

노동자 건강권은 어디로 갔나?

노동시간 상한제는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특칙이다. 국가가 노사 간 계약 관계에 거칠게 개입해 선을 그은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삶과 건강이 위태롭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52 시간’이라는 선이 막 그어진 것도 아니었다. 주50시간 이상 일하면 뇌졸중, 심장질환, 수면장애, 정신질환 위험 등등이 크게 높아진다는 공신력 있는 연구 결과들에 근거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이 특히 과중하고 그로 인해 과로사, 뇌심질환 문제가 많이 발생한 것에 대한 뒤늦은 대응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한 규제를 특정 업종에만 풀자고 하면서, 그 업종에서는 그래도 된다는 ‘노동 건강권 관점’의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이를 강력히 요구하는 기업들은 물론, 그 요구를 받아 주자고 앞장서는 언론과 정치인들도 그들의 건강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난 이게 제일 이상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다르지 않다. 그는 2월 3일 토론회에서 “특정 중요 산업의 특정 연구개발 분야 중에서도 고소득 전문가들이 동의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그들이 몰아서 일할 수 있게 해주자, 이걸 왜 안 해주냐고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라고 했다. ‘고소득’이나 ‘동의’ 따위를 건강권 보호 장치라고 하지는 않을 테다(설마 그런가?). 노동 건강권 보호제도에 구멍을 내면서 노동 건강권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이게 뭔가. 차라리 ‘국내 반도체 기업들 잘되는 게 너무 중요하니, 연구개발직들 건강 문제는 좀 덮어두자’고 하면 논리적이기라도 하지. 그런 말은 또 하지 않는다. 못하는 거겠지. 그냥 눙치고 넘어가려는 것 같다.

유독 ‘노동’ 문제에서 자꾸 이런다. 왜일까? ‘노동’ 문제를 ‘경제’ 문제로 치환시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국가나 기업의 시혜(서비스) 같은 것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최저 임금’ 문제를 노동자의’인간답게 살 권리’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비용 부담’ 문제로 보듯, ‘노동 시간’ 문제도 ‘노동자의 생명 건강’ 문제가 아닌 ‘기업 규제’ 문제 혹은 ‘워라벨 복지’ 문제 따위로 보는 것이다.

물론 노동 시간 상한제 때문에 기업 부담이 커지는 것은 맞고, 그 부담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다면 시정되어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기업 부담을 이유로 노동시간 상한제에 구멍을 내면서 그로 인해 취약해지는 건강권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면, 심지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상한제 도입의 취지는 물론 노동 건강권이라는 가치 전체가 통째로 우스워져 버린다. 반도체 특별법 논란이 뜨니 건설, 조선, 방산 업종에서도 덩달아 ‘주52 시간 풀어달라’ 난리 치는 건 그래서 아니겠나.

이젠 이렇게 말한다: “삼성이 특히 더 위험한 것 같아요”

지금, 이 논란을 주도하는 기업이 ‘삼성전자’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 중 삼성 말고 어디가 또 여기에 매달려 있는지는 잘 찾아지지도 않는다. 지난 2년간 반도체 R&D 특별연장근로 신청 건수가 삼성은 22건(총 43만여 시간)인데, SK하이닉스는 0건이라는 자료도 나왔다.

더욱이 한겨레 보도를 보면, 비상계엄 사태로 온 국민이 혼란에 빠졌던 12월 초에 삼성 측이 국회에서 민주당을 만났다고 한다. TSMC가 대만 노동법 어겨가며 주 7, 80시간 일 시키고 있는데 그들과 경쟁하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단다. 이미 근로기준법에는 예외적으로 주52시간을 넘길 수 있는 수단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런 것들은 ‘번거로워’ 문제라고 했단다. 결국 ‘손쉽게 52시간 상한제 회피할 수 있는’ 특혜적인 법률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주도한 민주당 토론회는 그 이후에 나왔다.

‘반도체 직업병’ 사안으로 강의할 때,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왜 유독 삼성에 직업병 피해자가 많은가요?”였다. 그에 대한 내 답변은 시기별로 조금씩 변했다. 반올림 활동 초기에는 “다른 기업도 비슷하게 문제겠지만 삼성 피해자가 더 많이 알려진 면이 있지요”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삼성이 특히 더 위험한 것 같아요”라는 취지로 답했다.

반올림 활동 경험치가 쌓일수록 삼성 내부의 문화, 그러니까 노조를 혐오하고 노사관계가 수직적이며 실적과 경쟁을 유독 강조하는 고유한 분위기가 직업병 문제의 중요한 원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 기술의 특성상 유해 물질을 많이 쓸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기업들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와중에 심각한 과로∙/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더 위험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반올림 피해자 중에 주OO이란 분이 있었다. 80년대 초부터 20년 넘게 삼성 직원이자 반도체 기술자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이경영 배우가 연기했던 분이다. 그분의 진술 기록에 이런 말이 있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일을 빨리해야 해서 발생했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잔류가스를 뽑아내야 하는데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할 형편이 못되었어, 결국 빨리해야 해서 문제가 발생했지…”. 난 이게 ‘삼성 반도체 직업병’의 문제의 핵심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2013). 극 중 ‘교익’을 연기한 이경영 배우.

실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과로’를 강조했었다. 그들을 대면한 상담 기록에서 ‘과로’ 문제가 빠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법원이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난소암, 다발성경화증, 불임, 뇌종양 등을 직업병으로 인정한 판결문에도 ‘과로/스트레스’는 간접적, 중첩적 발병 원인으로 언급되어 왔다. 최초로 산재 인정을 받은 고 황유미, 이숙영 님의 고등법원 판결문에도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망인들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침으로써 이 사건 질병의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의 하나로는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앞으로도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인정하며 ‘과로’ 문제를 꾸준히 지적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삼성의 요구를 받아, ‘손쉽게 더 일 시킬 수 있는’ 특별법을 추진하며 건강권 문제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대단한 삼성민국이다 정말.

그대로 남은 독소 조항들, 대단한 삼성민국이다 정말!

2011년에 나온 유미 씨 판결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법원은 삼성 반도체(LCD) 노동자들이 처해 왔던 특별한 위험에 대해 지적해 왔다. 산업 특성상 유해 물질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는데 사업주의 노출 관리는 부실하고, 그 와중에 작업환경은 자꾸 바뀌고 영업비밀은 많고 법은 느리고 교육도 부실하고 등등. 2017년에는 대법원도 그러한 위험들을 지적하며, 산재보험 제도가 그 노동자들의 희생을 보상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었다.

삼성의 반도체 산업이 본격화한 80년대 초부터 수많은 노동자가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어 왔고, 그들의 건강 문제는 2007년부터 알려졌으며, 그나마 산재보험이 아주 조금씩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의 일이다. 당연하게도, 국가의 역할이 ‘직업병 피해 보상’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피해를 예방하려는 노력에도 마땅히 나서야 한다. 근데, 무얼 했던가? 법원이 지적해 왔던 그 위험들을 줄이려는 노력이 뭐가 있었나? 잘 모르겠다.

역행하는 노력은 분명히 있었다. 2019년에 국회는 삼성에 반도체 공장의 위험을 손쉽게 은닉할 수 있는 법률적 수단을 만들어줬다. 뒤늦게 ‘삼성 보호법’ 논란이 일었던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문제다. 그다음 해 민주당 포함 15명의 국회의원이 “건강권 보호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을 걸러내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며 “이 법을 그대로 두어선 안 된다”는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그 독소 조항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2025년에 이르러, 그 노동자들 일 더 시킬 수 있는 법을 삼성 민원 받아서 또 만들려는 게 대한민국 정부고 국회다. (다시 또) 대단한 삼성민국이다, 정말.

국힘이 국힘한 건 알겠는데… 민주당 지켜봐야겠다!

최근 이 논란이 커진 데에는 이재명 대표의 역할이 컸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반도체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해 왔는데, 노동시간 특례 조항은 국민의힘 법안에만 있었다(2024. 11. 이철규 대표 발의). 국민의힘은 그 전부터 ‘한동훈 민생 살리기 이슈’로 이걸 띄우더니 법안 발의 이후에는 “당론 추진” 입장까지 냈다. 다수 언론은 ‘민주당도 협력하라!’고 요구했다. 뭐 여기까지는 국민의힘이 국민의힘 한 거였고 그 언론들도 해왔던 짓을 한 거였다.

반도체(라고 쓰고 ‘삼성’이라고 읽는다) 52시간 예외? 이 ‘돌변’의 과정은 충분히 설명됐는가? 사진은 이재명(민주당 대표). 민주당 정책디베이트III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시간 적용제외 어떻게?’ 2025.02.03.(월)

그런데 2월 초,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직접 좌장을 맡아 이 문제로 토론회 열면서 판이 커졌다. 그의 생각이 특례 도입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평가도 많았다. 실제 토론회 발언들을 보면 입장이 꽤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토론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기업들이 누구누구만 노동시간 상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데, 이게 왜 안 돼요?’라고 노동자들에게 물었다. 질문 내용과 대상이 잘못되었다. ‘노동 건강권 보호를 위한 규제를 누구누구에 대해서만 풀면, 그들의 건강권 문제는 어떻게 해요?’라고 기업에 물어야 했다.

결국 또, 삼성의 대관 로비와 여론몰이에 취약한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싶은데…. 현실 정치에서 ‘실력’이라는 게 어떻게 평가되는지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것도 중요한 실력 아니겠나(참말로….). 그리고 어떤 산업 살리기와 관련 기업 경영진 배불리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치. ‘민생’ 정책 딱지 붙이고 노동자의 삶을 위협하는 정치. 이제 좀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나(참말로….)

다행히, 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커서 특별법 합의는 안 하기로 한 것 같다. 근로기준법 개악도 안 하리라 믿는다. 만일 이런 식으로 또 노동 건강권 위협하는 일이 민주당 발로 벌어지면, 그 안에서 누가 어떤 목소리를 내나∙못 내나부터 지켜봐야겠다(부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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