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고용노동부)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겪고도 사회안전망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무급휴직 근로자 등에게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한다.
요약하면, 1) 코로나 이전 소득이 일정 수준 미만(연소득 5천만원 미만 또는 7천만원 미만)인 특고, 프리랜서, 소상공인, 무급휴직자 등을 상대로 2) 코로나 이전에 비해 소득 또는 매출이 일정 수준(소득 수준에 따라, 25% 또는 50%) 이상 감소했을 경우 지원금을 준다는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마따나, 코로나19의 충격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footnote]2020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문재인 대통령은 “재난의 크기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지 않다. (중략) 장애인이나 취약한 분들에게 재난은 훨씬 더 가혹하다는 사실을 코로나19를 겪으며 다시 한번 절감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footnote] 모두 나름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여행업이나 학교 비정규직 등 일부 업종은 그야말로 벌이가 끊긴 수준이고, 영세자영업자들은 경기 침체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중이다. 취약계층에는 감원의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고, 취업문도 굳게 닫혀버렸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복지 사각지대에 눈을 기울인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고용안정지원금… 좋은 취지, 차별적 기준
그런데 누가 우리나라 정부 아니랄까봐 여기서도 당황스런 부분이 있다. 특고, 프리랜서와 영세자영업자의 지원 기준이 명백히 다른 것이다. 특고, 프리랜서는 ‘소득’이 25% 또는 50% 이상 감소했을 때 지원 대상이 되지만, 영세자영업자는 ‘매출’이 25% 또는 50% 이상 감소했을 때 지원 대상이 된다.
‘소득’과 ‘매출’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매출’에서 ‘비용’을 빼야 비로소 진짜 그 자영업자의 소득이다. 문제는 ‘비용’은 임대료와 인건비 등 상당부분이 고정된 비용이라, ‘매출’이 줄어든다고 ‘비용’도 같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영세자영업자가 ‘매출’이 25%나 줄어들었으면 그 달의 벌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50%가 줄었으면 그 달은 그냥 적자다. 그런데 정부는 ‘소득’과 ‘매출’을 똑같은 기준에 놓고 지원책을 마련했다.
난 가끔 정부 정책이 뭐 대단한 합리적 기준 아래 마련되는 게 아니라,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숫자부터 정해놓고 현실을 그 안에 때려넣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 개개인의 그 유능한 능력들을, 그 ‘숫자에 현실을 때려넣는 일에’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카드 받음’ 하지만 카드 단말기는 없음?
정부에서도 이게 불합리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자영업자도 ‘매출’ 감소를 기준으로 하되, ‘소득 감소’를 증빙할 경우에도 가능하다고 일단은 안내하고 있다. 홈페이지에서도 그렇게 안내하고 있고, 공식 블로그에 문의했을 때도, 고용노동부 담당 공무원에게 문의했을 때도 거듭해서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footnote]이 정책의 대외 공보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임세희 서기관는 증빙자료의 ‘차별성’과 ‘형평성’에 관해 문의하자 “자영업자는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소득’ 같소를 서류 증빙하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참고로 문의는 세 번에 걸쳐 이뤄졌고, 문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답변의 골격은 같았다. (편집자)[/footnote]
하지만 정작 실제로 지원금을 신청해보면, 자영업자는 무조건 첫 단계에서 ‘매출’을 입력하게 되어 있다. ‘소득’으로 바꿀 수가 없다. 그 뿐만 아니다. 요구하는 서류도 모두 ‘매출’에 관련된 것들이다. 실제로는 ‘소득 감소’를 증빙할 방법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가 않다. 비유하자면, ‘카드도 받습니다’라고 써 놓고 정작 카드 단말기가 없는 상황이랄까.
또한, 이미 종합소득세 신고가 끝난 2019년의 경우 매출과 비용을 월별로 계산해 소득을 추산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2020년은 세무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매출과 비용, 소득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 물론 증빙 서류를 갖추기도 어렵다. 사실 비(非)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얘기일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특고든, 프리랜서든, 자영업자든 개중에는 웬만한 대기업 정규직 이상으로 승승장구하는 고소득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똑같이 지원하는 건 불합리하다. 한정된 예산을 고통 받는 취약계층에 최대한 합리적으로 나눠주기 위해서는 ‘선별’은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의 유사 제도, ‘단순함’의 미덕
문제는 ‘선별’이 복잡해질수록, 뜻밖에 취약계층이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최대한 서류를 간소화하고, 또 다양한 서류를 인정해주고 있지만. 선별 기준 자체가 복잡하다보니 서류를 아무리 간소화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특고, 프리랜서 중에는 노무제공확인서나 노무미제공확인서를 발급받는 데 어려움이 있어 수급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과 비교된다.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 역시 ‘연매출 2억원 미만’이라는 선별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조건이 단순하고, 그래서 제출해야 할 서류도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장벽이 되지 않는다. 특별히 준비할 것도 계산할 것도 없이, 사업자등록번호 정도만 제출하면 나머진 시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도 매출 기준이 아니라 소득 기준이 더 합당하다는 등의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있으나, 그럼에도 ‘기준이 단순’하고, ‘절차가 간소’하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미덕이다. 복지제도는 그 기준과 절차가 복잡할수록 사각지대가 발생할 뿐 아니라, 고려해야 할 요소도 늘어나고 그로 인한 구멍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굉장히 사소한 부분 같지만, 정부의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같은 경우도 그렇다. “자영업자도 소득 감소로 증빙 가능하다”고 안내하면서, 정작 실제 신청 화면에서는 무조건 매출 감소를 증빙하도록 하고 있다. 사소한 구멍이지만 작지 않은 구멍이다.